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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사인 (137)화 (136/320)

137화

그것도 잠시였다.

곧 굳은 표정으로 술병을 집더니 그대로 깡소주를 입에 쏟아 부었다.

한 병을 쉬지도 않고 쭉 마셨다.

터억!

빈 병을 내린 유중헌은 표정부터 달라져 있었다.

운전대를 잡은 바로 그 모습이었다.

“이런 미친. 왜 가만히 있는 사람 뚜껑 열고 그럽니까. 단장이면 다야?”

“어라? 이 녀석 봐라!”

“뭘 봐. 단장씨나 운전할 때 잔소리하지 마. 그거 때문에 귀 따가워서 운전에 집중이 안 되니까!”

그렇게 유중헌까지 싸움에 가세했다.

술자리가 엉망진창으로 돌변하자 고수현이 외쳤다.

“모두 그만!”

“…….”

“기분 좋게 술 마시고 이게 뭐하는 짓들입니까!”

버럭 소리치며 만류하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태건부터 다들 그를 보며 마주 버럭 소리쳤다.

“신경 꺼!”

그 소리에 고수현의 수려한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말 좀 하면 들어라, 이 빌어먹을 놈들아!”

“뭐어? 저게 요즘 살만해졌지!”

“저거? 내가 저거? 이지성, 너 이리와. 당장 와 새꺄!”

“생일로 따지면 10개월도 차이 안 나면서……. 할 말 있음 니가 와!”

이지성이 버럭 소리쳤다,.

그 순간 황대산이 이지성을 붙들었다.

터억!

“새꺄, 나랑 용건 안 끝났어!”

그런 황대산을 태건이 막아섰다.

사삭.

“적당히 좀 하시라고요!”

태건의 짜증에 오광휘 단장이 바로 반응했다.

울컥!

“니가 단장이야? 다 네가 하란대로 해야 돼?”

오광휘 단장이 소리치자 유중헌이 곧장 끼어들었다.

으르렁.

“그러는 단장은 뭔 다른 줄 아쇼. 똑같아. 어쩔 땐 단장이 더 합니다!”

유중헌이 으르렁거리자 고수현이 순식간에 다가왔다.

버럭!

“아, 그만 좀 하라니까요!”

그렇게 투덕거림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원을 그렸다.

그동안 꾹꾹 누른 감정이 터져서 그런지 쉽사리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한 명에게만 불만을 품고 있지 않았다.

황대산이 계속 앞을 막는 태건에게 짜증의 화살을 돌렸다.

“그리고 강태건이. 넌 뭐 다 잘하고 있는 줄 알아!”

“황 선배, 갑자기 왜 저한테……. 단장님, 좀 있어보세요. 황 선배가 갑자기 절 걸고 넘어지잖아요!”

“이 자식이. 나랑 떠들다 왜 대산이한테 시비야? ……아씨, 유중헌이. 내가 말하고 있잖아!”

“아니, 단장님이야 말로 갑자기 등을 돌립니까? ……이지성, 놔라. 니가 나한테 뭔 불만인데!”

어느새 싸움의 상대가 바뀌었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수시로 바뀌고 있었다.

어쩔 때는 팀을 이뤄 한 명을 나무랐고, 또 반대로 한 명이 여러 명을 쏘아붙이기도 했다.

한 마디로 개판이었다.

태건도 사방에서 몰아치는 단원들을 공격하고, 또 방어했다.

그러다 문득 이 상황을 멀리서 지켜봤다.

“이건 뭔 상개판이야.”

처음엔 화기애애했는데, 결국 이렇게 됐다.

정말 못 말리는 이들이었다.

물론 태건도 포함이었다.

방관자였던 태건은 어느새 다시 그 속에 뛰어들어 외쳤다.

“단장님, 하던 얘기는 마무리 져야 될 거 아닙니까!”

“순서 지켜 짜샤!”

“뭔 순서요……. 아, 잡지 마요. 대산 선배, 좀 기다려 보라니까요!”

여기저기 쏘아붙이고 들이받았다.

그들의 투덕거림은 밤이 깊어져도 쉽사리 끝을 맺지 못했다.

그런 그들을 보며 공통적으로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라텔.

무법자처럼 여기저기 들이받는 그 모습과 너무도 똑같았다.

모두 다른 거 같지만 결국 끼리끼리 모여 있었다.

결국 특수소방단의 첫 회식은 자리를 파하는 순간까지 짜증과 고성만이 오갔다.

다음날.

모두 숙취 가득한 얼굴로 식탁에 모여 있었다.

“…….”

조용한 가운데 어색함만 가득 흘렀다.

후릅, 후릅.

국물을 떠 넣는 사이사이 슬쩍 눈치를 보기도 했다.

어제 술김에 뿌려댄 짜증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크흠, 흠흠.”

“커흐음!”

괜히 헛기침소리만 울렸다.

태건은 이런 어색함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확 나서려다 멈칫했다.

‘그럼 또 단장님이 뭐라고 하시겠지?’

그게 싫어 조용히 있으려 했다.

그때였다.

톡.

태건의 앞에 휴지뭉치가 날아왔다.

“…….”

이건 뭐야.

스윽.

집어든 그때였다.

툭.

또 다른 휴지뭉치가 날아와 태건의 코에 닿았다.

순간 기분이 팍 상했다.

“어떤…….”

울컥하며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러다 휴지를 말고 있는 오광휘 단장과 눈이 마주쳤다.

‘엥?’

갑자기 이런 장난이라니.

그런데 장난이 아닌지 오광휘 단장이 눈꼬리를 축 내렸다.

‘어떻게 좀 해봐.’

슥슥.

숨 막힐 거 같은 어색한 공기를 풀어보라고 계속 눈짓했다.

태건은 슬쩍 흘겨봤다.

‘그러다 또 뒤끝 부릴 거잖아요.’

고개를 돌려 외면하기까지 했다.

톡, 톡.

계속 휴지뭉치가 날아왔다.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결국 태건이 인상을 팍 찡그리며 노려봤다.

‘아, 진짜.’

시선이 마주치자 오광휘 단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제 안 그럴게. 안 해.’

그런 뜻이 담긴 표현이었다.

같이 살았던 기간 덕분에 행동으로도 충분히 의미를 알아들었다.

정말일까?

솔직히 100퍼센트 믿긴 어려웠다. 

그러나 태건도 어색한 게 싫었던 차였기에 슬그머니 나섰다.

“언제까지 이럴 겁니까?”

“…….”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은 거기서 끝난 거 아닙니까?”

태건이 재차 물었다.

마치 모두가 기다렸단 듯이 머쓱한 얼굴로 한 마디씩 했다.

“그, 그렇지. 그건 그 순간으로 끝내야지.”

“세상에서 제일 치사한 게 술 먹고 한 얘기에 뒤끝부리는 거라던데요.”

“수현이 말대로……. 저도, 그렇게 알고…….”

그래도 아직 서먹서먹한 느낌이 남아 있었다.

그때였다.

퉁!

황대산이 테이블을 내리치며 크게 말했다.

“남자 새끼들이 쪼잔하게 말이야.”

“누구도 쪼잔하던데.”

이지성이 툭 끼어들어 디스했다.

참 한결 같은 반응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다.

“…….”

차라리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려는 모양이었다.

태건도 이지성의 말을 뒤로했다.

그리고 황대산이 한 말을 스리슬쩍 붙들었다.

“대산 선배 말대로 이건 우리 스타일이 아니잖습니까.”

“크흠. 그렇지.”

“이제 다시 가동할 건데 출동해서도 서먹서먹하게 굴 겁니까?”

“그럴 순 없지.”

오광휘 단장이 대답하고 모두 잔잔히 고개를 끄덕였다.

탄력을 받은 태건이 덧붙여 말했다.

“까짓것, 현장에서 불만을 다시 담아두고, 다음에 술 마실 때 또 풀면 되잖습니까.”

“크흠.”

“그렇게 다시 털어내고. 그러면서 맞춰 가면 되잖아요.”

“그렇긴 해.”

“그런데 뭘 눈치만 봅니까. 단장님, 안 그렇습니까?”

태건은 타이밍 좋게 오광휘 단장에게 바통을 건넸다.

어색함이 그만큼 풀려 있었다.

오광휘 단장도 더는 떠밀지 않고 직접 나섰다.

“태건이가 제대로 집었어. 다음엔 아주 머리끄댕이 잡고 싸워보자!”

“우우, 어떻게 말이 그렇게 갑니까!”

다들 야유를 보냈다.

그 순간 오광휘 단장이 손을 거칠게 내저으며 투덜거렸다.

“시꺼. 내 밑으로 다 조용히 해!”

“…….”

“짜식들이 말이야. 됐어. 이제 끝. 알았지?”

“네.”

다들 대답하며 얼렁뚱땅 넘어갔다.

때로는 이런 두루뭉술한 대처도 필요한 법이었다.

잠시 후 옥상.

특수소방단 모두가 헬기 근처에 자리했다. 

오광휘 단장이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첫마디를 열었다. 

“이 녀석, 살아왔네.”

“이게 다, 제 조종 실력이죠.”

유중헌의 한마디를 다들 깨끗하게 무시했다.  

재가동의 순간이었다.

오광휘 단장이 망설임없이 거치형 무전기 전원을 올렸다.

띠릭.

“여기는 라텔, 현 시간부로 라텔 재가동 합니다!”

당차게 외쳤다.

곧 회신이 들려왔다.

-치직. 라텔 재가동 확인. 복귀를 환영합니다.

상대의 목소리에서 전에 없던 큰 신뢰가 느껴졌다.

“…….”

헬기 근처에 자리한 단원들 모두에게 차분함만 감돌았다.

가타부타 말하는 건 모두 사족일 뿐이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  *  *

특수소방단은 그 시간부로 무한 대기에 들어갔다.

한 명은 헬기에서 무조건 비상대기였다.

그 외에는 가벼운 운동이나, 휴식을 하며 컨디션을 조절했다.

모든 생활을 우면 훈련장 안에서 해결했다.

영외로 나가는 것만 제한되었을 뿐, 그 외엔 자유로웠다.

시간이 흘러가며 달라지는 부분이 있었다.

그건 열기였다.

조금씩 가라앉는 느낌이 세상에서 들렸다. 

“그럴 때가 됐지.”

다들 신경 쓰지 않았다.

일전에도 언급했듯, 양은 냄비같이 이른바 열병 같은 관심이다.

시간이 지나면 사그라졌다.

그에 대해 실망하거나 미련을 갖지 않았다.

“더 노력하면 돼.”

다시금 이슈가 될 기회가 올 거다.

그때까지 스스로를 단련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었다.

어느 화창한 주말 오후.

태건은 황대산과 체력단련실에서 운동 중이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반복하는 일과였다.

철컹, 철컹.

“푸우우.”

운동기구를 내리며 깊은 숨을 내쉬는 태건의 몸이 땀으로 가볍게 젖어 있었다.

기동복 상의를 벗어낸 러닝셔츠 차림이다.

단단하고 옹골진 근육이 남성미를 가득 내보이고 있었다.

그 옆에선 황대산이 가볍게 맨손운동 중이었다.

“체력은, 흐압, 소방력!”

그의 근육은 크게 부풀어 짱짱한 느낌으로 가득했다.

그렇게 운동하던 중이었다.

돌연 우면 훈련장 전역에 따갑고 날카로운 경고음이 울려 퍼졌다.

-삐용 삐용 삐용!

태건과 황대산이 동시에 스피커를 바라봤다.

이 소리.

출동신호다.

번뜩!

잔잔하던 두 눈이 일순간 바짝 조여졌다.

“선배!”

“가자!”

파바박!

기동복을 낚아챈 두 사람은 정신없이 체력단련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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