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화
잠시 후.
우면 훈련장 상공으로 헬기가 떠올랐다.
투다다다!
헬기 안엔 유중헌을 제외한 5명의 단원들이 다급히 방화복을 갖춰 입고 있었다.
“이엽!”
“아자잣!”
척척.
좁은 공간임에도 유연하고 신속하게 움직였다.
그 사이 무전 대기 당번이었던 고수현이 모두에게 전파했다.
“의정부시 소재 폐점 예정인 대형마트에서 화재 발생!”
“폐점한 대형마트? 해체하다 대체 뭔 짓을 한 거야!”
오광휘 단장이 짜증부터 냈다.
고수현은 재빨리 추가 정보를 말했다.
“아직 해체 작업 전이고, 화재 원인은 불명!”
“수현 선배, 단순 화재랍니까?”
어느새 방화복을 모두 갖춰 입은 태건이 물었다.
고수현은 마저 착용하며 이어서 말했다.
“현재까진 대응 1단계야. 의정부 관할 소방관들만 집결 중인데.”
“그런데요?”
“요구조자가 있대. 최초 신고자는 남진우, 15세. 사촌동생들과 그 속에 있는 모양이야.”
이어서 말하는 고수현이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그 순간 태건은 물론 모두가 멈칫했다.
사람이, 그것도 청소년들이 있다니.
자신들의 출동에 대한 의문점이 일순간 날아갔다.
그때 황대산이 눈살을 팍 찌푸리며 쏘아붙였다.
“이 녀석들, 호기심이 왕성할 나이라도 불장난이라니!”
“아니요. 신고자의 말에 따르면 폭음과 함께 건물이 들썩이고, 그 다음에 불타기 시작했답니다.”
“애들은 원래 감당 안 되면 딴소리하고 그러는 거야!”
황대산은 화재 원인을 그렇게 확정 짓는 거 같았다.
그건 그만의 판단일 뿐이다.
확실한 건 그 무엇도 없었다.
다혈질이라 무턱대고 말부터 할 때가 종종 있었다.
그때 태건이 막아섰다.
“그게 중요합니까. 그래서 현재 상황이 어떤데요?”
그에 대한 대답은 고수현에게서 들려오지 않았다.
조종 중인 유중헌의 목소리가 높다랗게 귀를 자극했다.
“저기 앞에 검은 연기!”
“벌써 보인다고?”
휘휙!
모두가 다급히 조종석 창유리 너머를 바라봤다.
정말 검은 연기가 보였다.
저 멀리 한 눈에 봐도 상당한 굵기로 솟구치고 있었다.
투다다다!
헬기는 현재 개천을 거슬러 오르는 중이다.
좌우에 펼쳐진 도봉산과 수락산을 지나고 있었다.
아직 상당한 거리가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검은 연기가 육안으로 확인됐다.
다들 검은 연기 기둥을 본 순간 직감했다.
“벌써 엄청나게 번졌어!”
“폐점한 대형마트라며, 관리할 사람도 없을 거 아냐!”
“스프링클러나 작동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앞다투어 의견을 말했다.
그저 떠드는 게 아니라 현장 도착 시 혼선을 줄이려 예측하는 거였다.
그때 오광휘 단장이 버럭 소리쳤다.
“다들 시꺼, 입 닥쳐!”
“…….”
일순간 헬기 속이 조용해졌다.
그 순간 거치형 무전기가 울렸다.
-치직. 경기도북부소방재난본부에서 알린다. 현 시간부로 의정부 대형화재는 대응 2단계로 격상한다. 반복한다…….
무전 소리가 헬기 속을 가득 울렸다.
대응 2단계.
인근 소방서의 모든 소방력을 총 동원하는 동원령이다.
“…….”
누구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했다.
중형재난상황임을 공표하는 만큼 아무 때나 발령되는 게 아니다.
특수소방단이 발족 후 처음이었다.
그 중에서도 이 순간을 무겁게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태건의 얼굴이었다.
“…….”
꾸욱.
쥐고 있던 방화장갑을 자신도 모르게 비틀었다.
그날 이후 처음 대응 2단계가 발령됐다.
이채용 팀장과 박성규를 떠나보낸 그 정유공장 화재사건이다.
지금까지 가슴 깊이 묻고 있었다.
그 사고가 다시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간은 흘렀다.
지금 태건은 그때의 자신보다 성장했다.
같은 순간, 같은 결과는 절대 맞이하지 않을 거다.
꾸깃.
비틀던 방화장갑을 아예 뭉개버렸다.
그 결심만큼 태건의 두 눈이 깊고도 거칠게 빛났다.
번뜩!
그리고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먼저 양해 말씀드립니다.”
“음? 갑자기 뭘?”
“오늘은 좀 거칠 겁니다.”
경고하는 태건의 목소리가 스산했다.
뚱하니 바라보던 선배들 표정이 싹 굳어졌다.
“흡.”
누군가는 헛숨을 삼켰다.
저 눈빛.
진짜다.
스스슥.
얼마나 강렬한지 오한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 태건과 같은 심정인 또 한 명의 단원이 있었다.
오광휘 단장이었다.
그의 표정에 장난기가 쏙 빠져 있었다.
목소리까지 굵어졌다.
“나도 미리 밑밥 깔고 간다. 현장에서 뒤지는 새끼는 나중에 죽어서라도 족친다.”
“…….”
“뒤질 거 같으면 지랄발광을 해서라도 불 밖으로 기어 나와 뒤져라. 이건 단장으로서 명령이다.”
쿠구궁.
한 마디, 한 마디를 씹어뱉었다.
단원들 모두 무슨 소린가 했다.
힐끗.
쳐다본 이지성이 역시나 삐딱하게 물었다.
“뭔데, 둘 다 뭐 씹은 얼굴로 그럽니까?”
번뜩!
태건이 그런 이지성을 묵직하게 쏘아봤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부천 정유공장 화재건.”
투둥.
태건이 처음으로 그 사건을 언급했다.
2년 정도 지난 사건이다.
그러나 소방관이 둘이나 순직한 사건이다.
전국 소방서에 공문으로 내려갔던 사건이기도 했다.
그만큼 소방관들 사이에선 잊힐 수 없는 일이었다.
단원들도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잠깐만 그 사건…….”
“그때, 그 순직한 분들 소속이…….”
“어? 단장님하고 태건이 이전 소속이…….”
파르르.
하나씩 집어가던 모두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두 사람에게 얽힌 과거를 이제 일깨운 거였다.
특히 이지성이 멈칫하며 태건에게 말했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
그의 목소리가 유순하게 가라앉았다.
아킬레스건을 건드린 순간까지 삐딱할 순 없던 모양이다.
태건은 그런 이지성에게 말했다.
“선배, 오늘 현장에서는 말조심하십시오.”
지이잉!
경고하는 태건의 눈빛이 스산했다.
평소 이지성이었다면 반발하고도 남았을 순간이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신경 쓰지.”
순순히 수락했다.
그만큼 지금 태건과 오광휘 단장은 차마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때 오광휘 단장이 말했다.
“전원 현장 도착 전까지 정신 재무장 실시.”
“네!”
“유중헌이, 서둘러!”
구우웅.
오광휘 단장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울렸다.
투다다.
라텔 헬기는 개천을 빠르게 거슬러 올랐다.
그리고.
에에엥, 삐용 삐용.
헬기를 따르듯 곳곳에서 나타난 각종 소방차들이 지상에서 뒤따랐다.
가까이는 노원구와 도봉구.
멀리서는 별내와 양주에서 출발한 소방관들이었다.
현장에 가까워질수록 태건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오늘은, 오늘은.......’
잠시 후.
라텔 헬기가 현장 가까이 도착했다.
투다다.
가까이서 보니 건물 면적이 상당했다.
건물 주변에 둘러진 양철 펜스가 열기에 휘어지고 있었다.
그 열기가 어떨지 쉽사리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검은 연기가 얼마나 굵게 솟구치는지 건물 형상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엿 같네.”
태건의 쓴 소리가 터져 나왔다.
헬기에서 봐도 막막할 정도였다.
무엇보다 그 주변이 아파트 단지였다.
넓은 도로를 끼고 있지만 엄청난 화재라면 번질 가능성이 높았다.
절대 일어나선 안 될 일이다.
현장은?
이미 수십 대의 소방차들이 도착해 있었다.
촤아악!
사방에 자리를 잡은 소방관들이 물줄기를 쏟아부으며 방어 중이다.
그 사이에도 소방차들이 속속 도착했다.
“저쪽 지원해!”
“남쪽 출입문 확보, 그런데 내부 열기가 너무 심해 접근 불가!”
“동쪽으로 소방호스 더 보내!”
“도로 소화전 전부 가동 중입니다!”
간부로 보인 소방관들이 무전기를 들고 사방에서 지휘했다.
그러던 중 어떤 소방관이 하늘을 가리켰다.
“소방헬기입니다. 헬기 도착!”
“저거……. 뭐야. 어떤 놈이 그림을 그려 놨어!”
“저 그림, 맞아. 그들입니다. 특수소방단!”
“그 사이코 놈들 말이야? 허어.”
지휘하던 소방 간부의 눈빛이 복잡하게 변했다.
가장 위험한 장소를 자청해 들어갈 이들이다.
좋아해야할지, 싫어해야할지.
아직 판단이 서지 않은 모양이었다.
같은 시각.
투다다다.
헬기는 잠깐 사이 현장 상공을 한 바퀴 돌았다.
그 이유에 대해 유중헌이 소리쳐 알렸다.
“단장님, 옥상이고 나발이고, 떨어질 데가 없습니다!”
“나도 눈 있어!”
답답한 오광휘 단장의 목소리가 따가웠다.
다들 같은 심정이었다.
어디든 뛰어내릴 준비가 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도 불속으로 바로 뛰어들 순 없는 노릇이었다.
스포츠센터 출동과 비교해 규모부터가 달랐다.
그때 태건이 해결안을 제시했다.
“중헌 선배, 지휘소 상공에 호버링.”
“오케이. 레펠 10초전!”
유중헌의 목소리가 한결 높아졌다.
그 사이 모두 레펠 준비에 들어갔다.
철컥, 척.
출동장비와 자신을 얇은 로프에 빠르게 연결했다.
허락된 시간은 짧았다.
어떤 여유도 부릴 수 없었다.
그 몇 초란 짧은 순간, 태건의 목소리가 모두에게 전달됐다.
“1차 목표 현장 진입, 2차 목표…….”
“요구조자 확보. 아니야?”
고수현이 말을 받았다.
“네. 그리고 단장님…….”
“저 난장판에 니들만 밀어 넣고 현장지휘 하라고?”
“아니요. 요구조자 구출까진 함께 하셔야죠.”
불 속에 같이 들어가잔 의미다.
누구라도 질색할 말이었지만 오광휘 단장은 차갑게 미소 지었다.
“무조건이지.”
그 대답이 끝남과 동시였다.
유중헌이 소리쳤다.
“오케이, 떨어질 시간이야!”
“전원 레펠 준비!”
촤악!
헬기의 좌우 슬라이딩 도어가 열렸다.
“준비 완료!”
그리고 뛰어내리기 직전 유중헌이 소리쳤다.
“헬기 주차만 시키고 바로 달려갈 테니까 나 버리고 들어가지 마!”
“늦으면 장담 못합니다.”
태건이 차갑게 말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