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할 말은 끝났다.
이제 출동할 시간이다.
오광휘 단장이 걸걸하게 외쳤다.
“우리 목적은 하나. 무조건 사람부터 구한다. 알았나!”
“예썰!”
“그럼, 라텔 출동!”
오광휘 단장의 명령과 동시였다.
촤아악!
5명의 단원들이 일제히 헬기에서 뛰어내렸다.
한편.
현장지휘소.
주변에는 지휘버스와 지원차량이 주차되어 있었다.
그 중 몇 미터 되지 않는 공간이 있었다.
바로 그 장소에 하늘에서 로프가 후두둑 내려와 펼쳐졌다.
그리고.
촤아악!
그 로프를 타고 특수소방단이 내려왔다.
순식간에 분리를 마치자 헬기가 떠나갔다.
그런데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자세를 낮춘 채 출동가방을 열어젖혔다.
부욱.
“준비물은 최대한 챙겨!”
“오케이!”
척, 척.
출동용품을 하나씩 꺼내 방화복 곳곳에 걸었다.
새로 추가된 장비들이 대부분이었다.
휴대용 소화기, 소화볼 등등.
방화복에 마치 장식처럼 달렸다.
그 모습만으로도 특수소방단은 다른 소방관들과 차이가 있었다.
들고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가능한 많이 몸에 두르고 있었다.
그 사이 지휘소에서 몇몇 사람들이 나왔다.
가장 눈에 띠는 건 견장에 육각수 4개인 소방정 계급의 중년인이었다.
그가 가장 계급이 높아 보였다.
태건이 먼저 눈치 채고 오광휘 단장을 찾았다.
“단장님.”
“나도 눈치 깠어, 그래서 얼마나 걸려?”
“1분 내로 마무리 됩니다.”
“준비하고 있어.”
스윽.
오광휘 단장이 일어나 몸을 돌렸다.
다가온 이들과 곧 마주했다.
놀랍게도 오광휘 단장은 거수경례를 하지 않았다.
“특수소방단장 오광휘입니다.”
“음. 북부지청 대응과장이네만…….”
“거두절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현 시간부로 제 말이 최우선 이행사항입니다.”
“…….”
대응과장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주변에서 약간 불쾌감을 보였다.
“오 단장, 소문으로는 소방장이라던데…….”
“공문으로 봤지만 그래도 대응과장님이신데…….”
참모들 말은, 적당히 대접을 해줘야 하지 않냔 뉘앙스였다.
그 말을 들은 태건이 장비를 챙기다 미간을 찌푸렸다.
‘결국…….’
우려한 바가 현실이 된 거 같았다.
그런데 그때 놀랍게도 대응과장이 나섰다.
“지금 뭣들 하나. 뒤로 물러나.”
“…….”
참모들이 입을 꾹 다물었다.
스윽.
뒤로 한 걸음 물러나기까지 했다.
반면 대응과장은 반대로 한 발자국 앞으로 나섰다.
척.
이어서 오광휘 단장에게 먼저 거수경례했다.
“안전, 현 시간부로 특수소방단에게 모든 지휘권을 인계합니다.”
투둥!
대응과장의 선언에 참모들이 눈을 크게 떴다.
무려 네 계급 아래인 하급자였다.
상식적으로는 절대 있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어엇.”
참모들의 반응이 도드라지자 대응과장이 일축시켰다.
“똑바로 서.”
“…….”
우뚝.
다들 혼란스러웠지만 일단 자세부터 바르게 했다.
그 이유를 알지만 처음이라 어쩔 줄 몰라하는 거였다.
그때였다.
척척.
태건과 단원들이 어느새 준비를 마쳤다.
“단장님.”
끄덕.
짧은 부름과 가벼운 고갯짓.
그거면 충분했다.
의미를 간파한 오광휘 단장이 대응과장에게 물었다.
“현재 확보된 출입구가 어딥니까?”
“남쪽입니다.”
“머네요……. 그럼 저희는 이 길로 돌진하겠습니다. 문 좀 열어 주십시오.”
스윽.
말을 마친 오광휘 단장은 바로 몸을 돌렸다.
그 모습이 권위를 넘어 안하무인처럼 보일 정도였다.
“아니, 저!”
참모들이 당황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 사이 대응과장은 무전기를 들었다.
“서쪽 지휘관들에게 알린다. 지금 특수소방단이 진입한다. 그들이 갈 길을 열어준다. 최우선 지시사항이다. 실시!”
-띠릭. 실시!
곧장 응답 무전이 들려왔다.
촤아악!
그리고 서쪽을 담당 중인 모든 물줄기들이 한 곳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없는 길을 억지로 만드는 중이다.
약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앞엔 특수소방단원들이 두 줄로 서 있었다.
산소통을 메고, 보호 커버까지 착용한 모습이다.
중무장한 그들은 진입할 타이밍을 기다렸다.
그런데 조금 이상했다.
중얼중얼.
거대한 불길을 마주하며 뭔가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건 바로 ‘소방관의 기도’였다.
그 중에서도 딱 한 구절만 반복했다.
-아무리 강렬한 화염 속에서도 한 생명을 구할 수 있는 힘을 저에게 주소서.
읊조리고 또 읊조렸다.
그만큼 이 순간, 자신의 모든 걸 걸어야 한다.
자칫 생명까지 위험할 수 있다.
그걸 알면서도 가야할 길은 명확히 정해져 있었다.
이제 걸어갈 길이 수포로 돌아가지 않게 하고픈 마음은 화염보다 더 강렬했다.
아직 유중헌이 도착하지 않아 5명이었다.
그 중 태건이 가장 마지막에 서 있었다.
상당한 거리임에도 벌써 보호커버에 열기가 느껴졌다.
그만큼 엄청난 화재였다.
‘유서 갱신하길 잘 했네.’
진심이다.
저 화염 속에서 무사하겠단 장담을 가볍게 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죽으려고 가는 길도 아니다.
살아 돌아온다.
요구조자와 함께.
또 반드시 이겨낼 거다.
소중한 이들을 앗아간 저 빌어먹을 불길에 다시는 질 수 없었다.
꾸욱.
두 주먹을 으스러지게 쥐었다.
그런 태건이 뒤에 선 이유가 있었다.
블루투스 이어폰을 귀에 꼽은 모습이었다.
곧 그 이어폰에서 잔뜩 굳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119종합상황실입니다. 특수소방단 강태건 단원 들리십니까?”
태건은 나지막이 답했다.
“수신 무척 양호 합니다.”
“그럼 신고자 연결하겠습니다……. 저기, 후우. 무사귀환 바랍니다. 안전, 안전!”
상황실 근무자 목소리가 가득 울렸다.
그의 부탁은 절규에 가까웠다.
일면식도 없었지만 소방관이면 무조건 동료였다.
사나운 불속에 들어간단 걸 알면서도 할 수 있는 게 없어 애통해 했다.
태건은 그 감정에 동요하지 않았다.
더욱 강하고 차분하게 답했다.
“노력하겠습니다. 이제 바꿔 주십시오.”
탈칵.
자그마한 소리가 들려왔다.
곧 귀에 들려오는 소리가 달라지자 태건이 먼저 입을 열었다.
“여보세요. 남진우 군?”
“여, 여보세요.”
공포에 가득 질린 변성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요구조자가 느낄 두려움과 무서움은 누구도 감히 판단하지 못할 터였다.
그렇기에 태건은 한층 더 차분하게 말했다.
“특수소방단 강태건입니다. 제가 누구라고요?”
“가, 가가, 강태건 소, 소방관님이요.”
“진우 군, 우리 좀 편하게 통화할까요? 그냥 형 동생 어때요.”
태건은 동요를 줄이려 최대한 부드럽게 권해봤다.
남진우는 아무래도 좋은 모양이었다.
“네, 네네.”
“그래. 진우야. 지금 안전한 곳에 있어?”
“모, 몰라요. 다 막혀서 다른 데가 어떤지 안 보여요. 그런데 무서워요.”
벌벌 떨리는 목소리였다.
그런데도 이성을 잃지 않고 마지막 한 줄기를 붙들고 있었다.
태건은 그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하며 말했다.
“옆에 동생들 같이 있지?”
“두, 두 명 만요. 다른 두 명은 같이 없어요. 저희가 그런 거 아니에요. 저희는 숨바꼭질만 했어요. 진짜에요!”
“진우야, 대답해. 진우야?”
태건은 차분한 목소리로 반복해 불렀다.
패닉에 빠져드는 남진우를 진정시키기 위함이다.
사실 태건의 속은 바짝바짝 말라가고 있었다.
‘두 명이 따로 떨어졌다고?’
한 곳에 있어도 찾아갈 길이 막막했다.
그런데 따로 떨어져 있다니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다행히 남진우는 어렵사리 다시 이성의 끈을 붙들었다.
“마마, 말씀하세요.”
“이제 너희를 데리러 갈 거야.”
“저저저저, 정말요? 여기로요?”
남진우 목소리가 격하게 떨려왔다.
희망이 한 줄기 비추는 거 같아 동요가 커졌다.
그런 그를 태건이 나지막이 타일렀다.
“그런데 이렇게 네가 계속 흔들리면 동생들은 더 불안하겠지?”
“후우우. 후우우.”
“그래. 그렇게 숨부터 차분히 골라. 천천히. 얼마든지 기다릴게.”
태건은 절대 보채거나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
대형마트의 규모는 엄청나게 컸다.
주워들은 정보로는 한국에 처음 대형마트가 생겨나던 시절에 지어진 건물이라고 했다.
그만큼 야심차게 투자한 모양이다.
그땐 사업적으로 이슈가 됐을 거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 거대한 규모가 골칫덩어리였다.
생각하는 사이였다.
남진우가 한결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후우. 말씀하세요.”
“우리 다른 건 나중으로 미루고, 지금만 보자.”
“네.”
“그래. 지금 어디 있는지 알겠어?”
태건이 달래가며 질문했다.
남진우의 대답이 빠르게 들려왔다.
“어딘지는 모르겠고요. 들어오기 전에 선반이 많았어요.”
그 소리에 태건은 답답해졌다.
‘물건 빠진 마트 안에 선반 말고 뭐가 있겠냐.’
그 말이 목까지 차올랐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침착하게 물었다.
“자자, 일단 네가 있는 곳엔 연기가 없지?”
“네. 아직까지는요.”
“좋아. 그럼 거기 있도록 하고……. 곧이야.”
태건의 말이 갑자기 달라졌다.
그 자그마한 변화에도 남진우는 예민하게 반응했다.
“뭐가요. 뭐가 곧이에요? 저희 어딨는지 아시겠어요?”
“아니, 길 뚫고 있어. 이제 곧 들어갈 거야.”
“하아. 정말이요?”
“그래. 그러니까 어디로 들어갔는지, 어딜 지나왔는지 최대한 자세히 말해줘. 동생들과 상의해서 말이야.”
태건의 말에 남진우는 바로 답했다.
“네, 그럴게요. 그러니까…….”
“서두르지 말고 침착하게. 이 형들도 들어갈 시간이 필요하니까.”
“네, 네.”
“그보다 휴대폰 배터리는 얼마나 있어?”
태건이 중요한 걸 물었다.
곧 남진우의 대답이 들려왔다.
“50퍼센트 정도요.”
“좋아, 이렇게 전화한 상태로 이동할게. 내가 다른 말을 해도 듣고만 있어. 중학생이면 그 정도 구분은 하잖아.”
“후우. 네.”
“그래. 우리 빨리 만나자.”
태건은 의미 가득한 말을 건넸다.
그리고 남진우와 통화는 잠시 뒤로했다.
방금 말한 대로 진입할 길이 열리기 시작한 탓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