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140)화 (139/320)

140화

태건은 통화한 내용부터 정리해 알렸다.

“단장님, 요구조자는 총 5명, 세 명은 같이. 두 명은 따로.”

“뭐? 이런.”

“우리도 나눠야겠습니다.”

“그래야지. 그래야 되는데, 빨리 좀 열리지. 씨이.”

오광휘 단장의 짜증 가득한 목소리가 앞에서 들려왔다.

급한 마음이야 모두가 똑같았다.

태건도 남진우를 안심시키려 차분히 통화한 거뿐이다.

지금 괜찮다고 해도 언제까지 괜찮을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조급함이 머리끝까지 차올라 있었다.

모두가 간과한 부분이 있었다.

그건 지금까지 흐른 시간이었다.

현장 도착 후 지금까지 3분도 지나지 않았다.

모든 일들이 번개 같이 순식간에 이뤄졌다.

정작 그 번개 속에 있는 특수소방단은 1초가 1분보다 더 길게 느껴지고 있었다.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어졌다.

그렇지만 처한 상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흘러가기도 했다.

같은 시각.

현장 한쪽에 부산한 사람들이 보였다.

취재를 나온 기자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SBC 방송국 기자들이 부산했다.

“데스크 준비 완료!”

“카메라, 오케이. 이 선배!”

영문 모를 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곧 카메라 앞에 이강찬 기자가 섰다.

그는 화재 현장을 두고 말하기 시작했다.

“화재현장에 나와 있는 이강찬 기자입니다. 현재 대응 2단계가 발령된 상태로 경기북부재난본부를 비롯해 인근 소방서의 모든 인력이 총동원된 상태입니다. 화재는…….”

놀랍게도 실시간으로 현장 중계 중이었다.

틈틈이 브리핑 내용을 보며 현장 상황을 전달했다.

그러던 이강찬 기자가 옆으로 걸음을 옮겼다.

스윽.

그의 등 뒤에 가려진 곳엔 특수소방단이 진입 준비 중이었다.

이강찬 기자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방금 도착한 특수소방단이 진입 준비 중에 있습니다. 화재 속에 갇힌 청소년들을 구하기 위해 불속으로 뛰어든다고 합니다.”

“시청자 여러분, 저들이 바로 특수소방단입니다!”

반복해 말하는 그의 목소리가 격해졌다.

한편.

특수소방단은 그런 사실을 티끌만큼도 인지하지 못했다.

불을 앞에 두고 시선을 돌릴 여유 따윈 없었다.

그 사이 하나둘 모인 물줄기가 한 곳을 집중 공략했다.

콰아아아아!

엄청난 집중 물대포에 불길이 좌우로 밀려났다.

거기가 진입로다.

드디어 열렸다.

번뜩!

특수소방단 모두의 눈빛이 강렬해졌다.

그와 동시에 뒤에서 태건이 사납게 외쳤다.

“물어뜯으러 갑시다.”

“라텔, 돌격.”

“차아앗!”

타다닥!

특수소방단 모두가 단숨에 건물 내부로 밀고 들어갔다.

그 모습이 방송 카메라를 통해 전국으로 생중계됐다.

항공사 사무실.

TV 속에 특수소방단이 진입하는 순간이 비쳤다.

그걸 본 강주미의 두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어? 어어어?”

처억.

맨 마지막으로 진입하는 태건을 손짓하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다들 똑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물보다 진한 피는 미세한 차이로 혈육을 알아봤다.

지금 그 혈육이 불속으로 들어갔다.

결국 강주미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빽 소리쳤다.

벌떡!

“저 인간이 미쳤나. 저기가 어디라고 기어 들어가!”

살벌한 외침에 다른 직원들이 화들짝 놀랐다.

“주, 주미 씨?”

“강주미 씨라고?”

동료들은 눈만 끔뻑거렸다.

그때 강주미의 친구들이 얼른 끌어 앉혔다.

“얘, 그러지 마. 얼마나 대단하니.”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제발 무사히 나오게 해주세요.”

태건과 만난 적이 있는 친구들이라 남일 같지 않은 모양이다.

두 손 꼭 모아 빌기까지 했다.

그러나 강주미는 그런 친구들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결국 저럴 줄 알았어. 저 인간 정말, 아휴. 내가 못 살아 정말!”

가족은 타인과 반응부터 달랐다.

저렇게 위험을 감수하기까지 해야 하나.

그런 안타까움과 속상함이 더 짙고 강하게 밀려왔다.

같은 시각.

태건과 특수소방단은 이미 불길이 타오르는 현장 속에 들어와 있었다.

화르륵!

사방이 불이다.

스프링클러도 없다.

검은 연기 내부를 잠식 중이었다.

심지어 불타는 마감재가 여기저기서 떨어졌다.

후두둑.

층고가 높아 떨어지는 조각조각이 무기였다.

“크윽!”

“조심해!”

“옆으로!”

사삭.

사방을 경계하며 한 박자 빨리 위험을 알렸다.

그러면서도 걸음은 멈추지 않았다.

척. 척.

이 짙은 연기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기둥과 기둥 사이가 넓어도 너무 넓었다.

게다가 배연장치로 검은 연기를 뽑아내는 중이다.

또 뒤에서 물줄기가 서포터 해주고 있었다.

그럼에도 시야가 안정적으로 확보되진 않았다.

틈틈이 옅어지는 연기 층으로 인해 나아갈 방향을 잡을 정도는 됐다.

반대로 넓은 면적만큼 불길 또한 굵고 강렬했다.

불이 활개 치기 너무 좋은 환경이었다.

후르륵.

“크윽!”

주변을 스쳐 지나가도 뜨거움에 절로 앓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대응 2단계.

역시 괜히 발령한 게 아니었다.

정유공장과 엄연히 달랐지만 또 다른 의미로 엄청났다.

태건은 날카로운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며 말했다.

“문제는 탈 게 너무 많단 겁니다!”

“우리는 쥐뿔도 없고!”

“휴대용 소화기라도 하나 쓸까?”

터억!

고수현이 벌써 휴대용 소화기를 하나 뽑아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퍼엉!

앞에서 폭발음과 함께 소화가루가 사방으로 튀었다.

황대산이 소화볼을 던진 거였다.

그런데 효과가 기대 이하였다.

정확히 말해 소화볼은 제대로 터졌지만 화재가 너무 강해 금세 삼켜버렸다.

“으윽. 잠깐이라도 밀어내나 했는데!”

“다들 스톱. 벌써 쓰면 어쩌잔 겁니까!”

태건이 동요하는 모두에게 따갑게 소리쳤다.

“…….”

다들 멈칫했다.

당황했단 사실을 인지한 거였다.

고수현도 그 소리를 듣고야 휴대용 소화기를 다시 가슴에 걸었다.

척.

“이대로는 얼마 못 가. 갈 수가 없어.”

그의 말은 현재 상황을 너무도 확실히 알려주고 있었다.

태건도 모르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이대로 두 손 들고 나갈 수 없었다.

아니, 그걸 혼자 생각하지 않고 공론화 시켰다.

“그래서 나가자고요?”

그 소리에 고수현이 발끈했다.

“누가 나가재? 앞으로 나아갈 뭔가를 찾아야 한단 거잖아!”

“들어온 이상 빈손으론 못 나가!”

황대산이 각오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그때 태건이 결단을 내리고 모두에게 말했다.

“여기서 찢어지죠.”

“이대로 뭉쳐 다녀서 나아질 게 없긴 합니다.”

이지성이 간만에 말을 더했다.

이번엔 부정인 의미가 아니었다.

오히려 살 길을 모색하잔 적극적인 의견이었다.

오광휘 단장도 동의했다.

“그래. 찢어지자.”

결정이 나자 태건은 충고부터 했다.

“수시로 산소 게이지 체크하세요.”

“음. 알았어.”

“그럼 건투를 빕니다.”

스윽.

태건이 먼저 몸을 돌려 나아갈 방향을 잡았다.

곧 막막함을 뒤로하고 불길을 예의주시했다.

‘이쪽, 그리고 젠장.’

불길을 읽으려 했지만 너무 많았다.

쏟아지고, 올라가고.

여기저기 부딪치고, 또 삼키고 삼켜지고.

시시각각 변하는 흐름은 오히려 태건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칫.”

과감하게 포기했다.

거기에 집중하기엔 시간적 여유가 절대 부족했다.

대신 태건은 최대한 몸을 낮췄다.

처억.

불과 멀어져야 했고, 연기의 영향을 적게 받기 위한 포지션이었다.

그런 태건의 옆에 누군가 다가와 똑같이 자세를 낮췄다.

사삭.

오광휘 단장이었다.

“푸우. 징한 새끼들.”

“우리 둘이 갑니까?”

“누가 더 필요하냐?”

오광휘 단장이 반문했다.

태건은 호흡기 속으로 가늘게 미소 지었다.

“단장님이면 충분하죠.”

“이렇게 둘이 다니는 건 오랜만이지. 찜질방 생각나네.”

“추억은 살아서 곱씹는 게 제 맛입니다.”

“나도 알아. 그러니까 내가 먼저 간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쫓아와.”

턱. 턱.

오광휘 단장은 네 발로 기어갔다.

쪼그려 앉아 걷는 거보다 체력 소모가 훨씬 적은 자세였다.

태건은 오랜만에 익숙한 뒷모습을 봤다.

그러나 감상에 젖을 시간은 어디에도 없었다.

“…….”

턱. 턱.

곧장 뒤따라 이동했다.

요구조자를 최대한 빨리 찾아야 한다.

아니라면 시간을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 두 가지 경우를 품고 대형마트 깊은 곳으로 향했다.

이동하던 태건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앞에 오광휘 단장이 있지만 불러서 여유롭게 대화할 상황이 아니었다.

1초도 낭비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래서 태건은 대뜸 손을 뻗어 앞에 가는 오광휘 단장의 발목을 붙들었다.

턱!

갑작스런 손길에 오광휘 단장이 크게 놀라 넘어졌다.

“헉, 깜짝이야!”

쿵.

태건은 그런 그를 보고 있지 않았다.

눈을 가늘게 뜬 채 나지막한 목소리로 신고자를 불렀다.

“진우야, 진우야. 내 말 들리니?”

-네, 형.

남진우 목소리가 들린 그때였다.

오광휘 단장이 당장 들이받을 모습으로 다가왔다.

터억!

“이 자식, 갑자기 왜…….”

“쉿.”

턱.

태건은 진지한 표정으로 보호 커버에 손가락을 댔다.

그걸 보고야 오광휘 단장이 미간을 좁혔다.

“음?”

뭔가 있다.

그의 표정이 그렇게 변해갈 때였다.

태건은 남진우와 통화를 빠르게 이어갔다.

“네가 있는 데는 연기가 없다고 했지?”

-네. 없어요.

대답이 들려온 순간 태건은 미간을 더욱 좁혔다.

‘그럴 수 있나?’

태건이 이상하다고 느낀 부분이었다.

주변을 둘러볼 것도 없었다.

화르륵.

뭉게뭉게.

빨간 불과 검은 연기의 향연이다.

자신들도 한 걸음 나아가기 힘든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문제가 없다니.

당연히 좋은 일이지만 엄청난 괴리감은 의문을 자아냈다.

그럼에도 태건의 목소리엔 아무런 동요가 담겨 있지 않았다.

“그래, 연기가 없다니 천만다행이야. 거기 어떻게 들어갔는지 정리를 좀 해 봤어?”

태건은 침착하게 물었다.

그러나 눈과 손은 바빴다.

휙휙. 턱턱.

오광휘 단장에게 눈으로 신호를 보내고, 다그치듯 발목을 두드렸다.

좁혀져 있던 오광휘 단장의 미간이 일순간 펴졌다.

그도 이제 뭐가 의아한지 알아챈 거였다.

“오케이!”

이어서 손을 어깨의 불룩한 지점으로 가져갔다.

무전기 전용 주머니였다.

그 속엔 유중헌이 개선한 무전기가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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