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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사인 (141)화 (140/320)

141화

바로 버튼을 누르고 상대를 찾았다.

띠릭.

“라텔 단장입니다. 지휘본부, 현장관계자 도착했는지!”

그가 무전하는 사이였다.

태건은 남진우 목소리에만 집중했다.

마침 대답이 들려오고 있었다.

-갑자기 연기가 막 몰려와서 애들 손잡고 반대로 뛰었어요.

“그래. 그리고?”

-출렁출렁하는 문을 지났고, 손잡이 있는 문을 또 지났어요. 그게 여기에요.

남진우의 대답이 1차원적이었다.

태건은 너무 두루뭉술한 설명에 머릿속이 아찔했다.

그럼에도 내뱉는 말은 부드러웠다.

“그랬구나. 지금 주변에 보이는 걸 좀 말해줄래?”

-어? 어……. 아무것도 없어요.

“뭐? 이런.”

태건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대화를 나눌수록 오리무중이니 뭘 그려볼 수도 없었다.

난감하다 못해 막막했다.

그때 남진우 목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그런데 여기 뭐가 오래 있었던 거 같아요. 자국이 있어요.

그 소리에 태건 눈빛이 반짝였다.

“무슨 자국인지 알겠어?”

-아니요. 그거까진 모르겠어요……. 어어, 흡! 얘들아. 이리와!

남진우 목소리가 갑자기 다급해졌다.

덩달아 태건 목소리도 높아졌다.

“진우야, 무슨 일이야. 뭔데!”

-연기가. 연기가 문틈으로 들어와요! ……쿨럭!

“기침까지! 거기 물 있어?”

-없, 크흠. 없어요!

“일단 옷으로 입과 코를 가려. 그리고 최대한 바닥에 엎드리고 움직임을 줄여.”

태건은 임시방편으로 행동요령을 알려줬다.

지금까지 침착하던 남진우 목소리가 흔들렸다.

-형, 무서...워요. 이러면 안 되는 거 아는...데, 그래도 무...서워요.

“조금이야. 조금만 참아. 최대한 빨리 갈게!

-살려주....세요. 빠, 빨리 구해...주세요. 제발요. 자자, 잘못...했어요. 다신 아무데나 마음대로 들어....가지 않을게요.

남진우의 애원이 들려왔다.

그 목소리가 낮고 가늘게 흔들렸다.

남진우는 생명의 위협을 강하게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들이 놀라지 않게 억누르고 있었다.

이 순간에도 태건의 앞선 조언을 지키려 필사적으로 인내하는 모양이다.  

태건은 가슴이 꽉 막히는 거 같았다.

차라리 남진우가 소리치고 고성을 질렀다면 이렇게 동요하지 않았을 거다.

‘그 지경인데도…….’

일면식도 없는 자신의 충고를 지키려 노력하고 있다.

그에 마음이 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다급함에 심장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딜 봐도 불이다.

검은 연기다.

막막하기만 했다.

“빌어먹을!”

태건이 무심코 내뱉은 쓴 소리에 남진우가 놀랐다.

-네?

“아니야. 진우야. 넌 잘하고 있어. 최고로 잘하고 있어. 그러니까 조금만 견뎌. 할 수 있지?”

-해, 해볼. 쿨럭. 아니, 할게요.

남진우는 기침하면서도 약해지려는 자신을 비틀었다.

그 또한 동생들과 함께라서 그렇다고 추측할 수 있었다.

사촌지간이라도 형이면, 오빠면, 맏이로서 책임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선 그 책임감이 더더욱 강렬해질 수밖에 없었다.

태건의 얼굴은 굳어질 대로 굳어졌다.

진짜 빌어먹을이다.

휙.

재빨리 오광휘 단장을 바라봤다.

“단장님.”

“잠시만!”

그가 재빨리 말을 끊었다.

무전기에 귀를 기울이는 걸 보니 뭔가 듣는 모양이었다.

잠깐일 터였다.

그러나 태건은 그 시간도 기다릴 수가 없었다.

‘반복할 순 없어, 절대!’

구우우.

동요하던 태건의 눈빛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모든 잡념이 지워지고 해야 할 일은 더욱 명확해졌다.

수단과 방법? 

때려치워. 

무조건 고!

화르륵.

불길을 향한 태건의 눈빛이 더욱 이글이글 타올랐다.

그저 눈빛뿐이 아니다.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앞으로 내달렸다.

“차아앗!”

파바박!

태건의 모습이 순식간에 검은 연기 속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에 오광휘 단장이 화들짝 놀랐다.

“쟤 갑자기 왜 저래!”

-띠릭. 뭐라고 하셨습니까?“

“빨리 계속 말해요, 어서!”

삭삭.

오광휘 단장은 상대를 다그치며 태건이 뛰어간 방향으로 이동했다.

같은 시각.

태건은 검은 연기를 헤집으며 달리고 있었다.

이렇게 급발진한 이유가 있다.

-쿨럭, 괜찮아. 곧 소방관 아저씨들이 오실 거야. 조금만 참아.

-형. 켁켁, 목 아파.

-흑흑, 엄마 보고 싶어. 케엑. 엄마!

남진우와 동생들 목소리다.

요구조자들의 불안과 공포가 고스란히 들려오고 있었다.

그걸 듣고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을까.

사람이라면 절대 그럴 수 없었다.

‘쓰벌, 쓰브럴, 제기랄!’

파바박.

요구조자들의 절규과 절망이 들릴 때마다, 태건은 더 빠르고 다급히 뛰었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달리는 게 아니었다.

휙휙.

‘저기, 불타는 선반. 저쪽은 냉동고.’

화재로 인한 불빛을 역이용해 지형지물을 파악하며 움직였다.

거기에 하나 더.

숱한 죽을 고비를 넘으며 단련한 불의 흐름도 읽고 있었다.

그런 태건은 곧 어느 기둥 앞에 멈춰 섰다.

퐈르륵.

이 기둥도 두껍게 덧칠된 페인트를 태우며 불타고 있다.

그러나 아랫부분은 불길이 닿지 않았다.

거기엔 철제 상자가 거치되어 있었다.

옥내 소화전.

이걸 찾아온 길이다.

흐릿한 형광 유도표시를 보고 달려왔다.

그렇게 발견한 보물이다.

후욱, 후욱.

‘이제 됐어.’

이제부터 소방용수로 시야를 확보하며 움직일 수 있다. 훨씬 더 수월하고 빠르게 이동할 최고의 방법이었다.

더 지체할 것도 없었다.

덜컥.

태건은 바로 문을 붙들었다.

치익.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문이라 화끈함이 몰려왔다.

“아윽!”

벌컥!

방화장갑이 타들어갔지만 이를 악물며 열어젖혔다.

그 속엔 소화전과 낡은 호스가 자리하고 있었다.

‘있어, 그렇지. 있어야지.’

그런데 밸브도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 있었다. 뿐만 아니라 얼마나 사용을 안 했는지 녹이 가득 슬어 있었다.

상관없었다.

치지직!

태건은 거침없이 곧바로 밸브를 붙잡고 돌렸다.

“으으으. 아으악!”

그그그, 끼릭끼릭.

켜켜이 쌓인 녹이 떨어지며 밸브가 돌기 시작했다.

이제 수전에서 쏟아진 물이 소방호스를 빵빵하게 채울 터였다.

분명 그럴 터였다.

아니, 그래야 했다.

그런데.

…….

반응이 없었다.

태건의 각오 서린 눈빛이 일순간 흔들렸다.

“이, 이……. 큽!”

남진우가 동요할까 이를 악물 듯 억지로 입을 닫았다.

대신 속으로 짜증을 터트렸다.

‘제기랄, 이게 뭐야!’

황당함도 정도가 있었다.

태건은 재빨리 소방호스를 분리하고 밸브를 더, 아니. 모두 열었다.

끼릭, 끼릭.

…….

끝까지 돌렸지만 물이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다.

‘제정신이야?’

아무리 폐점한 마트라도, 곧 허물 계획이었다고 해도, 화재 상황에서 수도가 차단되어 있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이 정도면 아예 상수도관 자체를 끊었다고 판단 됐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정도가 심했다.

너무 황당해 손바닥의 화끈함은 아예 느낌조차 오지 않았다.

이내 태건의 주먹이 옥내소화전에 직격했다.

텅, 지잉.

불길에 달아오른 옥내소화전 보호함이 처참하게 찌그러졌다.

태건의 심정은 더 찌그러져 있었다.

-쿨럭, 쿨럭. 형, 아직이에요? 힘들어요.

-켁켁. 진우 형. 우리 죽는 거야?

-나 나갈래. 나가고 싶어. 크엑, 컥컥! 살려 주세요. 누구 없어요!

요구조자들의 목소리가 더욱 괴로움에 몸서리 치고 있다.

‘으으으!’

파르르.

태건의 두 주먹이 떨렸다.

이 순간 무기력한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아니, 아니다.

아직 요구조자들은 살아있다.

지금 이 소리를 듣고 괴로워할 때가 아니다.

모든 게 생체신호였다.

‘후우우.“

마음을 다잡고 또 다잡았다.

듣는 자체가 괴로운 지금이지만 그걸 자극제로 삼았다.

일단 오광휘 단장에게 돌아가야 했다.

후욱, 후욱.

짙은 연기로 인해 불과 1미터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상관없었다.

옥내소화전을 뒤로 두고 그대로 직진했다.

찾아온 길을 그대로 되돌아가는 거였다.

슥슥.

자세를 다시 낮추고 파악해둔 지형지물을 참고하며 이동했다.

그러면서 태건은 남진우가 알려준 정보를 곱씹었다.

‘출렁출렁한 문.’

다시 생각해도 수수께끼 같은 표현이다.

이 넓은 마트 안에서 어딘가로 들어갔단 부분도 낯설었다.

남진우에게 다시 물을 상황은 아니었다.

스스로 빨리 캐치해 내야 했다.

아니면 오광휘 단장과 머리를 맞대기라도 해야 한다.

척. 척.

태건의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그 사이에도 태건은 쉬지 않고 머릿속으로 문에 대한 이미지를 그렸다.

여러 가지 개폐방식이 떠올랐다가 지워졌다.

그러던 태건의 눈에 힘이 팍 들어갔다.

‘혹시 카우보이 도어?’

중학생이라면 명칭을 몰라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을 거 같았다.

아니, 맞는 거 같다.

그 하나를 풀자 나머지는 저절로 풀렸다.

아이들이 있는 장소.

느낌이 왔다.

‘직원통로 내에 직원휴게실.’

남진우의 설명에 가장 부합되는 장소였다.

몇 번 뒤집어 생각해봐도 가장 유력했다.

‘단장님께 알려야 해!’

불이고 뭐고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후르륵.

방화복이 불이 휩쓸고 가 그을음을 만들어도.

치이익.

연기를 내뿜는데도.

심지어 열기가 계속 쌓이는데도.

태건은 더욱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던 중이었다.

슥슥.

저 앞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검은 연기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곧 사람의 형상이 어렴풋이 비치더니 오광휘 단장이 나타났다.

그 또한 불에 휩쓸려 방화복이 엉망진창이었다.

“단장님.”

“넌 새꺄 그렇게 뛰어가면…….”

인상을 팍 찌푸리며 타박하려 했다.

그 틈새를 파고든 태건이 자기 목소리를 먼저 냈다.

“애들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휙휙.

동시에 블루투스 이어폰을 가리켰다.

그 순간 오광휘 단장의 타박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지금은 어때?”

“……진우야. 진우야?”

태건이 불러봤다.

-쿨럭, 쿨럭. 크으으.

대답 대신 기침과 신음소리만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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