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화
태건은 굳은 얼굴로 오광휘 단장에게 알렸다.
“연기를 들이킨 거 같습니다. 의식레벨이 상당히 떨어졌습니다.”
“젠장, 어딨는 줄 알아야……. 여기 마트 지점장이었단 사람도 짐작이 안 된다고만 하고.”
“직원통로 내 휴게실.”
태건이 묵직하게 말했다.
그 말에 오광휘 단장 눈빛이 돌변했다.
“확실……. 확실하니까 말하겠지.”
“네. 그런데 문제는 그 위치가 어딘지…….”
태건이 말하려 할 때였다.
턱.
이번엔 오광휘 단장이 막으며 말했다.
“기다려. 곧이야. 곧.”
“갑자기 뭘요?”
순간 답답해진 태건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바로 그때였다.
퐈아아악!
뒤에서 물줄기가 쏟아져왔다.
그것도 하나가 아니라 몇 개나 됐다.
순식간에 흠뻑 젖은 태건의 눈이 크게 떠져 있었다.
“이, 이게 무슨 물…….”
턱.
오광휘 단장이 태건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우리만 소방관이 아니더라.”
“설마?”
“그래. 맞아.”
오광휘 단장이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그의 무전기가 울렸다.
-띠릭. 진압 1조, 내부 진입 중!
-띠릭. 진압 2조. 포그 방수로 연기 억제 중!
-띠릭. 진압 3조. 진입한 2개조 서포터 돌입!
거기에 오광휘 단장이 한 마디 덧붙여 말했다.
“우리만 불 속에 떠밀어 놓고 잠이 오겠냐고, 기다려 버릇하지 않아서 그 짓은 못 하겠다더라.”
“아, 아아…….”
“그래. 우리 길 열어주러 왔어. 우리가 가야할 길을 말이야.”
오광휘 단장의 두 눈이 글썽였다.
같은 시각.
오광휘 단장의 말이 꼭 맞았다.
건물 서쪽에 확보한 출입구로 많은 물줄기가 집중됐다.
그 물줄기들을 노련한 소방관이 지휘했다.
“호스 세 개는 좀 더 위로!”
촤아악!
“두 개는 오른쪽 불길 더 밀어내!”
촤아악!
그의 말에 따라 물줄기들이 바로바로 반응했다.
그걸 보며 노련한 소방관이 목적을 한 번 더 소리쳐 무전했다.
“우리 목적은 입구 안전 확보다. 안에 기어들어간 녀석들이 걸어 나올 수 있게 다 때려 부어!”
푸아악!
물줄기들이 화답하듯 더욱 강력히 쏟아졌다.
그렇게 확보된 입구 바닥엔 소방호스들이 가득했다.
그 호스들은 진압 1조와 2조의 소방호스들이었다.
진압 1조장이 조원들에게 소리쳤다.
“라텔 녀석들을 불길에 버려둘 거 아니잖아!”
“맞습니다!”
“시뻘건 건 죄다 공격해. 어렵고 힘든 거 떠맡긴 주제지만 의리는 있어야 할 거 아니냐!”
“으아아아!”
촤아악!
진압 1조는 서로 어깨를 맞대고 불을 꺼뜨렸다.
소방호스가 제한적이라 전부를 커버할 순 없었다.
한 방향을 집중공략해 특수소방단이 돌아올 길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진압 2조 역할은 조금 달랐다.
“포그방수로 연기 죽여. 죄다 죽여 버려!”
“뒤져라. 이 연기 괴물들아!”
“1조를 중심으로 시야 확보에 더 집중해!”
“아자자자!”
솨아아악!
넓게 퍼진 물줄기가 뭉게뭉게 솟구치는 검은 연기를 억눌렀다.
전에 면적에 비하면 극히 일부분이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모두 이를 악물었다.
그 모습을 방송 카메라들이 계속 촬영했다.
특별 편성으로 실시간 중계 중이다.
“1번 카메라는 넓게, 2번은 입구 중심으로!”
“아으으. 여기서도 뜨거움이 느껴지는데. 저렇게 버틴다고!”
카메라 기자들의 앓는 소리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그런데 그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기자들 중에는 이런 현장에 유독 적극적인 이들이 있었다.
벌써 몇몇 기자들은 방화복을 갖춰 입고 있었다.
이강찬 기자도 포함이었다.
그리고 물줄기들이 확보한 서쪽 입구로 직접 카메라를 들고 들어갔다.
몇몇 소방관들이 함께였다.
적극적인 기자들은 이동하며 말했다.
“저는 지금 현장에 진입 중입니다. 이렇게 소방용수를 붓고 있는데도 열기가 엄청납니다!”
“내부는 유독가스와 매연, 수증기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소방관분들은 매번 이런 현장을 누비고 있습니다. 크윽. 더 진입하기가 어렵습니다!”
흔들리는 카메라 앵글과 고통에 찬 기자들의 리포팅.
그런 모습들이 현장감을 최고조로 끌어올려주고 있었다.
그때였다.
방화복을 갖춰 입은 소방관 한 명이 모두를 쏜살 같이 지나쳐갔다.
그의 손엔 산소통이 몇 개나 들려 있었다.
파바박!
“으아아아!”
비명을 가득 외치는 게 소심함을 억지로 밀어내는 듯했다.
그 소방관은 유중헌이었다.
같은 시각.
태건은 오광휘 단장의 무전기를 통해 모든 무전을 감청했다.
‘크흐흠.’
코끝이 찡해왔다.
이럴 때가 아니다.
촤아악.
사방에 물이 뿌려지는 지금이 나아가야할 타이밍이다.
“단장님!”
“직원통로면 이쪽이야!”
파바박!
오광휘 단장이 앞서 달려갔다.
태건은 그 뒤를 바짝 뒤따랐다.
달리고 달린 두 사람은 곧 직원통로 앞에 도착했다.
예상대로 카우보이 도어였다.
“여깁니다. 맞습니다!”
“나도 알아. 가…….”
오광휘 단장이 말하려는 찰나였다.
퓌이이익!
날카로운 휘파람 소리가 귀를 강타했다.
태건과 오광휘 단장이 순간 멈칫하며 산소 게이지를 확인했다.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그걸 알려주기 위한 경고음이었다.
“젠장. 다 왔는데!”
“여기서 돌아가야 된다고. 어떤 놈이 여기서 뒤돌겠어!”
태건에 이어 오광휘 단장도 강하게 반발했다.
터덕.
둘 다 가슴에 걸어둔 간이호흡기를 붙들었다.
이럴 때 쓰라고 구매한 거다.
1분이란 시간.
짧겠지만 요구조자를 데리고 물줄기 근처까지만 가면 된다.
그럼 시간을 더 벌 수 있다.
사실 그건 오기에 가까운 각오였다.
실상은 1분의 시간으로는 요구조자를 찾기도 버거울 터였다.
그래도 어쩌라고.
지금 물러서면 요구조자들이 위험해진다.
결심은 이미 굳혔다.
행동만 남았을 뿐이다.
“에이…….”
막 간이호흡기를 뽑으려던 찰나였다.
터더덕.
연기 사이로 유중헌이 나타났다.
“단장님, 태건아!”
덜컹덜컹.
부르는 소리에 두 사람이 멈칫했다.
“누구, 중헌이?”
“이 목소리, 중헌 선배!”
둘 다 대번에 누군지 알아챘다.
그리고 곧 나타난 유중헌의 두 손에 쥐어진 산소통을 보며 짜릿함을 느꼈다.
“고로췌, 유중헌이. 그거지!”
“선배, 와땁니다요!”
절망의 순간을 뒤집어 희망이 되살아났다.
벌써 몇 번이나 절망과 희망이 뒤집혔는지 셀 수 조차 없었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어떤 절망도 모두가 함께라면 희망으로 역전시킬 수 있었다.
도착한 유중헌이 가쁜 숨을 삼키며 말했다.
“헉헉. 황 선배 쪽은 방금 요구조자랑 함께 나갔습니다.”
“만났어?”
“네. 요구조자 인계하고 들어온다고, 후우, 합니다.”
유중헌이 어렵게 말을 마쳤다.
그 사이 태건과 오광휘 단장은 재빨리 산소통부터 교체했다.
터덩!
빈 산소통을 내던진 두 사람이 굳게 말했다.
“그때까지 기다리라고?”
“절대 그럴 일은 없습니다.”
“물론.”
“바로 고고!”
벌컥.
태건이 먼저 카우보이 도어를 젖히며 그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뒤를 오광휘 단장과 유중헌이 나란히 뒤따랐다.
내부는 불길이 보이지 않았다.
문 하나가 불길이 번지는 걸 차단해준 거였다.
대신 연기는 가득했다.
옳게 찾아왔단 감상조차 할 시간이 없었다.
“휴게실, 휴게실!”
타다닥.
벽을 따라 뛰며 서둘렀다.
직원휴게실은 통로 속 첫 번째 문이었다.
문고리까지 일치했다.
“여기!”
벌컥!
태건은 온 몸으로 문을 밀며 그대로 뛰어들어갔다.
안에는 세 명이 쓰러져 있었다.
“쿨럭, 쿨럭쿨럭.”
“푸으으, 푸으으.”
“헤엑, 헥헥.”
큰 아이 한 명, 그리고 작은 아이 두 명이다.
그 중 큰 아이의 옆에 휴대폰이 통화상태로 놓여 있었다.
찾았다.
드디어 남진우와 동생들을 발견했다.
“얘들아!”
사삭.
“억, 이런!”
“허으억. 서, 서둘러야겠어요!”
뒤따라 들어온 오광휘 단장과 유중헌이 놀라 달려왔다.
지금은 재고 따질 게 없었다.
당장 의식을 확인할 여건조차 되지 못했다.
“호흡부터!”
처억.
각각 보조호흡기부터 아이들 입에 걸었다.
“숨 쉬어!”
“숨, 숨!”
“어서!”
꾹꾹.
가슴을 강하게 눌러 호흡을 억지로 유도했다.
유중헌이 새로운 산소통을 제때 가져와 다행이었다.
아니면 이런 응급처치도 어려울 수 있었다.
특수소방단이 계속 아이들의 가슴을 자극했다.
그러던 중이었다.
“커어억!”
“허억!”
“컥, 컥!”
한 명씩 호흡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그뿐이다.
연기를 너무 들이켜 머릿속이 엉망진창일 터였다.
역시 눈동자가 흐릿했다.
태건은 곧바로 남진우를 들쳐 업으며 소리쳤다.
터억!
“계속 숨 쉬어, 계속!”
재촉함과 동시에 곧장 밖으로 내달렸다.
턱, 턱.
뛸 때마다 흔들림이 남진우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그 충격이 폐를 자극하는 모양이다.
정확히는 태건이 그 부분을 노리고 더 흔들리게 뛰는 중이었다.
“컥, 헥!”
“그래, 얼마 안 남았어. 그렇게 계속 쉬어!”
파바박!
태건은 저 앞에 물줄기를 이정표 삼아 선두로 치고 달렸다.
뒤에선 태건과 똑같이 아이들을 각각 들쳐 업은 오광휘 단장과 유중헌이 따랐다.
태건을 필두로 지나온 길을 되짚어 달리기 시작했다.
파바박.
그러다 얼마 지나지 않았다.
촤자작.
바닥에 물이 흥건함이 느껴졌다.
전체 면적에 비하면 극히 일부분이었다. 저 멀리 진입로부터 시작해 일직선으로 불길을 밀어낸 길이 만들어져 있었다.
물을 박차는 소리에 더욱 힘이 났다.
“더 빨리!”
차자작!
태건과 오광휘 단장, 유중헌은 앞만 보고 달렸다.
냉정히 말해 뒤를 돌아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깨에 둘러멘 요구조자에게만 집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