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3화
이내 진압 1조가 저 앞에 보였다.
정확히 그들이 먼저 특수소방단을 발견했다.
푸아악!
저 불과 연기를 뚫고 나오는 모습이다.
그런데 조장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졌다. 태건과 라텔 단원들의 방화복이 엉망이 되어 있던 탓이다. 거기에 요구조자들의 옷이 너무 얇았다.
열을 식혀야 한다.
그 다급함으로 조장이 무전기를 눌러 소리쳤다.
“전원 라텔을 향해 방수!”
그의 외침이 곳곳에서 울렸다.
정작 태건은 무전기 소리를 줄여 듣지 못했다.
저 앞에 밝은 출입구까지만 가면 된단 일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파바박.
그렇게 달릴 때였다.
촤아악.
좌우에서 물줄기가 머리 위로 둥글게 뿌려졌다.
“브릿지?”
아치형으로 뿌려지는 물줄기가 터널 같았다.
그 물줄기들은 둘러멘 남진우부터 축축하게 적셔줬다.
후두둑.
이어서 방화복이 빠르게 젖어갔다. 그렇게 달려가는 자신을 진압조원들이 물을 뿌리며 지켜보고 있었다.
“라텔, 역시 굿!”
“특수소방단답습니다!”
“어서 나가요. 어서!”
좌우에 도열한 그들 모습은 마치 환영단 같았다.
틈틈이 보이는 얼굴에 미소가 엿보였다.
태건은 미운오리새끼에서 백조가 된 거 같았다.
그 환영은 너무도 고마웠다.
“…….”
그러나 지체할 시간이 없어 인사는 나중으로 미뤘다.
파바박.
달리고 달린 태건은 긴 터널을 통과한 듯 출입구 밖으로 나왔다.
출입구 근처에 구급차와 구조대원들이 대기 중이었다.
태건은 그들을 보자마자 한 손을 들었다.
“여기!”
짧게 외쳤다.
구조대원들이 쏜살같이 달려왔다.
그 중 척 봐도 구급대장인 소방관이 진두지휘했다.
“요구조자 인계 받아!”
“구급차 시동 걸어!”
“뒤에 또 나온다. 구급대, 몇 명 더 이쪽으로 와!”
우르르.
그의 지시에 구급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그런 와중에도 구급대장이 가장 먼저 다가왔다.
서로 통성명이나 인사 나누기엔 장소가 합당하지 않았다.
태건이 먼저 끊어서 말했다.
“요구조자부터!”
“그럽시다!”
덜그럭.
뒤따라 달려온 구급대원들과 스트레쳐카가 바로 앞에 도착했다.
황대산과 고수현, 이지성도 빠르게 다가왔다.
파바박.
“태건아, 단장님, 중헌이!”
그들의 방화복 곳곳이 타들어가고 뭉개져 엉망이 되어 있었다.
호흡기 커버를 벗은 얼굴에도 검뎅이가 묻어 있었다.
그 사이 태건은 스트레쳐카 위에 남진우를 올렸다.
동시에 가까이 도착한 황대산에게 구조현황부터 확인했다.
구조완료 선언은 구조 인원이 명확히 파악된 후에야 선포할 수 있던 탓이다.
“선배, 두 아이 다 찾은 겁니까?”
“어? 그쪽이 넷……. 뭐야? 세 명? 우린 한 명!”
“뭐라고요?”
때앵!
서로 구조자를 합산한 순간 머릿속에 경종이 울렸다.
이지성이 짧고 굵게 툭 쏘았다.
“아직 한 명 남았단 소리잖아!”
“이런, 제기랄!”
꽈아악.
고수현은 푹 젖은 머리를 거칠게 움켜쥐며 경악했다.
그 사이 태건은 남진우를 마저 스트레쳐카에 뉘였다.
터억.
“쿨럭, 크으으. 쿨럭!”
거친 숨을 토해내는 남진우의 얼굴에 괴로움이 가득했다.
기침할 때마다 탄내가 느껴질 정도였다.
그만큼 연기를 상당히 마신 상태다.
몸은 젖었지만 수분이 몸속까지 전달되지 않았다.
여기서 지체할 틈 따윈 없었다.
“바로 병원으로 이송하겠습니다!”
구급대장이 소리쳐 말했다.
그때 태건이 스트레쳐카를 잡았다.
“잠깐!”
턱!
다른 손으로는 방화헬멧과 호흡기 커버를 거칠게 벗었다.
땀이 비처럼 쏟아졌다.
후두둑!
지금은 닦아낼 생각조차 못했다.
태건은 재빨리 남진우의 입에 귀를 대며 소리쳤다.
“진우야! 한 명 어디로 갔어. 어디로 갔냐고!”
“쎄엑, 크윽.”
“아직 동생 한 명이 안에 있어. 그 녀석 저기 놔둘 거야? 진우야, 인마!”
착, 착.
태건은 남진우의 뺨에 자극을 주며 보챘다.
그 행동은 옆에서 봐도 과격했다.
구급대장이 당황할 정도였다.
“아니, 애한테…….”
처억.
그의 앞을 황대산이 우람한 덩치로 막아섰다.
“실종자 소재 파악부터 해야 할 거 아닙니까!”
“…….”
구급대장은 더 말하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태건은 계속 남진우를 자극했다.
“진우야, 빨리. 한 마디라도, 힌트라도 줘. 그래야 동생 살려!”
“쿨럭, 깊, 깊숙이…….”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고? 어느 쪽!”
“거기 문……. 케에엑, 칵!”
대답하던 남진우가 몸을 크게 꿈틀거리며 가래를 뱉었다.
검은 매연과 피가 뭉쳐 있었다.
이지성이 그걸 보더니 미간을 확 찌푸렸다.
“진폐증.”
광부병이라고 불렸던 증상이다.
화재소방관들에게서도 가끔 나타난다.
원인은 메케한 연기를 들이켜 폐에 먼지가 쌓인 거였다.
성인도 치료를 잘 받아야할 병이다.
하물며 몸이 성장 중인 청소년은 말할 것도 없었다.
태건도 경방출신이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최소한의 정보는 파악했다.
남진우를 더 이상 붙잡아 둘 수 없었다.
태건이 스트레쳐카에서 빠르게 물러나며 구급대장에게 부탁했다.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이송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옮겨!”
타다닥!
구급대원들이 구급차로 단숨에 달려갔다.
그때였다.
“진우야!”
“승남아!”
목이 찢어지는 외침이 멀리서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고개 돌려 바라보자 저 멀리 경찰들이 현장을 통제 중이었다.
그 중 절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이들의 부모들일 터였다.
…….
지휘소에서 나온 누군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뭐라뭐라 말했다.
몇몇 부모들이 다급히 움직였다.
그 중 몇 명은 구급차가 잠시 멈춰서 태우기도 했다.
그런데 한 부부는 기절할 듯 주저앉았다.
철푸덕!
세상이 끝난 절망의 표정으로 가득했다.
아직 구하지 못한 아이의 부모가 분명했다.
주저앉은 그들은 지휘소에서 나온 소방관의 다리를 다급히 붙들었다.
-흐어엉.
그 다리를 동아줄처럼 절절히 붙들며 통곡했다.
그 울음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그만큼 아이가 저들에겐 세상의 전부다.
저들에게 지금 필요한 건, 또 절실히 원하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태건은 거기까지만 지켜봤다.
이내 몸을 돌려 다시 폐점한 대형마트를 바라봤다.
화르르륵.
건물 밖까지 화염이 들끓고 있었다.
“빌어먹을.”
어느새 화마가 절정에 이른 상태였다.
서쪽을 집중공략한 사이 다른 쪽 불길이 득세한 게 틀림없었다.
호흡기 커버까지 벗은 지금, 땀이 마를 정도의 엄청난 열기가 느껴지고 있었다.
그 열기에 떠밀리듯 진압조들도 철수 중에 있었다.
“크으으. 철수!”
“뒤로 빠져!”
“이 자식들아 통구이 될래. 얼른 나와!”
촤아악.
물을 뿌리며 동료들과 함께 후퇴했다.
소방호스를 들고 싸우는 이들마저도 물러서야할 상황이었다.
태건은 문득 좌우를 둘러봤다.
오광휘 단장부터 모두가 나란히 서 있었다.
그리고 전부 한 곳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그 장소는 바로 출입구였다.
구구구.
…….
그 강렬한 눈빛들에 원하는 건 딱 한 가지 밖에 없었다.
다시 가자.
남은 한 명.
구하자.
그건 태건도 바라는 바였다.
“새 출발 하시죠.”
“뭐?”
“방화복부터 갈아입자고요.”
묵직한 목소리로 의견을 피력했다.
여기저기 타들어간 방화복이라 기능이 떨어진 상태였다.
이대로 재진입은 무리였다.
오광휘 단장은 곧장 동조하며 굳게 말했다.
“라텔, 재진입 1분 전.”
“다들 다시 세팅하자!”
“서둘러!”
촤자작!
특수소방단은 일제히 자신들의 출동가방을 향해 내달렸다.
이동하는 사이 방화복 상의부터 벗었다.
곱게 접을 시간 따윈 1초도 없었다.
휙!
아무데나 내던졌다.
뒤를 이어 하의 멜빵끈을 내리며 기동복으로 변했다.
그렇게 도착함과 동시에 출동가방을 열어젖혔다.
부욱!
커다란 가방 속이 꽉꽉 차있었다.
그 중 필요한 건 화재 관련 장비들이었다.
비단 방화복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방화신발, 방화장갑, 호흡기 커버까지.
모든 장비를 새것으로 빠르게 교체했다.
차자작!
플래시 배터리도 교체하고, 열기에 찌그러진 호흡기 라인도 새로 꺼냈다.
아예 첫 출동처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새로 착용했다.
그 중에서도 태건의 준비 과정이 놀랍도록 신속했다.
“착용 끝!”
“나도!”
태건에 이어 오광휘 단장이 간발의 차로 두 번째로 마무리 지었다.
둘 다 산소통은 2개씩 등에 맸다.
예비용까지 아예 함께 들고 가려는 거였다. 산소통이 한 개 더해지는 건 그렇게 만만히 볼 일이 아니었다.
그걸 계속 매달고 다니면 불어난 무게가 가중되어 부담이 될 터였다.
그러나 특수소방단은 티끌만큼도 개의치 않았다.
체력단련이 괜한 게 아니었다.
그렇게 재진입 준비를 이어갈 때였다.
그런 그들을 중년의 소방관들이 바라보고 있었다.
…….
두 눈에 애잔함이 가득했다.
그 중 누군가 다가왔다.
오광휘 단장을 아는 인물인 듯했다.
“광휘야.”
“엇, 서장님.”
“너희들 지금 뭐하는 거냐. 설마 저 속에 다시 들어가겠단 거야?”
김남수 노원소방서장의 표정이 굳어지다 못해 딱딱했다.
오광휘 단장은 똑바로 마주하며 답했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이놈아. 그 욕심이 화를 부르는 거야. 여기서 멈춰.”
“…….”
“왜 답이 없어. 너 진짜…….”
일그러진 얼굴로 따갑게 소리치려 했다.
태건이 빠르게 다가가 김남수 노원소방서장 앞을 막았다.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너, 강태건이……. 맞지. 채용이 장례식장에 환자복 입고 왔던.”
김남수 노원소방서장은 기억 속 태건의 모습을 상기시켰다.
태건도 그때 봤었다.
장례식장 앞에서 오광휘 단장과 대화하던 상대였다.
그때 그 얼굴 그대로라 기억하고 있었다.
오광휘 단장이 어려워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거다.
오랜 소방관 생활 탓에 보이지 않는 인연이란 끈들이 연결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