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태건은 오광휘 단장과 경우가 달랐다.
그래서 김남수 노원소방서장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저희를 막지 마십시오.”
“이 쌔까맣게 어린 노무 시끼가……. 내가 지금 나 좋으라고 이러는 줄 알아!”
“저희 걱정하시는 거 압니다.”
“아는 녀석이, 네 녀석들이 아무리 특수소방단이라도 저 불속에서 무사할 성 싶으냐!”
김남수 노원소방서장이 길길이 날뛰었다.
그가 화를 내는 건 동료라서, 후배라서, 아끼는 마음과 걱정이 저변에 깔려 있었다.
애잔한 눈빛만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특수소방단이란 이름으로 묵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김남수 노원소방서장이 보여주는 가슴 깊은 동료애를 격하하고 싶지 않았다.
태건은 정중하지만 짤막하게 말했다.
“저 안에 저희를 기다리고 있는 아이가 있습니다.”
“나도 들었다. 나도 알아. 그런데, 그런데…….”
“늦었다고요. 그 말씀, 저분들에게도 하실 수 있습니까?”
스윽.
태건은 한쪽을 가리켰다.
거기엔 무너질 대로 무너져 경찰의 부축을 받아야 하는 아이의 부모가 있었다.
김남수 노원소방서장의 눈빛이 가늘게 떨렸다.
“그, 그……. 크흠.”
끝내 그는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어떤 철면피라도 차마 꺼낼 수 없는 말일 터였다.
태건은 김남수 노원소방서장에게 재차 물었다.
지잉.
그 눈빛이 단호하면서도 강렬했다.
“그래도 저희를 막으실 겁니까?”
“……이 미련한 놈들.”
꾸우욱.
김남수 노원소방서장이 짙은 안타까움에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나 결국 옆으로 비켜섰다.
스윽.
김남수 노원소방서장도 왜 들어가야 하는지, 어째서 들어가야 하는지는 가슴 먹먹하게 잘 알고 있던 탓이다.
그런 그가 들릴 듯 말 듯 가늘게 말했다.
“조문은 이제 그만 가고 싶네.”
“……명심하겠습니다.”
태건은 걱정해준 그에게 정중하게 답했다.
그때 오광휘 단장이 지나치며 말했다.
“서장님, 실례하겠습니다……. 태건아, 가자.”
“네.”
차자작.
태건과 특수소방단은 재정비를 마치고 출입구로 향했다.
동시에 오광휘 단장이 무전했다.
띠릭.
“여기는 라텔. 재진입 포인트로 향하는 중……. 지원바람.”
평소답지 않게 경직된 말투였다.
예전 사고가 떠오르고, 친숙한 인연을 밀어낸 이유일 터였다.
그런 복잡함이 그를 억누르게 했다.
그걸 직감한 태건이 단호하게 끊어줬다.
“단장님, 때론 터트려줘야 할 때도 있는 겁니다.”
“…….”
“언제부터 누르고 사셨다고. 그냥 하던 대로 하세요.”
엉뚱한 뉘앙스로 속을 긁었다.
그러나 오광휘 단장은 무슨 소린지 알아듣고 있었다.
…….
잠시 갈등의 눈빛이 스쳤다.
그러나 이내 어깨의 무전기를 강하게 쥐며 버럭버럭 소리쳤다.
띠릭.
“쓰벌, 이러고 돌아가서 또 악몽 꿀 겁니까?”
“…….”
“대체 언제까지 빌어먹을 악몽에 시달릴 겁니까. 위험? 그게 뭐. 그거 각오하고 그 옷 입고 있는 거잖습니까. 싫음 벗어버려!”
잔뜩 거친 목소리로 외쳤다.
억누른 감정을 터트린 외침이기도 했다.
그리고 소방관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트라우마를 꼬집은 소리기도 했다.
물론 그 트라우마는 본인도 해당됐다.
김남수 노원소방서장도 무전기로 그 말을 들었다.
생각이 많은 듯한 표정으로 무전기를 바라봤다. 그러던 그가 이내 무전기 버튼을 누르고 묵직하게 말했다.
띠릭.
“저 무식한 놈들이 또 난리잖아. 계속 저놈들이 설치게 놔둘 거냐.”
곧장 무전기에서 응답이 들려왔다.
-띠릭. 라텔 재진입 준비 중, 확인!
-띠릭. 서쪽 구역 물대포 출입구에 집중 요망!
-띠릭. 서쪽만 몰아치지 말고, 각 구역 출입구 확보해서 밀고 들어가!
-띠릭. 진압조 전원 투입한다. 이번엔 우리가 요구조자 모시고 나온다. 돌격!
무전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렸다.
우우웅.
현장 분위기가 달라졌다.
곳곳에서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김남수 노원소방서장은 무거운 표정으로 지켜봤다.
정작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움직일 수가 없었다.
무전기를 들지 않은 팔이 어깨 이상 올라가지 않았다.
오래전 현장에서 입은 부상 탓이었다.
부들부들.
팔을 들어보던 그는 버텨봤지만 어쩔 수 없이 다시 내려야 했다.
“그래서 난 후회하나?”
스스로 물었다.
그리고.
절레절레.
이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왜냐하면 이 부상도 요구조자와 탈출하는 과정에서 입은 탓이다.
다만 후배들이 그 길을 걷는 게 안타까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랑스러웠다.
“그래, 가라. 가서 구해와라. 이 못난 놈들아.”
김남수 노원소방서장은 끝까지 퉁명한 말투였다.
특수소방단은 다시 출입구 앞에 도열했다.
쿠오오오!
화염의 기세가 너무도 강렬했다.
그러나 그 불길을 노려보는 특수소방단의 눈빛이 더 뜨거웠다.
찌리릿.
눈빛만이라면 단숨에 찢어버리고도 남을 기세였다.
이번엔 태건과 오광휘 단장이 나란히 앞에 서 있었다.
더 기다리고 말고 할 시간이 없었다.
오광휘 단장이 발을 떼며 거칠게 소리쳤다.
“자신 있는 새끼만 따라붙어!”
“자신 없는 새끼를 찾는 게 빠릅니다!”
파바박!
말이 오가는 사이, 벌써 몸은 출입구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거기에 추가된 장비로 소방호스도 있었다.
촤아악!
여섯 명의 단원들이 제각각 발수하며 출입구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단장에 그 단원이었다.
그리고.
‘더 라스트, 출동합니다. 팀장님, 성규 선배, 이번엔 모시고 나오겠습니다.’
피잉!
태건이 차갑고도 날카로운 눈빛으로 함께했다.
한편.
기자들이 현장의 구석진 자리에서 방화복을 벗었다.
주르륵.
“푸후우우.”
땀이 비 오듯이 흐르고, 목은 타는 듯한 갈증으로 가득했다.
“헉헉. 지금까지 취재 중에 최악이었어.”
“저길 어떻게 들어가는 거야. 나 물 좀 줘, 빨리!”
벌컥벌컥.
거칠게 물을 들이켜며 마른 속을 달랬다.
그때 ENG카메라 기자가 현장의 변화를 감지하고 갸웃거렸다.
“분위기가 왜 저래……. 어, 어어? 특수소방단 또 들어갑니다!”
“뭐?”
“진압조하고 특수구조대도 진입 준비합니다. 다 들어갈 모양입니다!”
“……저 불 속을 또? 제정신이야? 아으씨, 난 못 들어가. 절대 못 들어가!”
모든 기자가 방화복을 다시 입는 걸 거부했다.
이강찬 기자가 가장 거세게 반발했다.
같은 시각.
특수소방단이 재진입하는 장면이 실시간으로 중계됐다.
전국 각지의 사람들이 TV와 휴대폰으로 보며 안타까워했다.
“헉. 저기를 또?”
“어머, 어째.”
“하아아. 모두 무사하게 도와주세요.”
누군가는 두 손 모아 빌기도 했다.
그리고.
영등포구 소재의 어느 은행.
창구에 유니폼을 입은 정연미가 앉아 있었다.
그런데 그녀의 앞에 고객이 인상을 푹 찡그리고 있었다.
“저기요. 저기요!”
고객이 부르고 또 불렀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연미의 시선은 TV에 쏠려 있었다. 지금 각 방송사의 시청률 상승에 일조 중인 대형마트 화재 생중계 화면이 가득했다.
그때 TV 하단에 자막이 떠올랐다.
-마지막 실종자 구출 위해, 특수소방단 화재현장에 급히 재진입.
그걸 본 정연미가 입을 가리며 경악했다.
“헉, 오빠!”
한편.
특수소방단은 현장에 돌입해 있었다.
오광휘 단장이 따갑게 외쳤다.
“단장과 라면이 정면, 2열하고 3열은 좌우 방수!”
촤아악!
여섯 개의 물줄기가 제각각 포지션에 맞춰 쏘아져갔다.
소화를 위한 방수가 아니었다.
오직 길을 열기 위한 목적이었다.
치지직!
소방용수에 닿은 불이 황급히 뒤로 물러나며 길을 열었다.
그 길을 특수소방단은 거침없이 밀어붙였다.
태건은 ‘라면’이란 말에도 반응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집중하고 있었다.
“…….”
푸아악!
정면에서 길을 뚫는 역할이다.
단순히 불을 밀어낸다고 끝이 아니다.
뭉게뭉게 밀려오는 연기를 밀어내고, 위험을 예측해야 했다.
번쩍!
연기투과플래시로 앞길을 비추며 움직였다.
그럼에도 앞은 칠흑 같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불이 득세하며 더 많고 짙은 연기를 내뿜은 탓이었다.
다행히 한 번 진입한 적이 있는 길이다.
두 번째는 아무래도 조금 편했다.
다들 집중하고 있어 오가는 대화가 삭막할 정도로 없었다.
“…….”
반면 무전기는 계속 울렸다.
-띠릭. 진압조 진입.
-띠릭. 동쪽 출입구 확보!
-띠릭. 남쪽 출입구는 입구 주변까지 소화 완료.
-띠릭. 특수구조대 2층으로 이동 중.
현장 안에 수많은 소방관들이 들어와 있었다.
그럼에도 주변은 고요하기만 했다.
건물 규모가 얼마나 큰지 다시금 일깨워질 정도였다.
특수소방단은 목적지를 정해둔 상황이었다.
직원통로.
남진우와 두 명의 동생들을 발견한 장소다.
거기서 더 깊은 곳.
바로 거길 향해 이동 중이었다.
그렇게 좌우에 불타는 선반들 사이를 지나쳐 갈 때였다.
태건은 갑자기 신경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저쪽 연기의 흐름이…….’
다소 이상하게 변했다.
소방용수에 밀려 어지러워진 정도가 아니었다.
뭔지 모를 위화감이 느껴졌다.
그때였다.
우직!
뭔가 어긋난 소리가 들려왔다.
앞을 주시하던 태건이 반사적으로 선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음? 흐음.”
육안으로 딱히 변화가 없었다.
같이 고개 돌린 단원들도 본 모양이었다.
“뭔 소리야.”
“젠장. 더 빨리 들어가야 되는데.”
“연기 때문에 코앞도 제대로 안 보입니다.”
짜증이 담긴 말을 한 마디씩 내뱉었다.
시야가 너무 제한되어 속도가 더뎌진 탓이다.
유일하게 태건만 조용했다.
“…….”
입을 꾹 다문 채 귀만 쫑긋거렸다.
그리고 두 눈으로 주변을 계속 둘러봤다.
‘아무 일도 없을 소리가 아니었어.’
커다란 소리인데도 아무 일이 없는 걸 경계하고 있었다.
퉁, 투퉁.
자그맣게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급속도로 커져갔다.
더불어 검은 연기가 한쪽으로 향하다 갑자기 흩어지길 반복했다.
스슥. 퐁.
시야 가득한 검은 연기의 극히 일부분만 그러했다.
그래서 다른 단원들은 눈치 채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