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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사인 (145)화 (144/320)

145화

유일하게 태건은 흐름에 중점을 두고 있어 눈치 챘다.

뭔가 넘어진 충격으로 공기가 사방으로 퍼지는 현상이었다.

‘왜?’

의아하던 태건은 곧 그 정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머리 위까지 높이 세워진 불타는 선반이었다.

터더더덩.

어디선가 무너져 도미노 현상으로 밀려오는 거였다.

“젠장. 왼쪽에서 온다, 다들 피해!”

태건이 버럭 소리쳤다.

단원들 모두 눈을 똥그랗게 떴다.

뭔 일인지 몰랐다.

위험천만한 현장속에서 반발이란 있을 수 없었다.

특히 오늘 태건의 모습은 더욱 강력했다.

오광휘 단장부터 외쳤다.

“뭔지 몰라도 일단 날려!”

휘릭.

더불어 경고한 방향을 피해 몸을 멀리 날렸다.

다른 단원들도 마찬가지였다.

“에잇!”

“치잇!”

휘휘휙!

사방으로 재빨리 흩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쿵, 쿠구궁!

무너지는 소리가 급격히 커지더니 왼쪽 선반이 갑자기 넘어졌다.

콰앙!

넘어진 충격으로 인해 선반이 부서지고 불똥이 사방으로 날렸다.

퐈아악!

태건이 피하라고 했던 바로 그 장소였다.

“허업!”

“뭐야!”

태건은 예상했기에 소방호스로 화재진압부터 했다.

치이익!

동시에 소리 높여 물었다.

“다들 괜찮으십니까!”

목소리가 멀리 퍼지지 않았지만 다들 가까이 있어 대답이 들려왔다.

“이게 왜 쓰러져!”

“막내가 소리쳐서 피하긴 잘 피했어.”

“대체 누가 뭘 건드린 거야!”

하나둘 다시 모이는 단원들 목소리에 분노가 서렸다.

그런데 태건의 의견은 좀 달랐다.

“어떤 선반이 무너지면서 도미노처럼 무너진 겁니다.”

“여기서 끝났잖아.”

“여기가 중앙 복도라서요.”

“아, 간격이 넓지.”

다들 이해한 눈매로 변했다.

그때 곱씹던 태건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좋아할 때가 아닙니다!”

“좋긴 누가 좋아, 직원 통로까지 얼마 안 남았어!”

“이 상황에서 그 정도 정황파악도 못할까!”

선배들이 뾰족하게 반발했다.

태건은 개의치 않고 다그치고 재촉했다.

“일단 이동합니다. 어서요!”

그렇게 서둘러야 했다.

마트가 너무 넓어 모든 불의 확산세가 제각각이었다. 어딘가는 철제 선반이 무너질 정도로 불길이 거세게 일어났다.

이제는 여기가 어디든 안심할 수 없었다.

특히 요구조자의 생존률이 급격히 낮아지는 신호였다.

안 그래도 서두르고 있었다.

그런데 더욱 빨리 움직여야 했다.

‘제발, 살아만 있어라.’

거기가 어디든 상관없었다.

찾아낼 거다.

그러니 살아있기만을 간절히 소망했다.

그때였다.

띠릭.

무전기가 울리며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띠릭. 이학종, 이학종 대원, 응답해라. 구조대 이학종 대원!

…….

-띠릭. 현장의 전 대원에게 알린다. 소방관 1명 미싱(MISSING), 무너진 선반을 피하다 놓침. 응답 없는 걸로 보아 부상 확률 높음!

이어진 무전에 모두의 눈에 힘이 들어갔다.

“이 새끼들이, 지들이 다치면 어쩌자는 거야!”

오광휘 단장이 벌컥 화를 냈다.

그때 고수현이 만류했다.

“저희도 태건이가 경고하지 않았으면 똑같은 꼴 났을 겁니다.”

“갑자기 엉뚱한 소리를 하는데, 그게 맞아 떨어지는 게 아직도 의문이지만요.”

이지성이 강도를 약하게 의구심을 보냈다.

그때 황대산이 얼른 이목을 흩트렸다.

“지금 그게 중요해? 소방관이 실종이라는데!”

“어딘지 모르잖습니까.”

그 말은 태건의 입에서 나왔다.

요구조자를 찾아가는 길이다.

그러나 소방관의 실종을 무시할 수 없었다.

낙오되고 부상까지 입었다면 그 또한 요구조자였다.

그런 태건의 말을 듣기라도 한 듯 무전기가 다시 울렸다.

-띠릭, 미싱 포인트, 중앙 냉동고 부근으로 추정. 다시 알린다. 대원 실종 위치는…….

다들 반사적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중앙 냉동고면 여기서 멀지 않은 탓이다.

태건은 여러 생각하지 않고 재빨리 결정 내렸다.

“2개 조로 찢어져야겠습니다.”

“내가 실종된 대원을 찾아서 엉덩이를 차주고 싶지만. 황대산이, 너에게 일임하마.”

사삭.

오광휘 단장은 빠르게 태건 쪽으로 붙었다.

황대산이 손짓하려다 이내 멈췄다.

“쩝. 자리가 없네요. 이번에도 따로 움직이겠습니다……. 얘들아, 가자!”

타다닥.

황대산이 바로 몸을 돌려 멀어졌다.

그 뒤를 유중헌과 고수현이 각각 소방용수를 쏘며 뒤따랐다.

태건은 옆을 바라봤다.

이지성이 바로 뒤에 서 있었다.

그가 의도해서 다가온 건 아니라 출발 때부터 포지션이 태건의 뒤였다.

태건이 바라만 보자 이지성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나도 가?”

“아니요. 선배는 꼭 필요합니다.”

“응급처치라. 아마도 그럴 확률이 높겠지.”

이지성은 자신이 어떤 위치인지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태건은 이내 다시 방향을 잡고 움직였다.

“어서 가시죠.”

“그……. 엇. 호스가 짧네. 아직 2개 남았으니까 일단 가.”

텅.

오광휘 단장은 쿨하게 소방호스를 내렸다.

어떤 상황이 벌어져도 지금은 무심할 정도로 관심이 없었다.

그만큼 요구조자 수색에 모든 신경이 쏠려 있었다.

세 명으로 줄어든 특수소방단은 빠르게 이동했다.

속이 들끓어 입술이 말라가고 있었다.

아이의 부모가 무너진 모습이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타다닥.

“저쪽!”

“다 왔어!”

소리쳐 알리던 그들 앞에 곧 카우보이 도어가 나타났다.

진입 시간은 남진우를 찾을 때와 비교해 반도 되지 않았다.

그만큼 서둘러 온 길이다.

이제 막 직원통로로 들어가려는데 발목을 잡는 게 있었다.

턱!

“엇, 호스!”

“이제 안 당겨집니다!”

“버려!”

“돌진!”

벌컥!

남은 소방호스들을 과감히 버리며 멈춤 없이 그대로 밀고 들어갔다.

소방호스를 연장할 시간조차 없었다.

직원통로 속도 이젠 연기가 자욱했다.

그리고 천장 일부가 불과 열기에 녹아내리고 있었다.

다행히도 칠흑 같은 수준은 아니었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통으로 이뤄진 카우보이 도어 덕분에 확실히 연기 유입이 적었다.

화재도 여기까지 번지지 않았다.

후욱, 후욱.

자신의 숨소리가 소리가 이제 들렸다.

복도 형식의 공간이라 확실히 좁고 길었다.

그리고 문이 많았다.

세 단원은 재빨리 각자 가까운 문으로 흩어졌다.

“좌우 확인!”

“문 조심해서 열어!”

턱, 척!

등을 벽에 붙이고 문고리를 돌려 열었다.

또는 손으로 문의 온도를 가늠한 후에 열기도 했다.

화재의 징조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소방관과 요구조자의 확실한 안전을 위해선 필수였다.

그런 행동이 빠르게 반복됐다.

벌컥, 벌컥.

“클리어!”

“여기도 없어!”

남은 문의 숫자는 급속도로 줄어갔다.

그러나 요구조자의 흔적은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오광휘 단장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이제 남은 문이 다섯 개도 안 됩니다.”

“저 안에 있겠지. 아니, 있어야지!”

타닥.

소리친 오광휘 단장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뒤따라 달리던 태건이 일순간 멈칫했다.

“여긴?”

갑작스럽게 나타난 건 비상구였다.

EXIT.

선명하게 쓰여 있고 굳게 닫혀 있었다.

…….

가만히 바라보던 태건이 비상구를 조심스럽게 열어봤다.

후르륵!

살짝만 열었는데도 그 틈새로 열기와 연기가 순식간에 몰려왔다.

턱!

재빨리 닫은 태건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만약 1층에 없다면?”

상황은 정말 최악으로 치달을 수 있었다.

그 사이 또 다른 방을 확인했는지 오광휘 단장의 울컥한 외침이 들려왔다.

“또 없어!”

“이쪽도 없습니다!”

이지성이 이어서 답했다.

이제 남은 문은 한 손으로 꼽을 지경이었다.

두근두근.

태건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가정했던 최악이 점점 현실이 되어간 탓이다.

어느 순간 태건의 눈빛이 강하게 굳어졌다.

그리고 벽에 붙어 비상구 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푸아악!

일순간 역류현상이 일어났다.

안정되자 비상계단 내부 상황을 살폈다. 위에서 플라스틱과 철골이 녹아 촛농처럼 떨어지고 있었다.

콰와아아.

시멘트까지 스민 열기에 불가마보다 더한 찜통이 되어 있었다.

“크으. 이거 위에서 일어난 불……. 설마?”

번뜩!

눈빛을 번쩍인 태건은 그대로 비상계단으로 사라졌다.

태건은 감쪽같이 모습을 감췄다.

대신 태건의 목소리가 오광휘 단장과 이지성의 무전기에서 울렸다.

-띠릭. 막내, 지하로 내려갑니다.

엉뚱한 소리에 오광휘 단장이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이 자식아, 갑자기 무슨 지하……. 벌써 갔어?”

“……전 그럼 저쪽으로.”

타다닥!

갑자기 이지성이 비상구로 방향을 돌렸다.

그리고 그의 모습도 곧 사라졌다.

혼자가 된 오광휘 단장 표정이 확 굳어졌다.

“하여간 다 제멋대로야. 그래도 일단 난 남은 문들마저 확인하고.”

스스로도 요구조자가 있을 확률이 낮단 걸 직감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확인하지 않을 순 없는 노릇이다.

벌컥, 벌컥.

남은 문을 열어보는 건 순식간이었다.

결국 요구조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의리 없는 자식들, 나도 간다. 엇, 크윽. 여기 뭐야!”

파바박!

예기치 않은 열기와 연기에 놀란 오광휘 단장이었지만 얼른 움직였다.

같은 시각.

태건은 지하1층에 도착해 있었다.

복도에 불이 번지는 중이었다.

위에서 내려온 불이 복도로 옮겨 붙은 거였다.

그 현상으로 태건은 확신했다.

“이쪽이야.”

비상계단의 불은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니 아이도 아래로 내려왔을 거라 확신 중이었다.

그때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터더덕.

“태건.”

“지성 선배?”

“이쪽이 맞은 모양이야.”

“저쪽으로!”

태건은 불이 번지는 복도의 끝방을 가리켰다.

그 순간 태건과 이지성은 같이 내달렸다.

파바박.

불이 흐르는 길을 무참히 짓밟으며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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