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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사인 (146)화 (145/320)

146화

곧 문 앞에 도착한 태건은 바로 열어젖혔다.

벌컥!

방안에 메케한 검은 연기가 가득했다.

문틈으로 스며든 연기가 안에 쌓인 현상이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플래시 끝에 엎드린 남자아이가 보였다.

찾았다.

드디어 길고 긴 숨바꼭질의 종지부를 찍었다.

그런데 아이에게서 큰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았다.

“이런!”

“헙!”

태건과 이지성은 헛숨을 들이켜며 서둘러 다가갔다.

터덕!

자세를 낮추고 바로 엎드린 아이를 조심히 뒤집어 봤다.

그 순간 태건과 이지성의 두 눈이 굳어졌다.

“그륵, 그르륵.”

아이의 숨이 넘어가기 일보직전이다.

벌써 입에 게거품이 물려 있었다.

두 눈은 위로 올라가 있었다.

추우욱.

팔다리는 어떤 힘도 느껴지지 않고 맥없이 흔들렸다.

생명의 기운이 너무도 약했다.

죽음까지 한 걸음 남은 정도가 아니었다.

죽음과 손끝이 닿아 있었다.

“응급. 아니, 초응급!”

태건의 외침이 따갑게 울렸다.

문제는 지금 위치였다.

복도는 불에 잠식되고 있다.

여기서 지체하면 불이 들끓어 이동조차 불가능하게 된다.

소방용수조차 없어 불을 억제할 수단도 없었다.

그렇다고 자리를 옮기려 이동할 수도 없었다.

아이는 당장 숨이 넘어갈 지경이다.

여기서 최소한의 응급처치를 해야 한다.

이대로 들고 뛰면, 그 다음을 절대 장담할 수 없었다.

부르르.

태건과 이지성의 몸이 동시에 떨렸다.

진퇴양난.

어떤 결정도 쉽게 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생각조차도 사치였다.

어떤 순간에도 최우선 순위는 무조건 생명이다.

그건 절대 불변이다.

번뜩!

태건의 눈빛이 섬광을 발했다.  

동시에 손이 번개 같이 날아가 아이의 입을 막았다.

턱!

어느 틈에 보조호흡기를 씌운 후였다.  

“숨 쉬어, 숨!”

태건은 다급한 표정으로 거칠게 외치며 자극했다.

그러나.

…….

아이에게서는 어떠한 반응도 없었다.

더 안 좋은 건 숨소리가 너무도 가늘었다.

“시익, 시이…….”

가슴의 들썩임도 너무 미약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숨 쉬라니까!”

푹.

태건은 아이 가슴에 손을 얹고 힘을 줬다.

최대한 냉정을 유지하면서 CPR을 실시하는 손길이다. 자세를 갖출 여유도 없어 다급한 마음에 압박한 거였다.

지금은 일분일초가 아쉬운 탓이다. 

쑥, 쑥, 쑥!

두 번, 세 번.

압박 횟수가 늘어나는 사이였다.

스슥.

태건의 자세가 조금씩 바뀌더니 곧 온전한 CPR자세를 갖췄다.

“여섯, 일곱…….”

쑥, 쑥.

태건은 정석으로 아이 흉부에 압박을 반복했다.

그 사이 이지성은 구급상자를 펼치고 바이탈을 확인 중이었다.

띡.

“맥박이 너무 낮고, 혈압도 상당히 내려갔어!”

“그러니까 CPR하는 거 아닙니까!”

“숨이……. 강태건, 준비!”

이지성이 갑자기 엉뚱한 소리를 외쳤다.

동시에 그는 식염수를 꺼내 끝을 가위로 잘랐다.

그걸 본 태건은 바로 눈치 챘다.

기관지가 너무 말라 움직임이 유연하지 않단 의미다.

“스물 아홉, 서른……. 지금!”

첫 번째 CPR을 마침과 동시였다.

슥, 삭.

재빨리 아이의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호흡기를 젖혔다.

바로 그 타이밍이었다.

이지성이 대기하고 있던 만큼 재빨리 식염수를 아이의 얼굴에 쏟았다.

“조금만, 조금 더!”

주르륵!

식염수는 지금 이들이 가진 유일한 수분공급 수단이었다.

이지성은 쏟기만 하는 게 아니라 손가락으로 아이 입속을 훑었다.

후륵!

그 행동이 입속을 씻어주는 역할을 했다.

아이 입속을 훑고 나온 식염수 속엔 거뭇거뭇한 먼지가 섞여 나왔다.

그걸 본 이지성이 미간을 강하게 좁혔다.

“연기를 직통으로, 그것도 엄청 마셨어!”

“호흡부터, 무조건 호흡부터!”

턱, 쑥쑥.

다급히 외친 태건은 아이 입에 다시 호흡기를 대고 흉부압박을 이어갔다.

어느새 방화 장갑도 벗고 맨손이었다.

손바닥에 느껴지는 아이 가슴 온도가 확실히 낮았다. 그와 반대로 손등은 몰려오는 열기에 약간 뜨겁게 느껴졌다.

‘차라리 이 온도가 바뀌었으면.’

딱 그 심정이었다.

그렇게 CPR을 이어가던 태건이 아차했다.

손등이 뜨겁단 건 대기온도가 높다란 의미와 같다.

“지성 선배, 방열천 챙겼죠?”

“안 그래도 지금……. 찾았어!”

촤락!

대답과 동시에 이지성이 하얀 천을 넓게 펼쳤다. 특수소재로 되어 열기를 차단해주는 방열천이었다.

이것도 새로 받은 소방용품 중에 하나였다.

다만 응급처치용이라 면적이 넓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를 감쌀 정도는 됐다.

사삭!

“그쪽 들어!”

“여기, 오케이!”

태건과 이지성이 힘을 합쳐 아이 몸에 방열천을 둘렀다.

쑥숙.

그 순간에도 흉부압박은 절대 멈추지 않았다.

어떤 응급처치도 아이의 호흡보다 중요하지 않았다.

쑥, 쑥.

“좀, 좀!”

태건은 계속 압박하며 재촉했다.

이지성도 바쁘게 움직였다.

“기관지확장제, 그리고 항부정맥제, 진통제하고 해열제, 식염수 왕창!”

쭈욱, 쭈욱.

순식간에 채워진 주사약들이 아이 몸으로 밀려들어갔다.

그동안 준비한 의약품도 한층 업그레이드되어 첫 출동보다 더 다양한 앰풀을 갖추고 있었다.

그 순간에도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갔다.

태건은 손등에 열기가 더해지는 걸 느꼈다.

초조함에 의한 착각이 아니었다.

후르륵.

복도의 불이 방 입구까지 번졌다.

빨갛게 달궈진 교활한 혓바닥을 날름거리며 방안까지 세력을 넓히려 했다.

그런데 비해 아이 상태는 그대로였다.

쑥, 쑥.

“시익, 시이익.”

태건의 흉부압박으로 숨을 쉬고 있었다.

멈추면 끝이다.

아직 아이는 자력으로 호흡이 불가능했다.  

태건은 CPR을 하며 눈으로는 매섭게 불길을 쫓는 중이었다.

‘이대로는 안 돼.’

불길이 방안으로 번질 타이밍이 지척이었다.

이젠 누구라도 막아야 한다.

문제는 태건은 물론 이지성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지성은 주기적으로 식염수를 정맥주사로 공급중이다. 탈수증상을 해소하고, 혈액의 순환을 용이하게 하려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그 와중에도 틈을 만들어 아이의 몸을 주무르기까지 했다.

조물조물.

모든 건 순환을 원활하게 해 호흡을 이끌어내려는 중요한 응급처치였다.

태건이 그런 이지성에게 따갑게 물었다.

“단장님은요!”

“나도 몰라, 그냥 너 따라 내려왔어!”

“뭐라고요? 이런…….”

쑥쑥.

CPR 자세를 한 손으로 바꾼 태건이 어깨 무전기를 누르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복도에서 폭발소리가 들려왔다.

펑!

갑작스런 폭음에 태건과 이지성이 흠칫 놀랐다.

“여기서 뭐가 터지기까지 한다고, 썅!”

“이런 우라질, 아주 죽어라, 죽어라하네!”

두 사람의 입에서 욕설이 거칠게 터져 나왔다.

이렇게 되면 문이라도 닫아야 한다.

그런데 아이에게서 한순간도 손을 뗄 수 없다.

불이 번지는 걸 이대로 지켜봐야할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있는 대로 짜증을 뿌려대던 그 순간이었다.

스스슥.

복도에서 하얀 분말이 흩날리는 게 시야에 잡혔다.

“뭐야, 설마?”

태건의 눈동자가 가늘게 진동했다.

바로 그때 오광휘 단장이 하얀 분말을 뒤집어쓴 채 등장했다.

터더덕!

“여, 여기냐……. 빙고!”

“단장님!”

태건과 이지성이 동시에 외쳤다.

재빨리 안으로 들어온 오광휘 단장은 문부터 닫았다.

터엉!

전기가 없는 방안은 순식간에 칠흑으로 물들었다.

그러나 각각 플래시가 있어 완전한 암흑은 아니었다.

오광휘 단장은 문을 등진 모습 그대로 인상을 찌푸리다 멈칫했다.

“아직도 소화볼 터지는 타이밍을 모르겠단……. 뭐야, 애 상태가 왜 그래!”

“연기를 너무 먹었습니다!”

“아무리 먹을 게 없어도 하필 그걸 먹어.”

다소 가벼운 오광휘 단장의 표현에 태건이 버럭 소리쳤다.

“단장님!”

“새꺄, 나도 상황 파악 좀 하자!”

“빨리하세요!”

태건은 물러서지 않고 맞받아쳤다.

오광휘 단장은 더 따지지 않고 플래시를 비춰가며 빠르게 장소부터 파악했다.

슥슥.

그런 그의 표정이 확 굳어졌다.

“야이씨……. 재수도 더럽게 없지.”

“왜 그러십니까.”

“여기 MDF실이야.”

스윽.

플래시로 어딘가를 비춘 오광휘 단장의 목소리가 묵직하게 돌변했다.

태건의 시선이 그 빛을 따라갔다.

요구조자에 집중했던 탓에 처음 주위로 시선을 돌리는 거였다.

그런 태건의 눈에 들어온 건 굵은 배선들이었다. 전기선과 인터넷회선, 그리고 정전방지장치도 있었다.

건물 내 모든 케이블이 지나는, 인체의 척추 역할을 하는 장소다.

탈 것 천지였다.

사방으로 뻗어나간 케이블 덕분에 화재가 나면 가장 위험한 장소였다.

“헐.”

태건은 자신도 모르게 황망한 탄식을 내뱉었다.

이지성도 봤는지 한 소리 했다.

“이 조합이면 그냥 뒤지란 거네.”

그 표현이 절대 과하다고 할 수가 없었다.

불길이 전선을 타고 이곳에 도달하면 피할 장소조차 사라진다.

문제는 그때가 언제인지 아무도 예측할 수가 없단 점이었다.

그 순간에도 태건과 이지성의 손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쑥쑥, 주물주물.

요구조자가 자가 호흡을 할 때까진 한 순간도 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손이 여유로운 오광휘 단장을 재촉했다.

“단장님. 방법 좀 찾아보세요!”

“우린 거기까지 고민할 틈이 없습니다.”

태건과 이지성이 한목소리로 몰아붙였다.

그들의 요구는 당연한 거였다.

오광휘 단장도 두 손이 자유로운 상황이라 우선 무전기부터 눌렀다.

“여기는 라텔캡, 빅라텔 들려?”

-띠릭. 빅라텔 송신, 현재 미싱 대원 발견, 구조 중!

“구조라니, 어떤 상탠데!”

-띠릭. 넘어진 선반에 깔려 있음, 다중골절과 화상이 예상 됨. 다른 라텔들과 함께 행동 중!

황대산의 목소리가 다급하고 심각했다.

저쪽 상황도 좋지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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