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오광휘 단장은 바로 무전의 폭을 넓혔다.
“라텔 단장이 지원 요청, 현 위치 지하 1층, 누구라도 당장 접근 가능한지 체크!”
-띠릭. 진압조장 송신, 지금 바로 비상구 위치 파악하겠다!
이제 찾겠다니.
오광휘 단장이 무전기 버튼을 누르지 않고 한 소리 했다.
“언제 찾아서, 언제 올 건데!”
한 소리 쏘아 붙이고 다시 무전기 버튼을 눌렀다.
“라텔 단장이다. 진압조는 빅라텔 쪽으로 선회바람.”
-띠릭. 인원을 나눠 비상구 수색도 겸하겠다.
“확인.”
툭.
대답한 오광휘 단장이 손을 내렸다.
그런 그의 미간이 더없이 구겨져 있었다.
“이쪽은 당장이 문제란 말이야.”
지원을 바랄 수가 없어 오광휘 단장 목소리에 답답함이 가득했다.
태건이 들어도 막막한 상황이었다.
…….
태건은 머릿속으로 뭔가 곱씹더니 바로 오광휘 단장을 찾았다.
“단장님. 일체유심조입니다.”
“뭔 엉뚱한 소리야. 지금 내가 이 불을 마음으로 지어내고 있는 거냐!”
“탈출한다고 마음먹으면 길이 열린다고요.”
태건이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해 말했다.
이지성이 힐끗 쳐다보더니 어이없어 했다.
“난 지금 이 애에게 일어나라고 수도 없이 속으로 외치는데, 왜 안 일어날까.”
“간절하지 않아서요.”
“이 상황에서 말장난 해?”
와직!
이지성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졌다.
그런데 태건은 대꾸하지 않았다.
대신 숨을 길고 진하게 내뱉었다.
“푸후후.”
그런 태건의 두 눈이 점점 강렬하게 변했다.
풍기는 분위기가 침착해진 정도가 아니라 태산 같이 굳건하고 단단해졌다.
지이잉.
그 모습 그대로 오광휘 단장과 이지성에게 말했다.
“진심으로 간절하면 무슨 짓을 할 수 있는지, 이제 알게 되실 겁니다.”
“흡.”
오광휘 단장이 흠칫 놀랐다.
지금까지 봤던 태건의 분위기와 완전히 다른 탓이다.
이지성도 놀란 눈치였다.
“양파냐.”
함축된 한 마디였다.
그만큼 태건은 이쯤이면 파악됐다라고 판단할 때쯤, 또 새로운 모습을 보여줬다.
더 놀라운 건 스스로 품는 기대감이었다.
태건이 색다른 모습을 보여줄 때면 상상도 못할 아이디어를 만들어냈다.
이번에도 그걸 경험할 거란 희망을 품었다.
태건은 우선 자신의 품에 달린 소화볼을 떼서 오광휘 단장에게 굴렸다.
툭, 데구루루.
“지성 선배.”
“나도 떼고 있어.”
툭, 툭.
이지성은 눈치로 따라했다.
“난 줍고 있어.”
턱, 턱.
오광휘 단장도 진지한 목소리로 말하며 행동했다.
그렇게 모인 소화볼은 10개 남짓이었다.
오광휘 단장의 방화복에 주렁주렁 매달린 모습이 마치 크리스마스트리 같았다.
누구도 그걸 언급하지 않았다.
이 순간, 꼴이 우스워진다고 그걸 웃을 사람은 없었다.
오광휘 단장이 먼저 문고리를 붙들며 말했다.
턱.
“부족할지도. 그래도 길을 열어볼게.”
“아직입니다. 요구조자 먼저.”
“…….”
오광휘 단장은 그대로 멈춘 채 신호를 기다렸다.
그 사이 태건은 이지성에게 말했다.
“선배, 교대.”
슥!
처음으로 CPR을 멈추고 손을 뗐다.
그 자리를 이지성의 두 손이 재빨리 메우며 CPR을 이어갔다.
쑥쑥.
“어쩌려고……. 그건 왜 들어.”
“순환이 문제라면서요. 순환시키려고요.”
핑!
태건이 손에 쥔 건 주사바늘이었다.
그리고 방열천 속에서 아이의 오른손을 꺼냈다. 이어서 그 여린 손가락 끝을 주삿바늘로 사정없이 찔렀다.
푹, 푹!
굵직한 주삿바늘로 인해 각 손가락 끝에서 피가 맺혀 뚝뚝 떨어졌다.
체했을 때 손가락을 따는 이치와 같았다.
“음? 흐음.”
이지성은 태건의 의도를 파악했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태건은 열 손가락으로 그치지 않고 열 개의 발가락까지 끝끝내 피를 봤다.
그리고 우악스럽게 아이의 팔다리를 주물렀다.
꾹꾹.
그때마다 손끝, 발끝에서 끈적끈적한 피가 조금씩 흘러나왔다.
더불어 차갑던 손끝, 발끝에 온기가 느껴졌다.
그저 기분 탓이 아니라 정말 효과가 있었다.
띠딕.
자동혈압계의 수치에 변화가 생겼다.
“음.”
태건은 눈썹을 들썩였다.
CPR하며 힐끗 바라본 이지성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약간 좋아졌어.”
“호흡은 어떻습니까?”
“그건 아직.”
“……잠깐 CPR 멈춰 보세요.”
태건이 진지하게 부탁했다.
멈칫한 이지성이었지만 일단 손을 멈췄다.
…….
태건은 아이의 호흡기에 귀를 바짝 대고 있었다.
“쉬이익, 시이익.”
아이의 숨소리에 고저가 생겨났다.
처음보다는 더 마시는 공기량이 약간 늘어났다.
어디까지나 처음과 비교했을 때일 뿐, 정상적인 호흡에는 턱없이 모자랐다.
그때 아이의 손끝에 처음으로 변화가 생겼다.
까딱.
미약하지만 움직임이었다.
주시하고 있던 이지성이 재빨리 알렸다.
“손가락이 살짝 움직였어. 내가 봤어!”
절망 속에 피어난 희망에 이지성이 눈웃음을 지었다.
다들 놀라야 정상이지만, 지금은 거기에 놀라워할 여유조차 없었다.
게다가 기쁨은 단 3초 밖에 이어지지 못했다.
스스스, 후르륵.
천장으로 나가는 전기선에서 불꽃이 피어났다. 문으로 막은 불이 결국 천장을 통해 번져온 거였다.
그걸 오광휘 단장이 플래시로 비추며 소리쳤다.
팟!
“빌어 쳐 먹을. 저기, 불!”
“이 정도면 지랄도 풍년이네!”
이지성의 밝은 표정이 거짓말처럼 차갑게 구겨졌다.
반면 태건에겐 변화가 없었다.
든든하면서 굵직한 분위기 그대로였다.
일말의 동요도 보이지 않은 태건이 눈빛을 더욱 굳혔다.
“이제 진짜 시간 없습니다.”
“내 말이!”
“한 번입니다. 기회는 단 한 번, 그러니까 지금부터 제 말을…….”
태건이 묵직한 목소리로 오강휘 단장과 이지성에게 말했다.
탈출 계획이었다.
그걸 듣는 두 사람의 표정도 빠르게 굳어져 갔다.
“흐으으음.”
“미친.”
반응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지하 복도는 시뻘건 화염으로 가득했다.
화르륵, 콰르륵.
바닥부터 벽, 천장에 이르기까지.
사방에 불의 물결이 가득했다.
그렇게 화염은 모든 공기를 끌어당겨 자신의 세력을 불리는 데 불법 남용했다.
화염의 강렬한 기세로 인해 몇 개 철문은 녹아가고 있었다.
그런 복도의 끝방.
굳게 닫혀 있던 문이 과격하게 열렸다.
콰앙!
동시에 안에서 튀어나온 두 개의 소화볼이 불속으로 날아갔다.
……퍼벙!
소화볼이 연속으로 터지며 소화가루를 사방에 뿌렸다.
웬만한 불은 악, 소리도 못 지르고 사라질 위력이다.
그런데 지금 복도의 화염은 잠시 밀려났을 뿐, 곧장 다시 수복하려 꿈틀거렸다.
바로 그 자리에 오광휘 단장이 떡하니 나타났다.
“이 불 새끼들, 난 네깟 놈들한테 절대 안 죽어!”
휘뤽.
오광휘 단장은 또 두 개의 소화볼을 내던졌다.
이성을 잃고 마구잡이로 뿌리는 거처럼 보일 정도였다.
퍼벙!
그래도 소화볼이 적소에 터지며 불길의 곳곳에 빈틈이 생겨났다.
불을 끈 게 아니라 밀어낸 거다.
금세 다시 몰려올 거다.
그걸 예상하는지 오광휘 단장은 또다시 소화볼을 양 손에 쥐었다.
이번엔 좀 달랐다.
“가자!”
파바박!
불을 잠시 밀어낸 그 자리를 박차며 뛰었다.
그 빈 자리에 태건이 나타났다.
두 손엔 방열천으로 보호한 아이가 안겨 있었다.
파바박!
“차아앗!”
오광휘 단장의 뒤를 바짝 쫓았다.
마지막으로는 이지성의 차례였다.
“…….”
촤자작.
태건의 뒤를 쫓으며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했다.
방금 이지성이 지난 자리는 소화볼에 밀려난 불이 순식간에 잠식했다.
태건은 아이를 보호하고 이송할 목적으로 두 번째 선 거였다.
거기에 오광휘 단장을 컨트롤하는 역할도 함께였다.
“단장님, 10미터 앞에 하나!”
“10미터 앞에!”
퍼엉!
소화볼이 터지며 불길이 좌우로 밀려났다.
그 찰나의 순간에 그 자리를 재빨리 지나쳤다.
차자작!
줄지어 달리던 태건이 바로 다음을 말했다.
“단장님, 이제 비상계단까지 세이브!”
“여기서부터 저 앞까지 불천지야!”
“몸 뒀다 뭐합니까. 뚫어!”
“빌어먹을, 차아아!”
파바박!
오광휘 단장이 선두로 달리며 길을 열었다.
그때마다 불길이 그의 몸을 여기저기 쓸고 또 훑고 지나갔다.
후륵, 후르륵
방화복 기능이 뚝뚝 떨어지며 빨간 불똥을 만들었다.
불길이 너무 거세면 방화복의 방어력도 삽시간에 사라진다.
그렇게 검게 탄 자국이 빠르게 늘어갔다.
그 뒤를 태건이 바짝 쫓았다.
오광휘 단장의 희생 덕분에 태건은 따라가기가 한결 수월했다.
그렇다고 쫓아만 가는 게 아니었다.
불에서 신경을 쓰지 않는 만큼 아이에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충격이……. 모자라.’
추측이 아니라 손바닥으로 생생히 느끼는 확신이었다.
동시에 태건의 걸음걸이가 거칠게 변했다.
턱, 터터덕!
일부러 두 다리를 크게 굴렀다.
때론 안은 두 팔을 끌어올려 충격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쉬, 릭, 쉭, 흩, 쉬익.”
입으로 손바닥을 통해 느껴지는 호흡을 말로 내뱉기도 했다.
그만큼 태건은 요구조자의 티끌만한 문제도 놓치지 않고 유심히 살폈다.
타닥, 탁, 타닥!
태건의 뜀박질에 혼자만의 독특한 리듬이 담겨 있었다.
‘그래. 그렇게, 좋아.’
충격으로 쉬는 숨은 오래갈 수가 없다. 호흡의 리듬이 흐트러진 순간 오히려 숨 쉬는 걸 막을 수 있었다.
그 리듬에 발걸음을 맞추니 부자연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
이지성의 역할은 태건을 보호하는 거다.
태건은 주변을 볼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다.
그 눈을 대신해줬다.
“태건, 정면 우측에 불, 좌로 한 걸음.”
“좌로, 하나.”
사삭.
“태건, 아래 낙하물, 점프.”
“뛰어!”
퉁!
태건은 이지성의 말을 그대로 따랐다.
…….
그런 태건을 향한 이지성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내가 헛소리하면 어쩌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