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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사인 (148)화 (147/320)

148화

그렇게 세 사람은 각각 다른 역할을 수행중이다.

요구조자란 매개체가 있어 그 어떤 순간보다 조화롭고 믿음직해 보였다.

물론 멀리서 봤을 때다.

정작 본인들은?

‘어흐, 이 불 새끼들!“

‘호흡, 들이쉬고, 내쉬……. 엇, 내쉬고, 들이쉬고. 리듬을 종잡을 수가 없네!’

‘좌우 클리어. 위아래, 클리어. 앞에 있는 놈만 비정상.’

속으로 각자의 어려움에 대해 뇌까렸다.

그러는 사이 비상구에 도착했다.

열어놓은 비상구였기에 번거로운 절차는 생략해도 됐다.

문제는 비상계단의 화재는 복도와 성질이 다르단 점이었다.

후르륵!

좁은 공간에 화력이 집중되어 있었다.

그만큼 작은 불길도 응집도가 엄청나게 높았다.

“크으윽. 젠장, 여길 또!”

“단장님, 지금!”

“오냐. 다 때려 박자!”

퍼버벙!

오광휘 단장은 소화볼을 모두 쏟아냈다.

그 폭발에 여기저기 분말이 터져 불길을 억누르고 밀어냈다.

그런데 그 폭발력에 차이가 있었다.

게다가 내부 온도가 너무 높았다.

지글지글.

곳곳에 난간이 녹고, 시멘트 조각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엄청난 열기는 심지어 방열천도 위협할 정도였다.

이대로 움직이면 요구조자는 호흡이 아니라 열을 이겨내지 못할 거다.

태건은 여기까지 예상하고 계획을 짰다.

“단장님, 플랜 B!”

“오케이, 이제 한 번 맘껏 갈겨 보자!”

터억!

방화복에 걸어둔 휴대용 소화기를 뽑아들었다.

그리고 뒤에 이지성과 함께 사방에 뿌려 댔다.

찌이익!

스프레이 분사형이라 양손으로 들고 쏴야 했다.

그래도 물총을 쏘는 느낌이었다.

그 형편없는 모습과 달리 역할은 착실히 해줬다.

주변 온도가 조금 낮아졌다.

그리고 이내 오광휘 단장이 마지막 휴대용 소화기를 내던졌다.

터덩!

“끝!”

“나도!”

뒤에서 이지성이 덩달아 외쳤다.

이 순간을 기다린 태건은 다급히 재촉했다.

“1층까지, 고고고!”

“아자자자!”

쿠구궁.

육중한 무게를 이겨내며 차례로 계단을 뛰어올랐다.

휴대용 소화기는 어디까지나 응급소화용품이었다.

잠깐 밀어낸 열기가 다시 몰려왔다.

푸화아아!

밀려난 불길도 빼앗긴 자리를 되찾겠단 듯이 더 강렬한 기세로 덤벼들었다.

“크으윽!”

“참아요!”

“참고 있어. 이런 빌어 쳐…….“

오광휘 단장의 뒷말이 잘 들려오지 않았다.

일순간 몰려온 강력한 화마가 소리까지 잡아먹은 현상이었다.

딱히 듣지 않아도 능히 짐작이 됐다.

욕설 한 가득일 거다.

이 상황에서 욕이 튀어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태건도 그랬다.

까딱하면 끝난다.

외줄타기도 이런 외줄타기가 없었다.

앞만 보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 돌진할 수 있었다.

그게 아니라면?

천만금을 준다고 해도 절대 들어오지 않을 장소였다.

…….

살자, 살아.

여기서 멈추면 개죽음이야!

파바박!

모두가 살기 위해 무작정 계단을 박차고 올라갔다.

곧 1층이다.

거의 다 올라왔다.

대형마트는 층고가 높은만큼 1층을 오르는 계단도 엄청 많았다.

타다닥!

태건의 두 다리가 빠르게 박차고 올라갔다.

그런 와중에도 온 신경은 방열천 속 환자에게 향해 있었다. 손바닥의 감각으로 숨을 쉬는지를 계속 체크해야 했다.

‘훅, 후욱, 쉭, 훅.’

아이의 숨을 느끼며 보조를 맞췄다.

다른 걸 신경 쓸 여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게 태건이 아이만 보며 계단을 오를 때였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난간이 어긋났다.

우지직, 그그그.

찢어지듯 어긋난 난간이 기울기 시작했다.

그 위치가 태건의 머리 위였다.

“……음? 엇!”

등골 오싹해지는 싸한 느낌.

번뜩!

반사적으로 고개를 든 태건이 눈을 찢어져라 크게 떴다.

바로 머리 위에 시뻘겋게 달아오른 난간이 떨어지고 있었다.

그 사이 태건은 마지막 계단에 올랐다.

터억.

난간과 방화헬멧 사이의 거리는 불과 한 뼘 정도였다.

발견이 너무 늦었다.

그때, 비상구에 도착해 돌아본 오광휘 단장이 경악했다.

“어어어, 피이이 해애애!”

뒷머리가 쭈뼛 선 태건에게 그의 외침이 느리게 들려왔다.

그 짧은 순간 태건의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파르륵 떠올랐다.

달아오른 난간을 등으로 받으면?

방화복이 타들어가는 건 순식간이다.

‘그리고 내 등은 사라질 거야.’

불 보듯 뻔한……. 불을 보고 있으니 그냥 그대로 보면 된다.

그렇다고 몸을 날리면?

앞으로 넘어진 순간 요구조자에게 모든 충격이 가해진다.

가늘게 이어지는 호흡마저 끊어질 터였다.

뒤로는?

앞으로 달리는 상태에서 급격히 방향을 바꿀 재주는 없었다.

파르륵.

온갖 경우를 떠올려도 부정적인 결과 밖에 도출되지 않았다.

곧 태건의 머릿속에 하얀 도화지가 생겼다.

그 위에 수많은 지난날들이 사진처럼 펼쳐졌다.

‘젠장, 또냐.’

주마등이다.

벌써 몇 번째 보는 건지 몰랐다.

그런데 이번엔 왠지 마지막일 거 같았다.

요구조자를 안은 채로 주마등을 본 게 이번이 처음인 탓이다.

절대 놓칠 수 없는 상황이다.

최대한 방화헬멧으로 받는 방법 밖에 없었다.

그 다음 일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엄마 밥 한 번 더 먹고 올 걸.’

이 순간 어처구니없게도 그 생각이 앞섰다.

그만큼 태건은 마음을 툭 놓았다.

이번이 내 차롄가 보다.

어차피 매 순간 각오했던 일이다.

이제와 새삼스러울 거 없었다.

시보 때 사고 이후의 삶은 모두 덤이었다.

늘 그런 마음을 품고 현장에 뛰어들었었다.

그런데 태건도 사람이었다.

삶에 대한 집착과 욕심.

소방관이라고 보통 사람들과 다를 건 하나도 없었다.

‘아직……. 아직 이른데…….’

구해야할 사람이 너무 많았다.

슬퍼할 가족들과 친구들을 생각하니 더욱 삶에 욕심이 났다.

언제든 깔끔하게 마무리하려 했다.

그런데 막상 그 순간이 닥치자 살고팠다.

마음은 진솔했다.

이렇게 죽을 순 없어.

아직 아니야!

태건은 이판사판이었다.

“크으, 으아아악!”

모든 힘을 쥐어짜 앞으로 몸을 날렸다.

이 순간조차 요구조자를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온몸을 날림과 동시에 비틀었다.

휘릭!

등으로 떨어져 요구조자도 구하고, 자신도 지켜낼 작정이었다.

생각대로 몸이 움직여질지 확신은 없었다.

본능적으로 날아오른 거였다.

바로 그때였다.

날아오른 순간 태건은 등을 떠미는 손길을 느꼈다.

터어억!

동시에 길게 늘어지는 외침도 들려왔다.

“태애애 거어언, 위이이 허어엄!”

이 손길과 목소리.

바로 뒤따라오는 이지성이 틀림없었다.

스스슥.

느릿하게 날아가던 태건의 몸이 180도 뒤집어졌다.

찰나의 순간 이지성 얼굴이 보였다.

다급함과 결연함이 함께였다.

태건을 떠민 이지성이 이젠 대신 위험에 처하게 됐다.

‘뭐야, 왜 날…….’

날아가는 와중에도 이지성의 도움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곧 날아가던 태건의 몸이 땅에 닿을 찰나이다.

방열천.

‘충격을 최대한 줄여야 해.’

생각은 그랬지만 실상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길게 이어지는 이 순간이 현실에선 불과 영점 몇 초일 터였다.

그 짧은 순간 다른 행동을 하긴 어려웠다.

충격에 대비할 때였다.

터어어억!

등 뒤에서 푹신함이 느껴졌다.

등에 맨 산소통마저도 감싼 그런 푸근한 느낌이었다.

‘왜?’

태건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날아가던 속도가 있어 아픔이 아예 없지 않았다.

‘윽!’

아픔이 느껴짐과 동시였다.

그 순간 늘어졌던 시간이 제자리로 돌아왔다.

우당탕!

“윽. 얘야!”

태건은 둔중한 충격을 뒤로하고 두 손에 안은 요구조자부터 걱정했다.

그때 태건의 등 뒤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카으윽. 이 새끼, 더럽게 무겁네!”

“에? 설마?

휙!

태건이 돌아보고는 크게 놀랐다.

오광휘 단장이 매트리스가 되어 자신을 받쳐주고 있던 탓이다.

그 순간 다른 단원이 머릿속에 번뜩 떠올랐다.

“지성 선배!”

태건이 외침과 동시였다.

“카으으으악!”

이지성의 고통에 가득 찬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휙!

거길 바라본 태건의 눈이 흔들렸다.

‘모두…….’

슬로 모션으로 본 장면이 전부 진짜였다.

이지성이 자신을 떠밀고 대신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그의 오른쪽 다리가 떨어진 난간에 깔려 있었다.

치이익!

난간의 열기에 방화복이 타들어가는 게 그대로 보였다.

이렇게 넋 놓고 바라볼 때가 아니다.

“지성 선배!”

거칠게 외친 태건이 재빨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 했다.

그때였다.

촤아악.

태건의 머리 위로 물줄기가 쏟아졌다.

“여기 맞습니다. 여기……. 이런!”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고수현이었다.

그가 쏜 소방용수는 이지성의 다리를 깔아뭉갠 난간에 적중했다.

치이이이익!

머금은 엄청난 열기만큼 수증기가 확 끓어올랐다.

태건은 적시에 나타난 상대를 향해 소리쳤다.

“수현 선배!”

“다들 몰골이 왜 이래!”

그의 말이 끝나기 직전 발걸음이 또 들려왔다.

파바박!

“어허, 누구야. 단장님하고 강태건이? ……이지성이!”

“황, 황 선배. 태건이가 요구조자…….”

황대산과 유중헌이었다.

한 발 먼저 도착한 황대산은 그대로 태건을 뛰어넘어 이지성에게로 향했다.

“이지성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끄으윽. 좀 빨리 오지!”

“이 자식이, 나가서 보자. 끄응!”

터엉!

황대산은 대충 식은 난간을 우악스런 힘으로 내던져버렸다.

그 사이 유중헌은 태건 옆에 들것을 내렸다.

“태건아, 요구조자…….”

휙휙.

말을 끝까지 못한 채 다급히 손짓했다.

누가 봐도, 어떻게 봐도 들것에 올리란 재촉이었다.

태건은 적시에 나타난 그들이 눈물 핑 돌도록 반가웠다.

“선배들!”

“끄응. 야, 빨리 안 비켜!”

뒤에서 오광휘 단장이 버럭 소리쳤다.

태건은 단원들이 나타난 순간 모든 위화감에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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