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이제야 모두가 한 자리에 모였다.
더는 생각할 것도, 걱정할 것도 없었다.
그리고 이 순간 완벽히 느꼈다.
-내 등을 맡길 수 있는 파트너들.
그들은 바로 이들, 특수소방단 밖에 없었다.
티끌만한 여유를 쥐어짠 태건이 오광휘 단장에게 반발했다.
“요구조자부터. 버터요, 버텨!”
“끄응!”
오광휘 단장은 뭐라고 하지도 못하고 인상만 푹푹 찡그렸다.
곧 요구조자가 들것에 실렸다.
방열천 안에 푹 쌓인 요구조자는 다행히 큰 충격을 받지 않았다.
“쉬익, 쉬이익.”
숨소리가 그대로 이어졌다.
악화 되지 않았을 뿐, 생명이 위독한 상황은 변함이 없었다.
태건과 유중헌이 들것을 앞뒤로 들었다.
처억!
그들 앞에 고수현이 소화용수를 뿌리며 최소한의 길을 열었다.
촤아악!
그리고 뒤에는 황대산이 이지성을 들쳐 업고 있었다.
끄응!
이지성은 당연히 불만이었다.
“내려 달라니까, 좀.”
“닥쳐. 이 미친놈아!”
황대산이 일축해 버렸다.
그리고 그 옆에 이지성의 장비를 오광휘 단장이 들고 있었다.
“선두, 시간 없다. 서둘러!”
가장 뒤에서 모두를 보챘다.
모든 진형이 갖춰진 그때였다.
태건이 호흡기 커버가 들썩일 정도로 크게 외쳤다.
“이제 제발 나갑시다!”
“가자!”
촤아악!
고수현이 물을 쏘며 앞장서 길을 열고, 모두가 그 뒤를 따랐다.
같은 시각.
건물 밖에서는 여전히 불과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몇 시간 동안 제어되지 않는 불길에 소방관들의 속도 들끓고 있었다.
오가는 무전소리가 날카로워져 있었다.
-띠릭. 젠장, 부숴버리면 차라리 편할 텐데!
-띠릭. 라텔 녀석들, 아직이야? 왜 아직까지 나오지 않는 거야!
-띠릭. 나머지는 다 나온 거 확인했지!
무전이 울리는 어느 장소엔 수십 명의 소방관들이 철푸덕 주저앉아 있었다.
방화복에 불과 맞서 싸운 흔적이 가득했다.
방금 현장에서 나온 진압조와 구조대원들이었다.
진압조장이 질렸단 얼굴로 말했다.
“라텔 녀석들 대단해. 아주 질리게 대단해.”
“실종 대원을 응급처치 하자마자 인계하고, 바로 달려갔잖아.”
“우리도 요구조자 찾았단 소리 듣고야 철수했지만, 그 녀석들은 그렇게 뛰고 또 뛰다니 대단해.”
절레절레.
모두 고개를 저으면서도 진심어린 감탄을 보였다.
그러던 중 누군가 물었다.
“그런데 지금 나오고 있는 거 맞습니까?”
“……그러게. 왜 소식이 없지?”
“설마, 이 녀석들……. 아니야, 아닐 거야.”
감탄이 우려와 걱정으로 순식간에 돌변했다.
꿀꺽.
건물을 바라보며 침을 삼키기도 했다.
여차하면 또 들어가야 할 터였다.
두려움이 없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도 모두 방화헬멧을 붙들었다.
꾸욱.
“1분, 딱 1분만 기다린다.”
끄덕.
소방관들 모두 비장한 눈빛으로 자신을 가다듬었다.
바로 그때였다.
촤아악!
건물 안쪽에서 한 줄기 소방용수가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우르르.
특수소방단이 한데 뭉쳐 뛰어나오며 소리쳤다.
“구급대!”
“구급차!”
“빨리!”
등장부터 요란했던 특수소방단은 마지막까지 현장을 들썩이게 했다.
빠져나왔다고 끝이 아니다.
요구조자의 생명 유지가 관건이다.
모든 구조작전의 성패는 요구자가 기준이었다.
“옆으로!”
“방열천 열어봐!”
차자작!
다들 다급히 열기의 범위 밖으로 움직였다.
같은 시간.
대기 중인 구급대가 저쪽에서 다급히 다가오고 있었다.
“요구조자부터!”
“구급차 뒤로 빽!”
“보호자들에게 알려!”
우르르.
뛰어오고, 손짓하고.
기다린 요구조자의 등장이라 마음 급하게 움직였다.
구급대는 곧 도착할 거다.
그 시간은 짧다 못해 찰나일 터였다.
그 순간도 특수소방단은 기다리지 않고 방열천을 걷었다.
촤악!
“아이 상태는!”
“숨 쉬는지부터 확인해!”
가장 긴장감 가득한 분위기로 외쳤다.
동시에 자신의 방화헬멧과 방화두건을 벗어 내던졌다.
주르륵!
땀이 냇물처럼 흘렀지만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모두의 시선은 오롯이 아이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얘!’
‘숨은?’
콩닥콩닥.
폭주하는 심장을 억누르며 눈을 모았다.
그때였다.
“……시익.”
아이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모두의 얼굴에 울컥한 격정이 타올랐다.
“살았어, 살았다!”
“좋아!”
“아자자자!”
꽈악, 터덕!
과격한 포효와 함께 기쁨을 표현했다.
그때 구급대가 도착했다.
드르릉.
“스트레쳐카 왔습니다!”
그러나.
“와아!”
기뻐하느라 듣지 못했다.
그 모습에 오광휘 단장이 울컥 단원들에게 소리쳤다.
“짜식들아, 니들끼리 기뻐하면 끝이냐!”
“아차차. 서둘러요. 어서!”
일순간 돌변한 특수소방단원들이 구급대원들을 재촉했다.
이내 구급차가 급가속하며 떠나갔다.
부아앙!
그 사이 태건은 구급대장에게 아이 상태를 설명했다.
“혈압, 맥박, 그리고 호흡수는…….”
“음!”
묵직한 탄성과 함께 구급대장은 휴대폰을 들었다.
“병원이죠. 저 구급대장입니다. 지금 요구조자가 현장에서 출발했고, 현재 바이탈이…….”
구급대장이 빠르게 아이 상태를 병원에 통보했다.
그의 통화가 이어지던 중이었다.
태건이 이지성을 바라봤다.
이어서 오광휘 단장에게 사인을 보냈다.
‘지성 선배 부상도 상당합니다.’
‘보내버려.’
휙휙.
목을 자르는 제스쳐를 해보였다.
너무도 과격한 표현이었지만 현장에서 밀어내란 ‘아웃’ 사인이다.
눈짓으로 상의를 끝낸 태건이 다시 구급대장과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그의 통화가 끝나기 전에 잠시 끼어들었다.
“대장님, 병원에 응급환자 한 명 더 보낸다고 전해주십시오.”
그 소리에 구급대장이 얼른 휴대폰을 손으로 막으며 펄쩍 뛰었다.
텁!
“누구야. 누가 또 있어?”
“저희 대원이요.”
태건은 손을 들어 이지성을 가리켰다.
그는 황대산이 부축하며 천막으로 향하고 있었다.
절뚝, 절뚝,
걸음걸이가 부자연스러웠고, 문제가 되는 다리의 방화복이 상당히 녹아 있었다.
이제 발견한 구급대장이 구급대원들에게 다급히 손짓하며 소리쳤다.
“아니, 저, 저! ……뭐해. 빨리 구급차 끌고 와서 실어버려!”
“알겠습니다!”
우르르.
구급대원들이 이번엔 이지성에게 몰려갔다.
한 번에 몰려간 그들은 곧장 이지성을 납치하듯 데려갔다.
자신에게 닥친 상황에 당황한 이지성이 소리치며 발악했다.
“내가 왜 응급이야, 당장 내려놓지 못해!”
“단장님 지시사항입니다.”
“뭐, 단장님! 엇……. 강태건이 네 짓이구나. 너 이 자식!”
우르르.
이지성이 태건을 손짓하며 분개했다.
시선을 마주친 태건이 한 손을 흔들었다.
“선배, 바이.”
“야, 너!”
“장기 휴가네요. 부럽네.”
“뭐, 이 자식…….”
터엉!
이지성이 말을 끝맺기 전에 구급차 문이 닫혔다.
그리고.
삐용삐용.
곧 그 구급차도 현장 밖으로 사라졌다.
태건은 그제야 주변을 둘러봤다.
절규하던 부모를 찾다가 아차했다.
‘어디……. 아, 갔겠네.’
떠나도 진즉 병원으로 떠났을 거다.
그들은 아직 기쁨을 논할 단계는 아닐 터였다.
그때 오광휘 단장이 다가왔다.
태건의 행동으로 눈치 챈 듯 선수 쳐 말했다.
“우리까지 조바심 내지 말자. 할 수 있는 건 다 했어.”
“네. 의료진들이 분명 살려줄 겁니다.”
“당연히 그렇겠지. 그런 의미에서 우리도 잠깐 쉬자.”
“그래야죠. 고생하셨습니다.”
“자식, 너도.”
터억.
태건과 오광휘 단장은 지휘부가 설치한 천막으로 향했다.
어깨동무를 한 모습이 너무도 다정해 보였다.
그 뒤에 황대산과 유중헌, 고수현도 서로를 향해 싱긋 미소를 짓고 있었다.
이내 특수소방단 모두가 천막에 들어섰다.
그 속에 들어서자 모든 긴장이 일순간 풀렸다.
“하아아.”
털썩. 툭!
모두 다리가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이어서 엄청난 갈증이 몰아쳐왔다.
탈수 증상 정도가 아니라 온몸에 수분이 다 빠져나간 거 같았다.
농담이 아니라 속옷까지 모두 땀범벅이었다.
차자작!
거칠게 방화복을 벗으며 소리쳤다.
“물, 물 좀!”
”여기도요!“
그 외침과 동시에 여기저기서 2리터 생수병이 날아왔다.
휘휙!
“받아요!”
“여기요!”
기다린 물의 등장에 모두 손을 뻗어 낚아챘다.
그리고.
벌컥벌컥, 콸콸콸!
입에 쏟아 넣고 머리에 뿌려 시원함을 만끽했다.
그때 갑자기 황대산이 급발진했다.
“에이씨, 감질나게!”
터억!
그는 정수기용 20리터 생수통을 그대로 들어 그대로 들이켰다.
콰과과!
마시는 양보다 온몸에 쏟아붓는 물이 더 많았다.
다들 그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오버도 정도껏 해야지.”
“대산 선배는 스케일이 확실히 다릅니다.”
“아무렇게나 하라 그래요.”
뭐라고 말하기도 귀찮아했다.
그 정도로 지쳐 있었다.
그때 노원소방서장이 다가왔다.
“니들만 있냐, 조용히 좀 해라.”
보자마자 타박부터 했다.
갑작스러운 된서리에 다들 멈칫했다.
“…….”
가만히 보던 노원소방서장이 천천히 돌아섰다.
그러면서 나지막이 말을 흘렸다.
“돌아와 줘서 고맙다.”
척. 척.
그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떠나갔다.
그 속에 동료애가 듬뿍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