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노원소방서장뿐이 아니었다.
현장에서 수십 년 이상 뛰어다닌 베테랑 소방관들이 앞을 다툴 정도로 몰려왔다.
그들은 한참 어린 특수소방단을 격찬했다.
“고생들 했다.”
“특수소방단이 왜 필요한지 알겠어.”
“이 자식들, 훌륭한 자식들.”
뜨끈한 컵라면도 준비해줬다.
“이럴 땐 속을 채워야 해. 얼른 먹어.”
“탈수가 심하니까 짭짤한 걸로 먹어야 좋지.”
“그래서 라면이 최고라니까. 어서 먹어.”
턱, 턱.
거부할 수 없도록 아예 나무젓가락과 함께 쥐어줬다.
사상자 제로.
그것도 대응 2단계 상황이다.
현재까지 아무런 인명피해가 없단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성과였다. 이제 화재진압에서 큰 문제만 없으면 성공적인 소방 현장으로 기억될 거다.
그에 가장 크게 기여한 게 특수소방단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베푸는 호의는 최고였다.
특수소방단도 호의를 겸허히 받아들었다.
“조언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후르륵.
“어후흐. 뜨거운 건 질색인데 라면은 확실히 달라.”
“속이 차고 뜨끈해지니까 확실히 좋네요.”
“이래서 라면이야.”
인사 후 감탄을 진하게 내보였다.
그때였다.
-우와아아!
밖에서 사방에서 열화와 같은 함성이 울려 퍼졌다.
라면을 먹던 단원들이 멈칫했다.
그 중 태건이 의아해 했다.
“나온 지 10분은 된 거 같은데.”
“이제 기뻐하는 건 뭐지?”
다른 단원들도 갸웃거렸다.
그런 그들에게 어떤 소방관이 휴대폰을 불쑥 내밀며 말했다.
“이런 상황이라서 그럴 겁니다.”
“…….”
스윽.
모두 휴대폰 액정에 시선을 모았다.
뉴스 화면이었고, 생방송이란 표시가 선명히 자리해 있었다.
그리고 특수소방단이 요구조자와 탈출한 순간이 비치는 중이었다.
화면 아래에 굵은 자막이 떠올라 있었다.
-특수소방단 마지막 요구조자 구조!
-대응 2단계 현장 최초 사망자 제로!
그걸 본 태건이 먼저 미간을 모았다.
“언제 찍었답니까?”
“그러게 말이야. 누가 휴대폰으로 찍어서 제보했나?”
우물우물.
고수현이 라면을 씹으며 의아함에 동조했다.
휴대폰을 내민 소방관이 바로 답해줬다.
“지금 여러 방송사들에서 생중계 중입니다.”
“그렇습니까?”
“몇몇 기자는 방화복 입고 현장에 들어가기까지 했는데요.”
“그런 일이? 우, 우리는 왜 몰랐지?”
전혀 눈치 채지 못해 머쓱해 했다.
그때 황대산이 불만 섞인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그런데 왜 화면은 아까 거 내보내면서 생중계라고 뻥 치고 있는 거야!”
“대산 선배. 이건 편집해서 보여주는 그, 그런 장면이에요.”
“그럼 생중계가 아니지!”
유중헌이 설명했지만 황대산은 큰소리부터 쳤다.
그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천막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르르.
그들 중 몇몇은 방송 카메라를 어깨에 얹은 모습이었다.
거기에 이강찬 기자가 함께였다.
그는 넉살 좋은 얼굴로 황대산 말에 답해줬다.
“황 단원도 참. 저희가 최소한 편집하고 자막은 넣을 시간을 주셔야 할 거 아닙니까.”
“어엇, 이 기자님!”
“다른 기자 분들도.”
얼마 전 우면 훈련장으로 찾아온 기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다들 놀라는 사이였다.
이강찬 기자와 다른 기자들 표정이 급격히 구겨졌다.
“그 고생하고 온 분들에게 컵라면이라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이건 아니지. 이거 찍어. 얼른 포커스 잡아!”
“시청자들이 알아야 해. 해도 진짜 너무하네!”
처저적!
모두 비장한 얼굴로 방송 카메라를 들어올렸다.
이강찬 기자는 아예 마이크를 들고 리포팅까지 했다.
“저는 지금 특수소방단을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사망자 제로란 업적을 이룬 이들에게 주어진 건 고작 컵라면이었습니다.”
그뿐이 아니라 다른 기자들도 감정 실린 리포팅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여러 번 문제 사항으로 지적된 부분입니다. 국민들의 원성이 높은데도 아직 개선되지 않은 게 현장 소방관들의 현실입니다.”
“소방예산의 사용처를 낱낱이 파헤쳐 문제 원인을 찾아야 합니다.”
“일선에서 생명을 담보로 불을 끄고 사람을 구하는 소방관들, 그 대가에 대해 우리 모두 깊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사사삭.
모든 기자들이 짠 듯이 비슷한 내용으로 리포팅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바로 각 방송사에 전화했다.
“어, 지금 영상 보내는 거 자막 완전 쎄게 때려!”
“내 목소리만 넣고, 소방관들이 라면 먹는 걸 집중적으로 송출해!”
“편집 확실히 해라. 이걸 사람들이 알아야 한단 말이야!”
냉정해야할 그들 얼굴에 흥분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의 돌발행동에 놀란 건 오히려 특수소방단이었다.
“야, 이거 뭐냐.”
“졸지에 거지 되겠는데요.”
“그래서 먹는 게 아닌데…….”
“누가 좀 말려봐!”
모든 단원들이 당황했다.
자칫 오해가 진실로 굳어질지도 몰랐다.
태건도 그런 건 싫었다.
불쑥.
재빨리 일어나 기자들을 주목시켰다.
“저기요!”
그 한 마디에 기자들이 우르르 다가와 마이크를 코앞까지 내밀었다.
“지금 특수소방단 강태건 단원이 발언하겠습니다.”
“당사자의 인터뷰입니다.”
“강 단원 하고픈 말 모두 하셔도 됩니다. 절대 안 자르겠습니다!”
화르륵.
기자들의 두 눈이 불처럼 타올랐다.
태건은 기자들이 열정을 보여줘 고마운 마음이었다.
그러나 오해는 사양이었다.
태건은 일부러 들고 있는 컵라면을 내보이며 말했다.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컵라면 밖에 없어서 먹는 거 아닙니다.”
“…….”
“솔직히 탈수가 심해서 입맛이 없습니다. 염분을 보충하는 데에 제일 좋아서 컵라면을 먹는 겁니다.”
“다른 음식으로 대체해도 되지 않습니까?”
이강찬 기자가 카메라 앵글 밖에서 손짓하며 질문했다.
슥슥.
‘뒤는 걱정 말고 마음껏 질러라.’
그런 의미의 제스쳐였다.
그래서 태건은 솔직하게 말했다.
“컵라면이 간편하게 먹기 좋고, 무엇보다……. 맛있습니다.”
“네?”
“라면이 입맛 당기는 건 최고잖습니까.”
태건이 달래듯 말하자 기자들도 살짝 동요했다.
“라면만 한 게 없긴 없지.”
“밥이 안 들어갈 상황에서도 라면은 잘 먹히긴 하니까.”
그때 슬쩍 오광휘 단장이 다가와 너스레를 떨었다.
“예전에는 컵라면 밖에 없긴 했습니다만, 지금은 엄청 좋아졌습니다.”
“에, 뭐…….”
“그리고 지금 저희가 라면 먹는 게 포인트가 아닌 거 같은데요.”
슬쩍 집어주자 기자들 표정이 싹 돌변했다.
“그러네요. 그럼 현장 상황에 대한 설명을 좀…….”
“요구조자 발견까지 과정과 발견 당시 심정을…….”
기자들의 인터뷰 내용이 급선회했다.
그 부분은 태건이 양해를 구했다.
“화재가 아직 진행 중인데 이런 대화는 이른 거 같습니다.”
“음.”
“다른 자리를 마련해 주신다면 얼마든지요. 그런데 지금은 여기까지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정중하면서도 단호하게 밀어냈다.
기자들도 안면이 있어 마구잡이로 밀어붙이지 않았다.
“뭐 그럼 적당히 내보낼게요.”
“편집해야 되니까 10분 후에 송출될 겁니다.”
“그럼 좀 쉬세요. 저희는 이만.”
스윽.
기자들은 수더분하게 인사하4고 천막을 나섰다.
기자들이 저만치 멀어지고야 황대산이 다가왔다.
그의 손엔 새로운 컵라면이 들려 있었다.
“라면 먹다 체할 뻔했어. 그래도 억지로 몰고 가진 않아 좋네.”
“다행이죠……. 그런데 단장님. 저희는 이제 어떻게 합니까?”
태건이 묻자 오광휘 단장이 뚱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러니까 또 나보고 지휘소 가서 상황파악하고 오라는 거잖아.”
“네? 그게 아니라…….”
“됐그덩. 네가 그러지 않아도 갈 거거덩.”
휙.
제멋대로 해석한 오광휘 단장은 시큰둥하게 몸을 돌렸다.
태건은 머리가 아팠다.
“차라리 불이랑 싸우는 게 속 편하지.”
“오, 강태건이. 그럼 우리 남자답게 한 판 더?”
“대산 선배까지 왜 그러십니까. 지금 이 몰골로 들어갔다가는 100퍼센트 실려 나옵니다. 우리도 좀 쉬어야 할 거 아닙니까.”
털썩.
태건은 툴툴거리며 다시 앉았다.
그런 태건의 손엔 아직 컵라면이 들려 있었다.
다시 열어보자 어느새 퉁퉁 불어 있었다.
“에이씨, 안 먹어.”
툭.
신경질 내며 밀어버렸다.
그런 겉모습과 달리 속은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망자 제로라고.’
처음 들었을 땐 기뻤다.
그 환희가 지난 지금은 가슴 속에 무겁게 감돌았다.
꾸욱.
태건은 가슴에 손을 얹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후읍.”
오랜만에, 정말 오랜만에 폐 속에 공기가 꽉 찬 느낌이었다.
* * *
한편.
사람들은 TV 화면에 온통 집중하고 있었다.
TV 중계 화면 자막이 계속 최신 정보를 업데이트해 줬다.
-부상자 집계현황, 요구조자 5명, 특수소방단 1명, 구조대 2명, 진압조 7명.
-전 소방대원 투입. 화재 진압에 탄력이 붙어.
눈이 즐겁고 또 기쁜 소식들이었다.
그러던 중 새로운 장면이 송출됐다.
기자들이 천막으로 찾아간 장면이었다.
특수소방단은 땀으로 가득했고, 그들이 입은 방화복은 엉망진창이었다.
애잔함이 가득한 모습들이다.
그런 그들의 손에 컵라면이 하나씩 들려 있었다.
그걸 본 순간 시청하던 모두가 분개했다.
“이런 썩을!”
“저게 그 고생을 한 사람들에게 먹일 음식이냐!”
“저저, 윗대가리들이 문제야!”
TV화면을 부술 듯한 분노가 들끓었다.
그때 태건의 인터뷰 장면이 이어서 송출됐다.
-저희가 먹을 게 없는 게 아니라…….
-(특수소방단 강태건 단원)
-요즘은 부식이 좋아져서…….
-(특수소방단 오광휘 단장)
뒤따라 등장한 오광휘 단장의 인터뷰도 같이 방송됐다.
모두가 똑똑히 보고 분명히 들었다.
그러나 모든 말은 해석하기 나름이었다.
사람들은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이거 분명히 누가 저렇게 말하라고 시킨 거야!”
“라면이 좋다니, 누굴 바보로 아나!”
“이거 이럴 때가 아니지. 그 고생을 하고 저건 아니지!”
TV를 시청하던 사람들이 열을 푹푹 내쏘았다.
급기야 소방청에 항의 전화를 하기에 이르렀다.
“당신들 말이야. 방송 봤어? 컵라면 던져주고 땡치는 게 말이 돼!”
“입단속 시키지 말고 똑바로 하란 말입니다!”
그저 항의 전화로 그치지 않았다.
한 발자국 더 앞으로 나아간 이들이 있었다.
“특수소방단 후원 어떻게 합니까!”
“그 라면 값 내가 준다고!”
“당장 후원계좌 열어요. 당신들이 못 먹이면 내가 먹일 테니까!”
항의 전화가 폭주해 소방청 생활안전과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