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151)화 (150/320)

151화

생활안전과장이 다급히 우석진 정책과장에게 항의 전화했다.

“우 과장, 빨리 후원계좌 열어. 우리 애들 욕을 하도 먹어서 불사신 될 지경이야!”

전화기를 내린 우석진 정책과장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이런 항의라면 얼마든지 환영이지.”

그리고 곧 후원계좌를 열었다.

얼마 후.

각 방송사 화면에 후원계좌 자막이 새겨졌다.

“떴다!”

“이건 보내야지!”

“내가 술 한 잔 안 마시고 만다!”

“아무리 그래도 컵라면이 웬 말이냐고!”

각각의 이유로 후원금을 투척했다.

차르르릉.

전국에서 모인 성금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  *  *

반면.

특수소방단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했다.

휴식을 마친 그들은 다시 장비를 갖추고 화재 진압에 투입된 상태였다.

요구조자를 구했다고 끝이 아니다.

상황 종료는 모든 불을 지운 후에야 공표할 수 있는 말이었다.

그 거대한 화재 현장에 특이한 점이 하나 생겨났다.

현장 곳곳을 누비는 헬리캠이 떠오른 거였다.

투두두!

“크크크. 이거 끝내주네.”

조종사의 웃음이 어딘지 모르게 음침했다.

그렇듯 그 조종사는 유중헌이었다.

그 옆에 오광휘 단장이 함께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무전기를 십분 활용해 현장을 전체적으로 지휘하고 있었다.

“우측 물대포 2층에 집중!”

“남쪽은 최대한 넓게 방수하세요!”

“북쪽 뭐합니까. 아파트에 불똥 날아가면 끝입니다. 어서 막아요!”

그러던 오광휘 단장이 이어서 무전을 눌렀다.

“막내라텔, 지하실 어떻게 됐어!”

같은 시각.

태건의 어깨에서 오광휘 단장의 무전이 울렸다.

-띠릭 막내라텔, 지하실 어떻게 됐어!

그러나 태건은 당장 무전을 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화르륵.

눈앞에 불길이 가득했다.

“크윽, 한가한 줄 아시나!”

촤아악!

굵직한 소방호스 붙들고 불을 제압하는 중이었다.

그 옆에 황대산과 고수현이 함께였다.

“단장님은 한가하시겠지!”

“그래도 지휘하시느라 머리 아프실 거 같은데요. 차앗!”

콰아아!

물길을 밀어내면서 짧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확실히 요구조자가 있고, 없고에 긴장도가 많이 달라졌다.

그 속에 진입한 건 이들 뿐이 아니다.

많은 소방관들이 함께였다.

그 인원이 수십 명으로 모두 지역 소방관들이었다.

그들이 라텔보다 더 적극성을 보였다.

“우리가 앞으로!”

“라텔은 뒤에서 쉬엄쉬엄 따라와요!”

“그쯤 고생했음 우리한테 맡겨도 됩니다!”

촤아악, 타다닥!

지역 소방관들은 무서울 정도로 불길을 밀어내며 진입했다.

그런 그들 덕분에 불길이 빠르게 멀어졌다.

그제야 상대적으로 태건은 무전을 할 여유가 생겼다.

“단장님, 현 위치 지하 하차장에서 건물로 30미터 안쪽입니다.”

-띠릭. 계속 밀어붙여. 진압조가 비상계단 공략 중이니까 곧 그쪽은 불길 잡힐 거야.

“수신 양호. 빅라텔, 핸섬라텔과 함께 내부 수색도 한 번 더 진행하겠습니다.

태건은 무전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황대산과 고수현에게 말했다.

“혹시 모르니까 한 번 더 둘러보면서 이동하시죠.”

“무슨 소리. 사내대장부가 앞서지 못할망정 뒤를 따르다니!”

황대산이 발끈했다.

그런 그를 고수현이 나무랐다.

“막내 말뜻 모르시겠습니까. 우리 다 같이 ‘더 라스트’가 되자는 건데!”

“오오오. 현장 속 최후의 소방관 말이지. 그건 사내다운 발상이지!”

“그게 어떤 영광인지 우리도 맛 좀 봅시다!”

“그거 아주 훌륭한 판단이야. 고수현이, 가자!”

차자작!

황대산과 고수현은 곧바로 화재가 진압된 장소를 샅샅이 살피기 시작했다.

그 정신없는 모습에 태건이 가늘게 미소 지었다.

“더 라스트든 더 라면이든, 다 하세요.”

조금 전 위기의 순간을 단원들 덕분에 넘겼다.

그런 오늘인데 자신의 닉네임이야 어떻게 활용돼도 좋았다.

물론 태건이 순순히 양보할리는 없었다.

“다 가져가도 좋은데, 곱게 양보하진 않을 겁니다.”

차자작!

읊조린 태건도 곧 그들과 함께 움직였다.

저녁 무렵.

길고 긴 불과의 싸움이 끝을 향해 가고 있었다.

몽글몽글.

불길이 가득했던 폐점한 대형마트는 하얀 수증기로 가득했다.

그리고 공언한 대로 태건과 특수소방단이 마지막으로 현장을 빠져나왔다.

중간에 합류한 오광휘 단장과 유중헌도 함께였다.

곧 그들이 하얀 수증기로 가득한 건물 속에서 나타났다.

방화복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처억!

길게 늘어선 그들의 모습에서 늠름하고 듬직함이 물씬 느껴졌다.

그때 오광휘 단장이 무전기로 모두에게 공표했다.

“화재진압 끝, 상황 종료.”

띠릭, 띠릭.

그의 무전이 현장을 둘러싼 수많은 무전기에서 동시에 울렸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모든 소방관들이 방화헬멧을 벗었다.

그리고 미소를 한가득 머금으며 서로를 얼싸안고 환호했다.

“현장 종료!”

“고생하셨습니다.”

“수고했어. 무사해서 다행이야!”

턱턱턱.

방화장갑을 낀 투박한 손으로 박수를 치기도 했다.

그때까지 지켜보던 주민들도 분위기를 파악하고 축하했다.

“휘이익, 소방관님들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덕분에 안심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감사와 축하, 칭찬의 소리들이 끝없이 펼쳐졌다.

삶의 터전에 대한 위협이 사라져 안도감이 얼굴에 가득했다.

소방관들은 주민들의 환호를 들으며 철수 준비를 시작했다.

“호스들 챙겨라!”

“딴 집이랑 안 섞이게 잘 분류해!”

웅성웅성.

엄청난 투입 인원만큼 철수에도 시간이 많이 필요해 보였다.

*  *  *

그 사이 특수소방단도 출동장비를 챙기러 천막으로 향했다.

천막 안에는 우석진 정책과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스윽.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진한 미소로 반겼다.

“고생들 했어.”

“일동 차렷, 라텔!”

처억!

경례로 예의를 대신했다.

마주 경례하는 우석진 정책과장의 미소는 더없이 환했다.

의외로 특수소방단은 그의 등장을 놀라워하지 않았다.

그에 대해 태건이 먼저 언급했다.

“병원 들렀다가 오신다더니, 어떻게 됐습니까?”

“우선 요구조자들은 현재 집중치료 중이야.”

“음.”

“그래. 예상했겠지. 다행인 건 고비를 넘겼어. 완전히 안도할 정도는 아니라지만 회복에 더 무게를 둔다고 하더군.”

요구조자들 소식에 다를 귀를 쫑긋거렸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네요.”

그 중 태건이 다시금 넌지시 질문을 건넸다.

“마지막에 구한 아이도 괜찮답니까?”

“이름도 모르겠군. 남진수 군이야.”

“아, 남진수요.”

“진수 군은 서울로 다시 이송했어. 살아있단 건 확인했는데, 경과는 그쪽에서도 아직 장담하지 못한다고 하는 모양이야.”

우석진 정책과장이 소식을 알려주자 태건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답했다.

“그렇군요. 잘 회복됐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어야지. 그보다…….”

“말씀하십시오.”

“끝까지 남아 있었어.”

중간에 철수해도 됐을 거란 뉘앙스였다.

그에 대해 태건은 좌우 단원들을 가볍게 눈짓하며 답했다.

“오늘은 모두가 ‘더 라스트’였습니다.”

“후후. ‘더 라면’이 아니라 다행이야. 그때 건넨 오 단장의 농담이 순간 진담인 줄 알았지 뭔가.”

“무슨 말씀이십니까?”

태건이 의아해하다 슬쩍 흘겨봤다.

오광휘 단장이 그 시선에 펄쩍 뛰었다.

“제가 언제 또 라면이라고 그랬다고 그러십니까……. 이번엔 나 아니야. 진짜 아니야.”

억울함을 두 손을 휘저어 강하게 표했다.

그때 우석진 정책과장이 휴대폰을 보여줬다.

후원금 현황이 실시간으로 반영된 화면이었다.

그걸 본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아니, 갑자기 후원이라니요?”

“이게 무슨 일입니까?”

우석진 정책과장이 오히려 의아해했다.

“전국에 생중계됐는데, 이렇게 될 걸 전혀 예상하지 못했나?”

“예상이라니요. 저희는 촬영하는 걸 중간에 알았습니다.”

“그랬군. 아마 이걸 보면 짐작이 될 거야.”

톡톡, 스윽.

우석진 정책과장이 다른 화면을 보여줬다.

후원자들이 짤막하게 응원메시지를 적은 공간이었다.

이 순간에도 새로운 메시지가 계속 생겨났다.

그 메시지의 대부분이 비슷한 내용이란 점이 특이했다.

-라면 값 보냅니다. 아주 비싼 라면으로 사드세요!

-라면 대신 더 좋은 걸로 드세요.

-방화복이 그을린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늘 감사합니다. 그래도 라면은 너무 자주 드시지 마세요.

메시지들을 쭉 훑어보던 특수소방단이 당황했다.

“감사한데, 정말 감사한데, 왜 다들 라면……. 설마?”

휘휙!

모두의 시선이 일순간 태건에게 짐작됐다.

거기에 오광휘 단장이 한 소리 했다.

“분명 미국의 누군가가 알려준 거야. 네가 ‘더 라면’이라고 말이야.”

“아, 좀!”

“그럼 뭔데, 이게 왜……. 아까 그 인터뷰 때문인가?”

오광휘 단장이 억지를 부리려다가 문득 생각난 걸 말했다.

태건도 보자마자 그때가 떠올랐었다.

“저도 그쪽이 의심되는데요.”

“뭐야. 우리가 분명히 아니라고 했잖아!”

오광휘 단장은 억울함을 강하게 표했다.

우석진 정책과장이 눈앞에 있었다. 충분히 지원받는 상황이라 오해를 피하고 싶어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이거 참.’

태건도 괜스레 시선이 갔다.

정작 우석진 정책과장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인터뷰 다 봤어. 기자들이 두 사람의 변호까지 그대로 내보냈더군.”

“그래도 이러시면 곤란한데.”

“곤란하지 않아. 차장님께 보고드렸더니 크게 웃으셨어. 그런 오해는 얼마든지 환영이라면서 말이야.”

김을영 소방차장까지 보고가 됐단 말에 라텔이 더 놀랐다.

“헤엑, 거기까지?”

“어후. 웃으셨다는데, 그 웃음이 어떤 웃음일지.”

“환영하셨다는데. 그게 이승에서 환영인지, 저승에서 환영인지 어떻게 알아.”

난처하고 난감한 표정으로 가득했다.

그런 그들에게 우석진 정책과장이 다시금 확실히 해명해줬다.

아니, 확실히 해명될 무언가를 건넸다.

사락.

“이거 차장님이 포상하신 거야.”

“오모나.”

텁!

오광휘 단장이 입까지 가려가며 놀라했다.

소방청 2인자의 포상이라니.

한 번도 상상해보지 않은 모양이었다.

다른 단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주춤하는 그때, 태건이 넉살 좋게 봉투를 받았다.

“다 같이 고기 한 번 먹겠습니다.”

“역시 봉투도 받아본 사람이 잘 받아.”

“신경 써 주시는 건데 돌려보낼 순 없지요.”

빙그레.

태건이 미소를 더해 분위기를 이끌었다.

다들 그제야 놀람이 조금 지워지는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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