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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사인 (152)화 (151/320)

152화

이 시간이 언제까지 이어질 순 없는 법이었다.

우석진 정책과장이 가볍게 둘러보며 말했다.

“그만 복귀해서 쉬어. 다음 출동까지 돌아가면서 한 명씩 외출도 하고 그렇게 해.”

“알겠습니다.”

“그리고 후원금 사용에 대해서도 머리를 맞대 보도록. 이상.”

우석진 정책과장이 말을 마쳤다.

그때 태건이 가볍게 손을 들어 물었다.

“저 한 가지만, 이지성 단원은 어떻게 됐습니까?”

“근처 종합병원에서 처치를 받고, 우면 안전센터 인근 병원으로 이송했어. 어딘지는 문자로 보내주지.”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태건을 시작으로 모두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우석진 정책과장이 가늘게 미소 지었다.

“많이 가까워진 모양이야.”

“저희요? 웬수죠.”

빙긋.

태건이 웃으며 답했다.

그 순간 모두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여 동의해 보였다.

끄덕끄덕.

그런 표현과 달리 시선이 마주하자 잔잔하게 미소 지었다.

우석진 정책과장의 눈썰미가 정확했다.

라텔은 출동이 거듭될수록 서로 알게 모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잠시 후.

특수소방단이 현장을 떠났다.

그리고 곧 경기북부소방재난본부 옥상에 헬기가 떠올랐다.

투다다!

헬기장엔 몇몇 소방관들이 손을 흔들며 배웅했다.

내려다 본 태건이 머쓱해 했다.

“과장님들하고 팀장님들이 배웅해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본부장님이랑 차 한 잔 마신 건 어떻고.”

“다들 저희만 고생했다고 하시는 게 쑥스럽네요.”

한마디씩 하자 유중헌이 휙 돌아보며 따갑게 소리쳤다.

“그 정도 했잖아. 그래도 계면쩍으면 다음 출동에서도 화끈하게 밀어붙이면 되지!”

“오, 유중헌이. 간만에 옳은 소리 했어!”

“대산 선배, 헬기 뒤집어 버릴까. 앙!”

둘의 투덕거림이 바로 시작됐다.

그때 오광휘 단장이 눈빛을 굳히며 외쳤다.

“이 진상들아, 조용히 해봐!”

“…….”

“후원금 사용처 말이다. 후딱 정해야지 않겠냐. 의견 있는 사람?”

“…….”

일순간 다들 입을 다물었다.

딱히 생각나는 게 없는 모양이다.

그때 유중헌이 헬기를 조종하다 불쑥 말했다.

“신형 소방헬기 삽시다.”

“그거 하나에 죄다 투자하긴 좀 그렇잖아요.”

고수현이 반박하자 유중헌이 또 울컥했다.

“뭐가 그래. 막말로 기동력 좋아지고, 적재량 늘어나면 나만 좋아?”

“모두가 좋긴 하겠죠. 그런데 그건 과장님이 좀 기다려 보라고 했잖습니까.”

“그 양반이 언제 해줄 줄 알아.”

유중헌은 아무래도 욕심이 나는 모양이었다.

모두를 위한 욕심이니 과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무언가 부족하단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때 태건이 넌지시 말했다.

“우리만 고생한 게 아닌데, 우리만 뭔가 바라는 게 좀 양심에 찔리긴 하네요.”

“오호. 그래. 그거야. 태건이가 잘 꼬집었어!”

“네?”

“오늘 출동한 소방서하고 안전센터에 최신 소방용품을 싹 돌리는 게 어때?”

스윽.

오광휘 단장이 모두를 둘러보며 다부지게 물었다.

질문이었지만 마음을 단단히 굳힌 모양이었다.

그에 대해 아무도 의견을 달지 않았다.

“그거 좋네요. 장비가 좋아지면 현장에서 활동하기 좋잖습니까.”

“부상 확률도 줄어들 겁니다.”

“역시 단장님다운 화끈하면서도 폭 넓은 계획입니다. 찬성, 완전 찬성!”

의견이 좁혀지자 오광휘 단장이 태건에게 말했다.

“너 미국에 전화해서 장비들 견적 좀 뽑아봐.”

“한국 업체들부터 알아보죠. 요즘 개량하고 개선한 제품들 많다던데요.”

“바로 콜 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성능 차이가 심하지 않으면 국산을 선호합니다. 그동안은 국내에 없는 거라서 주문한 거고요.”

태건은 나름의 소신을 분명히 했다.

그에 대해 오광휘 단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건 정책과장님한테 부탁하면 될 거야.”

“이야. 이젠 단장님이 막 과장님 시켜 먹고 그러네요.”

태건이 던진 농담에 모두가 달려들었다.

“특수소방단 많이 컸네.”

“요즘 단장들은 위아래가 없나봐.”

한목소리로 놀리자 오광휘 단장이 발끈했다.

“이 자식들이!”

“하하하!”

투두두.

복귀하는 헬기 속에 기분 좋은 웃음이 가득했다.

*  *  *

시간이 흘러 밤이 되었다.

복귀한다던 특수소방단은 낯익은 병원에 들어서고 있었다.

세린 병원.

여러모로 인연이 있는 병원이었다.

강남에서 이름 높은 병원이라 규모가 상당했다.

척, 척.

로비에 들어선 모두가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승강기 어디 있는 거야?”

“장례식장 승강기 위치는 기억나는데.”

“지성이를 저 위로 보내지 말고, 잘 좀 찾아봐.”

웅성웅성.

이동하는 중간에도 그들의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저녁시간이라 한가했지만 그래도 환자나 의료진들이 간간이 보였다.

라텔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기동복까지 벗은 지금 옷차림은 사복인 탓이다.

그런데 그건 그들만의 생각이었다.

“저분들……. 맞지. 그렇지!”

“저기요. 혹시 특수소방단 아니세요?”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다가와 슬그머니 물었다.

라텔 모두는 멈칫했다.

“네? 에, 어. 그렇긴 한데…….”

대표로 오광휘 단장이 머뭇머뭇 답했다.

그 순간 환자들과 보호자들이 단번에 목소리를 높였다.

“와아. 특수소방단 떴다!”

“고생하셨어요. 만나서 반가워요.”

“오늘 정말 멋졌어요!”

소리치고 인사하고, 또 손을 붙들고.

마치 연예인이라도 본 거 같이 수선을 떨었다.

그런데 그들이 전부가 아니었다.

멀리서 소식을 듣고 온 사람들이 순식간에 불어났다.

거기엔 의료진들도 있었다.

“이렇게 뵙게 되다니.”

“안 그래도 정형외과에 특수소방단원이 입원했다고 그러던데요.”

“그래서 온 거였네. 의리도 끝내주십니다.”

환영 인사가 오가던 중이었다.

누군가 불쑥 종이와 펜을 내밀었다.

“사인 해주세요!”

“맞다. 사진도 찍어주세요!”

“혹시 소아병동에 방문 계획은 없으신가요?”

반짝 반짝.

여기저기서 기대감을 가득 보였다.

다들 이런 순간이 처음이라 낯설어했다.

“에, 저희는 그냥 병문안을…….”

“이거 어쩌지?”

그렇게 난감해하던 가운데, 유유히 이 순간을 즐기는 단원이 있었다.

바로 고수현이었다.

“사인이라. 이런 순간을 위해 미리미리 준비해 뒀습니다.”

슥슥.

“사진촬영이요. 이쪽으로 오세요. 자자, 김치.”

찰칵.

혼자 바빠했고, 또 즐거워했다.

그런데 혼자 만족하지 않고 단원들을 손짓했다.

“다들 뭘 그렇게 쑥스러워하십니까. 여러분들이 원하시는데요.”

“맞아요. 사인해주세요!”

모여든 사람들이 얼른 동조해 목소리를 높였다.

태건은 오광휘 단장과 선배들에게 말했다.

“동참하시죠.”

“너무 나대는 걸로 보이지 않겠어?”

“물 들어왔을 때 불 꺼야죠.”

“……노 젓는다고 하지 않냐. 하긴 우린 소방관이니까. 에라, 나도 모르겠다!”

고민하던 오광휘 단장은 곧 사람들과 어울렸다.

그 뒤를 이어 황대산도 함께했다.

“어허허. 우리 꼬마신사 분은 아저씨가 목마 태워줄까?”

은근히 즐기기도 했다.

여기 적응 못하는 건 유중헌 밖에 없었다.

“저는, 아니, 그러니까…….”

태건은 어느새 그 속에 함께였다.

“사진이요. 자, 브이.”

“사인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누구보다 자연스럽고 수더분하게 어울렸다.

그 순간마저도 특수소방단 모습엔 각자의 개성이 가득했다.

한 시간 후.

특수소방단은 이제야 병실에 들어설 수 있었다.

2인실인데 이지성의 이름만 적혀 있었다.

그릉.

문을 열고 들어가며 인사부터 했다.

“이지성, 살아있냐?”

“혼자 누워서 쉬니까 세상 편하고 좋지?”

놀리기부터 시작했다.

환자복 입고 누워 있던 이지성이 가만히 바라보며 한 마디 했다.

“병원 시끄럽게, 조용히 좀 들어오지.”

“엥? 우리 온 거 알았어?”

“아주 슈퍼스타들 나셨어.”

이지성의 비비꼬인 대답이 들려왔다.

다들 싱겁게 미소 지었다.

이젠 그런 대답을 들어야 이지성답게 느껴진 탓이다.

병문안 선물을 두려는데 선객들이 상당히 많았다.

오광휘 단장이 놀라워했다.

“너 아는 사람 많나보다?”

“말도 마요. 저도 조금 전부터 쉬고 있으니까.”

“네 싸가지에 지인이 많단 게 더 신기해.”

오광휘 단장은 대놓고 디스했다.

반면 이지성은 뚱하니 바라만 봤다.

“뭐래.”

“어, 어흐. 뒷목이야. 주둥이 고치는 의사는 없냐?”

결국 둘이 투덕거렸다.

그런 그들을 태건이 막아섰다.

“지성 선배가 좀 날카로울 거 같네요.”

“우리가 찾아온 게 그렇게 신경 쓰이는 거야?”

“아니요. 혼자 많은 분들을 만났을 테니까요. 병상에서 꼼짝도 못한 상태로요.”

스윽.

태건이 깁스한 다리를 눈짓하며 말했다.

그제야 오광휘 단장도 알아챘다.

“오호. 그런 거였어?”

“혹시 좋은 마음으로 오셨다가 지성이가 톡톡 쏘아붙여서 상처 받고 나가신 건 아니겠지?”

“수, 수현이도 참. 지, 지성이가 우리한테나 그러지…….”

선배들이 다양한 해석을 내놓았다.

그때 이지성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빠직.

“내 귀도 쉬자. 좀!”

꾹꾹 누르고 있던 이지성이 결국 폭발했다.

그리고.

드륵, 뻐엉!

오광휘 단장부터 고수현까지 병실에서 쫓겨났다.

“나 단장……. 인데.”

“선배들은 보이지도 않냐.”

“환자가 뭐 대수냐?”

투덜투덜.

병실에서 쫓겨난 오광휘 단장과 선배들은 투덜거리며 돌아갔다.

그 투덕거림도 병원복도라 소곤거려야 했다.

한편.

병실 안엔 태건만이 남아 있었다.

정확히는 태건이 쫓아낸 거였다.

“휴. 이제 좀 조용해졌네요.”

“넌 왜 안가?”

이지성이 차가운 표정으로 물었다.

축객령이다.

그런데도 태건은 병상으로 다가갔다.

척척.

이내 깁스한 이지성의 다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간호사분들에게 들으니까 정강이뼈에 금이 갔다고 하더군요.”

“…….”

“화상이 심하지 않아 천만다행입니다.”

“뭔 말을 하고 싶어서 그렇게 밑밥을 깔아?”

이지성이 톡 쏘아붙여 물었다.

그래도 태건은 반발하지 않고 무직하게 바라봤다.

“제 대신 다쳤잖습니까.”

“넌 착각이 좀 자유분방한 경향이 있는 거 같아.”

“그 순간 절 떠민 걸 똑똑히 봤습니다.”

태건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러나 이지성은 믿지 않았다.

“웃기고 있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인데 보고 말고 할 틈이 뭐가 있어.”

“그럼 이상하죠. 순식간인데 제가 서 있던 자리에 선배가 있던 게 말입니다.”

“……착각하지 마. 요구조자가 위험해서 그런 거니까.”

이지성은 끝내 인정했지만 절대 곱게 말하지 않았다.

싱긋.

태건은 미소를 지으며 보호자 침대에 걸터앉았다.

“요구조자 덕분에 저도 살았네요.”

“왜 앉아. 누가 앉으래?”

“아무도 없어서요. 누구 오실 때까지 한숨 잘까나?”

스륵.

태건은 아예 보호자 침대에 누워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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