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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사인 (153)화 (152/320)

153화

그 순간 이지성이 미간을 찌푸리며 으르렁거렸다.

“야, 복귀 안 하냐?”

“가족분 오시면 인사드리고 가려고요.”

“……아무도 안 올 거니까 그냥 좀 꺼져줄래.”

이지성이 목소리가 한층 더 날카롭게 변했다.

태건은 덤덤하게 받아들였다.

“연락 안 하셨어요? 걱정하실까 봐 그런 거면 제가 연락해드릴 테니까 번호 주세요.”

“질척거리지 말고 좀 가라.”

“누군가는 옆에서 도와줘야 할 거 아닙니까. 아, 휴대폰이 멀어서 그래요? 저기 있네.”

벌떡!

가볍게 일어난 태건이 선반으로 다가갔다.

휴대폰으로 손이 향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이지성이 인상을 팍 찡그리며 다급히 태건의 팔을 붙들었다.

터억!

“이 새끼가, 적당히 좀 해!”

그 순간 이지성의 환자복 상의 단추가 하나 뜯어졌다.

툭!

동시에 앞섶이 좌우로 넓게 벌어졌다.

드러난 상체에 온갖 상처들이 자리해 있었다.

투덜거리던 태건이 그 상처를 본 순간 멈칫했다.

“아니, 뭐 그렇게 예민하게 굴 일이라고……. 어?”

“에이씨!”

사삭.

휴대폰을 낚아챈 이지성은 재빨리 앞섶을 여몄다.

그리고 시선을 피했다.

반면 태건은 방금 본 상처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흐릿할 정도로 시간이 지난 상처들이 대다수였다.

그런데 그 상처들은 현장과 무관했다.

구급대도 때에 따라 현장에 뛰어들지만 저런 상처를 입을 수가 없었다.

태건에게 현장의 흔적들이 새겨져 있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런 태건의 뇌리에 문득 비슷한 상처가 떠올랐다.

관악산 들개들.

그중에서도 말라뮤트.

그때 그 상처들과 흡사했다.

그렇다면?

스스로 떠올린 장면에 태건이 헛숨을 들이켰다.

“헙!”

파르르.

두 눈이 거칠게 흔들렸다.

그러고 보니 이지성은 지금까지 같이 샤워한 적이 없었다.

땀으로 범벅이 된 고강도 훈련 뒤에도 어떻게든 핑계를 만들어 따로 행동했다.

까칠해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꼭 그 이유만은 아닌 모양이다.

그때 이지성이 더없이 사납게 태건을 노려봤다.

“사람 말이 말 같지 않아?”

“선배.”

“부르지 말고, 그대로 꺼져.”

촥!

이지성은 그대로 이불을 덮고 숨어버렸다.

반면 태건은 그 자리에서 꿈쩍조차 할 수 없었다.

“…….”

몰아치는 생각에 눈동자가 좌우로 계속 흔들렸다.

관악산 들개들에게 필요 이상으로 과한 관심을 이해할 수 없었다.

사람에 대한 지나친 차가움이나 삐딱한 시선은 그저 성격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그에 대한 본인만의 이유가 있었다.

신체에 가득한 상처들이 바로 그 이유였다.

“가정……. 폭력.”

태건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그 말이 튀어나왔다.

병실에 무거움이 소리없이 내려앉았다.

…….

그야말로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지독한 침묵이 감돌았다.

태건은 이불 속에 모습을 감춘 이지성을 마냥 바라봤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도무지 머릿속이 온통 백지가 되어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당연히 쉽게 이 상황을 해결할 방법이 떠오르지도 않았다. 

어설픈 위로는 오히려 독이란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결국 태건은 어색한 표정으로 변해 조심스럽게 몸을 돌렸다.  

“그, 그럼 좀 쉬세요. 내일 상황 봐서 잠깐 들를게요.”

저벅. 저벅.

곧장 병실 문으로 향했다.

이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픈 마음뿐이었다. 

여닫이문을 잡으려 손을 뻗던 바로 그때였다.

흐릿하게 들려오는 이지성 목소리가 태건의 발길을 붙들었다.

“왜……. 왜 아무것도 묻지 않지?”

“…….”

우뚝.

태건은 그 자리에 멈춰 섰다.

태건이 가만히 있자 이지성의 목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왜?”

“제가 물으면 대답해 주실 겁니까?”

“…….”

“그래서 안 묻는 겁니다.”

태건은 나지막이 답했다.

이지성은 이불을 뒤집어쓴 모습 그대로였다.

다시 나가려는 그때였다.

스르륵.

이불 걷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어서 이지성의 목소리가 한층 선명하게 병실에 울려 퍼졌다.

“그럼 내가 묻자. 지하에서 빠져나올 때, 그때 내 말대로 움직였지. 왜 그랬냐?”

“무슨 질문이 그럽니까.”

“대답해. 넌 내가 실수했다면 꼼짝없이 죽을 수 있는 상황이었어.”

이지성의 목소리가 너무 깊게 가라앉았다.

스윽.

태건이 천천히 몸을 돌렸다.

이불을 걷고 자신을 응시하는 이지성 모습이 보였다.

마주보던 태건은 대답이 아니라 반문을 던졌다.

“아까 제가 먼저 물었죠. 선배는 왜 그때 날 밀어냈냐고요.”

“내 말에 대답부터 해.”

“하고 있잖습니까.”

태건의 말에 이지성이 인상을 팍 구겼다.

“말장난 할 생각 없다니까!”

“결국 둘 다 같은 거라고요.”

“…….”

이지성이 입을 꾹 다물었다.

태건은 아랑곳하지 않고 덧붙여 말했다.

“우리 둘 뿐입니까. 단장님하고 다른 선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뭐가.”

“믿음. 내 등에 칼 꽂지 않을 거란 신뢰 말입니다.”

“……난 그딴 거 없어.”

스윽.

이지성이 시선을 돌리며 다시 삐딱하게 말했다.

태건은 개의치 않고 하고픈 말만 이어갔다.

“신뢰 없이 지금까지 그 현장들을 함께 했단 게 더 이상한 거 아닙니까?”

“…….”

“우린 아직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더 많습니다. 그런데 어쩌라고요. 우리가 살아가는 건 지금인데요.”

“말은 누구나 그렇게 해.”

이지성은 여전히 퉁명하고 삐딱했다.

평소 모습 그대로였다.

태건의 진심이 온전히 전해지진 않은 눈치였다.  

그래도 불필요한 날카로움은 사라졌다.

태건은 그거 하나로 만족했다.

이내 가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피곤한 거 같으니까 일단 좀 쉬세요.”

“…….”

“선배, 이 빚은 다음에 현장에서 갚겠습니다. 그럼.”

꾸벅.

태건은 고개 숙여 인사하고 병실을 나갔다.

탁.

곧 복도로 나온 태건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후. 더 알아서 뭐해.”

개인사를 파고들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태건은 깨끗하게 관심을 접었다.

이지성이 다시 언급하지 않는 이상 태건이 먼저 입에 올릴 일은 없었다.

다음날.

세상은 폐대형마트 화재의 후속 뉴스들을 내보냈다.

-화재조사반이 현장에 투입되어…….

-시설물 안전관리에 대한…….

-부상자들의 회복이…….

태건과 단원들은 관심을 깊게 두지 않았다.

“안다고 뭐 달라져?”

“우리 할 일에 충실하자고.”

그렇게 결론 내렸다.

후원계좌는 꼭 24시간 만에 닫혔다.

최종금액을 확인한 모두는 턱이 빠질 뻔했다.

“허억!”

“진짜 이렇게 모였다고?”

“너무 과한데…….”

그들로선 처음 보는 단위였다.

더 생각하고 머리를 굴리면 피곤해질 정도였다.

그래서 모두 한목소리로 오광휘 단장을 보챘다.

“빨리 해결 보시죠.”

그때 태건이 한 마디 덧붙였다.

“우리에게 보내준 후원금이니까, 일부는 따로 저금하죠.”

“그래. 우리 건 챙겨야지. 그럼 그렇게 하고……. 남은 건 어제 말한 대로 처리한다. 다른 의견 없지?”

“없습니다.”

“나중에 그게 내 돈이었네, 더 빼돌릴 걸, 이딴 소리 하는 놈은 엉덩이 걷어찬다.”

“절대 아닙니다.”

모두 한목소리로 말했다.

다들 얼른 털어내고 싶어 했다.

차라리 보너스라면 움켜쥐고 싶을 터였다.

그런데 국민들이 보내준 후원금이라 꺼림칙했다.  

그들 중 태건은 유일하게 대답하지 않았다.

스윽, 슥.

턱을 쓸며 홀로 뭔가 고민하고 있었다.

“흐음.”

그 소리를 들은 모두가 태건을 바라봤다.

“쟤 왜 저래?”

“이제 와서 마음이 바뀐 걸까요?”

“본인 마음은 아무도 모르지.”

다들 이런저런 생각을 늘어놓았다.  

그런 와중 돌연 태건이 손가락을 튕겼다.

딱!

“그렇지. 단장님, 의의 있습니다.”

“무슨 의의가 그렇게 해맑게 있냐. 그래서 뭔데?”

“후원금으로 부상 입은 소방관들 후유증 치료비로 주는 건 어떨까요.”

태건이 색다른 아이디어를 냈다.

그 소리를 들은 오광휘 단장과 선배들이 눈썹을 들썩였다.

“오, 그거 좋은 생각!”

“그러네. 그렇게 써도 되겠어.”

“다들 이해해 주실 겁니다. 다른 일도 아니고 아픈 거잖아요.”

선배들 모두 적극 동의했다.

오광휘 단장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좋다. 아주 현실적인 부분을 꼬집어줬어.”

“그럼 대표로 단장님이 전달하는 걸로 하시죠.”

싱긋.

태건이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에 오히려 오광휘 단장이 위화감을 느꼈다.

움찔.

“뭐냐, 너 대체 무슨 꿍꿍이냐.”

“후후.”

태건은 의미심장한 미소만 지었다.

몇 시간 후.

외출 후 돌아온 오광휘 단장이 열을 풀풀 내며 태건을 찾았다.

“강태건, 이 자식. 어디 있어!”

벌컥.

옥상 사무실 문을 거세게 젖혔다.

사무실에 있던 태건은 오광휘 단장을 보자 가볍게 손을 들었다.

“오셨습니까.”

“너, 너 이 자식. 미리 말을 해줬어야지!”

쿵쿵!

소리내 다가온 오광휘 단장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뭔가 단단히 뒤통수 맞은 표정이었다.

그런데 태건은 긴장하는 게 아니라 미소를 더욱 진하게 머금었다.

“사진빨 잘 받으시던데요.”

스윽.

동시에 태건이 휴대폰을 내밀었다.

액정에는 큼지막한 인터넷 기사가 가득 차 있었다.

-대형마트 화재 부상 소방관들 치료비 전달식.

-전달자. 오광휘 특수소방단장.(국민후원금)

대규모 회의장에 커다란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그 아래엔 오광휘 단장과 병원장이 악수를 나누고 있었다.

오광휘 단장은 웃고 있지만 눈빛에 얼떨떨함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태건이 사진을 다시 보며 한 마디 덧붙였다.

“다 좋은데, 잘못하다가 들킨 거 같은 이 눈빛이 조금 그러네요.”

“난 몰랐으니까. 그냥 가서 전달만 하면 된다며!”

“전달하셨네요.”

“이씨, 이강찬 기자한테 다 들었어. 네가 전달식해야 한다고 했다며!”

크르릉.

오광휘 단장은 그때 당혹감이 솟구치는지 표정이 확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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