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화
그때까지 참고 있던 정연미가 결국 소리 질렀다.
“오빠, 위험해!”
“위험은 무슨.”
태건은 싱겁게 대답했다.
그에 대한 자신감 또한 확실했다.
살랑.
양손의 손목을 가볍게 푼 태건이 눈빛을 차갑게 굳히며 마주 달려들었다.
“좀 맞자.”
그리고 쓰러진 남자까지 일어나 3대 1의 싸움이 펼쳐졌다.
퍼버벅!
“칵, 악!”
“아악!”
비명소리가 쉬지 않고 울려 퍼졌다.
잠시 후.
“커으으으!”
꿈틀.
세 명의 남자들이 볼썽사납게 쓰러져 꿈틀거렸다.
태건은 가볍게 옷을 털었다.
“자식들, 주둥이만 살았네.”
“오빠, 괜찮아?”
다가온 정연미가 다급히 물었다.
태건은 자신을 내보이며 빙긋 미소 지었다.
“이 정도야 뭐.”
“아니, 저 사람들 말이야.”
“……내가 아니라?”
태건은 순간 어이가 없어 눈을 끔뻑거렸다.
그런데 정연미가 그들을 걱정하는 이유가 있었다.
“오빠한테 맞았다고 민원 넣고 그러면 오빠 잘릴지도 몰라.”
“그럼 네가 바라는 대로 되는 거네.”
“……저기요. 친구 없어요? 더 데려와서 얼른 오빠한테 얻어터지라고 해요. 그래야 신고발도 잘 먹혀요. 제가 증언할게요.”
정연미가 멀찍이 떨어져 남자들에게 조언했다.
가만히 바라보던 태건은 좀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나도 그냥 해본 말이야.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해?”
“잠깐만.”
스윽.
태건은 정연미를 뒤로 물리고 앞으로 나섰다.
남자들은 아직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그런데 비해 상처는 거의 보이지도 않았다.
태건은 그에 대해 말했다.
“속이 아주 뒤집어 질 거 같을 겁니다.”
“끄으으.”
“그러게 왜 술 마시고 덤비는지. 약점이 뻔한데.”
“우, 우욱. 크으으.”
당장 먹은 걸 확인할 모습까지 보였다.
그렇게 괴로워하는데도 태건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그래서 안 죽으니까 쇼는 적당히 하고.”
꾸우욱.
가까이 쓰러진 남자의 손을 지그시 밟았다.
밀려오는 고통에 그는 입을 떡 벌리기까지 했다.
“어어억, 아악!”
“조용히 합시다. 계속 소리치면 이 팔이 필요 없다고 생각되잖아요.”
“커업, 으으으읍!”
남자는 스스로 다른 팔을 물어 필사적으로 아픔을 삼켰다.
다른 남자들은 속이 뒤틀려 일어나지도 못했다.
도움을 줄 생각조차 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크륵, 그륵. 커으으.”
“끄으응. 허억, 허억.”
태건은 그런 처참한 모습에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제 이름 아시고, 뭐 하는지도 아시니까 얼마든지 찾아오세요. 민원 넣으셔도 되고요.”
“끄으으.”
“그런데 하나는 약속드립니다. 다시 안 좋은 일로 만나면 팔다리 하나는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
“…….”
“제 말이 어려웠나요?”
꾸우욱.
질문과 동시에 태건은 남자의 짓밟은 팔에 몸무게를 실었다.
다른 팔을 물고 있던 남자는 필사적으로 참았지만 결국 소리를 질렀다.
“끄, 끄그……. 아아아아. 알았, 알겠습니다!”
“한 분만 대답하시네.”
턱!
“켁!”
풀썩.
불시 공격에 첫 번째 남자는 속절없이 기절했다.
다른 남자에게 옮겨간 태건은 이번엔 무릎 뒤를 밟았다.
꽈악.
그 아픔은 상상이상이었다.
“끄아앙. 아악, 아아악!”
펄떡펄떡.
미친 듯한 아픔에 남자가 온 몸을 미친 듯이 들썩거렸다.
그래도 태건의 표정은 변화가 없었다.
“대답은?”
“죄죄죄죄, 죄송합니다, 가아아악!”
“죄송할 짓을 안 하셨으면 더 좋았을 텐데.”
꽈악.
무심한 표정으로 한 번 더 힘을 줬다.
“끄어러그러어!”
상대는 미치고 팔짝 뛸 아픔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리고.
…….
풀썩.
두 번째 남자도 기절했다.
마지막 남자는 이미 긴장 백배였다.
턱, 턱.
살아야한단 절박감으로 억지로 팔다리를 움직여 바닥을 기었다.
눈물, 콧물을 줄줄 흘리는 건 기본이었다.
“으아, 그다아, 달아.”
턱, 턱.
뭐라고 알 수 없는 말까지 해가며 힘겹게 움직였다.
태건은 그의 옆에서 나란히 걸으며 말했다.
척, 척.
“여름밤이라 여기서 자도 입 안 돌아갑니다.”
“으그갸갸.”
“마지막으로 제가 회사 임원이라도 당신들은 절대 안 뽑을 거 같습니다. 그럼 편한 밤 되세요.”
텅!
태건은 남자의 등을 일순간 힘을 줘 찍어 눌렀다.
숨이 턱 막힌 그는 악 소리도 못하고 그대로 기절했다.
“…….”
부들부들. 털썩.
그렇게 세 명의 남자들은 모두 기절했다.
그제야 정연미가 다가와 두 손으로 태건을 두드렸다.
턱턱.
“이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잖아. 너무 심하잖아.”
“그럼 널 모욕하는데 그냥 놔둬?”
“…….”
“그나마도 네가 있어서 이 정도로 끝낸 거야……. 그만 가자.”
턱.
태건은 정연미의 손을 낚아채 이끌었다.
정연미는 자꾸 뒤를 돌아보며 걱정을 보였다.
“그래도, 저 사람들…….”
“이 날씨에 시원하게 자고 일어나면 좋지.”
태건은 무심히 정연미와 걸음을 옮겼다.
후속 조치?
그런 걸 걱정할 정도로 때리지도 않았다.
몇 바퀴 빙글빙글 돌리고, 기절시킨 게 전부였다.
뒤탈에 대한 걱정도 하지 않았다.
‘법이든, 뭐든, 해볼테면 해봐.’
잠시 후.
태건과 정연미는 아파트 공동현관 앞에 섰다.
태건이 머리를 긁적이며 쓰게 말했다.
“기분 좋게 데이트하고 마무리가 찝찝하네.”
“난 괜찮아. 그 사람들이 잘한 게 하나도 없으니까. 정말이야.”
“그럼 다행이네.”
“그런데 아까 하려던 말이 뭐야?”
정연미가 불청객으로 인해 끊어진 뒷말을 듣고 싶어했다.
태건은 계면쩍은 얼굴로 말했다.
“미안하다고. 내가 그만두면 우리 사이에 아무 문제가 없잖아.”
“그래도 그만 두진 않을 거잖아.”
“흠.”
태건은 뻔한 대답이라 탄성으로 흘렸다.
정연미가 가만히 바라보다 태건에게 나지막이 물었다.
“오빠랑 내 사이는 뭘까.”
“우정보다 먼, 사랑보다는 가까운 사이?”
“그거 노래 제목 표절이야.”
“인용이라고 하자고……. 오늘 정말 즐거웠어. 그럼 좋은 밤 돼.”
스윽.
태건은 가볍게 손을 들며 말했다.
늘 여기서 했던 그 말이었다.
이 순간은 그냥 이렇게 헤어져야할 거 같았다.
인사한 태건이 천천히 돌아서 먼저 걸어갔다.
곧 뒤에서 정연미의 질문이 들려왔다.
“오빠, 또 연락해도 돼?”
“……얼마든지.”
“잘 가. 데려다줘서 고마워.”
“…….”
슥슥.
태건은 손을 머리 위로 크게 흔드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지지부진하고 싶지 않았다.
데이트는 끝났다.
릴렉스했던 신경도 다시 바짝 당겼다.
“돌아가자.”
* * *
다음날 아침.
태건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 선배들의 분위기가 차갑게 느껴진 탓이다.
아침 식사 때도 그렇고, 사무실에 앉아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
타다닥.
조용한 가운데 문서 작업하는 소리만 들려왔다.
스륵.
태건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넌지시 물었다.
“어제 저 외출하고 무슨 일들 있었습니까?”
“별로.”
고수현이 시큰둥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시선도 마주치지 않고 삭막함만 감돌았다.
‘뭐지?’
의아한 태건은 오광휘 단장에게로 향했다.
“단장님, 분위기가 왜 이래요?”
“너만 여자 친구 있다고 배신당했단다.”
“저 말고 아무도 없다고요? 여기 무슨 군대입니까.”
태건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오광휘 단장도 마찬가지였다.
“저 삭막한 인생들에게 뭔 봄날을 기대하냐. 그보다 넌 연미 씨랑 어떻게 됐어?”
“매 순간 치열하게 지내기로 했습니다.”
“어후야. 그렇게 말하는 건 좀 그렇지 않아?”
오광휘 단장이 괜히 몸을 비비꼬며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물었다.
태건은 황당한 얼굴로 답했다.
“이상한 상상은 거기까지만 하시고, 이거 드리러 왔습니다.”
척.
어제 정연미에게 받았던 동아리 후원금 봉투를 건넸다.
오광휘 단장이 심드렁하게 받더니 갸웃거렸다.
“어제 너만 여자친구랑 즐거운 시간을 보내서 솔로 선배들한테 미안하단 의미야?”
“아니요. 동아리 선배님들이 후원금 보내준 겁니다.”
“오옷? 여윽시, 봉사동아리라더니. 순수하고도 이타심 가득한 봉투를 본 순간 딱 알았다니까.”
오광휘 단장은 대번에 얼굴이 환해지며 봉투 속을 확인했다.
태건이 가볍게 덧붙여 말했다.
“이건 똑같이 나누는 걸로 하시죠.”
“이런 보너스는 또 처음이네. 선배님들한테 감사하다고 연락드렸냐?”
“엄청 장문으로 보냈습니다.”
“그건 잘했네.”
오광휘 단장이 수더분하게 답했다.
그러면서 손에 든 후원금을 몇 번이고 매만졌다.
액수를 재확인하려는 손짓이 아니었다.
“이걸 받을 정도로 열심히 했나.”
중얼거리는 오광휘 단장의 목소리 속에 고마움과 겸손이 느껴졌다.
태건은 빙긋 미소 지었다.
‘부족하면 더 열심히 뛰면 되죠.’
그의 감상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 속으로만 뇌까렸다.
잠시 후.
선배들 손에 똑같이 나눈 후원금이 쥐어졌다.
그 순간 태건을 향한 차갑던 시선들이 거짓말처럼 풀렸다.
“우리 막내, 어제……. 조, 좋은 시간 보냈니?”
“강태건이. 참 볼수록 괜찮은 녀석이야.”
“선배도 그렇게 생각하셨습니까. 저도 그랬는데요. 딱 보면 적당히 잘 생기고, 성격도 원만하지 않습니까.”
선배들이 앞을 다퉈 말을 건네고 칭찬을 덧붙였다.
아침과는 180도 다른 반응이었다.
이젠 이런 모습에 익숙해질 법한데 아직 그렇지 못했다.
태건은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하, 하하.”
그러던 중이었다.
그 사이 통화하던 오광휘 단장이 이내 수화기를 내리며 말했다.
“전달사항 있다, 다들 헬기 앞으로 모여.”
구구구.
웃고 떠들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헬기 앞으로 모이란 말이 주요했다.
“헤쳐 모여!”
“갑시다!”
타다닥.
모두 날다람쥐처럼 잽싸게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