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159)화 (158/320)

159화

태건은 휴대폰을 넣지 않고 저장된 전화번호를 하나 화면 가득 채웠다.

-마이애미 로펌.

잠시 바라본 태건이 싱거운 미소를 지었다.

“여기 전화할 일이 없어 다행이네.”

전화했다면?

지독하기로 유명한 미국 변호사들이다.

시작했다면 그 취객들의 미래는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악의적인 기사가 하나라도 났다면 바로 전화했을 거다.

우석진 정책과장이 그들 인생을 구제했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터였다.

여기 전화할 일이 앞으로도 없길 바랐다.

그건 태건의 진심이었다.

그때 사무실 쪽에서 고수현이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태건아, 전화 끝났냐. 그럼 와서 장비 추가 구매 리스트 좀 같이 확인하자!”

“네, 갑니다!”

턱.

대답한 태건은 이내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뭔 소방관이 서류 작업할 게 많은지.”

가볍게 투덜거렸다.

그저 말뿐이다.

출동 관련 서류는 빨리 처리해야 지장이 없을 일이었다.

생각을 털어낸 태건은 얼른 사무실로 향했다.

*  *  *

며칠 후.

폐점한 대형마트 화재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이젠 상당히 멀어져 있었다.

그런 가운데 기다리던 날이 찾아왔다.

바로 월급날이었다.

…….

오늘따라 사무실이 조용했다.

그런 고요함을 우렁찬 환호소리가 와장창 깨부쉈다.

“월급 들어왔다!”

“정말입니까? 나도 얼른 확인……. 우어어. 이게 얼마야!”

“이, 이게 진짜에요? 착오 아니죠?”

유중헌이 두 눈 땡그랗게 뜨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 사이 월급을 확인한 태건은 곧 고개를 끄덕였다.

“중헌 선배가 놀랄 만하네.”

“태, 태건아. 놀란 정도가 아니자, 잖아. 이건…….”

“수당 많이 붙인다고 들으셨잖습니까.”

태건은 덤덤하게 말했다.

그래도 풀리지 않는 의구심이 있는지 고수현이 얼른 물어왔다.

“첫 달이랑 너무 차이나지 않아?”

“그땐 팀워크 훈련이었으니까 기본급이 대부분이었죠.”

“그럼 이번에는……. 금산에, 대형마트까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곱씹는 고수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럴 정도로 상당한 금액이었다.

그때 오광휘 단장이 인쇄물을 하나 들고 다가왔다.

“야야, 태건아. 이거 봐봐. 이거 보라니까!”

“……적금 드셨습니까?”

“수중에 돈이 있으면 쓰고 싶은 게 사람 마음 아니냐. 여기선 쓸 일도 없는데 왕창 박아서 나중에 목돈 해야지. 흐흐흐.”

오광휘 단장은 뭔가 계획을 세운 모양이었다.

태건은 그런 그를 뚱하니 바라보며 나지막이 물었다.

“그거 만기 채울 수 있을까요?”

“이, 이 쫘식이. 무슨 그런 재수 없는 소리를. 떽, 그럼 못 써!”

“다 채운다고 저 주실 건 아니잖아요.”

“제정신이세요? 내가 이 피땀눈물 모아서 들이부은 적금을 왜 너한테 주는데!”

오광휘 단장이 눈에 불을 켜며 따졌다.

태건도 그게 궁금했다.

“그런데 왜 저한테 자랑하시냐고요.”

“배 아프라고. 랄라라.”

휘리릭.

오광휘 단장은 콧노래까지 부르며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태건은 그런 그를 바라보며 싱겁게 미소 지었다.

“기분 좋으신가 보네.”

오광휘 단장뿐이 아니었다.

다른 선배들 모두 처음 받아보는 월급에 웃음꽃이 만발했다.

태건의 얼굴에 미소가 계속됐다.

‘우리 받을 자격 있습니다.’

당돌한 뇌까림이었지만 없는 말은 아니었다.

점심 무렵.

모두 헬기 앞에 모였다.

이지성까지 총 6명이 원을 그린 모습이었다.

그런데 월급 받아 기뻐하던 표정들이 아니었다.

“흐으음.”

“후움.”

묵직한 신음만 흘렀다.

그리고.

슥, 슥.

모두 치열하게 눈치 싸움 중이었다.

침묵이 계속 되자 오광휘 단장이 손을 휘휘 저으며 외쳤다.

“거 짜식들. 점심은 내가 사는 걸로 해. 됐지!”

이어서 휴대폰을 거칠게 뽑아들었다.

그렇게 결정지으려는 그때였다.

터억.

황대산이 손을 낚아채며 묵직하게 말했다.

“단장님, 어디서 밑장을 들추십니까.”

“어허, 황대산이. 이거 안 놔?”

“휴대폰 넣으십시오. 오늘만큼은 제가 사도록 하겠습니다.”

황대산이 강렬한 눈빛으로 압박했다.

그런 황대산의 어깨를 고수현이 빠르게 잡아챘다.

턱.

“대산 선배야말로 뭐하시는 겁니까. 이건 경우가 아닙니다.”

“고수현이. 너!”

“증평에서 보냈던 시간을 한 시도 잊은 적 없습니다. 그걸 보답할 때로 오늘이 적격 아니겠습니까.”

“무리하지 마라.”

황대산이 꼬집어 말하자 고수현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무리하는 거 아닙니다.”

“이 녀석.”

“황 선배. 설사 무리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오늘은 제가 쏘게 해주십시오.”

치지직!

고수현의 눈빛이 황대산을 정면으로 맞섰다.

바로 그때였다.

유중헌이 손을 불쑥 내밀어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런 그의 한 손에 헬리캠 조종기가 들려 있었다.

“선배, 수현이, 둘 다 동작 그만. 누가 새치기하래.”

“유중헌이, 뭐?”

“둘 다 잘 들어. 매번 현장에 지각하는 내가 오늘 식사 대접하는 게 맞지 않아?”

크르릉.

유중헌은 목소리를 팍 낮춰 스산함까지 풍겼다.

그만큼 진지하게 이 순간에 임했다.

그런 그를 막아선 인물이 있었다.

태건이었다.

“다들 뭐하시는 겁니까. 특수소방단의 시발점인 저, 강태건을 빼놓고 말씀하시면 곤란하죠.”

“태건아 넌 빠져.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야.”

“수현 선배 섭섭합니다.”

“어허. 원래. 막내는 이럴 때 나서는 거 아니라니까. 그리고 네가 훈련시켜줘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 그러니까 넌 열외야.”

고수현이 진지하게 태건을 밀어냈다.

다들 주머니가 풍족해져 그동안 감추고 있던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어 했다.

다소 과하게 진지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마저도 본인만의 확고한 이유가 있었다.

그렇게 서로 자신이 점심 값을 책임지려 할 때였다.

이지성이 뚱한 얼굴로 지켜보다 톡 쏘아붙였다.

“짜장면 6그릇에 아주 목숨 거네.”

…….

움찔.

진지하게 다투던 모두가 멈칫했다.

그 순간은 잠깐이었다.

찌릿.

눈빛이 돌변한 모두가 이지성을 압박했다.

“그럼 지성이가 사는 걸로.”

“난 짜장 곱빼기.”

“탕수육도 하나 시켜. 대자로!”

“유산슬도 맛있던데, 추가해도 되지?”

“깐풍기는 빠질 수 없지.”

짜장면 6그릇 값이 갑자기 뻥튀기 됐다.

그 소리에 이지성이 발끈했다.

“짜장면만 시켜!”

하지만 이미 버스는 떠났다.

탁.

“잠시 실례!”

태건이 이지성의 휴대폰을 낚아챘다.

그리고 얼른 배달 앱을 열어 단숨에 주문했다.

토도독.

“좋아, 결제까지 완료!”

태건이 외침과 동시였다.

띠링.

휴대폰에 결제완료 문자가 도착했다.

“얼만데!”

턱.

얼른 이지성이 휴대폰을 뺏어 결제금액을 확인했다.

그리고 인상을 팍 찌푸리며 태건을 노려봤다.

“진짜 다 시켰냐? 니가 세상에서 제일 나빠. 순악질이야.”

“칭찬 감사합니다. 그리고 잘 먹겠습니다.”

“내가 취소한다. 어떻게든 취소할 거야!”

이지성이 결연하게 외치자 선배들이 잽싸게 달려들었다.

“지성이 휴대폰 뺏어!”

“팔다리 하나씩 잡아!”

“야야, 발버둥 친다. 꽉 잡아. 짜식들아!”

“오예, 지성이 벗겨 먹자!”

이럴 땐 찰떡 같이 한 마음이었다.

선배들의 무차별 공격에 이지성이 버둥거렸다.

“놔, 놓으라고!”

“선배, 포기하면 편합니다.”

태건이 코앞에서 짓궂게 놀려대자 이지성이 더욱 몸부림쳤다.

“으악, 저 자식을 그냥. 어후, 저거, 저거!”

“하하하.”

“웃지 마!”

“하하하하!”

태건은 더욱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소소한 아웅다웅도 이들에겐 즐거운 한 때였다.

*  *  *

그 순간은 정말 한순간이었다.

어느날.

노을 진 하늘 위를 라텔 헬기가 가로 질러 날아갔다.

투다다다!

날아가는 속도가 번개보다 빨랐다.

그리고 이천시 관할 안에 들어설 때 쯤 검은 연기 기둥이 보였다.

조종 중인 유중헌이 다급히 소리쳤다.

“연기 보입니다!”

“저기야? 더 빨리 못 가?”

“이게 제트엔진인 줄 압니까. 나도 마음 급한데 재촉하지 맙시다!”

쿠과과과!

유중헌이 신경 날카로운 얼굴로 헬기를 급히 몰았다.

그 사이 뒤에선 태건과 모두가 벌써 레펠 준비를 마치고 대기 중이었다.

턱. 턱.

주먹을 부딪친 황대산이 인상을 푹 쓰며 안타까워했다.

“빌어먹을, 소방관이 현장에서 실종이라니.”

“그 소방관 수색하러 들어간 화재팀도 고립이라잖습니까. 이게 말이 되냐고요!”

고수현이 답답함 심정을 날카롭게 내뱉었다.

그리고 이지성도 함께였다.

“깁스 떼자마자 출동이라. 그나저나 냉동창고가 대체 얼마나 큰데 실종이야.”

내뱉는 뇌까림이 날카로웠다.

모두 같은 마음이다.

소방관이 희생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 싶은 다급함으로 가득했다.

그런 모두를 태건이 신중한 목소리로 달랬다.

“구할 겁니다. 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겁니다.”

꾸우욱.

태건은 두 손을 강하게 맞잡았다.

초조함이 짙어져 주체가 되지 않은 탓이다.

이 순간에도 헬기는 하늘을 가로질러 날아가고 있었다.

투다다다.

알지만 모두가 더 빨리 현장에 도착하길 소원했다.

이천시 소재 냉동창고 화재.

소방관 1명 실종, 그리고 소방관 6명 고립.

‘구한다. 전부, 그리고 반드시!’

채앵!

각오로 가득한 태건의 눈빛이 살벌하게 빛났다.

잠시 후.

짙은 검은 연기를 따라가니 화재 현장이 나타났다.

대형마트보다는 작은 규모의 냉동창고였다.

대형마트는 옆으로 넓었고, 냉동창고는 위로 높다란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불길만큼은 똑같이 범상치 않았다.

모두 쌍안경으로 살펴보며 하나씩 언급했다.

“창문으로 보면 대략 5층 사이즈. 높이는 30미터 가까이 되는 거 같습니다.”

“연면적 5천 평이라니까 층당 천 평씩 잡으면 되고, 주차장은 거의 두 배가 넘는 거 같습니다.”

“출동차량은 구급차, 지휘차, 배연차, 펌프차, 물탱크차, 굴절사다리차, 방수탑차……. 대략 30여 대!”

“인원은 120여 명 정도로 추정. 이천시 소방관들은 다 와 있는 거 같습니다.”

현장 그 자체의 요소요소를 언급했다.

오광휘 단장이 지휘하기 수월한 참고 사항이었다.

그뿐이 아니라 자신들이 현장에 들어갔을 때,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를 파악하는 용도도 함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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