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화
촤아악!
내려가는 그 짧은 사이였다.
태건의 눈에 건물로 다급히 진입하는 황대산과 이지성 모습이 보였다.
저쪽도 순식간에 헬기에서 내려 일단 진입하는 모양이었다.
태건의 눈빛이 살짝 변화했다.
‘이렇게 되면?’
저들과 함께 행동하는 게 나을지도 몰랐다.
그때 첫 번째 창문과 거리가 급격히 좁혀졌다.
끼익.
태건은 타이밍 맞춰 로프를 당겼다.
그 위치가 정확히 검은 구름이 가득 쏟아져 나오는 창문 앞이었다.
“끄응, 됐어!”
휘릭!
태건은 그대로 연기 사이로 몸을 날렸다.
고수현은 간발의 차이로 도착했다.
“옥상조 현장 돌입!”
턱, 후우웅!
힘차게 외벽을 박찬 그는 반동을 이용해 이목을 끌며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그렇게 고수현은 이 순간조차도 아래서 지켜보는 소방관들을 의식했다.
그렇게 태건과 고수현은 건물 내부로 진입했다.
터덩!
육중한 착지음을 울리며 차례로 바닥에 내려섰다. 그런데 검은 연기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불길조차 확인되지 않고 방향도 잡히지 않았다.
태건은 자세를 낮춘 상태를 유지하며 고수현에게 물었다.
“선배, 뭐 보여요?”
“쥐뿔.”
쓴소리가 절로 나올 지경이다.
그나마도 창문 바로 아래라 흐릿하게 서로를 확인하는 게 전부였다.
이 연기부터 걷어내야 했다.
재빨리 로프를 풀고 무전기 버튼을 눌렀다.
띠릭
“옥상조, 3층 안착. 굴절사다리차 지원바람.”
-띠릭. 확인. 지금 쏜다.
오광휘 단장의 무전과 동시였다.
촤아악.
3층 창문으로 굵직한 물줄기가 쏟아져왔다.
강력한 물살에 시꺼멓게 피어난 연기들이 주춤거리며 흩어졌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부족했다.
몰려오는 연기의 양이 훨씬 많았다.
“환장하겠네.”
“여길 어떻게 들어왔단 거야?”
태건과 고수현은 의구심을 갖기에 이르렀다.
환기가 되지 않아 진화작업이 이뤄지기가 무척 어려웠다.
이런데도 진입한 소방관들이 있단 사실이 놀라울 정도였다.
“진짜 소방관들 대단합니다.”
“우리가 그런 소리할 건 아니지. 그보다 진짜 어쩐담.”
고수현의 미간이 펴질 줄을 몰랐다.
지원 인력이 도착하면 나을까?
태건이 그런 생각을 할 정도였다.
그런데 곧 울려퍼지는 무전소리가 머릿속을 아득하게 했다.
-띠릭. 라텔캡, 여기는 빅라텔, 1층 진화 속도가 더뎌 계단으로 진입 불가!
-띠릭. 라텔캡 확인. 막내라텔, 아직 그 자리인지 확인 바람.
자신을 찾는 무전 소리에 태건이 반응했다.
띠릭.
“그 자리입니다. 안으로 무턱대고 밀고 들어갈 수준이 아닙니다.”
-띠릭. 확인. 그럼 이 사람들은 어떻게 내부로 진입했단 거야?
“옥상조가 꼭 찾아서 물어보겠습니다.”
-띠릭. 진입 어렵다며……. 네? 뭐라고요? 전 단원 잠시 대기!
오광휘 단장의 목소리가 순간 차가워졌다.
동시에 태건과 고수현이 서로를 바라봤다.
“갑자기?”
“변수?”
스윽.
태건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 밖을 바라봤다.
촤아악!
굴절사다리차의 물대포가 근처에서 발수 중이었다.
그 물줄기가 흩트린 연기로 인해 약간의 틈이 생겼다. 그렇게 만들어진 틈으로 주차장 상황을 설핏 확인할 수 있었다.
지휘소 앞에 오광휘 단장이 보였다.
그의 옆에 그을음 가득한 방화복 차림의 어떤 소방관이 있었다. 양손을 잠시도 쉬지 않고 움직이며 때때로 냉동창고를 가리키기도 했다.
거리 탓에 표정을 볼 순 없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느낌이었다.
특히 오광휘 단장 행동이 거칠었다.
“무전기를 저렇게 흔들 분이 아닌데…….”
실종자 수색할 시간도 빠듯한 상황이다.
이렇게 발길을 묶어 둘 성격이 아니라 더욱 위화감이 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띠릭.
무전기가 울리며 오광휘 단장의 신경질 가득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같은 시각.
오광휘 단장이 한 손으로 무전기를 휘저으며 버럭버럭 소리쳤다.
“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실종된 대원이 2명이라고요?”
“사수와 부사수입니다.”
“푸우. 냉동창고가 리모델링 공사 중이었단 건 그렇다고 치고, 갑자기 요구조자는 또 무슨 소립니까. 아까 전화로 확인했을 때 분명히 없다고 했잖아요!”
오광휘 단장은 지끈거리는 얼굴로 따져 물었다.
마주한 박두영 대응총팀장의 표정도 굳어있긴 마찬가지였다.
“여기 관련자가 지금 알려줬습니다.”
“지금 알려주다니, 이런 대형 화재 상황에서 인원파악을 그렇게 건성으로 한단 게 말이 됩니까. 총팀장님, 말씀 좀 해보세요!”
오광휘 단장은 열이 있는 대로 뻗쳤다.
그가 내뿜는 아우라가 냉동창고의 화재만큼 거세 상대를 거칠게 몰아붙였다.
박두영 대응총팀장은 애써 차분히 답했다.
“리모델링 업체 측 직원이라 냉동창고 쪽에선 파악이 어려웠답니다. 저도 그 소리 듣고 정말 암담했습니다. 진짜 답답해 죽겠습니다.”
“아이씨. 제길!”
벅벅.
오광휘 단장이 머리를 신경질적으로 긁었다.
“…….”
박두영 대응총팀장은 착잡한 표정으로 불타는 냉동창고로 시선을 돌렸다.
곧 오광휘 단장이 자신을 억지로 추스르고 빠르게 물었다.
“그래서 요구조자가 몇 명이고, 어디 있단 겁니까?”
“요구조자는 세 명이랍니다. 어떤 분이 대피하면서 봤다고는 하는데, 그 위치가 정확하지 않습니다.”
“총팀장님, 그렇게 모호한 말이 어딨습니까. 저기 보세요. 저기! 저게 동네 슈퍼 냉동고로 보이십니까.”
오광휘 단장의 힐난이 거셌다.
그때까지 한 수 접어주던 박두영 대응총팀장이 일순간 울컥해 따졌다.
“단장님. 저희가 전부 당신들한테 떠넘기는 걸로 보입니까!”
“…….”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거의 다 진화가 됐었습니다. 그러다 갑작스런 폭발과 함께 불이 저렇게 다시 들고 일어났어요!”
“후우. 설명하셨습니다.”
오광휘 단장이 기세를 약간 누그러뜨렸다.
이젠 반대로 박두영 대응총팀장이 가슴을 치고, 또 냉동창고를 가리키며 뒤틀리는 심정을 토로했다.
턱, 턱.
“저 속에 고립된 녀석들, 또 실종된 녀석도 있습니다. 실종된 두 녀석 중 부사수는 내일이 애 백일입니다. 오늘 아침에 백일 떡 돌린 애 아빠란 말입니다!”
“…….”
“고립된 놈들 중에 우리 소방서 베테랑하고, 그 놈 좋다고 쫓아다니는 막내도 있습니다. 시보 딱지 뗀지 얼마 안 된 겨우 2년차 갓난 소방관 말입니다!”
박두영 대응총팀장은 감정이 훅 치고 올라왔는지 눈물이 글썽거렸다.
오광휘 단장은 그런 그를 뚫어지게 바라만 봤다.
“…….”
“그리고 1층에만 80명이 몰려서 길 뚫어보겠다고 지랄염병 중입니다. 다른 놈들은 이제 물 한 모금 마시고 있고요.”
“…….”
“우리가 당신들한테 다 떠맡기고 나 몰라라 하는 거 아니란 말입니다. 크으으!”
주륵.
결국 박두영 대응총팀장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필사적으로 참고 인내했지만 고립되고 실종된 소방관들 생각에 가슴이 미어진 거였다.
그때 오광휘 단장이 박두영 대응총팀장의 어깨를 묵직하게 짚었다.
터억.
“한참 선배님에게 이러는 거 실례인 줄 압니다만, 답답한 거 좀 풀어내셨습니까?”
“흐으음……. 뭐요?”
“저라고 그 심정 모르겠습니까. 현장 책임자라서 아무렇지 않게 행동해야 하지만 속은 썩어 문드러지는 그 심정이요.”
“…….”
박두영 대응총팀장은 약간 혼란을 느낀 표정이었다.
그때 오광휘 단장이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라텔들, 전부 감청했냐?”
스윽.
오광휘 단장의 시선이 3층 창문으로 향했다.
그 시선 끝에 물줄기 틈으로 희미하게 태건이 보였다.
모두를 지칭했지만 오광휘 단장은 한 명의 단원을 주시하고 있었다.
강태건.
특수소방단의 막내라텔.
하지만.
다른 별명 ‘더 라스트.’.
그의 경험이 꼭 필요한 현장이다.
한편.
태건 역시 오광휘 단장 쪽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그 옆엔 고수현이 함께였다.
둘의 얼굴에 표정이 사라져 있었다.
-띠릭, 라텔들, 전부 감청했냐?
각각 무전기에서 오광휘 단장의 진한 질문이 들려왔다.
곧 황대산의 응답소리가 들려왔다.
-띠릭, 빅라텔, 까칠라텔, 확인.
-띠릭. 운전라텔, 감청하며 라텔캡에게 접근 중.
그 다음 태건이 무전기를 담은 어깨에 손을 올렸다.
그때였다.
스윽.
고수현이 한 손으로 태건을 제지하며 말했다.
“넌 머리 굴려.”
그리고 그가 어깨 주머니 속 무전기를 잡았다.
띠릭.
“핸썸라텔, 막내라텔도 감청 완료.”
무전기에서 손을 떼는 고수현의 눈빛이 살벌했다.
지잉!
그리고 태건을 향해 한 마디 덧붙였다.
“태건아. 백일 사진이 기뻐야 할까, 슬퍼야 할까. 난 사진이 없어서 모르겠어.”
“선배, 우선순위는 확실히 하시죠.”
“……그래. 우리에게 어떤 사정이 있다고 해도 요구조자가 먼저야.”
꽈악.
고수현이 방화장갑을 으스러지게 쥐며 대답했다.
그때 태건이 나지막이 물어왔다.
“모두가 우리 마음 같겠죠?”
“소방관이라면 누구든.”
“……그럼 요구조자는 찾은 거 같네요.”
태건이 엉뚱한 소리를 하자 고수현이 힐끗거리며 의아해했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소방관이 6명이나 단체로 고립된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지, 그래도 이런 넓은 냉동창고라면……. 잠깐만, 설마?”
“그분들이 요구조자를 지키고 있는 게 확실합니다.”
구우우.
태건의 두 눈에 굳건한 확신이 자리하고 있었다.
반면 고수현은 일순간 확 소름이 돋았다.
파르륵.
더불어 급격히 회전하는 머리로 하나씩 짚어갔다.
“갑작스런 폭발, 화재 재점화, 다들 철수하는 시간에 고립된 소방관들……. 헙!”
“나오지 못한 게 아니라 나올 수 없던 겁니다.”
“억지로 길을 열면 요구조자들이 위험해지니까. 그럼 호흡을 나누고 있을 거야, 이런 실종자들보다 그쪽이 더…….”
곱씹어 말한 고수현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예상대로라면 요구조자 3명과 소방관 6명, 총 9명의 생명이 위험에 처한 거였다.
게다가 실종된 2명의 소방관을 포함하면 총 11명이다.
그런 그의 말이 끝나기 전이었다.
태건이 어깨의 무전기를 누르며 나지막이 말했다.
띠릭.
“라텔 하나.”
특수소방단 소집령을 공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