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화
안간힘의 소리가 짙어질 무렵이었다.
슈우욱.
연기투과 플래시로 비춰보니 연기가 급격히 이동하기 시작했다.
거기엔 육중한 쇠문이 올라가고 있었다.
고수현이 해냈다.
태건은 기뻐할 틈도 없이 바로 자세를 낮춰 문틈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터덕.
“끄으응!”
“그대로 들어, 밀어……. 올려!”
“으자자!”
기기긱.
둘이 힘을 합치자 육중한 쇠문이 허리 높이까지 올라왔다.
화물 승강기 문이라 더럽게 무거웠다.
문의 크기와 무게부터 일반 승강기와 비교 불가였다.
그만큼 내부 통로도 널찍할 터였다.
두 사람은 허튼 힘을 쓴 게 아니었다.
벌어진 승강기 문틈으로 연기가 엄청나게 쏟아져 들어갔다. 마치 진공청소기 같았다.
스윽.
태건은 그 안으로 손을 뻗어봤다.
“혹시 모르니까.”
아래서 올라오는 열기가 뜨겁다면 불길이 솟구칠 수도 있었다.
태건은 자신의 예상이 빗나가길 바랐다.
그 소망 탓인지 정말 내부에 서늘함이 감돌고 있었다.
사아악.
“아, 시원해.”
자신도 모르게 뇌까림이 흘러나올 정도였다.
그리고 아래쪽에서 물소리도 들려왔다.
-촤아악.
-콰아앙!
이건 분명 1층에서 이천시 소방관들이 물을 쏟아 붓고, 배연기로 연기를 뽑아내는 소리다.
화재 확산을 막기 위함이다.
화재가 나면 승강기 통로를 통해 불이 사방으로 번진다.
뻥 뚫린 데다 좁고 기다란 공간이라 불이 가장 좋아하고, 즐겨 찾는 화재 맛집인 탓이다.
또 하나의 맛집은 비상계단이었다.
그로 인해 숱하게 고생했기에 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래서 이곳의 온도를 낮춰야 화재 진압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말할 수 있었다.
그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렇게 연기는 승강기 통로로 무섭게 빨려 들어갔다.
슈슈슉.
태건과 고수현은 그 옆에 있는 두 번째 승강기 철문까지 끌어올렸다.
“흐읍!”
“허업!”
솨아아아!
연기가 빠져나가는 속도가 곱절로 늘어났다.
이제 플래시를 비추지 않아도 서로의 얼굴을 어렴풋이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제 됐다.
태건은 미련 없이 돌아섰다.
“가시죠.”
“그래. 가자!”
차자작!
태건과 고수현은 LED가이드라인을 역으로 되짚어 이동했다.
단원들을 위해 깔아둔 거였지만 결국 본인들이 사용하고 있었다.
무슨 상관인가.
가장 난제를 해결하고 돌아가는 발걸음이 다부졌다.
두 사람이 다시 작업장으로 향하는 동안 연기는 상당히 옅어졌다.
그래봐야 일반 화재 현장 정도였다.
그 이상을 바라지도 않았다.
처음에 비하면 맑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창문 근처에는 오광휘 단장과 단원들이 모두 올라와 대기 중이었다.
촤아아.
아래에서 끌고 올라온 소화용수로 사방을 적시며 연기를 밀어내고 있었다.
그 물줄기를 맞으며 태건과 고수현이 도착했다.
차작.
“왔습니다!”
“뭔 짓을 한 거야?”
“승강기 문 열었습니다.”
태건은 조금 전과 달리 매우 직설적으로 답했다.
내부로 진입이 가능해진 지금부터는 말 그대로 시간 싸움인 탓이다.
말 돌릴 시간도 없었다.
오광휘 단장과 모두가 태건의 의도를 대번에 이해했다.
곧 오광휘 단장이 손으로 한쪽을 가리켰다.
작업장 밖. 즉, 드넓은 A구역이었다.
“드디어 구조 돌입이다. 앞을 막는다고 무작정 물어뜯지 말고, 상대 봐가면서 물어뜯어.”
“전원 준비 완료!”
“달려들자!”
촤아악!
오광휘 단장과 황대산이 소방용수를 뿌리며 선두로 달렸다.
그 뒤를 비장한 눈빛을 한 태건과 단원들이 무거운 출동가방을 같이 들며 뒤따랐다.
확실히 시야가 확보되니 나아가는 속도가 빨라졌다.
촤아아, 차자작!
방수도 순조로웠고, 쫓아가는 건 더욱 수월했다.
하지만 좋은 순간은 잠깐이었다.
연기가 걷히며 건물 내부가 드러나기 시작한 탓이다.
스스슥.
흐려진 연기 틈으로 보이는 건 수없이 많은 건축 장비와 자재들이었다.
“헙, 저거 스티로폼이잖아!”
“우레탄폼도 있습니다!”
“용접기, 그것도 산소용접기!”
“샌드위치 패널은 또 뭐야!”
하나씩 눈으로 담을 때마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 외에도 눈에는 익지만 정확히 명칭을 모르는 건축 자재들이 사방에 쌓여 있었다.
이렇게 밀폐된 공간에서 저 모든 걸 사용했단 건가.
작업대 옆에 버려진 사용한 소화기가 참으로 하찮게 보였다.
“이런 미친!”
“불나라고 아주 고사를 지내라!”
오죽하면 유중헌이 운전하지도 않는데 버럭 소리칠 정도였다.
바로 그때였다.
까맣게 그을린 건축 자재 어디선가 불이 생겨났다.
그것도 한 곳이 아니라 여기저기 동시다발적으로 불이 일어났다.
화르륵!
전진하던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불이 왜 생겨!”
“자연발화야 뭐야!”
그때 고수현이 빠르게 외쳤다.
“공사장에서 자주 봤습니다. 불씨가 숨어 있다가 바람이 불어서 큰 불길로 삽시간에 일어나는 걸요!”
“누가 그걸 몰라서 묻습니까. 왜 하필이면 지금이냔 겁니다!”
이지성이 미간을 찌푸리며 쏘아붙였다.
신경이 잔뜩 날카로워져 갔다.
그 사이 태건은 좀 더 살피다 말했다.
“아무래도 승강기 문을 연 게 역할을 한 거 같습니다.”
“그럼 어쩌라고, 그 연기를 어떻게 뚫고 나갈 건데!”
“따지는 건 나중에, 일단 불길부터 억제해야 합니다. 스티로폼이나 샌드위치 패널에 옮겨붙으면 난리납니다!”
태건이 재빨리 외쳤다.
그 소리에 황대산이 물줄기 방향을 돌리며 마주 외쳤다.
“그럼 내가 끄면 되지!”
“선배, 안…….”
태건의 만류가 끝나기도 전이었다.
푸아아악!
물줄기가 불길을 향해 날아갔다.
불과 물이 만난 그 순간 놀랍게도 폭발이 일어났다.
퍼버벙!
거센 폭발음에 건물이 떨리는 진동까지 느껴졌다.
다행히 라텔과 거리가 있어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러나 방수하던 황대산은 두 눈을 찢어지게 떴다.
“미친, 저게 왜 터져!”
“화학제품 덩어리들이니까요!”
“뭐?”
“불붙은 우레탄폼에 물을 끼얹으면 터지지, 안 터집니까. 이리 내요!”
턱!
태건은 재빨리 황대산에게서 소방호스를 빼앗았다.
황대산은 일순간 동요했다.
“내, 내가 또 실수를…….”
“선배. 실수는 아닙니다. 지금 불을 끌게 물 밖에 더 있습니까. 이렇게 말입니다!”
촤아악.
태건은 보란 듯이 불길을 향해 물줄기를 발사했다.
황대산은 물론 모두가 화들짝 놀랐다.
“으아악!”
“야, 거기다 또!”
“터진다!”
“엎드려!”
촤자작!
이동하던 모두가 재빨리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바닥에 딱 달라붙었다.
…….
그렇게 잠깐 시간이 지났지만 폭발음은 들리지 않았다.
촤아, 푸아악!
물이 쏘아지는 소리는 여전히 들려왔다.
엎드린 단원들이 머뭇거리며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물줄기는 하나가 아니라 두 개가 불길을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폭발할 어떤 징조도 보이지 않았다.
“어?”
다들 이해가 되지 않는 표정들이었다.
그때 또 다른 물줄기를 제어하고 있는 오광휘 단장이 소리쳐 말했다.
“이 자식들아, 교육할 때 뭐 배웠어. 직접 후려치지 말고 옆으로 비켜 갈기라고 했잖아!”
“……아!”
들은 기억이 났는지 짧게 탄성을 내뱉었다.
다시 자세히 보니 태건과 오광휘 단장은 불길의 주변을 공략 중이었다.
화재와 관련한 임기응변은 둘이 가장 뛰어났다.
이런 부분이 이론교육만으로 매워지지 않는 미흡함이었다.
이래서 실전에서 갈고 닦는 경험을 절대 무시할 수 없단 거였다.
태건은 불길을 억제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엎드려 있는 선배들을 차갑게 쏘아붙였다.
“한숨 자고 구조하러 갈 겁니까!”
“이, 일어나야지.”
스르륵.
엎드렸던 네 명의 단원들이 멋쩍게 일어났다.
그 중 황대산이 태건과 거리를 좁혔다.
“내가 너무 성급…….”
“실수 아니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반사 신경이 빠른 겁니다. 이번 현장의 가장 고질적인 문제점들이고요.”
“그래도…….”
황대산은 재차 사과하려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는데 그 자리에서 맴돌고 있었다.
그 순간 태건이 마음속으로 유지하던 ‘인내’란 끈이 뚝 끊어졌다.
와직!
표정이 더없이 사납게 구겨졌다.
이어서 재빨리 소방호스를 옆구리에 끼웠다.
그렇게 여유로워진 왼손을 뻗어 황대산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콰앙!
방화헬멧이 강하게 부딪쳤다.
“윽, 갑자기 왜…….”
황대산이 심히 당황했다.
그 순간 태건이 잡아먹을 듯한 눈빛으로 황대산에게 으르렁거렸다.
“한 마디만 더 해봐요. 딱 한 마디만.”
“…….”
“아니라고 했음 아닌 겁니다.”
“……닥치고 갈게.”
황대산은 의외로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조차도 자신의 잘못이라 단정 짓고 한 수 접어주는 모습이었다.
태건은 더는 여러 말하고 싶지 않았다.
“단장님, 저 불 새끼랑 언제까지 물놀이하실 겁니까!”
“불만이면 니가 치고 나가세요!”
“먼저 갑니다. 후미 부탁합니다. 다들 컴!”
파바박!
태건은 재빨리 방향을 돌려 B구역 쪽으로 달렸다.
그 외침에 황대산, 유중헌, 고수현, 이지성까지 뒤따랐다.
차자작!
모두가 저만치 멀어졌다.
그때까지 불길을 억제하던 오광휘 단장은 그제야 몸을 돌렸다.
“으아아아!”
파바박!
난데없이 비명을 외치며 ‘걸음아, 나 살려라.’ 분위기로 바닥을 박찼다.
너무 엉뚱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오광휘 단장이 부리나케 떠난 직후였다.
쾅, 콰과광!
폭발이 연속적으로 일어났다.
억누르던 불길을 놓아주자 주변으로 삽시간에 번져 버린 거였다.
태건과 오광휘 단장은 그 부분까지 예상하고 따로 행동한 거였다.
함께 불 속에서 보낸 시간들.
숱한 현장 출동으로 인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들만의 눈치가 있었다.
다른 단원들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분야가 다른 거였고, 이런 경험이 쌓일 시간이 필요했다.
한편.
건축 자재의 폭발과 불길 확산은 3층이 전부가 아니었다.
3층이 시발점도 아니다.
많은 인원들이 동원된 1층과 2층도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
퍼버벙!
“갑자기 무슨 폭발이야!”
“1층에서 뭔 짓을 한 거야!”
“2층, 니들 죽을래?”
“각 층 상황부터 파악해!”
간신히 확보한 비상계단을 사이에 두고 2개 층에서 날카로운 소리가 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