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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사인 (165)화 (164/320)

165화

오광휘 단장의 문제만이 아니다.

태건과 다른 단원들의 방화장갑도 빠르게 기능이 떨어져갔다.

샌드위치 패널의 스티로폼이 말썽이다.

녹아내려서 생긴 끈적끈적한 액체는 방화장갑을 아무리 털어내도 털어지지 않았다.

“크윽!”

“아으!”

다른 단원들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의 방화장갑도 기능이 오래 이어지지 못할 상황이다.

태건은 지체하지 않고 휴대용 소화기를 뽑아들며 외쳤다.

“아꼈다가 국 끓여 먹을 겁니까!”

치이익!

소화액이 무너진 잔해에 직격하며 연기를 피웠다.

다른 단원들도 소화볼과 휴대용 소화기를 과감하게 사용했다.

치이익, 퍼벙!

잔해에 붙은 불길이 버티지 못하고 밀려났다.

그 후에야 밑에 깔린 황대산과 고수현의 방화복을 발견했다.

“대산아!”

“수현 선배!”

“얼른 집어던지고 끌어내!”

덜그렁.

텅 빈 휴대용 소화기를 집어던진 태건이 남은 잔해에 다시 손을 뻗었다.

그때였다.

들석, 들썩.

잔해들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황대산과 고수현이 잔해를 무너뜨리며 일어났다.

푸슈슈.

방화복이 꺼멓다 못해 일부 타들어가고 있었다.

“끄으으.”

“으으!”

아픔 가득한 신음소리에 단원들 모두 눈이 돌아가 따갑게 소리쳤다.

“던져!”

“빨리 꺼!”

퍼벙. 

치지직.

소화볼과 휴대용 소화기가 두 사람에게 집중됐다.

뭉게뭉게.

소화볼이 터지며 발생한 하얀 가루가 사방에 날렸다.

이내 그 속에서 황대산과 고수현이 손으로 연기를 휘저으며 다시 나타났다. 꺼멓던 방화복이 하얗게 돌변해 있었다.

“후우우, 그만, 그만!”

“멈춰요. 괜찮으니까 멈추라고!” 

두 사람이 소리치고야 모두 손을 멈췄다.

“대산 선배, 수현 선배!”

“얘들아!”

우르르.

태건을 시작으로 오광휘 단장과 단원들이 모두 가까이 다가갔다.

황대산과 고수현이 동시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탄식을 가득 뿌렸다.

“푸우우.”

“후욱, 후우욱.”

내뱉는 숨소리와 눈동자가 가늘게 흔들렸다.

그러더니 곧 고수현이 파르르 떨리는 눈으로 말했다.

“불에 삼켜지는 줄 알았어.”

“남, 남자가……. 남자가……. 푸우우.”

황대산이 애써 자신을 다잡으려 했지만 쉽지 않아 보였다.

불에 깔렸던 그 순간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소방관인 그들조차 두려움에 몸서리치고 있었다.

오광휘 단장이 바로 태건과 다른 단원들에게 말했다.

“얘들 열외.”

“물론입니다.”

“지성이가 좀 지켜보고 있어.”

오광휘 단장은 당장 떠날 사람처럼 말했다.

처음 목표이자 목적인 요구조자들, 고립된 소방관들을 구하러 가야하는 탓이다.

그 우선순위에는 아무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단장님, 중헌 선배, 저, 이렇게 바로 움직이시죠.”

“그래. 그러……. 엇!”

“음?”

터덕.

오광휘 단장과 태건을 각각 붙드는 손길이 있었다.

황대산과 고수현이었다.

죽음의 공포에 떨던 모습이 아니다.

두 눈에 독기를 넘어선 무언가가 가득했다.

“저희를 빼고 뭔 구조를 합니까.”

“황대산이, 그 상태로 어딜 가겠단 거냐!”

오광휘 단장이 매섭게 다그쳤다. 

그때 고수현의 더욱 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막내야. 이 불새끼들, 내가 죽여 버릴 거야. 다 구하고 그 새끼들 씨를 말려버릴 거야!”

“수현 선배. 마음은 알겠지만…….”

“씨파. 내가 당하고는 못 살아. 출동 가방 어디 있어!”

소리친 고수현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후두둑.

불에 잔뜩 그을린 흔적들이 떨어졌다.

그것만 보더라도 방화복은 제 기능을 잃어버렸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출동가방으로 다가가 새로운 방화복을 꺼냈다.

그 옆엔 황대산이 어느새 합류해 있었다.

“여벌이 이래서 필요한 거라니까.”

“생전에 불 앞에서 방화복을 갈아입을 줄이야.”

터덩.

산소통을 내려놓고 환복하는 움직임이 꽤 날렵했다.

이대로 물러서지 않을 모양이다.

불과 싸워 이기고픈 오기가 바짝 올라 있었다.

그 기세에 공포심마저도 밀려나 보였다.

오광휘 단장이 태건을 포함한 단원들과 빠르게 시선을 교환했다.

‘그냥 놔둬?’

‘말리다 시간 다 보낼 겁니까.’

‘그래도 아플텐데…….’

그 시선 끝에 태건이 있었다.

탈탈.

갑자기 손목을 짚는 행동을 했다.

그 의미는 너무도 명확했다.

시간.

어떤 상황이 펼쳐져도 시간은 절대 멈추지 않는다.

모두 아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다시금 일깨웠다.

“푸우우!”

오광휘 단장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리고 묵직하면서도 차가운 지시를 내렸다.

“둘은 놔두고 우리끼리 간다. 움직여!”

“뭐요?”

황대산이 눈을 크게 떴다.

그 순간 태건이 그의 앞을 지나치며 자극했다.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요……. 갑시다!”

터더덕!

태건은 출동가방에서 비상용 소화용품만 챙겨 들고 뛰어갔다.

정말 황대산과 고수현을 외면한 모습이었다.

지금은 태건의 판단이 옳았다.

오광휘 단장이 그쪽으로 방향을 돌리며 덧붙여 말했다.

“빨리 와라.”

“먼저 갑니다.”

“나도!”

이지성과 유중헌이 바로 뒤를 따랐다.

뒤에선 황대산과 고수현이 이를 북북 갈았다.

“빨리 갈아입고 따라붙자!”

“이런 썅. 안 버리고 간다며!”

휙휙.

방화복을 갈아입는 움직임이 더욱 신속해졌다.

투덜거렸지만 그들도 왜 단원들이 먼저 움직였는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를 쫓으려 부리나케 움직였다.

한편.

앞서 달린 태건은 달리는 속도를 최대한으로 끌어올렸다.

파바박!

복도를 딛는 발소리부터 거칠었다.

그런 태건의 두 눈엔 남다른 각오가 가득했다.

‘빨리 요구조자부터 해결해야 해.’

그래야 황대산과 고수현이 편히 쉴 수 있다.

단원들이 마음 편하게 숨을 고르려면 요구조자 구출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태건은 그런 각오로 움직였다.

그건 오광휘 단장, 유중헌, 이지성도 마찬가지였다.

“더 빨리!”

“움직여. 무브무브!”

파바박!

다급한 모두의 움직임에서 얼마나 쫓기고 있는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그렇게 달린 그들은 곧 C구역에 근접했다.

검은 연기가 가득 밀려나오고 있었다.

그 속이 어떤지 가히 상상이 되지 않았다.

“여기 맞아?”

“일단 밀고 들어가!”

“먼저 갑니다!”

휙.

태건은 지체없이 C구역으로 뛰어들었다.

C구역에 들어선 태건이 가장 먼저 본 건 불의 벽이었다.

거의 2미터에 다다르는 거대한 불길이 벽을 이룬 채 모든 걸 차단하고 있었다.

콰르르르!

“이런, 쉣!”

태건의 두 다리가 반사적으로 멈췄다.

터덕!

뒤따라 온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헤에엑!”

“이건 대체 뭐야!”

“이 속에 사람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휙!

이지성은 인내심이 부족한지 바로 몸을 돌렸다.

그런데 그때였다.

턱.

오광휘 단장이 그를 붙들었다.

“잠깐만.”

“왜요. 저 속에 누가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저렇게 불타고 있는데!”

척.

이지성이 손짓까지 하며 부정적으로 소리쳤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휙!

이지성의 옆을 누군가 보란 듯이 지나쳐갔다.

바로 태건의 모습이었다.

“…….”

파바박!

태건이 향하는 장소는 다름 아닌 불벽이었다.

달려가는 기세가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다.

불의 벽이다.

그것도 화학물질로 이뤄진 불의 벽.

그걸 관통한단 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았다.

온갖 화학물질들이 방화복에 달라붙어 같이 타오를 터였다.

그 모습이 상상됐는지 유중헌이 대번에 격해지며 버럭 소리쳤다.

“멈춰, 이 미친놈아!”

같은 시각.

태건은 불의 벽을 향해 맹렬히 돌진했다.

‘인위적으로 만든 거야!’

추측이 아닌 확신이었다.

일명 ‘맞불작전.’

산에서 화재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일부러 불을 지르는 경우가 있다.

경력이 좀 되는 소방관들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방법이다.

그걸 불벽이 스스로 증명하고 있었다.

사고로 발생한 화재는 저렇게 일정하게 발생하지 않는다.

그뿐이 아니었다.

태건은 불벽을 본 순간 불의 흐름을 읽어갔다.

아무리 견고한 불도 틈이 있기 마련이다.

후루룩, 후룩!

이리저리 밀고 밀리는 불길이 순간 틈을 허용했다.

그 틈으로 본 건 바로 사람이었다.

어느새 태건은 타오르는 불벽 앞에 도착했다.

타다닥……. 팟!

“아자자!”

그대로 뛰어오른 태건은 불벽을 뚫고 그 속으로 들어갔다.

그걸 지켜본 오광휘 단장이 눈을 질끈 감았다.

“저 자식은 왜 또 저래. 왜 불만 보면 달려드는 거야!”

“또, 또 라고요?”

“지금 그거 말할 여유 없어……. 에라이, 신발. 나도 간다!”

파바박!

오광휘 단장이 비장한 뜀박질로 불벽을 향해 달렸다.

“어, 어어……. 에잇, 나도!”

유중헌이 그 뒤를 바짝 쫓았다.

그러나 이지성은 아니었다.

“나까지 휩쓸린 순 없지.”

그의 중얼거림이 끝난 바로 그때였다.

휙휙!

“우어어어!”

“아으아으아!”

이지성의 양옆으로 황대산과 고수현이 번개 같이 지나갔다.

그것도 무거운 출동가방까지 들고 있었다.

그들도 봤는지 앞선 단원들과 똑같이 불벽 안으로 뛰어들었다.

그 순간 눈을 끔뻑이던 이지성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우……. 이럼 내가 비정상이잖아!”

파바박!

거부하던 이지성은 자석에 끌려가듯 달리더니 끝내 불벽으로 몸을 날렸다.

불벽 속.

활활 타오르던 불길을 좌우로 찢으며 태건이 나타났다.

터덩, 촤악!

바닥을 제대로 딛지 못해 넘어졌다.

거기에 달려온 가속도가 더해졌는지 쭉 밀리기까지 했다.

“커윽. 으으…….”

태건은 온몸에서 느껴지는 아픔에 앓는 소리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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