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그런 태건의 귀에 소스라치게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어엇, 저, 저 사람 누구야. 어떤 미친놈이 저걸 뛰어넘어 왔어!”
그 소리에 태건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적당히 거리를 둔 곳에 방화복을 입은 소방관들이 한데 뭉쳐 있었다.
그 인원은 꼭 6명이었다.
여기저기 그을린 자국들이 얼마나 처절하게 버텼는지를 알게 했다.
그들은 고립된 소방관들이 분명했다.
드디어 찾았다.
‘아!’
그걸 인지함과 동시였다.
태건은 볼썽사나운 모습 그대로 거수경례를 했다.
척.
“라텔, 특수소방단입니다. 여러분들을 구조하러 왔습니다.”
그 말에 고립된 소방관들은 크게 당황했다.
선임으로 보이는 소방관이 황당하단 손짓과 함께 한 마디 했다.
“구하러 왔다고요? 같이 구조되러 온 게 아니라?”
“끄응. 그러니까…….”
스윽.
태건이 욱신거리는 몸을 일으키며 부가설명을 하려 했다.
그때 또 한 번 불의 커튼이 좌우로 벌어지며 오광휘 단장이 나타났다.
꽈당.
“커윽, 아아아.”
심하게 넘어졌는지 앓는 소리에 눈살이 찌푸려질 정도였다.
그를 본 고립된 소방관들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뭐, 뭔데 또 저길 넘어오는 거야.”
“입 닥치고 당장 가서 살펴……. 뭐야. 또 있어?”
따끔하게 소리치던 선임 소방관이 크게 움찔했다.
훅, 훅, 훅, 훅!
불벽이 마치 자동문처럼 계속 열렸다.
그 틈으로 유중헌, 황대산과 고수현, 이지성이 순차적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들은 거의 동시에 도착해 제각각 나뒹굴었다.
터더더덩!
“커으으.”
앓는 소리가 진하게 울렸다.
그들의 모습에 고립된 소방관들은 정신이 없다 못해 얼빠진 표정으로 변했다.
“어어? 또, 또또? 며, 몇 명이야. 여섯 명?”
“저 새끼들 목숨이 두 개야? 누가 불 속에 뛰어들라고 했어. 어떤 놈이야!”
너무 놀라 걱정의 말이 따갑게 울려퍼졌다.
그들이 고래고래 소리칠 때였다.
처억.
제일 먼저 일어난 태건이 그들을 다시 눈에 담았다.
여섯 명이 호흡기 세 개를 나눠 쓰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이 전부였다.
‘요구조자……. 아!’
의아해하던 태건의 눈빛이 이내 짙게 변했다.
고립된 소방관들 뒤에 널따란 철판이 세워져 있었다.
사람 키보다 조금 낮았다.
그 위로 세 사람이 각각 호흡기 커버를 덮고 있었다.
그렇게 고립된 소방관들이 요구조자들을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었다.
그들이 어떤 희생을 감수했는지도 한 눈에 파악이 됐다.
태건은 말없이 고립된 소방관들에게 다가갔다.
“…….”
턱, 턱.
그리고 두 팔 벌려 가까운 소방관들을 가볍게 포옹했다.
“우리 이제 나가서 아이스커피 한 잔 하시죠.”
후르륵.
뒤에 불벽이 타오르고 있었다.
그와 상반될 정도로 이질적인 차분한 권유였다.
그런데.
지금 태건이 한 말.
그날 이채용 팀장과 박성규에게 하고팠던 말이다.
이 말이 그날부터 계속 맴돌고 또 맴돌았다.
끝내 하지 못한 말을 이들에게 대신 전하고 있었다.
고립된 소방관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다 이내 가슴을 한 대 강하게 얻어맞은 느낌을 받았다.
자신들은 살기 위한 발버둥이었다.
요구조자를 끝까지 지키기 위해 호흡기까지 내줬다.
동료들이 찾아올 거라 믿고, 또 믿으며 무너지려는 자신을 끊임없이 다잡아야 했다.
그 시간이 너무도 지옥 같았다.
그런데 그걸 생판 처음 보는 태건이 알아줬다.
불쑥 솟아오른 먹먹함이 삽시간에 온 마음을 진동시켰다.
“그, 그, 그…….”
“흐흐흡!”
“허흡, 흐흐.”
다들 들썩이는 가슴을 억누르기 급급했다.
그런 그들에게 오광휘 단장과 단원들이 다가섰다.
오광휘 단장의 두 눈이 글썽였다.
처억.
고립된 소방관들에게 다가선 그는 눈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살아있어서, 버텨줘서……. 고맙습니다.”
“…….”
그들은 답이 없었다.
그러나 파르르 떨리는 입술과 충혈된 눈으로 모든 심정을 보이고 있었다.
가슴이 간질거리는 순간이었다.
그 시간 다른 단원들은 철판 뒤로 돌아갔다.
“다들 괜찮으십니까?”
“혹시 부상……. 없으면 이상하지. 응급처치부터 하겠습니다.”
“같이 해.”
“나도.”
우르르.
다가간 단원들은 요구조자들을 신속히 살폈다.
그 사이 태건과 오광휘 단장은 고립된 소방관들의 산소통을 교체해줬다.
텅, 텅!
“이걸 들고 여기까지 왔다고요……. 허어.”
“…….”
다들 놀라워했지만 태건과 오광휘 단장은 못 들은 척했다.
공치사는 나가서 해도 늦지 않았다.
잠시 후.
그릉.
끌리는 소리와 함께 철판이 치워졌다.
그런데 요구조자들이 없었다.
대신 방화복 차림의 소방관들이 세 명 더 늘어 있었다.
“이쪽은 준비 끝.”
“…….”
이어서 이지성이 말없이 고갯짓만 했다.
응급처치를 했고, 당장 움직이는데 무리가 없단 의미였다.
고립된 소방관들도 호흡이 여유로워 한층 더 힘이 나는 모양이었다.
그렇게 탈출할 준비가 모두 갖춰졌다.
스스슥.
태건이 묵직한 눈빛으로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제 나갈 시간입니다.”
그때 40대로 보이는 소방관이 불벽을 가리키며 물었다.
척.
“저길 다 같이 뛰어나가잔 겁니까?”
“이 스마트한 시대에 누가 그런 엄한 짓을 합니까.”
오광휘 단장이 넉살 좋게 답하며 손가락을 튕겼다.
딱!
갑작스러운 신호였다.
그러나 특수소방단은 기다렸단 듯이 행동에 나섰다.
각자 챙겨둔 소화볼부터 불벽에 던졌다.
퍼버버벙!
폭발음이 연속적으로 들려왔다.
단단히 쌓은 불벽에 일부 틈이 생겼지만 아직 충분하지 않았다.
“버텨?”
순간 라텔 모두가 진하게 으르렁거렸다.
그리고 번개 같이 휴대용 소화기를 탈탈 털어 전부 쐈다.
치지이익!
이어진 공격에 불벽이 심각 타격을 받았는지 흐물흐물 거리고, 여기저기 구멍이 뻥뻥 뚫렸다.
“꼬시다.”
그걸 본 모두가 차갑게 입꼬리를 들썩였다.
여기까지 오며 속수무책으로 당했던 걸 조금이나마 갚아줬단 통쾌함도 그려졌다.
하지만 아직 탈출한 게 아니다.
이제 첫 발을 내딛을 때다.
오광휘 단장이 주머니 깊이 담아둔 일반 무전기를 들고 외쳤다.
띠릭.
“라텔 단장이 알립니다. 요구조자 및 소방대원들 발견 및 탈출 준비 완료!”
-띠릭. 정말이십니까.
“곧 만나게 되실 겁니다.”
-띠릭. 비상계단 확보, 그쪽으로 내려오십시오……. 지금 전부 3층으로 마중 나가는 중이랍니다.
박두영 대응총팀장의 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광휘 단장이 무전기를 내리며 말했다.
“그럼 움직입시다!”
“자자, 선두부터, 그리고 요구조자분들, 우리는 뒤에서!”
타다닥!
단원들의 통솔하에 순차적으로 탈출 길에 올랐다.
탈출하는 길이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았다.
아직 C구역은 진입 전인 모양이었다.
이글이글.
곳곳에서 타오르는 불꽃의 열기가 강렬히 느껴졌다.
소방관들은 별 문제 없었다.
요구조자들은 생애 처음 겪는 일이라 고통스러워했다.
“크으으.”
“아으으.”
방화복을 입고 있는데도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훈련을 받지 않은 이들에겐 당연한 반응이었다.
같이 달려가던 태건이 오광휘 단장에게 눈짓을 줬다.
슥슥.
그 눈짓을 본 오광휘 단장이 바로 외쳤다.
“밀집대형으로!”
차작!
일순간 라텔과 소방대원들 모두가 요구조자들과 거리를 바짝 좁혔다.
사전에 어떤 모의를 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눈치코치로 알아듣고 일치단결한 모습을 보여줬다.
소방관들은 한데 모여 온몸으로 열기를 막았다.
그 속에 자리한 요구조자들은 그제야 살만해진 듯 했다. 그런 그들의 표정은 기쁨이 아닌 미안함이 짙게 드리워 있었다.
“이러지 않으셔도…….”
“다들 힘드실 텐데요.”
호흡기 커버 속 눈꼬리가 축 내려가 애잔함을 짙게 내보였다.
소방관들의 대표로 오광휘 단장이 답했다.
“저희는 이게 편하고 좋습니다.”
싱긋.
환한 미소가 함께 했다.
불길 가득한 곳에서 어울리지 않는 태연한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요구조자들에겐 한결 안도가 되는 듬직한 미소였다.
모두 밀집대형을 유지하며 A구역으로 향해갔다.
그러던 중 갑자기 소리가 울렸다.
-삐빅삐빅.
현장에서 울리기엔 너무 엉뚱한 소리라 그쪽으로 모두의 시선이 향했다.
이지성이 방화복 안쪽으로 손을 넣고 있었다.
그 상태 그대로 심드렁하게 말했다.
“알람입니다.”
“출동할 땐 좀 꺼 놓지.”
오광휘 단장이 주변을 의식하며 눈치를 줬다.
그런데 태건의 표정은 일순간 딱딱하게 굳어졌다.
바로 이지성에게 물었다.
“선배, 제가 부탁한 알람 맞습니까, 얼마나 지난 거죠?”
“15분.”
이지성이 딱딱하게 답했다.
그 의미에 대해 갸웃거리던 특수소방단원들 모두가 눈치챘다.
“실종 대원들!”
시간이 벌써 이렇게나 지났다.
1초도 낭비하지 않았지만 다시 마음이 급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태건이 다급히 오광휘 단장에게 말했다.
“전 이대로 올라가겠습니다.”
“혼자는 안 돼.”
턱.
만류하는 오광휘 어깨를 고수현이 짚었다.
“제가 같이 가겠습니다.”
“고수현이, 너도 부상자야.”
“무슨 말씀이십니까. 제가 어디 부상을……. 윽.”
절뚝!
고수현이 갑자기 다리를 절며 인상을 찌푸렸다.
순식간에 다가선 태건이 그의 허벅지를 무릎으로 툭 건드린 모습이었다.
이어서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한 마디 내뱉었다.
“모를 줄 알았습니까.”
“……내가 괜찮다니까!”
“계단 올라가야 합니다. 뒤처지면 챙길 여유 없습니다.”
“이 정도로 뒤처지지 않아, 그리고 원래 너랑 내가 같이 가기로 했어!”
고수현이 독이 오른 눈빛으로 반발했다.
억지가 통하지 않자 처음 수립한 작전을 다시 언급하기까지 했다.
투웅.
황대산이 묵직한 발걸음으로 다가와 고수현을 막아섰다.
“그건 그때 일이고, 다쳤음 빠져.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도 남자의 자세야.”
“그럼 황 선배도 열외.”
태건이 뒤에서 말하자 황대산이 거칠게 돌아보며 쏘아붙였다
휙!
“난 왜!”
“…….”
터억.
태건은 말없이 어깨를 짚었다.
동시에 그의 얼굴이 확 일그러졌다.
“큭.”
“이래서요. 그리고 더 입씨름할 시간 없습니다.”
태건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그리고 황대산과 고수현을 차례로 노려봤다.
이런 시간도 아깝단 느낌이 스산하게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