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167)화 (166/320)

167화

서로 위험을 무릅쓰겠다고 아웅다웅했다.

그 모습에 요구조자들이 괜히 움찔거리며 움츠러들었다.

자신들을 찾으러 온 여정이 만만치 않았단 걸 온통 엉망이 된 방화복이 증명해주고 있었다.

거기다 불길을 뚫고 들어온 모습까지 봤다.

그래서 더 죄책감을 느끼는 모양이었다.

“우, 우리가 일부러 있었던 건 아닌데…….”

“갑자기 폭발하고 불이 나서 피한 거였는데…….”

요구조자들 뿐이 아니다.

소방관들의 표정도 썩 좋지 않았다.

“그러고 또…….”

“이건 아닌 거 같은데…….”

자신들이 뒤로 빠지는 게 영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오광휘 단장의 귀가 꿈틀거렸다.

그 모든 뇌까림이 흘러들어온 탓이었다.

‘저 자식들이.’

인상이 팍 구겨졌다.

동시에 크게 걸음을 디뎌 단원들에게 다가갔다.

처억.

“다들 주둥이 다물어라.”

“단장님. 지금…….”

“고수현이, 여기 현장이야.”

그는 강렬한 눈빛으로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그제야 모두 자신들만 있는 게 아니란 걸 다시 상기했다.

“…….”

“…….”

일순간 침묵이 가득했다. 

화르륵.

이 순간에도 불길은 멈추지 않고 세를 키워갔다.

여기 조금 더 머물면 뒷일을 장담할 수 없을 터였다.

곧 오광휘 단장이 단호하게 결정 내렸다.

“나, 중헌이, 막내. 이렇게 셋이 간다.”

“위험…….”

“닥치라고 했어. 그리고.”

오광휘 단장이 말을 뚝 끊었다.

다들 멈칫하며 그에게 집중했다.

그제야 오광휘 단장이 뒷말을 이어갔다.

“황대산, 고수현, 이지성. 책임지고 모두 안전하게 대피시켜. 난 너희들을 불 속에서만큼은 절대적으로 믿는다.”

쿠궁.

단장의 지시사항이다.

이내 호명받은 세 단원이 굳게 답했다.

“알겠습니다.”

태건은 그런 오광휘 단장의 단호함에 속으로 감탄했다.

‘누가 뭐래도 단장님은 단장님이야.’

척, 척.

두 손은 빠르게 새로 출동가방을 꾸렸다.

유중헌도 마찬가지였다.

3개의 적당한 가방에 옮겨 담았다.

“이것들은 필요하고. 이건 가져가면 좋은데, 과하면 안 되고…….”

척척척.

필요할 거라 예상되는 걸 닥치는 대로 담았지만 기동성까지 고려해야 하기에 무게도 신경 썼다.

그렇게 대답을 들은 오광휘 단장이 몸을 돌렸다.

언제 굳어있었냔 듯이 초승달로 만든 눈과 함께 미소로 요구조자들에게 말했다.

“저희 애들이 안전한 곳까지 편안히 모셔드릴 겁니다.”

“아, 네.”

순간적인 분위기 변화에 요구조자들이 어정쩡하게 답했다.

오광휘 단장은 바로 이어서 소방관들에게도 말했다.

“어리고 부족한 녀석들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잘 좀 도와주십시오.”

“그렇게 하겠습니다.”

최선임 소방관이 나서서 굵직하게 답했다.

이로써 장내 정리가 끝났다.

처저적.

다들 새로운 출동 가방을 목에 걸었다.

묵직했지만 움직임에 크게 지장 줄 정도는 아니었다.

이내 태건이 타이밍 맞춰 외쳤다.

“그럼 출발합…….”

의욕을 끌어올리던 그때였다.

-퓌이이이!

-퓌리리!

갑자기 요구조자들이 맨 산소통에서 휘파람 소리가 찢어지게 울렸다.

낯선 소리에 그들은 무척 당황했다.

“건, 건드린 거 없는데!”

“왜 이런 소리가…….”

휙휙.

둘러보고 살펴보는 움직임이 부산했다.

반면

소방관들 표정은 다급해졌다.

이 소리.

산소통의 잔여량이 부족할 때 나는 소리다.

요구조자들의 산소통을 바라보는 태건의 눈빛이 바로 가늘어졌다.

‘저건 소방관들이 메고 있던 거야.’

소방관들 산소통은 자신들이 가져온 예비 산소통으로 교체한 상황이다.

그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더욱 분위기가 딱딱하게 변해갔다.

분위기가 굳어졌다고 몸이 굳어진 건 아니었다.

사삭.

특수소방단 모두가 재빨리 출동가방을 뒤적였다.

그러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산소통이…….”

“여분이 없습니다!”

난처한 정도가 아니라 정말 큰일 났다.

그 순간 태건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산소통 게이지를 확인했다.

어느새 빨간 칸에 상당히 접근해 있었다.

계속 격하게 움직인 탓에 산소를 많이 소모한 거였다.

그래서 요구조자들을 구조할 수 있었기에 그 시간에 대한 후회는 없었다.

앞으로 필요한 공기량부터 가늠하기 바빴다.

‘올라갔다가……. 음음.’

태건의 미간에 깊게 주름이 패였다.

실종된 소방대원들을 만나 공기를 나눠야할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그다음이 도저히 가늠되지 않았다.

결국 태건은 생각을 털어버렸다.

그리고 오광휘 단장과 유중헌에게 낮게 말했다.

“가려면 지금뿐입니다.”

“그, 그래. 맞아. 지금뿐이야.”

서로 뻔히 짐작되는 위험을 일부러 눈 가리고 아웅했다.

그 정점을 오광휘 단장이 찍었다.

“……그래, 움직이자! 황대산이, 잘 모시고 내려가.”

휘휙.

태건과 두 단원은 동시에 돌아섰다.

이어서 다리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다급히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때 뒤에서 소방대원들이 움찔하더니 곧 격하게 소리쳤다.

“우리도 가겠습니다!”

“우리 동료입니다!”

처억.

정말 움직일 기세였다.

그런 그들을 황대산이 산만한 덩치로 바로 막아섰다.

“당신들은 지금 멀쩡한 줄 압니까.”

“그래도.......”

“지금 우리가 도망치는 겁니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잖습니까. 남자답지 못하게 왜 질척거립니까!”

황대산이 대놓고 면박을 줬다.

요구조자들의 보호가 더 중요하단 걸 강하게 강조하는 거였다.

거기에 이지성이 특유의 비틀린 뉘앙스로 한 마디 콕 짚어 줬다.

“눈앞에 지켜야 할 게 있는데, 그걸 외면하고 뭘 하자는 거야. 그게 무슨 소방관이란 건지.”

“…….”

결국 소방대원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다.

소방관의 제 1원칙은 그 어떤 경우에도 절대적이었다.

이렇게 그 문제가 일단락되나 싶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뒤쪽에 조용히 있던 두 명의 소방관이 뜬금없이 급발진했다.

“에라이이잇!”

“가자아아!”

파바박!

그들은 태건이 사라진 방향을 그대로 쫓아갔다.

그 순간 최선임 소방관이 재빨리 손을 뻗었다.

“이 녀석들……. 엇!”

“그걸 놓치면 어쩝니까!”

“저 꼴통 새끼들, 아우. 또 저러네.”

소방관들이 울화통 터져 했다.

그 모습에 황대산이 다가가 굳은 얼굴로 물었다.

“뛰어간 소방관들, 대체 누굽니까?”

“저희 팀 막내들입니다. 이거 면목이 없습니다. 당장 복귀시키겠습니다.”

스윽.

최선임 소방관이 바로 무전기를 들었다.

그때 황대산이 그의 무전기를 슬그머니 내렸다.

스윽.

그러면서 알듯말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피차 막내 때문에 고생이 많습니다.”

“맞습니다. 하여간 막내가 뭔 벼슬인 줄 안다니까요.”

“불 속에 몇 번 넣었다가 빼도 정신 못 차리는 게 막내니까요.”

고수현과 이지성이 갑자기 한목소리로 막내를 험담했다.

그 소리에 최선임 소방관이 당황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도 어서 움직입시다.”

“저희 막내들이…….”

“우리 막내가 더 독합니다. 자자, 더 지체하면 불에 삼켜지겠습니다.”

단장 대리인 황대산이 모두를 다그쳤다.

사삭.

모든 소방관들이 재빨리 요구조자를 다시 둘러쌌다.

그런 대형을 유지하며 이동하기 시작했다.

B구역을 통과하던 중이었다.

아까 내던졌던 소방호스 2개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뒤로 LED 가이드라인의 빛이 길게 이어지고 있었다.

황대산과 고수현은 재빨리 소방호스를 낚아챘다.

물줄기로 불길과 연기를 쫙쫙 밀어냈다.

촤아악!

“이제 됐어. 이거면 비상계단까지 문제없어!”

“가이드라인 보이시죠. 그 빛 따라 이동하면 됩니다. 서둘러요!”

두 사람의 목소리에 힘이 가득 서렸다.

이지성은 요구조자들의 몸 상태에만 온전히 집중했다.

“다리 다친 분, 이거 부목으로 쓰세요. 그리고 등 다친 분은 허리를 가급적 펴지 마시고, 부축받으세요. 머리 충격받은 분도 버티지 말고 소방관들에게 의지해요.”

상처받고 자란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요구조자를 대하는 모습이 따뜻했다.

그 부분은 어느 현장이고 한결같았다.

이지성의 삐딱함에 가려진 본성이 어떤지 알 수 있었다.

같은 시각.

태건과 오광휘 단장, 유중헌은 진즉 LED 가이드라인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화르륵, 뭉게뭉게.

사방이 불길에 연기가 가득이었다.

특히 A구역에 들어서자 아까 폭발한 화학 건축 자재들이 엄청나게 기승을 부리고 있었다.

어마하게 커다란 공간이라 불의 득세가 거셌다.

일순간 몰려오는 열기가 엄청났다.

“크으으!”

“에라, 몰라!”

“뚫어!”

터더덕!

말 그대로 밀어붙였다.

시간 없어 죽겠는데 불길 따위에 발목 잡히는 건 사절이다.

불이 뭐 어쨌는데!

사람 목숨값이 백만 배 무거웠다.

그 심정으로 LED 가이드라인을 따라 죽어라 내달렸다.

그렇게 달리던 중이었다.

일정 부근 이상을 지나자 불길과 연기가 상당히 줄어들었다.

“뭐야?”

“벌써 다 탔다고?”

너무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가 낯설었다.

그 이유를 비상계단에 접근할수록 알아챌 수 있었다.

타다닥.

“오!”

“좋네요.”

“굿!”

세 사람이 차례로 짤막한 탄성을 자아냈다.

무전으로 들은 대로 소방관 10여 명이 올라와 있었다.

촤아악!

각자 소방호스로 사방을 방수하며 안전한 퇴로를 확보 중이었다.

“곧 도착한다니까 최대한 밀어내!”

“이 지겨운 새끼들, 이제 좀 꺼져라!”

“제발 다들 무사해야 해. 다들!”

짜증, 신경질, 애원까지.

온갖 감정들이 물줄기에 담아 불을 밀어내고 있었다.

곧 태건과 두 단원이 비상계단에 다가섰다.

아니, 그대로 지나쳐 4층으로 치고 올라갔다.

쌔앵.

“수고하십시오.”

“고생하십니다!”

“곧 올 거예요.”

파바박!

두 계단씩 성큼성큼 올라간 그들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방수하던 소방관들이 일순간 멈칫하며 서로를 바라봤다.

“뭐, 뭐야?”

“쟤들, 박 팀장님네 애들 아니야?”

“목소리가 아니던데, 잠깐만 그대로 4층으로 올라간 거 아냐?”

“거기 난리 났는데……. 허억, 뭐해. 네 명 빨리 지원 가!”

끔뻑거리던 소방관들이 갑자기 부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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