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그때 두 명의 소방관이 또 나타났다.
“지나가겠습니다!”
“이따 뵙겠습니다!”
파바박!
그들도 똑같이 4층으로 치고 올라갔다.
또 한 번 순식간에 지나쳐간 이들 탓에 소방관들은 정신이 쏙 빠졌다.
“지금 그 목소리, 성철이 아냐?”
“뒤에는 강우 목소리인 거 같던데.”
“뭐어? 박 팀장님네 꼴통들?”
“저 새끼들은 또 왜 저래, 지원 뭐해. 빨리 올라가!”
아차한 소방관들의 모습은 부산함에서 다급함으로 돌변했다.
그 사이 태건과 두 단원은 벌써 4층에 근접하고 있었다.
불과 1층이다.
그런데 냉동창고의 1개 층은 아파트 4개 층과 맞먹었다.
그만큼 올라야 할 계단도 많았다.
타다다닥.
태건이 선두로 계단을 박차 오르고 있었다.
거의 끝에 다다를 무렵이다.
우뚝!
갑자기 멈춰서며 손을 뻗고 소리쳤다.
“스톱!”
“갑자기 왜!”
“크으으, 젠장. 수그려!”
휙!
태건이 재빨리 몸을 돌리며 자세를 낮췄다.
영문 모를 모습이지만 오광휘 단장과 유중헌은 그대로 따라했다.
그와 동시였다.
퍼버벙!
4층에서 폭발과 함께 불똥이 폭죽처럼 터져 날아왔다.
…….
다행히 대비하고 있어 아찔함을 넘길 수 있었다.
웅크리고 있던 오광휘 단장이 놀라 얼른 태건에게 소리쳐 물었다.
“뭔데!”
“앞에 건축 자재들이 왕창 쌓여 있습니다.”
“뭐어? 쓰벌, 공사는 2층하고 3층에서만 하고 있었다며!”
“자재만 먼저 들여놓은 모양입니다.”
태건이 몸을 펴며 마저 답했다.
오광휘 단장은 팽그르르 굴린 머리로 정황을 짚어냈다.
“그럼 뭐야, 실종된 대원들은 이걸 봤단 거잖아. 그래서 위험요소를 파악하려고 남아 있었단 거고, 내 통밥이 맞지?”
“저도 동감입니다만 문제는 4층과 5층, 어디서 실종됐는지 모른단 겁니다.”
태건이 쓴 목소리를 냈다.
무엇보다 다급한 상황이라면서 그 자리에서 더 올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콰아아. 퍼버벙!
크고 작은 폭발이 계속되고 있었다.
푸슝, 파바밧!
이리저리 튀는 불똥은 보기만 해도 섬뜩했다.
불길이라면 천 겹을 둘러도 뚫고 갈 자신이 있다.
그러나 폭발은 달랐다.
자칫 말려들면 뒤가 없었다.
게다가 시간은 자꾸만 흐르고 있었다.
실종 대원들의 위치 파악조차 안 된 상황이라 답답하기만 했다.
“아씨, 머리 아파지네.”
태건의 입에서 짜증 가득한 진심이 터져 나왔다.
그때 유중헌이 뜬금없는 말을 건넸다.
“태건아, 미안한데, 머리가 더 아파질 거 같아.”
“네?”
“아래.”
스윽.
유중헌이 손가락으로 아래쪽을 가리켰다.
…….
태건과 오광휘 단장의 시선이 자연스레 아래로 내려갔다.
때마침 폭발에 묻혔던 발소리들이 들려왔다.
파바박.
의아함이 가시기도 전에 두 명의 소방관이 계단을 박차고 올라왔다.
“헉헉. 드, 드디어, 후우욱.”
“따라잡았, 헉헉. 습니다.”
거친 숨을 헐떡이는 소방관들이 낯설면서도 낯익었다.
오광휘 단장이 갸웃거리며 물었다.
“혹시 조금 전에 우리 만났던가요?”
“네, 고립된 소방관들……. 푸우우. 저희도 함께 하겠습니다!”
숨을 길게 내쉬며 강렬한 의지를 보였다.
오광휘 단장은 그런 그들의 각오를 응원하는 게 아니라 꾸짖었다.
“이 사람들이, 지금 우리가 뭐하러 가는지 몰라서 이래!”
“압니다!”
“아는 사람들이 이런다고? 여차하는 순간 당신들이 다쳐, 우리가 챙겨줄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입니다. 그러니까 당장 내려가요!”
버럭버럭.
오광휘 단장은 진심으로 화를 냈다.
유중헌은 소방관들의 방화복 끝을 붙들며 덧붙였다.
“정말 위험해요. 이렇게 시간 끌 상황도 아니고요.”
“알고 있습니다. 절대 방해되지 않을 테니까 돕게만 해주십시오. 저희 선배님들입니다!”
“이거 참. 이러면 안 되는데…….”
유중헌은 미간을 좁히며 난처해했다.
그때 소방관들이 한 명씩 단호한 각오를 밝혔다.
“선배님들을 불 속에 놔두고는 도저히 내려가지 못하겠습니다.”
“다쳐도, 혹은 죽는대도, 여러분들이 버리고 가도, 절대 원망 안하겠습니다. 정말입니다!”
핑!
호흡기커버 속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태건은 그런 그들을 빤히 바라봤다.
목소리와 말투가 조금 딱딱하고 경직되어 있었다.
그래서 물었다.
“실례지만 소속과 성함이?”
“이천소방서 현장대응1팀 소방사 송강우입니다!”
“같은 팀 소방사 최성철입니다.”
차례로 답하자 태건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흐음.”
그때 오광휘 단장이 불쑥 나타나 물었다.
“소방사라고, 몇 년 차야?”
“1년 조금 넘었습니다.”
“……이런 소방공무원 임용서류에 잉크도 안 마른 자식들이, 떽!”
오광휘 단장이 버럭 소리쳐 나무랐다.
그러나 그들의 눈빛은 흔들림 없이 굳건했다.
“버리고 가셔도 저희는 쫓아갑니다.”
“라텔이 할 수 있으면 저도 할 수 있습니다!”
터덕!
소방관들은 그대로 계단을 마저 오르기 시작했다.
그걸 두고 볼 오광휘 단장이 아니었다.
척.
“뭐 이런 강태건 같은 새끼들이 나타나서 머리 아프게 하고 난리야.”
“저는 갑자기 왜요?”
뒤에서 태건이 항의했다.
그 순간 오광휘 단장이 거칠게 째려보며 의미심장한 반문을 건넸다.
“양심 있냐?”
“저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래. 니가 더 했지.”
휙!
오광휘 단장은 할 말만 하고 다시 소방관들을 바라봤다.
갑자기 된서리 맞은 태건은 어이가 없었다.
“그럴 사정이 있었다니까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습니까. 벌써 몇 초를 잡아먹었는지 아십니까!”
울컥하던 태건이 원론적인 문제를 거칠게 언급했다.
오광휘 단장이 뒤를 가리키며 소방관들에게 말했다.
“들었지. 형들이 엄청 바쁘거든, 그러니까…….”
“저희는 무조건 갈 겁니다!”
“아, 진짜. 확 밀어 버릴까보다!”
발끈한 오광휘 단장을 유중헌이 얼른 말렸다.
“여기 계단이에요. 밀면 얘들 큰일 나요.”
“불 속에 뛰어들어서 큰일 나는 거보다는 덜 큰일 날 거 아냐!”
“그건 그렇긴 해요.”
유중헌은 그 부분에선 이견 없이 납득했다.
대화가 가벼워 보였지만 실상은 엄청 날카롭고 따가운 분위기였다.
가뜩이나 4층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발이 묶여 조급했다.
그런데 발목 잡는 소방관들이 나타났으니 머리끝까지 화가 차올라도 과하지 않았다.
그 심정을 오광휘 단장이 고스란히 소리쳐 말했다.
“이 자식들아, 지금 실종된 분들이 몇 층에 계신 줄도 모르는 상황인데, 여기서 이러고 있어야 되겠냐!”
“저희가 안다면요?”
송강우가 대놓고 도발해 왔다.
오광휘 단장이 믿을리 만무했다.
“이 자식이 진짜, 너희들!”
그때 태건이 오광휘 단장의 어깨를 잡았다.
턱.
그리고 대신 나서서 소방관들에게 물었다.
“확실히 압니까?”
“압니다. 실종되기 직전 교신 내용을 분명히 기억합니다.”
“그럼 앞서요.”
스윽.
태건은 바로 길을 열어줬다.
그 모습에 오광휘 단장이 발끈했다.
“지금 뭐하는 거야!”
“먼저 가라고 했습니다.”
“너 진짜…….”
“저 친구들이 알려줄 거 아닙니까.”
태건이 뚱하니 답했다.
더 시간 끌지 말고 소방관들에게 선택을 일임하잔 의미였다.
“…….”
오광휘 단장은 말없이 길을 열었다.
올라갈 수 있다면 얼마든지 올라가란 느낌이었다.
소방관들은 허락을 받았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그럼 앞서겠습니다.”
“따라오시면 됩니다!”
타다……. 우뚝.
기세 좋게 뛰어 올라갔지만 금세 멈췄다.
-퍼버벙.
-콰아아아!
폭발과 화염의 향연 탓이었다.
“어, 어어…….”
“…….”
둘 다 그 자리에 굳은 듯 멈춰 있었다.
의욕과 실전은 확실히 달랐다.
일반적인 화재라도 머뭇거릴 상황인데 폭발하는 모습을 보니 엄두가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태건이 그런 그들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래서 실종대원들은 어디 계시죠?”
“…….”
“당신들이 그렇게 소리쳐 강조한 각오와 의욕의 실체는 결국 허세 아닙니까?”
“아, 아닙니다.”
최성철이 반발했다.
그 순간 태건의 눈빛이 독기를 넘어 살기를 가득 뿌렸다.
지이잉!
“이 새끼들아.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 그걸 무기 삼는 게 허세가 아니라고?”
“그, 그게…….”
“이거 하나는 말할게. 니들은 따라오다 뒤져도 슬프지 않아. 니들이 지금 감추고 있는 그곳에서 단지 선배란 이유로 고통 받는 그분들이 안타까울 뿐이지.”
“감추려는 게 아니라, 저희도 같이……. 같이하고 싶단 겁니다!”
송강우가 억울한지 빽 소리쳤다.
그러나 태건의 잡아먹을 듯한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럼 앞서라고. 따라간다고. 그런데 왜 이러고 있어!”
“……씨, 씨바, 허세 아니라고!”
파박!
송강우가 버럭 소리치며 정말 계단을 뛰어 올라갔다.
최성철도 그러했다.
“선배님들 지금 갑니다. 으, 으아악!”
온갖 비명을 지르며 동시에 움직였다.
그제야 태건의 눈빛에 독기가 살짝 누그러졌다.
“완전히 허세는 아니네.”
“이 자식아, 지금 그걸 말이라고, 저 새끼들 당장 잡아야지, 왜 이러고 있어!”
오광휘 단장이 다가와 멱살을 잡을 듯 따졌다.
바로 그때였다.
촤아악!
아래에서 물줄기들이 솟구쳐 올라왔다.
“거기, 기다려요!”
“호스 연장하기 더럽게 힘드네. 늦어서 미안합니다!”
파바박!
소방호스를 뿌리며 올라오는 소방관들이 나타났다.
태건이 그들을 향해 손을 들며 크게 화답했다.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만 기다려요. 계속 연장하면서 지원할 테니까.”
“그때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습니다.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대답한 태건은 재빨리 몸을 돌렸다.
이어서 계단을 박차고 올라가려는 순간 오광휘 단장이 매섭게 노려봤다.
“알고 있었냐?”
“중헌 선배가 알려줬습니다. 전 그럼 먼저.”
사삭.
태건은 물을 얻어맞으며 그대로 뛰어 올라갔다.
그 뒤를 유중헌이 벌써 축축해진 방화복으로 뒤따랐다.
지나치는 순간 오광휘 단장에게 말했다.
“전 계속 사인 보냈어요. 단장님이 못 보신 거예요.”
“입은 뭐 했어. 왜 지금 말하는데!”
파바박!
오광휘 단장도 뒤따라 계단을 박차며 쓰게 타박했다.
태건은 앞선 소방관들을 뒤쫓았다.
4층을 그대로 통과해 다음 층계를 뛰어오르고 있었다.
‘5층이었네.’
천만다행이었다.
4층이었다면 아찔했다.
그러나 5층에 대한 정보도 없었다.
아직 안심하긴 너무도 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