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9화
곧 태건이 5층 마지막 계단에 올라섰다.
위로 이어진 계단은 옥상으로 향하는 길일 터였다.
‘여길 이렇게까지 돌아서 오다니.’
다시 생각해도 우여곡절 가득한 현장이었다.
그런 생각도 이 순간은 사치였다.
파바박.
재빨리 5층에 본격적으로 들어섰다.
5층은 4층 상황과 상당히 달랐다.
여기저기 불길이 보이고 연기도 자욱했다. 그러나 폭발하거나 미친 듯 솟구친 불길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 그렇게 타오를 화학 건축 자재들이 보이지 않았다.
‘4층까지만 자재를 올린 모양이야.’
대신 해체한 기존 보냉제, 각종 파이프와 사다리들이 즐비했다.
여기도 위험요소가 사방에 가득했다.
그렇다고 해도 4층과 비교하면 천국이었다.
그런 안도감은 잠깐이었다.
이미 흘러간 시간은 어떤 여유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소방관들은 비상계단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씩씩.
독기 가득한 눈빛으로 태건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이제 허세가 아닌 거 알겠습니까!”
“지금 그걸 저한테 증명해서 뭐합니까.”
“…….”
“이럴 시간에 조금이라도 수색에 도움이 될 행동을 하는 게 맞습니다.”
동시에 태건은 어깨 주머니 속 무전기를 붙들었다.
띠릭.
“핸섬라텔, 단장조 현재 5층 도착. 화물 승강기 강제개폐 방법 구두로 설명 가능합니까?”
-띠릭. 그게, 좀 있어봐. 우리는 3층 비상계단 접근. 내가 보면서 설명해줄게.
고수현의 난감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사이 오광휘 단장과 유중헌이 5층에 도착했다.
무전 소리를 어설피 들었는지 오광휘 단장이 빠르게 물었다.
“그래서 알려줄 수 있대?”
“기다려 보랍니다.”
“시간 없어 죽겠는데……. 나랑 중헌이가 먼저 찾아볼게.”
오광휘 단장이 빠르게 판단 내렸다.
그때 최성철이 뭔가를 들고 다가왔다.
차랑.
특이한 모양의 열쇠들이 한데 뭉쳐 있었다.
“여기 열쇠 있습니다. 제가 막내라 이런 건 제 담당입니다.”
“이런 거라니, 얼마나 중요한 건데. 빨리 열기나 해요!”
“잠시만요. 흐읍!”
철컥, 구구구.
화물 승강기 문을 열쇠로 가볍게 돌린 최성철이 힘을 줘 끌어올렸다.
‘열쇠가 있었다니……. 나 참.’
순간 황당한 태건이었지만 현재 상황에서는 너무도 다행인 일이었다.
최성철이 힘들어하는 게 보이자 재빨리 옆으로 가서 받쳤다.
“흐읍!”
그그그.
그 옆에 다른 화물 승강기 문 앞에 오광휘 단장과 유중헌, 송강우가 재빨리 다가섰다.
“거기, 열쇠 좀!”
“여, 여깄……. 습니다!”
휙.
최성철이 힘겹게 열쇠 꾸러미를 던졌다.
바로 받아든 오광휘 단장도 재빨리 열쇠로 간단히 문을 열고, 셋이 같이 들어올렸다.
곧 양쪽 승강기 문이 허벅지 높이까지 열렸다.
슈슈슉.
연기가 그 속으로 쭉쭉 빨려 들어갔다.
그때 고수현의 무전이 들려왔다.
-띠릭. 막내라텔, 이제 설명한다. 그러니까…….
“선배, 해결했습니다. 바로 내려가십시오.”
-띠릭. 이따가 듣자고. 얼른 모시고 내려와. 지금 밖에 굴삭기 대기 중이래. 모두 나오면 건물 외벽을 일부 부숴서 진화한다고 해.
고수현의 무전은 거기까지였다.
그래도 경험상 얼추 눈치 챌 수 있었다.
화재가 쉽사리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보다 강경한 방법으로 선회한 모양이다.
이렇게까지 무섭게 타들어간다면 그게 더 현명할지도 몰랐다.
태건은 숨 쉴 틈도 없이 소방관들에게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디로 가면 됩니까.”
“F구역입니다. 이쪽입니다!”
타다닥!
소방관들이 전속력으로 내달렸다.
태건과 두 단원은 곧장 뒤따랐다.
‘어디 있는지 안다더니 잘 아네.’
‘저 내비게이션들, 쓸 만한데?’
‘이제 더 이상 변수가 없길.’
각자 속으로 한 마디씩 중얼거렸다.
계속 엄습하는 불안함을 조금이나마 낮추려는 그들만의 노력이었다.
달리는 사이사이 불길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나 듬성듬성 빈 곳이 있었다.
태울 재료는 적었고, 공간은 무척이나 넓은 탓에 불길이 무턱대고 타오를 수가 없는 구조였다.
사삭, 휙휙.
그 불길들을 때로는 좌우로 피하고, 때로는 뛰어넘으며 전진했다.
B구역으로 들어설 즈음이었다.
아직 소방관들이 앞서고 있었다.
“훅훅. 선배님들!”
“라텔보다 우리가 헉헉, 먼저 도착할 거야.”
중얼거리는 소리들이 가늘게 들려왔다.
경쟁심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진정 실종대원들이 걱정돼서 서두르는 모습이었다.
의욕은 넘쳤지만 그걸 뒷받침할 체력이 썩 훌륭하지 않았다.
터더덕.
예감대로 달리는 속도가 조금 늦어졌다.
바로 그때였다.
태건과 오광휘 단장, 유중헌이 순식간에 앞으로 치고 나왔다.
휙휙휙.
“그 속도로 언제 도착합니까!”
“니들 안 되겠다, 좀 쉬었다가 와.”
“먼저 갈게요!”
그렇게 지나쳐간 세 명은 더욱 속도를 높여 F구역으로 달려갔다.
순식간에 역전당한 소방대원들은 믿지 못했다.
“서에서 우리가 헉헉, 제일 빠른데.”
“더 멀어져. 안 돼. 헉헉. 얼른, 끄응!”
더 속도를 내려 했지만 반대로 느려졌다.
기초체력의 격차가 상당했다.
게다가 라텔은 기본 장비 외에 출동 가방을 하나씩 더하고 있었다.
세 명의 라텔은 순식간에 F구역에 들어섰다.
그때까지 달렸는데도 숨 한 번 거칠어지지 않았다.
우면산 정상까지 매일 뛰어오르며 단련한 폐활량은 정상 수준을 훨씬 넘어서 있었다.
이제 예상되는 구역에 들어섰다.
태건이 지체 없이 소리쳤다.
“이제부터 샅샅이 뒤지면 됩니다!”
“다행이야. 연기도, 불도 엄청 적어!”
“시간도 적습니다!”
“이 정도 불길이면 위험하지 않잖아. 흩어져서 찾아!”
사사삭.
오광휘 단장이 외침과 동시에 세 갈래로 흩어졌다.
태건은 오른쪽으로 돌았다.
F구역은 5개의 구역 중 가장 안쪽에 위치해 있었고 면적이 제일 좁았다.
그럼에도 한 눈에 담지 못할 만큼 엄청나게 넓었다.
그런 F구역 곳곳에 작업대가 세워져 있었다. 그 주변에는 해체한 자재와 해체하다가만 자재들까지 뒤섞여 있어 위험했다.
후욱, 후욱.
숨을 최대한 아껴가며 두 눈으로는 실종대원들을 찾았다.
‘빨리, 시간이 없어.’
뚝, 뚝.
압력게이지는 어느새 빨간색에 도달하기 직전이었다.
시간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실종대원을 발견하고 데리고 나갈 때까지 버틸 공기가 아슬아슬했다.
그것도 태건이 혼자 사용했을 때 계산이었다.
만약 실종대원의 산소통이 비어 있다면?
그때는…….
태건이 막 생각이 미치던 찰나였다.
쓰러진 작업대를 발견했다.
유일하게 그 작업대만 쓰러져 있었다.
‘설마?’
타다닥!
태건은 재빨리 그쪽으로 달려갔다.
도착과 동시에 작업대 아래 깔린 소방관 두 명을 발견했다.
A소방관이 B소방관을 끌어안은 모습이다.
문제는 소방관들이 미동도 하지 않는단 부분이었다.
바로 무전기부터 눌렀다.
띠릭.
“막내라텔 실종대원들 발견, 속히 집결 바랍니다!”
-띠릭. 어디야, 어디!
오광휘 단장의 목소리가 무전기 속에서 다급히 들려왔다.
그러나 태건이 다시 무전할 필요는 없었다.
타다닥.
저쪽에서 오광휘 단장과 유중헌이 각각 달려오고 있었다.
태건은 작업대부터 들어봤다.
“끄응!”
들썩.
무게가 상당한지 약간의 흔들림만 있었다. 이 상태로 괜히 더 움직였다가는 부상자들의 아픔만 가중시킬 터였다.
다들 도착하면 한 번에 옮기는 게 더 좋았다.
‘상태가!’
사삭.
재빨리 자세를 낮춘 태건은 실종대원들을 살폈다.
호흡기커버로 인해 두 눈 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런, 씨.”
공기 중에 검은 연기가 가득 퍼져 있어 무턱대고 벗겨낼 수도 없었다.
척.
일단 맨손으로 A소방관의 방화복 앞섶을 살짝 열고 목에 손을 대봤다.
곧 경동맥의 울림이 느껴졌다.
투둑, 투둑.
‘너무 빠른데? 그래도 최악은 아니야. 다음.’
이번엔 아래 깔려 있는 B소방관에게 똑같이 행동했다.
그 사이 오광휘 단장과 유중헌이 도착했다.
“어때, 괜찮아?”
섣부르게 건드리지 않고 소리쳐 묻기만 했다.
그 판단이 현명했다.
덕분에 방해받지 않고 파악한 태건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아니요. 그런데 둘 다 심박수가 엄청 빠릅니다.”
“의식은 전혀 없어?”
“네. 아마 작업대랑 같이 넘어지면서 그 충격을 고스란히 받은 거 같습니다. 지금까지 파악된 걸로 보자면요.”
태건은 말끝에 단서를 달았다.
제한이 있는 상태라 다방면으로 살피지 못한 탓이다.
이번엔 유중헌이 먼저 말했다.
“들어야지 않아?”
“최대한 빨리요. 위치 잡죠.”
스윽.
태건은 그대로 일어나 양손을 작업대 다리 아래쪽에 받쳤다.
쇠파이프와 철판을 얼기설기 역은 작업대로 공사장에서 흔히 사용하는 거였다.
오광휘 단장과 유중헌도 재빨리 자세를 잡았다.
그때였다.
파바박!
“헉헉, 잠시만요!”
이제야 소방관들이 도착한 모양이다.
그러나 이제 F구역에 들어섰을 뿐, 작업대까지 남은 거리가 적지 않았다.
기다릴 생각?
처음부터 없었다.
태건은 단호하게 신호를 보냈다.
“……셋. 들어!”
“끄으응!”
세 사람이 동시에 얼굴 벌게지도록 힘을 썼다.
커다란 작업대라 한 번에 들어 올릴 수는 없었다. 대신 한 쪽 모서리를 축으로 굴릴 수는 있었다.
오광휘 단장이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더, 들어. 더더. 이제 한 번에……. 밀어!”
“으아차!”
터덩!
작업대가 90도 굴러 옆으로 나가떨어졌다.
그제야 실종대원들의 몸이 자유를 찾았다.
한 가지 더.
겹쳐져 있던 A소방대원과 B소방대원을 조심히 분리했다.
둘 다 등에 산소통이 달려 있어 옆으로 비스듬히 누운 자세였다.
“후우. 태건아.”
오광휘 단장이 숨을 한 번 크게 내쉬며 태건을 찾았다.
응급처치에 있어 이지성 다음으로 뛰어난 실력자인 탓이다.
태건도 얼른 다시 몸을 낮춰 소방관들을 자세하게 파악하기 시작했다.
슥슥.
“갈비뼈가…….”
그 사이 오광휘 단장과 유중헌은 접이식 들것을 펼쳤다.
차자작!
그 손놀림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신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