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척.
다시 무전기를 잡고 유중헌을 찾았다.
띠릭.
“막내라텔입니다. 운전라텔, 옥상 문 개방 가능합니까?”
-띠릭. 거기 아까 막혔……. 전자장치랬지, 올라가 볼게. 곧 연락 줄게!
다급한 목소리로 무전을 끝마쳤다.
오광휘 단장이 태건을 힐끗 쳐다보며 자그마한 목소리로 물었다.
“네 잔머리의 끝은 어디냐.”
“오늘 살아나가면 좀 더 이어지겠죠.”
“앞으로도 기대하자.”
척, 척.
오광휘 단장은 흘려 말하고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꼭 살아서 나가잔 말뜻이 함께였다.
‘획기적인 잔머리가 뭐가 있을까.’
이어서 움직이는 태건은 엉뚱한 생각을 떠올렸다.
그 또한 삶이란 전제를 둔 생각이었다.
송강우와 최성철은 솔직히 혼란스러웠다.
‘저 사람들 지금 무슨 상황인지 알긴 아나?’
‘어떻게 저렇게 태평한 소리를 하는 거지?’
밖에서는 난리였다.
정작 당사자인 본인들이 여유로워하니 이해하지 못했다.
그 속에 같이 있는 자신들의 불안함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후욱, 후욱.
불안감과 두려움에 호흡이 자꾸만 빨라졌다.
그러고 싶지 않지만,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임의대로 조절할 수가 없었다.
태건과 오광휘 단장의 배짱이 엄청나게 좋은 건 아니었다.
그저 단원들에 대한 믿음이 굳건했다.
유중헌이 좋은 소식을 들려줄 거다.
아니면 다른 단원들이 길을 만들어 줄 거다.
절대 위기 속에서도 분명 모두가 살 수 있을 길이 열릴 거다.
그 믿음이 강렬했기에 평온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정 안 되면?
‘매트 깔고 뛰면 되지……. 아, 5층이라 창문이 없다고 했지. 중헌 선배, 무조건 성공해야 합니다.’
다른 방법을 떠올리다 멈칫한 태건은 유중헌에게 모든 걸 떠넘겼다.
B구역을 한참 걷던 중이었다.
슥, 슥.
호흡기에서 공기가 흡입되지 않았다.
충전된 공기가 전부 소진됐다.
의식 없는 소방관들은 약간 여유가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때를 놓치는 거보다 차라리 조금 이른 조치가 나았다.
그 이유로 태건이 말했다.
“정지.”
처억.
“지금이야. 전체 호흡기 교체.”
오광휘 단장이 때맞춰 묵직한 말을 내뱉었다.
그와 동시에 모두 산소통을 벗어던졌다.
터더덩!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어느새 간이호흡기로 전부 교체했다.
후욱, 후욱.
멈췄던 호흡이 다시 이어졌다.
입으로만 숨을 쉬어야 했다.
입 외엔 모든 게 외부에 노출된 상태였다.
그러나, 그마저도 숨을 쉴 수 있음에 만족하고 감사했다.
‘이게 없었더라면…….’
오늘 정말 여럿 장례식 치를 뻔했다.
응급상황용이라지만 정말 이렇게까지 몰릴 줄은 태건도 미처 예상 못했다.
재정비를 마친 후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어느새 A구역의 반을 넘어왔다.
검은 연기를 직통으로 얻어맞아 눈물범벅이었다.
‘흐으으. 흐으으.’
따끔따끔한 눈을 비비지도 못하고.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어 환장할 지경이었다.
사실 어떻게 왔는지도 몰랐다.
눈물 가득 고인 시선으로 대충 방향만 잡고 걸어온 거였다.
다행히 불길은 없었다.
무엇보다.
그리고 지금 물고 있는 간이호흡기가 마지막이었다.
현재 위치에서 비상계단까지 거리는 걸어서 대략 1분 남짓이다.
아직 어디서도 이렇다 할 소식이 들려오지 않고 있었다.
두근두근.
태건의 심장이 조금씩 빨라졌다.
아무리 긴장하지 않으려고 해도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후욱.”
오광휘 단장의 숨소리가 잠시 크게 들려왔다.
그 또한 긴장하고 있었다.
송강우와 최성철은 말할 것도 없었다.
“흐읍, 흡……. 후우우, 흡!”
일부러 숨을 길게 내쉬었다가 멈췄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한 번 크게 숨을 쉬고 최대한 버티려는 계획인 모양이다.
그러나 점점 호흡의 간격이 좁아지고 있었다.
들것에 누운 소방관들의 상황은 정확히 가늠이 되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태건은 주머니 속에 최후의 간이호흡기를 하나 남겨두고 있었다.
‘이걸 사용하는 일은 없어야 할 텐데.’
생각은 그랬지만 어떻게 상황이 변할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숨을 쉰다는 걸 당연하게 생각했지만, 그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를 이렇게 일깨우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또 지나갔다.
하염없이 걸었더니 어느새 비상계단 인근에 도착했다.
터억.
들것을 조심스레 땅에 내렸다.
그제야 허리가 좀 펴지는 듯 했다.
“후우웁.”
태건은 반사적으로 호흡을 크게 들이쉬다 아차했다.
간이호흡기에서 흡입되는 공기량이 현저히 떨어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비상계단 근처로 다가갈 수가 없었다.
콰르르르!
4층에서 솟구친 불길이 얼마나 높은지 5층 초입까지 넘실거렸다.
가까이 다가갈 수조차 없을 정도로 열기가 강했다.
모두의 방화복은 이미 누더기가 됐다.
푸슈슈.
곳곳에서 푸석푸석한 연기가 피어오를 정도였다.
돌아오는 길엔 불길을 뛰거나 피할 수가 없어 그대로 뚫고 지나야 했던 탓이다.
방화복의 기능이 떨어져 열기를 더 강하게 느껴졌다.
그런 탓에 호흡의 간격은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흐으……. 읍!”
또 한 번의 숨을 들이쉬던 태건의 눈빛이 흔들렸다.
들어오던 공기의 양이 줄어들었다.
이젠 더 기다릴 수가 없었다.
“흡!”
태건은 최후의 간이호흡기를 오광휘 단장에게 건넸다.
“음?”
그도 몰랐는지 눈이 흔들렸다.
바로 그때였다.
터더덕.
태건은 있는 힘껏 두 다리를 박차 옥상으로 직행했다.
숨, 모자란다.
차라리.
“…….”
안 쉬면 된다.
숨을 참은 채 수십 개의 계단을 미친 듯이 박차고 올랐다.
‘다 살아야 해. 전부 다!’
태건은 이 사태에 이른 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다.
송강우와 최성철이 오지 않았다면 승강기 문을 열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필요했을지 모른다.
막말로 실종대원들을 지금 상태로 발견할 수 있단 확신이 없었다.
그들은 기대 이상의 일을 해줬다.
그때는 고맙고, 지금은 원망한다?
그렇게 앞뒤 다르게 살지 않았다.
그래서 모두를 살리고팠다.
이윽고 태건이 계단의 마지막에 다다랐다.
그런 태건의 눈이 찢어질 듯이 떠졌다.
‘중헌 선배!’
유중헌이 옥상 문 앞에 쓰러져 있었다.
“…….”
입에 살짝 거품이 엿보이는 게 호흡 문제로 추측됐다.
그런 그의 손은 어깨에 얹어져 있었다.
그리고 주변엔 뭔가 복잡한 기계장치가 해체되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
확실한 건 유중헌이 뭔가 알리려 했단 부분이다.
유중헌이라면?
성공했을 거란 믿음을 세웠다.
실패했다면 더 이상 어떤 희망을 바랄 수 없었다.
이판사판이라면 부딛치는 게 태건의 방법이다.
‘이런, 썅!’
태건은 그대로 옥상 문을 향해 돌격했다.
터더덕!
옥상까지 뛰어올라온 태건에게 지금 한 줌의 공기가 너무도 절실했다.
그 절박함이 필사적인 몸부림을 가능케 했다.
“크아아아아!”
콰앙!
그대로 온몸으로 부딪쳤다.
그와 동시였다.
끼이익.
옥상 문이.
굳게 닫혀 있던 옥상 문이…….
열렸다.
유중헌이 끝내 해낸 거다.
“후우웁, 으아아아!”
숨을 크게 들이마신 태건은 힘껏 포효했다.
같은 시각.
굴절사다리차의 바스켓이 옥상으로 치솟았다.
모든 장비를 착용한 황대산, 고수현, 이지성이 한달음에 달려왔다.
“태건아!”
“끄으응, 안에, 빨리!”
태건은 어느새 유중헌을 끌어내며 소리쳤다.
휙휙휙.
단원들은 재빨리 둘을 지나쳐 아래로 내려갔다.
태건은 연기를 마셔 약간 몽롱했다.
그러나 의식을 잃은 유중헌을 이대로 두고 쓰러질 수 없었다.
“서, 선배!”
툭.
투박한 손길로 코와 입을 가렸다.
느껴지는 호흡이 너무 희미했다.
“…….”
그 순간 태건의 머릿속이 더욱 헝클어졌다.
죽음?
안 돼.
“숨 쉬어!”
콰앙!
태건은 두 주먹을 모아 사정없이 유중헌 가슴을 내리찍었다.
간절함이 하늘에 닿은 모양이다.
미동도 없던 유중헌의 입에서 숨이 터져 나왔다.
“커어어억, 쿨럭쿨럭. 허억, 헉헉헉.”
그 숨소리를 듣고야 태건은 유중헌 위에 쓰러졌다.
스스슥.
“푸우우. 숨 쉬기 더럽게 힘드네.”
태건은 그렇게 잠시 쉬며 숨을 마음껏, 원 없이 쉬었다.
잠시 후.
오광휘 단장을 시작으로 모두가 옥상에 올라왔다.
“에이그그. 머리통이야.”
연기를 한껏 흡입한 탓에 지끈거리는 머리를 붙들고 있었다.
그 옆에선 유중헌이 가슴에 한 손을 얹고 있었다.
“전 왜 가슴이 두들겨 맞은 듯이 아플까요.”
“태건이가 쳐서 숨 쉬게 했다잖아.”
“제가 태건이한테 잘못한 게 많은 가요?”
“나 머리 아프다니까, 니들 문제는 니들이 알아서 하세요.”
휙.
오광휘 단장은 아예 몸을 돌려버렸다.
다른 장소에 송강우와 최성철이 누워 있었다.
그들도 연기를 마신 후유증에 괴로워하고 있었다.
“으으으.”
“커윽, 쿨럭.”
연기가 폐를 건드렸는지 기침소리도 간간이 들려왔다.
상태가 썩 좋지 않았다.
그래도 모두 살았다.
‘그럼 된 거 아냐?’
태건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옥상 한편.
황대산과 고수현이 의식이 없는 소방관들을 굴절사다리차에 실려 내려보내고 있었다.
“조심히 내려요!”
“천천히!”
기이잉.
굴절사다리차의 바스켓이 천천히 아래로 움직였다.
그 사이 이지성이 생수병을 들고 다가왔다.
태건에게 건네며 자신이 살핀 걸 말했다.
“여기 물. 둘 다 숨이 멈춘 건 아니었으니까 뇌손상은 없을 거야.”
“다행이네요. 그보다 이제 끝난 거죠?”
“아직 여기 불타고 있어. 우리가 내려가야 본격적으로 진화작업을 시작하겠지.”
“오늘은 진화작업까지 절대 못합니다.”
태건의 단호한 밀어내기에 이지성은 고갯짓하며 수긍했다.
“그거까지 도와달라면 양심 없는 거지.”
“어휴. 진짜 이런 지독한 현장은 사양입니다.”
촤아악.
쓴소리와 함께 태건은 생수를 머리 위에 쏟아 부었다.
이어서 그대로 뒤로 드러누웠다.
벌러덩.
“후웁, 공기 좋고. 여름이라 하늘은 끝내 주네!”
그렇게 태건은 퍼져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