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172)화 (171/320)

172화

뒷일에 대해선 당장 생각할 정신도 없었다.

모두 살았단 사실이 중요했고, 그 속에 실종된 소방관들이 함께라 더욱 뿌듯했다.

조심스레 하늘 위에 이채용 팀장과 박성규를 그려봤다.

‘아직 9번은 더 해야겠죠?’ 

순수하게 소방관들에 대한 구조만 카운트하는 거다.

그 사실을 아무도 몰라줘도 상관없었다.

아찔할 정도로 위험한 순간도 있었지만 이젠 모두 지난 일이었다.

“아, 좋다.”

지금은 가슴 가득한 뿌듯함만 느끼기도 벅찼다.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됐다.

이천시 소재 어느 종합병원의 6인실.

특수소방단 5인이 환자복 차림으로 각각 병상을 점거하고 있었다.

그런 모두를 이지성이 쓴 얼굴로 바라봤다.

“뭔 출동만 하면 환자들이 속출하는지.”

삐딱한 소리에 어깨에 깁스를 한 황대산이 발끈했다.

“이지성이, 저번 현장에선 너만 입원했었어!”

“맞아. 어제 깁스 푼 네가 할 말은 아니지.”

허벅지까지 압박붕대를 둘둘 감은 고수현이 뚱하니 덧붙여 말했다.

그때 이불을 들추며 일어난 오광휘 단장이 버럭 소리쳤다.

풀럭.

“이 자식들아, 쉬는데……. 쿨럭쿨럭. 싸우려면 나가서 싸우라니까!”

“맞습니다. 최소한 중헌 선배가 저러고 있는데, 쿨럭, 큼큼. 다투는 건 아니라고 봅니다.”

태건이 인상을 팍 찌푸리며 대미를 장식했다.

“…….”

투덕거리던 모두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제야 태건은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삑삑.

“후우……. 후우…….

유중헌이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었다.

그 옆에 ECG도 자리해 있었다.

심정지까지 왔던 부상이라 호흡기에 여파가 없을 수 없었다.

생명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좀 더 원활한 치료를 위해 의료기기를 동원한 거였다.

그래도 안쓰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 그를 향한 태건의 눈꼬리가 축 내려가 있었다.

“에휴. 쿨럭……. 크흠.”

숨을 내쉬던 태건은 잔기침을 터트렸다. 현장에서 연기를 마셨던 태건도 완전히 무사할 수 없었다.

그런 태건에게 오광휘 단장이 말했다.

“크게 염려할 정도는 아니라잖아.”

“압니다. 폐에 남아있는 먼지덩어리들, 크흠. 녹이는 중이란 것도 같이 설명 들었고요.”

“은근히 깡다구 있는 녀석이니까, 쿡, 큼. 곧 털고 일어날 거야.”

오광휘 단장은 좋게 말했지만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 또한 걱정이 없다면 거짓말일 터였다.

정작 대화하는 태건과 오광휘 단장도 중간중간 터져 나오는 기침을 삼켜야 했다.

병실 분위기가 우중충해져갔다.

태건은 괜히 기지개를 켜며 중얼거렸다.

“흐으음. 불은 다 껐나?”

스윽.

일부러 중얼거리며 휴대폰을 들었다.

검색할 것도 없이 포털사이트 뉴스 메인창에 관련 소식이 떠올라 있었다.

-(속보)이천 냉동창고 화재현장, 전소 공표.

-관련기관들 언론브리핑 준비 중.

-사상자 공식 집계 현황. 사망 0명 부상 27명.

-특수소방단 전원 입원, 금산에 이어 2번째. 중상 3명 경상 3명.

마지막 기사를 본 태건이 눈살을 찌푸렸다.

“기사가 정확해야지. 큼큼. 이렇게 부상자를 부풀리면 안 되지.”

목이 불편한데도 끝까지 불만을 표했다.

다들 기사 제목을 확인했는지 넌지시 덧붙여 말했다.

“난 왜 또 부상인데.”

“이건 좀 그렇다, 대충 듣고 쓰셨네.”

“중상 1명에, 경상 4명이다, 짜식들아. 대체 누가 당사자 허락도 없이 중상자로 둔갑시킨 거야?”

기사에 대한 갖가지 반응들이 흘러나왔다.

그때 병실 문이 열렸다.

그릉.

우석진 정책과장의 등장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그의 표정이 굳었고, 분위기도 상당히 가라앉아 있었다.

“흠.”

처억.

그가 들어섬과 동시였다.

오광휘 단장이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나 거수경례했다.

“일동 차렷, 쿨럭. 크흠. 라텔. 회복 중.”

“라텔, 편히 쉬어.”

“편히 쉬어.”

척.

오광휘 단장이 손을 내리며 병상에 걸터앉았다.

병실 분위기는 의외로 덤덤했다.

그동안 우석진 정책과장이 많은 편의를 봐준 탓이다.

이젠 자신들과 한배를 탔단 확신을 품고 있었다. 그래도 상관이기에 풀어질 정도로 편한 모습은 아니었다.

괜스레 헛기침을 한 단원들이 슬쩍 그의 양손을 바라봤다.

“흠흠.”

“크흠.”

그런데 아무것도 없었다.

약간 기대하던 표정들이 이내 씁쓸하게 변했다.

우석진 정책과장도 눈치챘는지 표정을 확 일그러뜨렸다.

“내가 자네들 간식 사다주는 사람인가?”

“아닙니다.”

“그리고 출동할 때마다 이렇게 병원 신세라니. 쯧.”

못마땅한 표정과 함께 혀를 찼다.

그 순간 병실 분위기가 훅 가라앉았다.

스스슥.

얼음장 같은 차가움이 자리하며 단원들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그중에서도 태건의 표정이 살벌했다.

참지 않고 바로 질문했다.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 겁니까?”

“자네들이 고생하는 것도 알고, 현장 상황이 좋지 않았던 걸 모르지 않아. 그래도 매 출동마다 입원하는 건 좀 심하지 않나.”

“갑자기 그런 말씀을 하시니까, 크흠. 심히 당혹스럽네요.”

태건의 단어선정이 상당히 도발적이었다.

그 정도로 짜증이 짙게 자리했다.

그리고 갑자기 태도가 바뀐 게 신경을 자극했다.

우석진 정책과장의 표정도 썩 좋지 않았다.

“매 출동마다 이렇게 병문안 오는 내 심정은 어떤 줄 아나?”

“오시라고 말씀드린 적 없습니다.”

“뭐라고?”

우석진 정책과장의 눈꼬리가 바짝 올라갔다.

태건은 똑똑히 마주하며 차갑게 따지고 들었다.

“불과 얼마 전에 통화할 때만 해도, 쿨럭. 저희 일에만 몰두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랬지.”

“그런데 갑자기 왜 이러시는 겁니까.”

태건은 돌리지 않고 직설적으로 물었다.

그에 우석진 정책과장이 쓰게 말했다.

“특수소방단의 정말 실력이 뛰어난지 의심하는 말들이 들려와.”

“…….”

“자네들이 문제없이 해결을 해야 나도 할 말이 생길 거 아닌가.”

“그런 분들은 현장에 와보셨나요?”

태건이 콕 집어 물었다.

“크흠.”

우석진 정책과장은 괜히 헛기침으로 대답을 무마했다.

그때 이지성이 인상을 쓰며 결국 한소리했다.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고 있어.”

같은 입장에선 사이다 발언이었다.

그러나 우석진 정책과장의 심기를 제대로 건드렸는지 이마에 힘줄이 불쑥 솟아났다.

“이지성 단원, 지금 나 들으라고 한 소린가?”

“여기 누가 또 있습니까?”

“상당히 불쾌하군.”

우석진 정책과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지성의 삐딱한 성격이 그 정도로 꼬리를 감출 거라면 오산이었다.

더욱 도발적인 목소리로 자극했다.

“저도 기분이 상당히 더럽습니다.”

“뭐라고?”

빠직.

우석진 정책과장의 목소리가 일순간 높아졌다.

그때 오광휘 단장이 인상을 팍 찌푸리며 나서려했다.

“아니, 지금…….”

황대산과 고수현도 당장 푸닥거리를 할 기세였다.

“말씀이 좀…….”

“아무래도 그런 말씀은…….”

반발이 다각도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한 번 흥분하면 웬만해선 막을 수 없는 성격들이다.

모욕에 가까운 말을 들었으니 속이 뒤집어지는 모양이었다.

이대로 있다간 우석진 정책과장이 남은 병상에 누울지도 몰랐다.

태건은 곧장 병상을 박차고 일어나며 말했다.

“따로 얘기 좀 하시죠.”

스윽.

동시에 우석진 정책과장을 지나쳐갔다.

그 순간 그가 어이없어했다.

“강 단원이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지금 누가 누굴 나오라고…….”

“분위기 파악 못하십니까? 저 인간들 꼭지 돌면 못 말려요.”

“어디서 그런……. 크흠.”

스윽.

우석진 정책과장이 슬그머니 몸을 돌렸다.

자신을 향한 단원들의 살기를 온몸으로 느낀 탓이었다.

잠시 후.

태건은 휴게실에 들어섰다.

같은 층에 위치해 있고 유리로 벽이 쳐져 있었다. 환자나 보호자가 간단히 취식하거나 쉴 수 있게 만든 공간이었다.

다행히 그 안에 아무도 없었다.

확인하고 들어선 태건이 먼저 테이블에 앉았다.

그러자 뒤따라 우석진 정책과장이 자리했다.

…….

살벌한 분위기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곧 태건이 입을 열었다. 

“정말 혼란스러워서 묻는 건데, 큼큼. 갑자기 이러시는 이유가 뭡니까.” 

우석진 정책과장은 슬쩍 시선을 피하며 말했다.

“자네들 실력을 의심하는 말들이 나온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누가 그럽니까.”

“…….”

우석진 정책과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태건은 뭔가 눈치를 챘는지 눈이 가늘어졌다.

“지금 소방청 내 알력 싸움에 우리를 걸고넘어지는 겁니까?”

“흐음.”

“젠장, 지금 장난해요?”

태건이 급발진하자 우석진 정책과장이 멈칫했다.

“뭐라? 지금 나한테…….”

“쿨럭. 저희 오늘 다 죽을 뻔했습니다. 크흐흠. 심지어 유중헌 단원은 심정지까지 왔었단 말입니다!”

쾅!

태건이 테이블을 강하게 내리치며 외쳤다.

그 소리에 우석진 정책과장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무, 무슨……. 오 단장이 유선보고 할 때 그런 말 없었네만.”

“지금 상태 못 보셨습니까. 다들 폐에. 쿨럭, 연기 마셔서 후유증 앓고 있습니다.”

“…….”

“그런 상황인데도, 쿨럭. 간략하게나마 보고한 게 대단한 거 아닙니까?”

태건은 기침을 하면서도 끝까지 따졌다.

반면 우석진 정책과장은 적잖이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그, 그래도 상태를 제대로 알려줬어야…….”

“내일 아침에 정리해서, 쿨럭. 보고한다고 했잖습니까. 그걸 못 기다립니까?”

“…….”

“뒷말하는 인간들까지 필요 없습니다. 과장님은 현장에 들어와 보셨습니까? 직접 뛰어들어 보셨냔 말입니다.”

부르르.

테이블에 올린 주먹이 가늘게 떨렸다.

정말 화가 나고 울분이 차올라 주체하지 못하는 거였다.

그때였다.

승강기 방향에서 부산한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맞지?

-맞는 거 같습니다.

-몇 호실이랬지?

-간호사실에 물어보면 되잖아. 그리고 다들 병원인데 정숙해라. 정숙 몰라?

두두둥.

병원 건물이 진동할 정도의 움직임까지 감지됐다.

태건과 우석진 정책과장은 그쪽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정확하게는 태건이 살벌하게 노려보고 있었다.

“…….”

“…….”

우석진 정책과장은 생각이 많아 보였다.

그러던 중 휴게실 유리 너머로 검은 머리카락들이 불쑥불쑥 나타났다.

동시에 탄내가 훅 밀려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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