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태건과 우석진 정책과장의 코가 동시에 들썩였다.
“병원에서 탄내?”
“이렇게 진하게……. 화재인가?”
우석진 정책과장이 멈칫하며 추측을 말했다.
그 소리에 태건의 표정이 황당함으로 가득 물들었다.
“과장님, 현장 나가신 적은 있습니까?”
“뭐?”
“화재로 인해 이 정도 탄내가 나면 진작 경보기가 울려야 합니다. 킁킁. 이 냄새는……. 어?”
한 번 더 냄새를 맡아보던 태건이 멈칫했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냄새인 탓이다.
의아함에 유리벽으로 시선을 돌린 태건은 수많은 사람들을 발견했다.
“누가…….”
때마침 키가 큰 누군가가 나타났다.
유리벽 위로 솟아오른 그는 40대 초중반으로 스포츠형 머리를 하고 있었다.
무심코 시선을 돌린 그와 태건이 시선을 마주쳤다.
그 순간 태건과 상대가 동시에 놀라며 서로를 가리켰다.
척, 척.
“어? 어어?”
“에에?”
둘은 안면이 있었다.
태건이 오늘 현장에서 119구급차로 이송될 때 동승했던 구급대원이었다.
먼저 태건이 그의 이름을 소리 내 불렀다.
“김정규 구급대원?”
“강 단원……. 라텔 강태건 단원이 여기 있습니다. 여기요!”
휙휙.
김정규 구급대원이 갑자기 주변에 소리치며 손짓했다.
그와 동시였다.
주황색 기동복 차림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들어왔다.
몇몇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그들로 인해 태건은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모두 오늘 현장에서 잠시마나 함께 활약한 이천시 소속 소방관들이었다.
우르르.
얼마나 많았는지 휴게실에 쏟아져 들어오는데도 복도에 남은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태건은 놀라 얼른 일어나며 더듬거렸다.
“아니, 다들 여긴 어떻게…….”
그때 소방관들 사이로 박두영 대응총팀장이 나타났다.
그는 미안함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고생하시고, 또 저희 대원들을 무사히 구해주셨는데 어떻게 찾아뵙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저희만 고생했습니까. 다들 고생하셨죠.”
“그런 말씀 마십시오. 옥상에서 다들 기진맥진한 상태로 내려올 땐 정말 죄송했습니다.”
“뭐요.”
태건은 멋쩍어했다.
그러나 다들 겸손하기만 한 태건의 태도에 불만을 토로했다.
“강 단원님.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말 오늘 여러분들은 저희들에게 영웅이었습니다.”
“유 단원이었죠. 그분 괜찮으시죠? 심정지 후유증으로 바이탈 뚝 떨어지는데, 저희 심장도 같이 떨어질 뻔했습니다.”
“저희가 현장에서 산소통 회수하는데……. 와. 진짜 한 톨도 안 남아있더라고요. 정말 가슴이 얼마나 미어지던지요.”
“어떻게 그걸 말로 다 표현할까요. 어떻게 그 고생을 하셨는데 찾아오지 않을 수가 있을까요. 말도 안 돼요.”
꾸욱.
어떤 여성 소방대원은 가슴에 손을 모은 채 눈물을 글썽였다.
그녀뿐이 아니었다.
성별과 무관하게 진한 감사와 존경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박두영 대응총팀장이 우석진 정책과장의 뒷모습을 발견했다.
아차한 그가 조심스레 말했다.
“어이쿠, 누가 계셨네요. 저희가 너무 반가워서 그만……. 이거 실례가 많습니다.”
“박두영 팀장이라고 했던가.”
스윽.
우석진 정책과장이 천천히 고개 돌려 바라봤다.
박두영 대응총팀장은 눈이 휘둥그레 떠졌다.
“허업!”
얼른 정신 차린 그가 휴게실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
“일동 차렷!”
“…….”
척.
다들 영문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몸을 굳혔다.
이어서 박두영 대응총팀장이 대표로 소리치며 거수경례했다.
“안전!”
“안전, 쉬어……. 그런데 박 팀장, 내가 여깄는 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쉬어……. 아닙니다. 정책과장님.”
박두영 대응총팀장의 목소리는 바짝 긴장해 있었다.
다들 마찬가지였다.
‘쉬어.’라는 구령에 몸을 이완시키다, ‘정책과장’이란 직책에 다시 몸을 굳혔다.
“누구신데……. 헉, 정책과장님!”
“보, 본청 과장님이 여기까지 오셨…….”
“다들 조용히 해.”
뚝.
웅성거리던 소리들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
휴게실이 얼마나 고요한지 개미 지나가는 소리가 들릴 듯 했다.
이들 모습이 정책과장의 직위에 대한 정상적인 반응이었다.
그러나 그건 그들에게 해당되는 직위였다.
태건이 경직된 분위기를 읽었다.
‘정책과장이 뭐 대단하다고.’
심사가 비비꼬여 있어 속마음이 좋을 리 없었다.
더 솔직 하자면 우석진 정책과장의 권위를 땅으로 쳐 박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사회생활은 기분 따라 하는 게 아니었다.
최소한의 선을 지켜야 나중에 할 말이 생기는 법이었다.
그래서 태건은 애써 점잖은 말투로 우석진 정책과장에게 권했다.
“감사하게도 이렇게 문병 와주셨는데, 여기서 이럴 건 아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음. 박 팀장만 남고, 다들 가보도록 해요.”
우석진 정책과장은 박두영 대응총팀장을 명확히 호명했다.
그를 제외한 모두는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실례하겠습니다.”
“좋은 시간 되십시오.”
스르륵.
그 와중에도 한 마디 예의를 잊지 않았다.
돌아선 순간, 살았다란 표정을 짓는 건 태건이 잘못 본 게 아닐 터였다.
한마디로 어렵다 못해 부담스러운 상관이었다.
곧 휴게실엔 세 명만이 남았다.
우석진 정책과장이 여분의 의자를 뒤로 빼며 박두영 대응총팀장에게 권했다.
그릉.
“여기 앉지.”
“실례하겠습니다.”
그가 앉자 우석진 정책과장이 바로 붙든 이유를 말했다.
“오늘 현장에 대해 구두로 보고를 받을까 하네만.”
“아직 정리가 안 돼서……. 다른 소방서나 안전센터 쪽으로 취합할 내용들도 있어서 말입니다.”
“완벽한 걸 바라는 게 아니야. 생각나는 대로, 또 들은 게 있다면 들은 대로 쭉 얘기해 봐.”
“크흠. 그럼 출동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금일 오전…….”
그때부터 박두영 대응총팀장의 브리핑이 죽 이어졌다.
태건은 우석진 정책과장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봤다.
‘하루 종일 고생한 분인데, 쉬지도 못하게…….’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우석진 정책과장이 왜 현장에 대해 듣고 싶어 하는지 짐작했다.
다른 이의 시선으로 라텔이 어떤 활약을 했는지 듣고 싶은 거였다.
계급이 깡패라고.
태건은 마음에 안 들었지만 지금은 조용히 듣는 입장을 취했다.
박두영 대응총팀장은 현장 상황을 시간대별로 말했다.
브리핑 경험이 많은지 준비된 자료가 없는데도 상당히 체계적이었다.
그 속엔 라텔의 현장 도착부터 현장에서 겪은 고초와 활약, 마지막에 위험했던 순간까지 모두 담겨 있었다.
라텔을 119구급차로 후송한 후 본격적으로 진행된 진화 작전도 이어서 설명했다.
“라텔 후송 직후, 굴삭기로 창문 주변을 뜯어내어 배연을 원활하게…….”
태건은 그 내용은 몰랐던 터라 슬쩍 귀를 기울였다.
‘진짜 뜯어냈네.’
통상적으로는 사용하지 않는 형태라 속으로 조금 놀랐다.
그렇게 해야 했던 이유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이후로도 태건은 조용히 화재 진화 과정을 경청했다.
약 10여 분이 흐른 뒤였다.
테이블에 빈 음료수 캔이 여러 개 자리하고야 보고가 끝이 났다.
“……그렇게 마무리 짓고 왔습니다.”
“음. 그렇군. 얘기하느라 고생했어. 그만 일어나도 좋아.”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안전.”
척.
박두영 대응총팀장은 얼른 거수경례하고 휴게실을 나갔다.
10분 내내 떠들었던 일은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
우석진 정책과장과 함께한 자리가 더 불편한 모양이었다.
곧 휴게실 문이 닫혔다.
태건과 우석진 정책과장 사이엔 침묵만 감돌았다.
…….
그 침묵을 우석진 정책과장이 깼다.
“푸우우. 내가 크게 실수했군.”
“…….”
“이거 참.”
꾸깃.
빈 음료수 캔을 구기며 씁쓸해했다.
그제야 태건이 그를 향해 나지막이 물었다.
“도대체 과장님이 뭘 의식하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
“무슨 일이 있어도 밀고 나간단 뚝심의 뿌리가 그렇게 얕은 거였습니까.”
태건은 사정없이 푹푹 찔러댔다.
우석진 정책과장은 어떤 반박도 하지 못했다.
“면목이 없어.”
“계속 이러실 거면 정책국장님이나 차장님한테 저희를 넘기십시오. 저희도 선장이 흔들리는 배라면 언젠가 멀미를 할 테니까요.”
“그게 무슨, 절대 안 될 말이야.”
우석진 정책과장이 화들짝 놀라 완강하게 거부했다.
태건은 더욱 어이가 없었다.
“어디서부터 웃을까요?”
“…….”
“라텔이 허무하게 공중분해 될 수도 있습니다.”
“아니, 이 정도 일에…….”
그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려 했다.
그 순간 태건의 눈빛이 살벌하게 빛났다.
핑!
“이 정도 일이라고 하셨습니까?”
“…….”
“감히 장담 드립니다. 제 마음 돌리기가 제일 힘들 겁니다.”
“음? 아니…….”
우석진 정책과장이 멈칫하며 뭔가 말하려 했다.
그때 태건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릉.
“더는 못 있겠네요.”
“…….”
“안전하게 돌아가십시오.”
휙.
태건은 예의도 갖추지 않고 매정히 돌아섰다.
이게 태건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배려였다.
일전에 취객 사건 무마해준 공이 컸다.
‘젠장.’
부르르.
빚이 있어 어쩌지 못하고 있어 주먹이 떨려왔다.
태건은 그 길로 병실로 향했다.
턱, 턱.
우석진 정책과장은 뒤따라오지 않았다.
‘그렇겠지.’
자존심 강한 인물이다.
그런 말을 듣고 순순히 자신을 낮출 리가 없었다.
그런데.
돌연 태건의 눈이 가늘게 변했다.
분노만으로 이 상황을 판단하는 게 옳은지에 대한 고찰이었다.
저벅저벅.
어느새 병실 앞에 도착했다.
그 사이 태건의 머릿속 정리가 일단락 된 듯 했다.
“……어쩌면. 아니, 아마도.”
드륵.
의미 모를 말을 뇌까리며 문을 열었다.
문병이 끝났는지 병실 안엔 소방관들이 없었다.
우석진 정책과장과 다시 만나는 게 부담스러웠을 거다.
태건은 짧은 만남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태건은 우석진 정책과장과의 대화를 모두에게 알렸다.
그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이런 쓰벌. 장난해?”
“책상 앞에 앉아 주둥이로 떠드는 새끼들이 뭔 말이 많아!”
“현장 한 번 나가보지 않은 고위직들이 알긴 뭘 안다고.”
다들 불만을 넘어 강렬한 분노를 쏟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