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4화
그때 태건이 손을 들며 이목을 집중시켰다.
“잠시만요. 화는 나지만 화만 낼 일은 아닙니다.”
그런 태건의 반전 어린 말에 모두 쏘아봤다.
찌리릿!
“짜샤. 이게 화낼 일이 아니면 대체 뭐가 화낼 일이냐!”
“중헌이가 인공호흡기 뜯고 일어나서 멱살 잡아도 시원치 않을 판인데!”
“넌 도대체 누구 편이야!”
선배들이 태건을 버럭버럭 소리쳐 몰아붙였다.
의외로 태건은 침착하게 두 손을 아래로 내리는 행동을 했다.
“워, 워.”
“저게 진짜. 우리가 강아지냐!”
“진정하고 제 말 좀 들어 보시라고요.”
“듣긴 뭘 들어. 너 솔직히 말해. 네 구미에 맞는 놈들로 팀 다시 짜자고 하든?”
억측을 넘어 배신자로 낙인 찍으려하기까지 했다.
그들의 기세가 살벌해질 때였다.
오광휘 단장이 듣다못해 나섰다.
“거 자식들. 막내가 꿍심이 있었으면 과장하고 오간 얘기를 했겠냐!”
그제야 다들 뚱한 얼굴로 눈을 흘겼다.
“흥.”
“어휴. 저 속좁이들……. 그래서 넌 왜 삐딱선 타는데, 말이나 해봐.”
오광휘 단장이 장내를 정리하고 발언권을 건넸다.
다들 오광휘 단장에겐 쉽게 항의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태건은 막내란 타이틀이 있어 선배들이 투덜거리기도 쉬웠다.
현장에서는 다들 태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의지도 많이 한다.
그러나 일상에선 그 영향력이 미치지 못했다.
태건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걸 딱히 불만 삼고 있지 않았다.
그래도 장내를 정리해준 오광휘 단장에게 눈짓으로 인사도 잊지 않았다.
찡긋.
그렇게 사인을 보낸 후 선배들에게 말했다.
“과장님이 저희로 인해 엄청 압박을 받는 모양입니다.”
“누구한테?”
“그 윗선이겠죠.”
“그러니까 그 새끼들이 문제……. 크흠. 일단 그래서?”
고수현이 울컥하다 오광휘 단장의 강렬한 눈빛을 보고 말을 돌렸다.
태건은 덤덤하게 추측을 말했다.
“그 말은 곧 라텔이 소방청 내에서 입김이 세지고 있단 거 아닐까요?”
“그건 당연한 거 아니야? 우리가 매스컴을 몇 번이나 탔는데.”
“게다가 감사하게도 국민분들이 응원해주고 계시죠.”
태건이 덧붙여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이지성이 뭔가 눈치 챈 듯 말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정책과장의 입지가 상당히 튼튼해지고 있단 거냐?”
“더 나아가 승진까지도 영향을 끼치겠죠.”
“곧 가을이고, 그럼 인사이동 시기지……. 지들 밥그릇 싸움에 왜 우릴 걸고넘어지는 건데?”
이지성이 쓰게 따져 물었다.
그런 그였지만 요지는 분명히 파악하고 있었다.
다른 선배들도 그제야 귀를 기울였다.
“듣고 보니 영 엉뚱한 추측은 아니네.”
“참 나, 경쟁할 게 없어서 일단 아무거나 건드리고 보잔 거야 뭐야.”
쓴소리들이 절로 튀어나왔다.
마지막으로 오광휘 단장이 태건에게 물었다.
“그래서 네가 말하고 싶은 건 뭔데?”
그 질문에 태건은 생각한 걸 말했다.
“이유야 어쨌든 저희를 폄하한 건 사실입니다.”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파업하자고?”
오광휘 단장이 먼저 운을 뗐다.
태건은 얼른 고개를 저어 부정했다.
“그렇게 내분이 일어나면 저쪽에서 좋아할 겁니다. 그리고 어차피 입원 중이라 출동도 못하고요.”
“틀린 말은 아니지. 그럼?”
“이 기회에 우리도 업그레이드 한 번 해야죠. 후후.”
태건이 낮게 웃음을 흘림과 동시였다.
선배들이 움찔하며 팔을 쓸었다.
“난 쟤가 저렇게 말하면 괜히 한기가 느껴지더라.”
“전 저 머릿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궁금합니다.
고수현과 이지성이 한 마디씩 했다.
그들을 뒤로한 황대산이 아직 열이 오른 얼굴로 퉁명하게 말했다.
“강태건이, 속 시원하게 좀 말해 봐.”
“언제까지 출동하고 입원하고 할 순 없잖습니까. 우리도 사람인데.”
“이렇게 가다가는 결국 지치지.”
“그래서 충원을 하는 겁니다. 부상자가 생기면 대처할 스페어 인원을 선발하는 거죠.”
태건이 시원하게 내뱉었다.
그러나 선배들 표정은 더욱 아리송해졌다.
“우리 지금 쪼이고 있다며, 그런데 더 확장하자고?”
“유중헌이만 봐도, 헬기 조종할 인원이 없긴 하지.”
“계획은 좋은데 우리 마음대로 될까?”
다들 확신이 없었다.
그들과 반대로 태건은 한쪽 입꼬리를 들썩였다.
“저희 마음대로는 안 되는데, 저희를 마음대로 해주실 분은 있죠.”
“누구?”
“차장님.”
태건이 딱 잘라 답했다.
투둥.
“헉!”
“헙!”
“엥?”
선배들은 각각 놀라움과 황당함을 내비췄다.
소방차장.
소방계의 2인자다.
그가 약속한다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을 터였다.
태건의 미소는 더욱 짙어졌다.
“차장님 병문안 받아보신 분?”
해맑게 물었지만 돌아오는 건 부정적인 반응들이었다.
“난 가끔 쟤가 제정신인가 싶어.”
“원래 아니었습니다.”
“수현 선배 말에 동감.”
믿지 못하는 불신의 분위기가 팽배했다.
“후후.”
그러나 태건은 미소만 지어보였다.
라텔은 후퇴를 모르는 동물이다.
콜사인을 라텔로 하는 특수소방단도 마찬가지다.
그 중에서도 제일 막무가내인 라텔은 태건, 본인이었다.
‘일 한 번 크게 키워 봅시다.’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독립적인 팀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야 같은 문제가 다신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시간이 흘러 아침이 됐다.
아침 식사를 마친 태건이 휴대폰과 명함을 꺼내들었다.
김을영 소방차장과 간담회 후에 받은 명함이었다.
“전화를…….”
휴대폰에 전화번호를 찍으려 폼을 잡았다.
푸석푸석한 얼굴로 지켜보던 오광휘 단장과 선배들이 눈을 끔뻑거렸다.
“쟤 진짜 사고치려나 봐.”
“어디 하루 이틀입니까.”
“전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렵니다.”다들 만류할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그 중에서도 의외로 이지성이 태건의 편을 강하게 들었다.
“더러운 꼴 그만 보고, 각자 할 일이나 하자고 해라.”
그렇게 태건이 김을영 소방차장에게 전화를 하려던 때였다.
똑똑.
병실 문에 노크소리가 들려왔다.
문과 가까운 태건이 휴대폰을 내리며 크게 말했다.
“들어오세요.”
그릉.
그제야 문이 열렸다.
열린 문 앞엔 간호사도 아니고, 소방관도 아닌, 두 명의 환자가 있었다.
30대 후반의 환자는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환자가 붙들고 있었다.
둘 다 안색이 꺼멓게 물들어 있었다.
그리고 입술 색도 상당히 짙었다.
그런 환자들은 처음 보는 얼굴들이었다.
너무도 낯설어 태건이 눈을 끔뻑이며 말했다.
“병실을 착각하신 모양인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환자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끼익, 비틀.
휠체어에 앉은 환자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할 정도로 기운이 없었다.
그 휠체어를 미는 환자 또한 걸음걸이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누가 봐도 병색이 완연했다.
그럼에도 그들은 기어코 병실 중앙까지 이동했다.
환자들은 자세를 바르게 하더니 깊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꾸벅.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 찾아봬서 죄송합니다.”
정중한 모습과 말투까지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다들 짐작하기 어려웠는지 멀뚱멀뚱 쳐다봤다.
“누, 누구신지 아는 사람?”
“여기 진료실 아닌데요.”
“갑자기 이러시면 저희는 곤란한데…….”
어안이 벙벙한 표정들이었다.
그때 환자들이 유중헌에게 시선을 돌렸다.
유중헌은 아직 잠들어 있었다.
일부러 재우는 중이었다.
그런 사정을 잘 모르는 환자들의 두 눈에 눈물이 글썽거렸다.
“저희 때문에 저렇게…….”
“옥상 문 연다고 고생하셨다더니 결국…….”
또르르.
환자들의 눈에서 끝내 눈물이 떨어져 내렸다.
눈빛, 표정, 말투.
모든 게 범상치 않았다.
쭉 지켜보던 태건의 귀에 ‘옥상’이란 단어가 꽂혔다.
혹시나 싶은 표정으로 물었다.
“실종대원들이십니까?”
그제야 선배들도 느낌이 온 모양이었다.
“설마, 어제 응급실에서 집중치료실로 옮겼다고 하지 않았어?”
“어젯밤에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던데…….”
“진짜 그분들이라고?‘
그 분위기에 환자들이 아차하며 말했다.
“소개가 늦었습니다. 현장조사팀……. 임수근 소방장입니다.”
“같은 소속 왕지훈……. 소방사입니다.”
끊어지는 말꼬리를 끝까지 붙들어 자신을 소개했다.
그러면서 정중하게 인사도 했다.
비틀.
인사조차 힘겨워 몸이 휘청휘청 거렸다.
태건과 모두가 추측이 맞았음을 알아챘다.
그러나 반가움보다 걱정이 앞섰다.
“아직 몸도 성치 않으실 텐데…….”
“천천히 오셔도 되는데요.”
“이렇게 움직이셔도 되는 겁니까?”
한결같이 우려를 보였다.
그 우려는 과한 게 아니었다.
타다닥.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의료진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헉헉, 임수근 님, 왕지훈 님, 진짜 여기 오시면 어떻게 해요!”
“얼른 가요. 아직 이렇게 돌아다니시면 안 돼요!”
“다들 뭐합니까. 말로만 하지 말고 강제로라도 모셔야지 않습니까!”
“병실로 갑시다. 어서요!”
의료진들이 따가운 목소리로 야단치며 그들을 밖으로 몰아냈다.
“아니, 저기. 인사만…….”
“다, 다시 오겠습니다.”
터덕, 터덕.
결국 버티지 못한 그들은 있어야할 곳으로 돌아갔다.
병실 내부는 일순간 정적이 찾아왔다.
…….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러나 자신들이 봐도 그럴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그들은 성치 않은 몸으로 악착같이 찾아와 고마움을 표했다.
쑤우욱.
놀랍게도 어제의 울컥함이 거짓말처럼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아……. 내가 이거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건데.’
‘쓰벌. 책상에 앉아서 주둥이나 터는 새끼들하고 차원이 다르잖아.’
‘이런데 그깟 놈들이 하는 말이 뭔 상관이야.’
선배들의 시선이 제각각 흩어졌다.
창밖, 천장 등등.
머릿속이 복잡한 만큼 시선 처리가 엉망이었다.
그때 태건이 입을 열었다.
“골백번 생각해도 이게 맞는 거 같습니다.”
“음?”
“우리를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팀으로 거듭나야 하는 거 말입니다.”
태건이 덧붙여 말함과 동시였다.
어제는 반응이 썩 좋지 않았던 선배들이 눈에 불을 켰다.
번뜩!
“강태건, 차장님한테 전화해. 아니, 내가 할까?”
“싹 다 까발리고 뒤집자.”
“입원? 까짓것 백 번이라도 할 테니까 건들지 말라고 해!”
선배들의 각오가 하늘 높이 솟구쳤다.
태건은 묵직하게 답했다.
“보여드리죠.”
피잉!
각오만큼 두 눈에 강렬한 이채가 스쳐 지나갔다.
태건은 재차 휴대폰을 들었다.
전화를 하려다 멈칫했다.
아버지에게 배운 사회생활의 팁이 떠오른 탓이다.
‘무턱대고 전화는 예의가 아니지.’
의욕은 넘쳤지만 보다 신중히 풀어가야할 일이다.
그래서 문자로 급선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