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175)화 (174/320)

175화

토도독.

-차장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중략)… 긴히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어 통화를 하고 싶습니다. 그럼 연락주시길 기다리겠습니다.

작성하고 보니 꽤 장문이었다.

태건은 한 번 더 꼼꼼하게 읽어보고서 전송버튼을 눌렀다.

꾸욱.

“차장님이 결정하시겠지.”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툭.

휴대폰을 시큰둥하게 내려놓은 태건은 다시 병상에 누웠다.

‘그러니까…….’

쉬는 거처럼 보였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김을영 소방차장과 오갈 대화를 머릿속으로 몇 번이고 시뮬레이션했다.

크게 사고 칠 작정이라 첫 스타트가 중요했다.

그 기다림은 생각보다 짧았다.

30여 분 후.

띠리릭.

휴대폰이 울려 얼른 바라보자 김을영 소방차장의 전화였다.

태건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강태건입니다.”

“그래. 강 단원, 나야.”

“라텔.”

태건은 힘이 잔뜩 실린 목소리로 경례 구호를 말했다. 

그 소리에 한가로이 휴대폰을 보던 단원들이 일제히 멈칫했다.

“설마 진짜 차장님 전화야?”

“문자 보내놓고 탱자탱자 놀더니……. 전화가 왔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표정마다 의아함과 놀라움이 뒤섞여 있었다.

그러나 그 속삭임을 이내 멈췄다.

스윽.

태건이 가벼운 손짓을 해보인 탓이다. 

“…….”

띡, 띡.

병실은 순식간에 고요해졌고, ECG 소리만 울렸다.

그사이 휴대폰에서 김을영 소방차장의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국장단 회의가 있어 문자를 이제 봤지 뭔가.”

“그러셨군요.”

“어제 화재 현장에 관한 보고도 이미 받았어. 다들 잘 해줬어.”

안면이 있어 그런지 말투부터 부드러웠다.

태건은 짐짓 겸손을 내보였다.

“현장에 출동한 모든 동료들과 함께 이룬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후후. 말 주변이 좋군. 그나저나 긴히 할 말이 있다지?”

“당돌한 부탁 하나 드리고 싶습니다.”

태건은 차분하게 운을 뗐다.

김을영 소방차장은 수더분하게 권했다.

“당돌하다라, 내 들어보고 판단하지.”

“차장님의 병문안을 받고 싶습니다.”

태건은 거두절미하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김을영 소방차장의 대답이 곧바로 들려왔다.

“안 그래도 이번 현장에서 많이들 다쳤다지, 특히 유 단원 소식이 안타까웠어.”

“다들 잘 회복하고 있습니다만 차장님이 격려해주시면 더 좋을 거 같습니다.”

“그렇다면 가야지. 그보다 중요한 일이 어디 있나. 곧 봄세.”

뚝.

흔쾌한 대답과 동시에 전화를 마쳤다.

태건도 곧 휴대폰을 내리며 소리 높여 말했다.

“차장님이 병문안 오신……. 왜들 그러고 계십니까?”

결과를 말하던 태건이 순간 갸웃거렸다.

모두 자신을 멍하니 보고 있었다.

들고 있던 휴대폰이 떨어진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

적막이 찾아올 때였다.

오광휘 단장이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황당해 했던 이유를 꼬집어 말했다.

“다짜고짜 병문안 오라니, 차장님이 옆집 백수 아저씨냐?”

“오신다는데요.”

“……백수였나? 아닌데.”

할 말이 없어진 오광휘 단장이 횡설수설했다.

황대산은 양 손 가득 엄지를 내밀었다.

“쌍따봉! 역시 세상 무서울 게 없는 20대 청춘이야.”

“무모하게 내지른 너나, 그걸 받아주는 차장님이나.”

절레절레.

고수현은 이해가 되지 않는지 고개를 저었다.

그때 이지성이 삐딱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 양반이 순순히 온다고. 대체 뭔 꿍꿍이야?”

“거물이 움직이면 자연히 따라붙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 아니겠습니까.”

“원래 패거리로 움직이잖아.”

“간부들 말고요……. 소방차장의 병문안, 이슈거리로 좋지 않습니까.”

태건이 좀 더 쉽게 풀어서 말하자 이지성도 눈치를 챘다.

“기자들? 그 차장 노인네, 오늘 신문에 얼굴 한 번 새기겠네.”

“아무래도요. 그보다 다들 잠시만요.”

태건이 주목시켰지만 이미 모두가 주시하고 있었다.

오광휘 단장이 이제 좀 진정된 얼굴에 긴장감이 드리웠다.

“혹시 또 심장 덜컹할 일이냐?”

“아니요. 차장님하고 어떤 대화가 오갔냐면요…….”

태건은 자세한 통화내용을 공유했다.

통화 시간이 길지 않기에 설명도 금방 끝났다.

“……그랬습니다.”

태건이 말을 마침과 동시였다.

스르륵.

모두의 시선이 유중헌에게로 향했다.

지금도 ECG를 연결하고, 인공호흡기로 숨을 쉬고 있었다.

띡, 띡.

“후우우.”

그런 그를 묵직하게 바라보던 오광휘 단장이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중헌이 소식이 역시나 거기까지 들어갔네.”

“화재는 심각했고, 현장 모두가 다 아는 일인데, 보고가 안 들어갈 순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더 흔쾌히 온다고 한 모양입니다. 아니, 이건 와야지.”

태건에 이어 고수현이 당당한 얼굴로 말을 받았다.

바로 그때였다.

파르르.

유중헌의 눈가가 가늘게 떨려왔다.

그러다 이내 눈을 뜨더니 몽롱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봤다.

“흐으으. 아, 맞다. 여기 병원이지……. 쿨럭쿨럭.”

주변을 인지하더니 곧 기침을 했다.

인공호흡기가 불편했는지 느릿한 손길로 붙들었다.

턱.

그 손길을 본 순간 황대산이 다급히 가리키며 소리쳤다.

“떼지 못하게 막아!”

이지성이 기다렸단 듯이 재빨리 다가가 유중헌의 손을 붙들었다.

척.

“선배, 아직 떼면 안 됩니다.”

“쿨럭, 괜찮아. 기침만 좀 가라앉으면 될 거 같아.”

“아니요. 그냥 오늘까지만 하고 계신 게 좋겠습니다.”

“괜찮다니까.”

유중헌이 고집을 피우자 이지성이 퉁명하게 쏘아붙였다.

“아, 그냥 하루 더 자라고. 선배가 자야 노친네가 우리 말을 잘 들어줄 거 아니냐고!”

“무슨……. 누가 와?”

“신경 쓰지 말고 그냥 잡시다. 내일 다시 일어나면 설명해 줄게요.”

“아니, 나 이제 진짜 괘, 괜찮은 거 같은데…….”

유중헌은 인공호흡기를 착용했는데도 목소리가 선명히 울렸다.

그 정도로 건강해졌다.

그러나 다들 그의 건강을 외면했다.

지켜보던 오광휘 단장이 답답했는지 얼른 소리쳤다.

“이지성이, 시간 끌지 말고 뒤통수 후려쳐서 재워!”

삑!

“간호사님. 유중헌 단원 아니, 환자 깨어났는데 다시 재워주세요. 지금 당장이요!”

고수현은 비상버튼까지 누르며 소리쳤다.

그런 모두의 모습에 태건은 이마를 탁 짚었다.

“하아, 못 말려.”

정말 대책 없는 단원들이었다.

잠시 후,

태건의 얼굴은 더욱 짙은 황당함으로 물들어 있었다.

유중헌이 그 황당함의 주인공이었다.

정말 다시 잠들어 있었다.

“…….”

삑, 삑.

ECG 인공호흡기도 제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 모습을 다시금 바라본 태건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의사한테 떼써서 다시 자는 경우는 또 뭐냐고.”

도저히 제어가 안돼, 결국 의사까지 호출했다.

당연히 건강해졌단 의사와 팽팽하게 대립하기도 했다.

그렇게 우겨서 다시 잠들어 있었다.

볼수록 기가 막힐 지경이었다.

“진짜 대단하다.”

한편으로는 유중헌도 라텔의 발전을 얼마나 염원하는지 알 수 있었다.

소란스런 병실이 이제 좀 조용해졌다.

태건이 앞으로에 대해 차분히 생각하다 문득 누군가를 떠올렸다.

“아차, 기왕이면 그쪽도 불러야지.”

그리고 바로 휴대폰을 들었다.

이번에 전화하는 상대는 이강찬 기자였다.

그가 전화를 받자 잡음이 살짝 섞여 들려왔다.

우우웅.

“또 입원하셨다더니. 이렇게 전화하셔도 됩니까?”

“저는 큰 부상 아닙니다. 그보다 어디 가시는 길입니까?”

“이천 갑니다. 오후에 화재조사가 시작된대서 거기 갔다가 병원에 깜짝 병문안하려고 했는데, 먼저 연락 주셨네요.”

이강찬 기자의 목소리에 살짝 아쉬움이 감돌았다.

태건은 그 넉살에 잔잔하게 미소 지었다.

“서프라이즈는 마음만 받기로 하고, 마침 잘 됐네요. 이쪽으로 바로 오시죠.”

“비하인드 스토리라도 있는 겁니까?”

“아니요. 차장님 오신답니다.”

그 자체가 기삿거리라 이강찬 기자 목소리가 환하게 밝아졌다.

“아이고, 좋은 소식 감사합니다. 이거 병문안 선물이 문제가 아니라 술 한 잔 사드려야겠네.”

“퇴원하고 날 한 번 잡으시죠.”

“그건 얼굴 보고 마저 얘기합시다. 부지런히 가겠습니다.”

이강찬의 대답이 너무도 호탕했다.

태건도 미소를 지으며 휴대폰을 내렸다.

“인생 기브 앤 테이크 아닙니까.”

싱거운 말을 흘리던 그때였다.

띠링.

휴대폰에 문자가 도착했다.

내용을 쭉 훑어본 태건이 나지막이 말했다.

“차장님 점심시간 후에 도착하실 거 같답니다.”

“언제 차장님이랑 문자 보내는 사이로 발전했냐?”

“비서실에서 보낸 겁니다.”

“아, 그런 자리 가면 비서도 있다고 했지. 그나저나 진짜 오나보네.”

오광휘 단장이 심심하게 읊조렸다.

그래도 설마 했던 모양이다.

이제 현실로 와닿는지 낯설어했다.

“…….”

침묵하는 다른 선배들도 비슷한 표정들이었다.

그러던 중 병실 문에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똑똑.

“들어오세요.”

태건이 덤덤하게 수락했다.

드륵.

바로 병실문이 열리더니, 이번에도 환자들이 찾아왔다.

그런데 이번 환자들은 아는 얼굴들이었다.

현장에서 마지막까지 함께 했던 송강우와 최성철, 두 사람이었다.

“어?”

“어라, 쟤들.”

의외의 방문이라 다들 놀라워했다.

그 사이 송강우와 최성철이 병실 가운데 서서 말했다.

“인사드리러 왔습니다.”

“감사하고 죄송합니다.”

꾸벅.

둘은 정중하게 고개 숙였다.

“…….”

라텔은 다들 영문을 몰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그런 시선을 느낀 송강우와 최성철이 바로 덧붙여 말했다.

“깨어난 후에 정말 많이 반성했습니다.”

“저희는 자신하고 덤벼들었는데……. 한심한 모습만 보이며 짐이 됐습니다.”

“면목 없습니다.”

바닥을 바라보는 얼굴에 진심어린 표정이 담겨 있었다.

그런데 특수소방단은 그런 움츠린 모습을 싫어했다.

오광휘 단장이 인상을 푹 찡그리며 태건에게 발짓했다.

까딱, 까딱.

“야, 막내. 니가 해결해.”

“저 지금 생각할 게 엄청 많습니다.”

“그것도 하고, 저것도 해결하고. 억울하면 일찍 태어나지 그랬어.”

오광휘 단장은 뻔뻔하게 떠넘겼다.

태건은 막무가내의 모습에 어이가 없었다.

“헐……. 그럼 다른 분들…….”

“어이고, 피곤하다.”

스윽.

다른 선배들은 약속한 듯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누웠다.

이지성은 보호자 침대에 누구보다 빨리 자리했다.

사람 상대하는 걸 불보다 더 어려워하는 독특한 성격들이었다.

그 사정을 송강우와 최성철이 알 리 없었다.

그래서 더욱 움츠러들었다.

“…….”

자신들의 잘못으로 상대조차 해주지 않는다고 느낀 모양이었다.

풀 죽은 강아지 같은 얼굴들이었다.

그대로 놔두면 계속 마음 불편하게 지낼 듯했다.

‘에휴.’

그 생각이 들자 마음이 약해졌다.

이내 태건은 어쩔 수 없이 침대를 벗어났다.

스륵.

“음료수라도 한 잔 하러 가시죠.”

“불편하시면…….”

“일단 나갑시다.”

태건은 일단 그들을 밖으로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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