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그 갑작스러운 모습에 박규영 본부장은 물론 행정팀 모두가 놀라 당황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강태건 단원이잖아. 왜 저러는 거야?‘
“여기 뭐 왕따 있어?”
너무 격한 환대를 이해하지 못했다.
반면 오광휘 단장과 선배들은 움찔하며 태건에게 얼른 손짓했다.
“야, 망신 그만 뻗치고 이리 와.”
“그 손부터 좀 놔라. 그게 뭐하는 거야.”
“어이구, 첫 만남부터 개망신 뻗치고 시작하네.”
자신들 작당한 일이 이렇게 풀려버리자 난감해 했다.
잠시 후.
사무실에 모두가 둘러앉았다.
그리고 태건의 격한 환대에 대한 이유를 들은 행정팀 모두가 크게 웃었다.
“하하하.”
“어쩐지, 너무 반가워하더라.”
“엉뚱하다더니, 진짜 장난 아니네.”
마지막으로 박규영 본부장이 정점을 찍었다.
“첫날 보고할 일화가 생겨 다행이야.”
소방차장님에게까지 알려진단 소리였다.
“크흐흐흠.”
오광휘 단장과 단원들이 헛기침으로 민망함을 흘렸다.
찌릿.
태건을 진하게 노려봤다.
그러나 태건은 선배들의 시선을 당당하게 받았다.
사실 일부러 그랬다.
‘그러게 누가 몰아붙이래?’
되로 받았으니 말로 돌려주는 건 당연한 이치였다.
한바탕 웃음이 지나갔다.
박규영 본부장이 자리한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제부터 ‘우리’입니다.”
“네.”
“우리는 씨앗입니다.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대한민국을 만들어갈 씨앗, 그게 우리의 소명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꾸벅.
모두 일제히 앉은 채로 고개 숙였다.
이어서 라텔과 행정팀이 서로를 향해 듬직한 미소를 보냈다.
- 우리.
그 단어가 주요했다.
이제 마주한 그들이지만 벌써 신뢰라는 싹이 틔웠다.
태건의 얼굴 또한 미소가 가득했다.
‘눈빛들이 좋아.’
그 부분이 제일 반가웠다.
* * *
그날부터 특수소방단 본부는 격변의 시간을 맞이했다.
기존 훈련장 행정실부터 완전히 뜯어고쳤다.
그릉, 그릉.
“그 책상 이쪽으로!”
“여기 수납장은 어디로 갑니까.”
“거기 책장은 놔두라니까요!”
웅성웅성.
왁자지껄함 속에서도 빠르게 새로운 사무실이 구성되어갔다.
한 손 거들던 태건은 실시간으로 변해가는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야. 사람 손이 무섭다더니.”
둘러본 시간은 잠깐이었다.
태건은 어느새 그 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같이 하시죠!”
타다닥!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장소로 재빨리 움직였다.
이틀 후.
특수소방단 본부는 새로운 모습을 갖췄다.
크게 행정팀, 출동지원팀, 그리고 ‘라텔’로 나뉘었다.
행정팀이 모든 행정 업무를 전담하기로 했다.
출동지원팀은 별도 사무실에서 무전 대기, 그리고 라텔의 출동을 서포터해주는 전담지원팀으로 결성됐다.
마지막으로.
콜사인 ‘라텔’.
오광휘 단장을 주축으로 한 그들만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폭풍처럼 몰아치던 본부가 어느 순간 잠잠해졌다.
격변을 끝내고 새로운 도약을 위해 모두가 준비 중이었다.
그 새로운 도약에 대한 논의도 진행 중이었다.
회의실.
특수소방단의 핵심 인물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박규영 본부장, 이혜지 행정팀장, 김여훈 지원팀장, 오광휘 단장.
마지막으로 태건이 한 자리 차지하고 있었다.
태건은 자리한 모두를 둘러보다 문득 어색함이 들었다.
‘수뇌부 회의에 막내를 왜 부르는 거야.’
아무리 봐도 자신은 여기 낄 소방기수가 아니었다.
충원된 인원들을 더해도 태건은 막내란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던 탓이다.
태건의 머릿속이 복잡할 때였다.
박규영 본부장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불렀다.
“강 단원, 설마 지금 본인이 회의에 참석한 이유에 대해 궁금해 하는 건 아니겠지?”
“네? 에…….”
움찔.
너무 정확한 지적이라 태건은 시원한 대답을 꺼내지 못했다.
박규영 본부장은 예상했단 듯이 덤덤하게 말했다.
“특수소방단의 기획 단계부터 중심에 있던 자네가 이제 와서 그런 의문을 품으면 되나.”
“…….”
“이건 나만의 생각이 아니니까 개의치 않도록 해.”
박규영 본부장이 단단히 못을 박았다.
정말 그만의 생각이 아닌 모양이다.
당찬 분위기로 가득한 40대 초반의 이혜지 행정팀장이 그 말을 받았다.
“이제 와서 강 단원을 뒷전으로 미룬다면, 그 자체가 특수소방단이 변질됐단 의미일 거야.”
그 옆에 자리한 30대 중반의 김여훈 지원팀장이 안경을 쓸어 올리며 말을 덧붙였다.
“특수소방단의 주축은 어디까지나 ‘라텔’이야. 우리 모두가 그걸 위해 자원했단 사실을 잊지 마.”
행정의 대들보들이 단단하게 못 박았다.
절대 먼저와 나중이 바뀌는 일이 없을 거란 다짐도 함께였다.
거기에 오광휘 단장이 한 마디 거들었다.
“본부장님 말씀 벌써 잊었냐. 같이 만들어가는 거야. 우리 모두가 함께.”
“…….”
끄덕.
모두 기꺼운 표정으로 동의했다.
다부지고 확고한 얼굴에 진심이 가득 담겨 있었다.
태건은 그 확고한 분위기를 느끼고야 의구심을 내려놓았다.
“크흠. 막내한테 너무 부담 주시네요.”
“밥값하면 부담스러울 게 없어.”
오광휘 단장이 능글맞게 말을 받았다.
“하하.”
다들 가볍게 웃어 보였다.
그 웃음으로 약간 남아있던 어색함마저 도망가 버렸다.
그렇게 회의실은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풍기기 시작했다.
그 때를 기다린 듯 박규영 본부장이 입을 열었다.
“앞으로도 이렇게 오픈마인드로 가지.”
“알겠습니다.”
“기본적인 업무영역을 확인하자고 만든 자리가 아니란 건 다들 알 거야.”
“…….”
모두 조용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때 박규영 본부장은 오광휘 단장과 태건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스윽.
“이렇게 새로 거듭난 이상 라텔도 6인 체제를 고집하긴 어렵게 됐어.”
“저희도 그 점을 염두에 두고 차장님께 말씀드린 겁니다.”
“음. 그럼 오 단장의 계획은 뭐였지?”
“그건 강 단원이 브리핑하도록 하겠습니다.”
오광휘 단장은 눈썹하나 꿈틀거리지 않고 태건에게 떠넘겼다.
쿠궁.
태건은 가만히 경청하고 있다가 날벼락을 맞았다.
“단장님, 저요?”
“뭐해, 다들 기다리시잖아.”
“진짜 제가요?”
“응. 네가 키운 일이니까, 네가 설명 드려야지.”
오광휘 단장은 뻔뻔한 얼굴로 태건을 계속 내몰았다.
모두 한 식구라 있는 그대로의 성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놀라운 건 다들 말없이 태건만 바라보고 있었다.
“…….”
반짝반짝.
눈빛이 빛난다고 느껴지는 건 비단 태건의 착각만은 아닐 터였다.
어느새 수첩을 펴고 펜을 들기까지 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 박규영 본부장이 한술 떴다.
“편하게 앉아서 말하도록 해.”
“본부장님 말씀대로 이제 격식 갖출 사이가 아니잖아.”
이혜지 행정팀장이 큰누나 같은 다정함으로 거들어 말했다.
태건도 언제까지 뒤로 뺄 생각은 아니었다.
멍석을 이렇게 보란 듯이 깔아줬는데 굳이 박찰 이유가 없었다.
쉬는 동안 틈틈이 생각해 두기도 했다.
머릿속에 있던 그 내용들을 이제 말로 전할 때가 됐다.
“흐음.”
태건은 가볍게 숨을 들이켰다.
번뜩!
눈빛이 빛남과 동시에 분위기가 변했다.
막내 강태건에서 ‘더 라스트’ 강태건으로 돌아선 거였다.
배려와 양보는 잠시 내려놓았다.
이런 자리까지 속없이 행동할 순 없었다.
태건의 기세가 달라졌음을 모두가 눈치챘다.
“호오.”
“음.”
소문으로만 전해지던 모습을 두 눈으로 직관하니 탄성이 절로 터져나왔다.
그리고 호기심과 기대감이 반반 섞인 얼굴로 기다렸다.
곧 태건이 한층 깊어진 목소리로 말했다.
“라텔에 필요한 건 단지 머릿수 늘리기가 아닙니다.”
“…….”
“다양성과 전문성,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한 고찰이 필요합니다.”
태건이 말을 한 박자 쉬었다.
그 사이 박규영 본부장이 고민스런 얼굴로 물었다.
“전문성과 다양성에 대해 좀 더 풀어서 설명해줄 수 있나?”
“네. 다양성 부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얼마든지.”
스윽.
박규영 본부장은 권유의 손짓까지 내보였다.
“…….”
꾸욱.
이혜지 행정팀장과 김여훈 지원팀장은 당장 필기할 준비에 돌입했다.
태건은 지체 없이 입을 열어 대답했다.
“우선 다양성으로는 소방장비가 너무 한정적입니다.”
“흠.”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장비가 소개되는데 정작 실전에 투입되기까진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충분한 테스트로 안정성과 효율성을 따져봐야 할 문제니까.”
“그 테스트도 결국 연구기관에서 하는 거 아닙니까. 현장처럼 꾸며놓은 환경이지, 진짜 현장은 아닙니다.”
태건의 지적에 박규영 본부장은 이내 수긍했다.
“틀린 말은 아니야. 모든 변수를 연구소에서 대입시킬 순 없을 테니까.”
“차라리 적은 수량이라도 신속히 도입해 현장에서 운영해보는 게 판단하기 적합할지도 모릅니다.”
“그럼 강 단원이 사용해 봤지만 한국에 들어오지 않은 장비들이 있나?”
“그건 제가 리스트를 만들어서 서면보고 드리겠습니다.”
태건은 대화가 너무 길어지지 않게 뒤로 미뤘다.
그 부분을 박규영 본부장은 조금 다르게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그렇게나 많다니.”
“적진 않지만 엄청나게 많은 정도는 아닙니다.”
“그건 나중에 확인하기로 하지.”
박규영 본부장이 차분하게 답했다.
태건은 바로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이어서 전문성 부분입니다. 현재까지 저희는 화재진압과 인명구조 현장에 주로 투입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젠 그 범주를 넘어설 거라 이건가?”
“……곧 가을입니다.”
태건이 묵직하게 말했다.
그 표정이 전염되듯 모두에게 퍼져나갔다.
한국의 가을.
울긋불긋한 단풍으로 물든 산을 구경하기 위해 등산객이 절정에 이르는 계절이다.
또 봄부터 정성들여 키운 농작물을 수확하는 시기였다. 경작을 마친 논과 밭을 소독한다며 불을 놓기 일쑤였다.
건조한 기후까지 더해진다.
그 모든 게 산불의 원인으로 매년 꾸준히 지적되는 사안이었다.
소방관들이 가장 경계하는 계절이기도 했다.
“…….”
회의실에 무거움이 가득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