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185)화 (184/320)

185화

태건은 차분한 목소리로 덧붙여 말했다.

“뿐만 아니라 예고 없이 발생하는 붕괴 및 낙상 사고에도 대비를 갖춰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장비 확충과 연관이 있겠어.”

“물론 중요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손을 내미는 건 사람입니다.”

태건은 그 부분을 명확히 했다.

스윽.

이혜지 행정팀장이 가볍게 손을 들며 물었다.

“강 단원이 말하고 싶은 건,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충원해야 한단 거야?”

“아니요. 그 전문성은 기존 라텔 단원들이 골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그럼?”

“전문성을 갖출 각오를 품은 이들을 선별하여야 합니다.”

투둥.

태건이 강하게 말했다.

“…….”

모두 미간을 좁히며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온전히 와 닿지 않은 듯했다.

태건은 짤막하게 덧붙여 설명했다.

“참고로, 팀워크 훈련 기간 중 특정 훈련을 교육하다 선배들에게 맞아 죽을 뻔 했습니다.”

웃자고 꺼낸 말이 절대 아니었다.

태건의 표정과 목소리가 너무도 진지했다.

그렇게까지 강조하는 그 훈련은 바로 급속강하 레펠 훈련이었다.

같은 기억을 떠올렸는지 오광휘 단장이 덧붙여 말했다.

“15미터 정도 높이에서 지면까지 순식간에 곤두박질치는 훈련입니다. 훈련 끝나고 속옷 안 갈아입은 단원이 없었습니다.”

“헙.”

“그런 훈련코스가 몇 개 더 있습니다. 죽을 각오가 아니라, 죽기 직전까지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하는 훈련 말입니다.”

“흐으음.”

다들 심각한 표정으로 변했다.

훈련이 상당히 과격하단 건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그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살벌함에 가늘게 몸을 떨기도 했다.

태건은 새삼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서 다시 입을 열었다.

“어쭙잖은 각오로는 절대 그 훈련들을 견디지 못합니다.”

“그렇겠어.”

“전문성은 절체절명의 순간 속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독기’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상입니다.”

충분히 의견을 낸 태건은 적정선에서 마무리 지었다.

다들 말이 없었다.

“…….”

팔짱을 끼거나, 수첩에 끄적거리는 등.

각자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던 중이었다.

툭, 툭.

펜을 까불리던 김여훈 지원팀장이 의견을 제시했다.

“그 각오가 있는지 없는지, 솔직히 면접으로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맞아요. 면접 땐 각오를 보여도 정작 훈련에 임했을 때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니까요.”

이혜지 행정팀장이 동조했다.

“흐음.”

박규영 본부장은 무거운 탄성과 함께 고갯짓했다.

태건과 오광휘 단장도 마찬가지였다.

추가 인원 선별에 가장 난관이 그 문제였다.

그때 김여훈 지원팀장이 펜 끝으로 수첩을 건드리며 한 번 더 입을 열었다.

톡.

“가장 확실한 건 테스트 기간을 갖고 훈련을 진행해 보는 거 아니겠습니까.”

“본부에 훈련 시설이 갖춰져 있으니 가능하긴 하지. 그런데 그 인원들을 어떻게 수용할 거지?”

박규영 본부장이 진지하게 물었다.

김여훈 지원팀장도 짐작했는지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제시했다.

“소단위로 나눠서 가장 핵심적인 훈련 한두 가지만 진행해 보는 겁니다.”

“짧고 굵게, 그리고 화끈하게 하자라……. 나쁘지 않아.”

박규영 본부장은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저도 다방면으로 고려해 봐도 괜찮을 거 같아요.”

이혜지 행정팀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정작 태건과 오광휘 단장은 어리둥절했다.

“무슨 말씀들일까요?”

“낸들 아냐?”

“단장님.”

그윽.

태건의 시선이 묵직하게 가라앉았다.

나서야 할 때 아니냔 의미가 너무도 강렬하게 담겨 있었다.

그 의미를 눈치 챈 오광휘 단장이 흘겨봤다.

“이럴 때만 단장 찾지.”

“…….”

태건은 말없이 바라만 봤다.

결국 눈싸움에서 진 오광휘 단장이 물었다.

“말씀 중에 죄송한데, 대화의 흐름이 지원자가 있단 뉘앙스라서요. 제가 바르게 이해한 게 맞습니까?”

그 질문에 박규영 본부장이 갸웃거리며 반문했다.

“아직 라텔은 그 소식 모르나?”

“무슨 소식 말씀이십니까?”

“아……. 입원했을 시기였군. 그때 문병 후 차장님이 정책과장의 발을 묶어뒀으니 전달이 누락된 모양이야.”

“그러니까 뭐가요?”

오광휘 단장이 눈을 크게 끔뻑이며 물었다.

박규영 본부장이 가볍게 책상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퉁.

“본청으로 라텔 입단 문의가 꾸준히 접수되고 있어.”

“네?”

“TV 생중계 이후부터라고 해. 라텔의 확장이 결정되기 전에 지원 문의가 시작됐단 소리야.”

“……아!”

태건과 오광휘 단장이 동시에 탄성을 내뱉었다.

까마득히 몰랐다.

그 놀라움은 이내 뿌듯함으로 변화했다.

‘위험한데만 골라서 가는데 뭐가 좋아 보인다고 지원을 해. 웃기는 사람들이야.’

‘우리의 일이 헛되지 않았어.’

속으로 감탄을 담아 한마디씩 읊조렸다.

세상에서 가장 인정받기 어려운 존재가 동종업계 종사자였다.

시기와 질투라는 악감정 탓이었다.

그 시샘을 뚫고 소방관들에게 인정받았단 건 실로 엄청난 성과였다.

뿌듯함을 좀 더 느끼고 싶은 마음이 굴뚝이었다.

그러나 그런 장소로 적합하지 않았다.

곧 태건이 목소리를 냈다.

“지원자가 있다면 팀장님들이 제시한 방향이 옳다고 봅니다.”

“그 훈련을 결국 라텔이 진행해야 해. 부담이 될 수도 있어.”

“다들 교육 훈련 한 번 더 한다고 좋아할 겁니다.”

태건은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 다음 회의는 업무에 대한 유연한 협조에 대한 내용으로 이어졌다.

회의가 끝난 후.

태건과 오광휘 단장은 옥상으로 돌아왔다.

전에는 사무실이었지만 이젠 대기실로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책상들이 사라졌다.

모든 행정 및 서류처리 업무는 행정팀으로 옮겨졌다.

대신 개인 사물함이 벽을 따라 둘러져 있었고, 가운데는 쉬는 장소로 바뀌어 있었다.

대기실로 돌아온 오광휘 단장은 회의 내용부터 전달했다.

“그러니까…….”

핵심만 추리니 빨리 전달됐다.

그리고 앞서 태건의 예측이 꼭 맞아 떨어졌다.

황대산이 두 주먹 불끈 쥐며 격하게 반겼다.

꽈악!

“크하하하. 교육훈련이라, 몇 번이고 반복해 주지. 안 그래도 반복 숙달이 아쉬웠는데 이렇게 채워질 기회가 오다니!”

고수현은 조금 다른 뉘앙스를 풍겼다.

“훈련생에서 조교로 승격인가. 내가 또 굴리는 건 일가견이 있는데 말이야.”

번뜩!

짓궂은 눈빛을 강하게 빛냈다.

이지성은 또 다른 반응을 보였다.

“여기서 미친놈들이 대체 얼마나 늘어난다는 거야.”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지끈거리는 모양이었다.

그런 선배들 중 유중헌은 미소 띤 얼굴로 방관하고 있었다.

“나, 나야, 헬기 조종이니까……. 다들 좋겠네.”

”맞다. 선배, 헬기 조종 말인데요. 두 명 정도 더 충원될 거라고 합니다.“

“그, 그래?”

“그리고……. 아니, 그건 단장님이 말씀하시는 게 좋겠네요.”

태건은 하려던 말을 오광휘 단장에게 미뤘다.

정확히 말해 자신보다 더 말하기 적합한 직함을 달고 있었다.

오광휘 단장도 같은 생각인 모양이다.

곧 유중헌에게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신입들이 들어오면 기장들은 지원팀 소속으로 바뀔 거야.”

투둥.

그 말이 충격적이었는지 유중헌이 휘둥그레 눈떴다.

“왜, 왜, 왜요?”

“……모르지 않잖아.”

터억.

오광휘 단장이 어깨를 묵직하게 짚으며 말했다.

그 순간 유중헌의 크게 떠진 두 눈이 좌우로 진동했다.

“이이, 이번에 저 심정지 온 거 때, 때문인가요?”

“말이 쉬워 심정지야. 적나라하게 말하면 넌 잠시지만 죽었었어.”

“…….”

“인원이 적어 너에게 부담을 많이 줬던 거 같아. 그 점은 미안하고, 이제 다신 재발하지 않게 해야지. 유중헌이, 이해하지?”

툭툭.

오광휘 단장은 어깨를 묵직하게 다독였다.

이해를 바라는 게 아니라 강요가 내포된 손짓이었다.

모두 들은 내용이라 어느새 침묵하고 있었다.

“…….”

가볍게 말했지만 절대 가벼운 사안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늘 현장의 위험성을 강조했었다.

언제 누가 어떤 사고를 당할지 모른다고 철저히 정신무장을 했다.

그렇다고 해도 유중헌의 심정지는 모두에게 적잖은 충격으로 남아 있었다.

늘 다짐했던 문제의 순간을 직접 목격한 탓이다.

머리로 이해하는 거와 눈으로 보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

그런 이유로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을 택했다.

태건만이 혼란스러워하는 유중헌을 차분히 설득했다.

“선배, 각자의 역할이 있는 거잖습니까.”

“…….”

“처음 그렸던 그림으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리고 어떤 현장도 가리지 않고 발 벗고 뛰어든 선배는 최고였습니다.”

태건은 위로와 격려의 말을 같이 건넸다.

그런데 유중헌은 받아들일 수 없던 모양이었다.

“……에라!”

타다닥.

갑자기 돌아선 그는 대기실을 박차고 나갔다.

태건이 소리쳐 부르며 뒤쫓으려 했다.

“중헌 선배!”

처억.

오광휘 단장이 막아서며 고개를 저었다.

“놔둬. 지금은 그게 맞아.”

“상처 받은 표정 못 보셨습니까.”

“지금 상처 주는 게, 저 녀석 장례식장에서 통곡하는 거 보다 나아.”

묵직.

오광휘 단장은 굳은 얼굴로 진지하게 말했다.

“흐음. 알겠습니다.”

태건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스윽.

대기실 문을 향한 태건의 표정이 너무도 무거웠다.

“중헌 선배.”

마음이 쓰렸지만 유중헌을 위해선 지금을 버텨내는 게 백번 천번 옳았다.

“…….”

다른 선배들도 침묵하며 무언의 동의를 보였다.

그렇게 이 문제가 일단락되나 싶었다.

그때 갑자기 대기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

벌컥!

“이런 씨부럴 새끼들이 어디서 개소리를 하고 자빠졌어!”

유중헌이 거친 언변을 쏘아대며 들어왔다.

그의 손엔 최근 맹연습 중인 헬리캠 조종기가 들려 있었다.

그걸 본 모두가 아차했다.

뭐든 조종기를 든 유중헌은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던 탓이다.

지금 반응이 꼭 그러했다.

‘저게 있었어.’

‘대용품이 왜 존재하냐고.’

찌릿.

서로 눈치를 주며 무언으로 타박했다.

그 사이 유중헌은 대기실 문을 소리 내 닫았다.

쾅!

“야, 강태건. 다시 말해 봐, 방금 너 뭐라고 씨불였냐.”

“네?”

“처음 그린 그림? 쓰벌. 그러니까 난 처음부터 열외 대상이었단 소리냐고, 이 새끼야!”

카르릉.

바짝 다가온 유중헌이 잡아먹을 기세로 쏘아붙였다.

태건은 가볍게 밀어내며 진정시켰다.

“선배가 헬기로 날라주고, 우리가 뛰어들고, 그걸 말한 거였습니다.”

“그렇게 안 한 현장이 있어? 다 그렇게 했잖아!”

“…….”

“아으씨, 그럼 니들 배달하고 나서 헬기 짱박아 놓고 띵까띵까 놀까? 다들 불속에 던져 놓고, 나올 때까지 구경만 하고 있어야 했냐고. 대답해, 이 새끼야!”

유중헌은 살벌하게 몰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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