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186)화 (185/320)

186화

그런 날카로운 기세에도 태건은 차분히 응대했다.

“좀 진정하시고…….”

“사방에서 개소리 지껄이는데 진정이 되겠냐고, 새꺄!”

“…….”

“씨파, 그래. 병원에서 다시 깨어났을 땐 솔직히 겁나 무서웠다. 그런데 그 다음에 뭔 생각이 들었는 줄 알아!”

바짝!

유중헌이 코가 닿을 듯한 거리에서 부리부리한 눈빛으로 쏘아붙였다.

태건은 피하지 않고 차분히 물었다.

“무슨 생각이 드셨습니까.”

“차라리 나라서 다행이다. 그리고 이 새끼들은 내가 곱게 뒤지게 놔두지 않는 놈들이구나. 썅, 나도 이 새끼들 절대 곱게 못 보낸다!”

“…….”

“그런데 이래서 빠지고, 저래서 뒤로 빼고, 그럴 거면 빌어먹을 유서는 왜 쓰고 지랄염병이야. 왜!”

화아악!

유중헌의 분노가 거침없이 휘몰아쳤다.

얼마나 가까이서 고함을 치는지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태건은 눈살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이지성보다 더 차갑고 냉정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다음엔 살린단 보장이 없습니다.”

“그럼 버려. 버리고 요구조자 구해. 그게 라텔이라며!”

“흐음.”

스윽.

탄성을 내뱉은 태건이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 끝에 오광휘 단장과 선배들이 서 있었다.

결정사안을 번복하려면 모두의 동의가 필요했다.

그래서 물었다.

“중헌 선배는 그렇다는데, 다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휙!

“쓰벌. 내가 틀려? 다들 내 상황이었으면 현장에서 빠질래?”

눈치 챈 유중헌이 재빨리 소리 높여 어필했다.

다들 쉽사리 입을 열지 못했다.

“…….”

유중헌의 심정지.

안타깝고 반복 되선 안 될 일이다. 그러나 다음 출동 현장에서 모두가 무사하리란 보장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때 누구에게 위기가 닥칠지는 도무지 예측할 수 없었다.

‘내가 저 입장이라면?’

그런 가정을 세우고 각자 답을 찾기 위해 깊이 곱씹었다.

유중헌은 그 시간조차 기다릴 여유가 없는 모양이었다.

바로 태건을 다시 쏘아붙여 물었다.

“강태건, 네가 대답해 봐. 너라면 현장에서 빠질 거냐?”

“아니요.”

“그런데 왜 난 안 돼. 왜 난 빠져야 되는데!”

턱턱.

답답했는지 가슴을 두드리며 심정을 표현했다.

곧 태건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선배, 그 각오 확실한 거 맞습니까?”

“쓰벌. 내가 지금 헛소리 지껄이고 있는 걸로 보이냐!”

“그럼 알겠습니다. 제 입장은 철회하겠습니다.”

태건은 순순히 물러섰다.

울컥하던 유중헌이 멈칫했다.

“이렇게 바로 철회한다고?”

“선배 각오가 확고한데 제가 무슨 수로 말립니까. 그리고 막말로 그때 상황은 제가 선배에게 목숨을 빚진 겁니다.”

“……그야, 그렇지. 아니, 이럴 거면 왜 이 난리를 피운 거야!”

“선배가 어떤 줄 몰랐으니까요. 평소에 그런 얘기를 전혀 안하시잖습니까.”

태건은 덤덤하게 말했다.

그에 유중헌이 멈칫하며 어색해했다.

“그야 병원에서는 다들 회복하는데 내가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게 좀 그러니까.”

“저는 선배가 그 일을 피하는 줄 알고 말하지 않은 거였습니다.”

“아이씨. 내가 고작 그거밖에 안 되냐!”

“말을 안 하면 저야 모르죠.”

태건이 뚱한 얼굴로 따져 말했다.

그건 솔직히 옳은 말이었다.

유중헌도 느꼈는지 눈을 데구루루 굴리며 머쓱해 했다.

“크흠. 그래, 뭐……. 그래도 지원팀으로 빠지란 건 너무 했어.”

“선배도 너무 하시는 거 아닙니까.”

“내가 뭐!”

“제가 만만하니까 저한테 이러시는 거 아닙니까. 지원팀으로 옮기란 말은 단장님이 했는데요.”

스스스.

태건이 눈을 가늘게 뜨며 짚어댔다.

“만, 만만하다기 보다……. 크흠.”

유중헌은 내심 찔렸는지 헛기침하며 시선을 피했다.

그 모습에 태건은 엉뚱하게 싱긋 웃었다.

“제가 제일 편하다니까 좋긴 하네요. 그런데…….”

“…….”

“한 번 더 이런 식으로 몰아붙이면 저도 안 참습니다.”

찌리릿!

태건의 표정이 급변하며 스파크를 잔뜩 쏘아댔다.

유중헌은 시선을 피한 채로 머쓱하게 사과했다.

“그건 미, 미안하다.”

“저도 선배 마음 모르고 막말했으니까 퉁치기로 하고요.”

“그래.”

“아무튼 저는 철회입니다. 다른 분들은 어떤 결정을 했는지 모르겠고요.”

태건이 단서를 달았다.

그와 동시였다.

스스슥.

유중헌이 말없는 모두를 바라보더니 다시 흉흉한 기세를 끌어올렸다.

“쓰벌, 날 끝내 밀어내야겠다. 그럼 거수.”

“……”

“어디 손만 들어봐. 손모가지를 아주 작살 내버릴 테니까.”

말이 공개투표였지 협박이었다.

그런 그에게 오광휘 단장이 쓰게 말했다.

“그런데 어쩌냐, 이미 우리 손을 떠났는데.”

“뭔 소립니까. 뭐가 떠나요!”

“본부장님은 지원팀으로 옮기는 걸로 알고 계셔, 사실 본부장님이 먼저 제안하신 거거든.”

화르르륵!

가라앉았던 유중헌의 화가 다시 치솟았다.

“그 굴러들어온 아저씨가 문제란 겁니까. 어디 박힌 돌을 쳐내려고 뒤에서 사부작거려. 이런 썅!”

“뭐? 지금 본부장님한테 간다고? 야!”

“…….”

오광휘 단장이 불렀지만 유중헌은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벌컥.

벌써 대기실 문을 부술 듯이 열고 나갔다.

“쓰벌, 본부장 어딨어, 본부장 나오라 그래!”

쿵, 쿵.

옥상이 쩌렁쩌렁 울리게 소리치며 거친 발걸음을 이어갔다.

그 와중에도 조종기는 절대 놓지 않았다.

지켜보고 있던 태건이 나지막이 흘려 말했다.

“행정팀에 전화해야 되나? 꼭지 돈 라텔 한 마리가 뛰쳐내려갔다고.”

그 소리에 멍하니 있던 오광휘 단장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야, 니들 뭐해. 빨리 가서 유중헌이 잡아 와!”

“갑니다. 고수현이, 이지성이 움직여!”

파바박!

황대산이 호명하며 뛰었다.

고수현은 거의 동시에 반응했다.

“유 선배, 아무리 막 나가도 이건 선 넘었지!”

“왜 저 인간 성질 건드려서 이 난리야!”

이지성은 차갑게 쏘아붙이며 내달렸다.

그 사이 오광휘 단장은 대기실에 비치된 전화기를 다급히 낚아챘다.

“여긴 라텔 대기실, 라텔 하나, 라텔 하나, 본부장님을 당장 피신 시켜!”

얼마나 마음이 급했는지 무전처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그렇게 오늘도 특수소방단 본부는 시끌벅적했다.

다음날.

태건은 본부장실에 들어와 있었다.

두 손으로 결재서류철을 내밀며 말했다.

처억.

“여기 어제 말씀드린 신형 장비 리스트입니다. 사진을 첨부할 수 있는 장비는 첨부했습니다.”

“준비하느라 고생했어.”

“그나저나 괜찮으십니까?”

태건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소리에 박규영 본부장이 갸웃거리다 이내 눈썹을 들썩였다.

“유 단원 말인가. 조용한 반전이 있다더니, 그 정도면 엄청난 반전이던데.”

“중헌 선배는 평소엔 정말 조용한데, 한 번 꼭지 돌면 중간 없이 막 나가는 게 좀 흠입니다.”

“그러니까 라텔이겠지.”

사락.

박규영 본부장은 싱겁게 말하며 결재서류를 열었다.

태건은 그런 그를 묘하게 바라봤다.

“…….”

아무리 자신들에게 우호적이라고 해도 지나친 면이 있었다.

그때였다.

박규영 본부장이 그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말했다.

“언젠가부터 라텔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신지요.”

“그렇게 빤히 보고 있어서, 내가 왜 호의적인지 궁금한 줄 알았는데. 아닌가?‘

“…….”

태건은 적나라하게 꿰뚫어보고 있어 답할 말이 없었다.

박규영 본부장은 개의치 않고 이어서 말했다.

“아무리 좋게 말을 꾸며내도 결국은 자네들 목숨을 담보로 사선으로 뛰어 들어가야 해.”

“조금 과격한 면이 있긴 하지요.”

“그런 자네들에게 다른 일로 스트레스 주고 싶지 않아. 그게 청장님과 차장님의 의지면서, 내가 임하는 각오야.”

어느새 결재서류를 뒤로하고 태건을 마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태건은 그 말을 듣고야 그가 좀 더 깊이 이해되는 거 같았다.

그러던 중 의문점이 하나 떠올랐다.

“정책과장은 별다른 불만을 보이지 않았습니까?”

“당연히 반발이 심했지. 스스로 안일했단 부분도 인정했고, 개선하겠단 의지도 상당했지만 버스는 이미 떠났지.”

“과거형으로 말씀하시네요.”

“그 자리에 없으니까.”

박규영 본부장이 짤막하게 답했다.

듣는 태건의 입장은 애매했다.

“자리를 위협할 생각은 아니었는데요.”

“이쯤 살아보니까 놓는 게 있어야, 얻을 수 있단 옛말이 와 닿기 시작하더군.”

“무슨 말씀입니까?”

태건은 아리송한 얼굴로 물었다.

박규영 본부장은 차분한 표정 그대로 답했다.

“유럽으로 연수를 보내기로 했고, 곧 떠날 예정이야.”

“연수요?”

“차장님의 배려야. 특수소방단을 발족한 공로까지 매도하는 건 공정하지 못하니까.”

“그 점이 저도 신경 쓰였습니다.”

태건이 동감을 표하자 박규영 본부장이 이어서 말했다.

“차장님 조건은 강해져서 돌아오란 거였어.”

“그렇게 되면 라텔은…….”

“지금 우리가 미래를 확신할 순 없지. 그건 그때 뚜껑을 열어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을 거야.”

박규영 본부장은 현재에 집중하자는 말을 돌려서 했다.

그 부분은 태건도 같은 의견이었다.

“네. 쪼는 맛이 하나는 있어야 열어보는 맛이 있죠.”

“그 맛이 짜릿하지. 일단 마저 살펴보고 얘기하도록 하지. 잠깐이면 되니까 가서 좀 앉아 있도록 해.”

말을 마친 박규영 본부장은 다시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집중하는 속도가 무척이나 빨랐다.

순식간에 태건을 잊고 서류에만 몰두했다.

‘휘우.’

그 집중력에 놀란 태건은 응접소파로 향했다.

응접소파에 자리한 태건이 본부장실을 둘러봤다.

일전에 훈련소장이 사용하던 방이다.

딱히 꾸미거나 바뀐 게 없었다.

박규영 본부장이 남을 의식하지 않는 성격임을 대변해 주는 거 같았다.

‘그런 강단이야 언제든지 환영이지.’

지금까지 관찰한 모습과 집무실 광경이 일치했다.

그 점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기다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책상 앞을 두고 마주한 두 사람은 응접소파에서 두 번째 대화의 장을 열었다.

태건이 먼저 박규영 본부장에게 물었다.

“혹시 궁금하신 부분이 있다면 설명 드리겠습니다.”

“장비 이름을 알고 있으니 해당 업체에 물어보면 돼. 실 사용에 대한 부분은 후에 묻기로 하지.”

“언제든지요.”

“그런데 하나 빠진 게 있더군.”

박규영 본부장이 반전의 말을 건넸다.

태건은 리스트를 다시 떠올려보고는 갸웃거렸다.

“제가 사용해본 장비는 다 적은 거 같은데요.”

“엄연히 말하면 장비라고 하면 안 되지. 살아있으니까 말이야.”

“무얼 말씀하시는 건지…….”

“구조견. 핸들러 경험도 있다고 들었는데 말이야.”

박규영 본부장이 콕 집어 알려줬다.

그제야 태건은 알아들었다.

“아아, 맞습니다. 잠시 핸들러 임무도 수행했었습니다.”

“그런데 구조견에 대한 언급은 아예 없더군.”

“구조견은 핸들러와 짝을 이뤄 같이 훈련합니다. 둘만의 교감이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거든요.”

태건이 경험을 토대로 말하자 박규영 본부장도 수긍했다.

“익히 들은 내용들이지. 그럼 한국에선 구조견을 활용하지 않을 계획인가?”

“그게 시간과 공이 꽤 많이 들어갑니다. 또 정식 구조견으로 활동하려면 통과해야할 테스트도 상당히 많고요.”

“흐음.”

박규영 본부장이 뭔가 매끄럽지 않은 소리를 흘렸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