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화
그 속에서 미련이 느껴졌다.
처음으로 호의 외에 보인 감정이라 태건의 신경을 딱 건드렸다.
“본부장님, 실례지만 구조견에 관심이 많으십니까?”
“몇 년 전에 건물 붕괴 사고가 있었어. 그때 매몰자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해 피 말리는 시간을 보냈다더군.”
“음.”
태건은 듣기만 해도 그 심정이 느껴지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박규영 본부장은 굳은 얼굴로 이어서 말했다.
“진즉 구조견을 요청했는데 현장까지 거리가 멀었던 거야. 몇 시간이 지나서 도착했는데 그때까지도 매몰자를 찾지 못한 상태였지.”
“바로 구조견을 투입했겠군요.”
“물론. 그리고 10분 만에 찾았다고 해.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잔해 속을 종횡무진하더니 바로 찾아냈다더군. 처음부터 투입됐다면……. 흐음.”
박규영 본부장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안타까움이 진하게 묻어 나왔다.
태건은 듣고 그냥 흘릴 수가 없었다.
“바로 투입됐다면 매몰자의 생환 확률이 상당히 높았을 겁니다.”
“100퍼센트였대. 그렇게 무조건 살릴 수 있는 요구조자를 속절없이 떠나보낸 안타까운 사건이었어.”
“그래서 물어보신 거군요.”
태건이 정확한 의도를 알아채고 언급했다.
박규영 본부장은 쓴 얼굴로 찻잔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백 명을 구했다고 한 명의 목숨이 가벼워지는 건 아니니까.”
“생명은 상대적일 수 없단 말씀에 진심으로 동의합니다. 그리고 그런 의미라면 구조견은 꼭 필요한 동료고요.”
“그럼 한 번 알아보도록 하지.”
박규영 본부장이 의욕을 묵직하게 내보였다.
순간 태건의 머릿속에 ‘세리’가 스쳐지나갔다.
그 영특함은 사람이라고 느껴질 정도였다.
‘몇 가지만 숙지시키면 가능할 수도 있긴 한데…….’
팽그르르.
태건이 머리를 빠르게 굴렸다.
갑작스런 조용함에 박규영 본부장이 물었다.
“어디 아는 구조견이라도 있나?”
“아니요……. 저, 본부장님.”
“말해.”
“혹시 구조견으로 훈련 중에도 임무에 투입시킬 수 있습니까?”
태건이 사뭇 진지하게 물었다.
이번엔 박규영 본부장이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이내 입을 열었다.
“최소한의 테스트만 통과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어. 그런 견종이 있나?”
“아직은 없는데, 잘하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아, 이 말씀을 먼저 드려야겠네요. 팀워크훈련 기간 중에…….”
태건은 북한산 들개들 포획 사건에 대해 말했다.
줄줄줄.
박규영 본부장은 듣긴 들었는데 자세히 모르는 눈치였다.
“그때 뭔가 일이 있었다더니, 그게 그거였어. 그보다 강 단원이 왜 세리에 대해 말하는지 나도 감이 와.”
“얼마 전에 본가에 갔을 때도 세리가 하는 행동이 영특해서 깜짝깜짝 놀랐습니다.”
“그래서 훈련을 시키면서 현장 상황에 맞춰 투입하겠다라……. 음. 내가 구조견협회에 자세히 한 번 문의를 해보고 답해주지.”
“저도 본가에 의향을 여쭤보겠습니다.”
태건이 답하자 박규영 본부장이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럼 알아보는 대로 다시 대화 나누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서로 긍정적인 분위기로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그날 저녁.
태건은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안부 문자만 허락되어 있지만 이건 좀 다른 문제였다.
뚜루루.
“음? 어? 이거 통화를 눌러버렸네.”
어머니의 당황한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
그런 반응에 태건은 황당하면서도 섭섭했다.
그보다 전화가 끊어지기 전에 얼른 큰 소리로 물었다.
“어머니, 아무리 그래도 전화는 받아주실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둘째야, 엄마 지금 아주 냉정하고, 칼 같고, 차가운 여자가 되어 있단다. 그러니까 용건만 말해.”
“풋.”
“웃어? 너 지금 웃는 거니?”
어머니가 퉁명하게 쏘아붙여 물었다.
태건이 웃는 이유는 방금 장황한 설명 탓이었다. 말이 많아지는 건 속이 복잡하단 의미와도 일맥상통했다.
그래도 어머니 말에 웃는 건 실례였다.
“크흐흠. 웃은 게 아니라 기침이 터져 나와서 참느라 그랬습니다.”
“일단 넘어가려는 핑계 같지만 속아주기로 하고. 그래서 왜 전화 했니, 1분 안에 다 말해.”
어머니는 아예 시간제한까지 걸어버렸다.
정말 한 번 결심을 굳히면 번복하지 않는 성격이었다.
태건은 너무 잘 알기에 얼른 핵심을 간추려 말했다.
“실은 세리를…….”
웅웅웅.
태건의 목에서 울림이 계속 이어졌다.
잠시 후.
태건이 시간을 확인하며 말을 마쳤다.
“……그래서 연락드린 겁니다. 1분 안 지났고요.”
어머니의 대답은 고민도 없이 바로 들려왔다.
“안 돼. 세리는 절대 안 돼!”
“네?”
“내가 요즘 고 녀석 보는 재미에 사는데, 자식 놈들 다 떠난 헛헛한 마음을 우리 세리가 다 채워주는데!”
푹, 푹.
어머니의 말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혀왔다.
그렇게 양심에 타격을 입은 태건의 눈꼬리가 축 내려갔다.
“세리가 저희 대신 잘해주고 있다니까 고맙네요.”
“말은 바로 하자. 너희들보다 훨씬 나아. 세리는 말을 아주아주 잘 듣고, 하지 말란 건 절대 안 하거든. 아들, 엄마가 너무 뼈 때렸니?”
“순살 되겠습니다.”
“좌우간 세리는 절대 안 돼. 절대로 보낼 생각 없으니까 다신 그런 말 마라.”
어머니는 완강을 넘어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이러시는데 데려오면 진짜 나쁜 아들이지.’
태건은 깔끔하게 미련을 내려놓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단단한 두부가 되어 찾아뵐 때까지 건강하시고…….”
마무리 인사를 하려던 그때였다.
-이 녀석들, 또오! 어휴. 내가 속상해서 못 살아 증말!
어머니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태건이 화들짝 놀랐다.
“어머니 왜요. 왜 그러세요?”
“이순이하고 삼식이가 또 닭장에서 계란 빼 왔어. 다 막았는데 도대체 어떻게 들어가는 건지. 성격이라도 나쁘던가. 저기서 꼬리치고 있네. 으휴! 꼭 하는 짓이 니들 형제 같아.”
이번에도 뼈를 정통으로 때리는 비유였다.
태건은 그걸 넉살로 무마시켰다.
“지금 질풍노도의 시기겠네요. 그 순간만 지나면 훌륭한 성견으로 성장할 겁니다.”
“둘째야, 강아지 필요하댔지. 그럼 얘들 데려가라.”
“개춘기라면서요. 저는 지금 질풍노도인 애들이 필요한 게 아니라…….”
“어후, 정신없어. 엄마 이거 정리해야 되니까 그만 끊자.”
뚝.
어머니는 진짜 전화를 끊었다.
태건은 눈을 끔뻑거리며 휴대폰을 내렸다.
“난 어머니 성격 닮았구나.”
원치 않게 자아성찰이 이뤄졌다.
어쨌든 세리를 데려오는 건 어려울 거 같았다.
박규영 본부장이 좋은 소식을 전해줄 거라는 방향으로 계획을 돌렸다.
“……그래도 좀 심하십니다.”
휴대폰을 내려다보던 태건이 뚱하니 투덜거렸다.
어머니의 선 긋기에 대한 섭섭함을 그렇게 몰래 표현했다.
* * *
이틀 후.
태건은 본부 건물 외부에 위치한 쉼터에 앉아 있었다.
주변엔 수뇌부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곳이 오늘 회의 장소였다.
급격한 성장 중인 특수소방단이라 하루가 멀다하고 이렇게 모여야 했다.
박규영 본부장이 넓게 둘러보며 물었다.
“가끔은 이렇게 탁 트인 곳에서 대화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물론입니다.”
“그럼 시작해볼까.”
그가 운을 떼자 이혜지 행정팀장이 수첩을 보며 말했다.
“오 단장과 상의 결과 차수별로 10명 내외 그리고 2박 3일 일정으로 진행하기로 했어요.”
“언제부터 시작하는 거지?”
“현재 1차수 인원을 추리고 있어요. 오늘 내로 추릴 수 있을 거예요.”
“나에게 따로 보고할 거 없이 진행해.”
“중간중간 약식 보고로 대신할게요.”
슥슥.
이혜지 행정팀장이 수첩에 기입하며 답했다.
그 다음으로는 김여훈 지원팀장이 입을 열었다.
“무전과 유선대기를 24시간 3교대로 진행 중이고, 각 소방서와 유관기관에 지원가능 품목에 관한 협조공문을 보냈습니다.”
“유관기관의 반응이 궁금하군.”
“모든 지자체에서 환영의 뜻을 보내고 있습니다. 헬기부터 시작해 지원할 수 있는 장비와 물품을 조사 중에 있고 곧 리스트업이 완료될 겁니다.”
“감사한 일이지, 혹시 우리가 지원할 수 있는 부분도 체크하도록 해.”
박규영 본부장의 지시에 김여훈 지원팀장이 슬쩍 한 마디 건넸다.
“안 그래도 지원이라기보다 부탁, 아니. 요청하는 부분이 있긴 합니다.”
“뭐지?”
“안전교육이나 소방 강연입니다.”
“그건 본청으로 협조 요청하도록 해.”
박규영 본부장은 간단히 정리해 줬다.
그런데 김여훈 지원팀장의 얼굴엔 아직 난색이 가득했다.
“그게……. 그쪽에서 라텔이 해줬으면 하는 의향을 넌지시 보이고 있습니다.”
“라텔을?”
“유명세가 있으니 지자체 활동 홍보까지 염두에 두는 모양입니다.”
“흠.”
스윽.
그의 시선이 태건과 오광휘 단장에게로 향했다.
아무런 말도 없었지만 시선으로도 충분히 뭘 묻고 싶은지 알 수 있었다.
태건과 오광휘 단장은 눈빛 교환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광휘 단장이 말했다.
“저희를 찾아주셔서 너무도 감사하지만 가급적 사양하고 싶습니다.”
완곡한 거부 의사에 박규영 본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김 팀장, 더 있나?”
“없습니다.”
김여훈 지원팀장이 깔끔하게 답했다.
박규영 본부장의 시선은 계속 태건과 오광휘 단장에게 머물고 있었다.
“라텔은 준비사항이 어떤가.”
그 질문에 오광휘 단장이 다시 입을 열었다.
“테스트 훈련 일정을 세부 조정 중입니다. 단원들이 의욕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기준을 높게 잡았을지 궁금하군.”
“곧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오광휘 단장은 여지를 남겼다.
박규영 본부장은 애써 파고들지 않았다.
“직접 보는 게 가장 확실하지. 그 부분은 그렇고, 다음 강 단원은 어떻게 됐지?”
이제야 태건의 차례가 되었다.
태건은 조금 쓴 얼굴로 답했다.
“아무래도 세리는 어려울 거 같습니다.”
“부모님께서 애지중지하시는 모양이군, 그분들의 즐거움을 빼앗을 순 없지.”
“그래서 말씀인데, 본부장님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태건의 질문에 기대감이 담겨 있었다.
지금까지 막힘없던 박규영 본부장의 목소리가 슬쩍 낮아졌다.
“구조협회에선 좀 부정적이야.”
“아무래도 진돗개의 특성 때문이겠죠.”
“맞아. 몇 번이나 구조견 훈련을 진행했지만 충성심과 사냥 본능이 너무 강해서 번번이 불합격됐다고 해.”
“그쪽 기질은 세계적으로 유명하긴 합니다.”
태건의 표정도 씁쓸하게 변했다.
진돗개의 우수성을 알아본 나라들이 경찰견이나 안내견 등 특수목적견으로 훈련을 시도했다.
그러나 아직 성공한 사례가 없었다.
그 점을 말한 거였다.
가라앉은 분위기에 다들 조용했다.
그 흐름을 읽은 태건이 어깨를 쭉 펴며 질문을 바꿨다.
“크흠. 그런데 말입니다. 혹시 훈련 중에 출동하는 건 괜찮답니까?”
“다른 후보군이 있나?”
“다른 강아지를 입양하더라도 진행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합니다. 구조견의 유용함이야 여러 현장에서 증명됐으니까요.”
태건의 덧붙인 말에 박규영 본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증명이 됐지, 여튼 훈련견도 현장 투입할 방법이 있다고 하더군.”
“의외네요. 까다로울 줄 알았는데요.”
“어쩌면 까다로울지도, 그에 대해 인명구조견센터에서 훈련견 공증을 받아야 하니까.”
박규영 본부장은 끝내 단서를 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