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188)화 (187/320)

188화

그 말에 피어나던 태건의 표정이 다시 굳어졌다.

“결국은 기본 소양이 어느 정도 갖춰져야 가능하단 거네요.”

“말 못하는 동물이니 깐깐할 수밖에.”

“그럼 그쪽에서 구조견과 핸들러를 본부로 파견해줄 순 없답니까?”

태건은 다른 방향으로 선회해 물었다.

박규영 본부장도 알아봤는지 바로 답을 해줬다.

“그건 어렵지만 협조요청시 최우선으로 투입하겠다고는 하더군.”

“역시 그렇군요. 그런 약속만으로도 감사하죠.”

“내가 너무 가볍게 생각한 건지도…….”

박규영 본부장의 말끝이 흐려졌다.

자신이 먼저 언급한 게 내심 미안한 모양이었다.

태건은 그에 대해 듬직한 소견을 밝혔다.

“이번 기회에 자세히 알게 됐으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준비하면 될 거 같습니다.”

“그래. 좀 더 알아보도록 하자고.”

“그 안건은 보류하도록 하고, 뭐 더 없을까요?”

태건은 슬그머니 오광휘 단장과 팀장들에게 시선을 건넸다.

우중충한 분위기를 빨리 털어내잔 의미였다.

그런 눈치는 오광휘 단장이 빨랐다.

벌떡!

“뭐가 빠졌나 했더니 마실 게 없네요. 탁 트인 데서 음료수는 한 잔 마셔줘야 밖에 나온 보람이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저도 가겠습니다.”

태건이 바로 뒤따라 일어났다.

한 번 흐름이 끊긴 회의는 다시 이어지기 어려웠다.

그렇게 수뇌부 회의는 미적지근하게 끝을 맺었다.

그런데 상황은 전혀 예상 밖으로 전개됐다.

다음날 아침.

새벽에 가까운 이른 시간이었다.

태건은 부스스한 모습으로 주차장에 서 있었다.

손에는 두 개의 줄이 쥐어져 있었다.

줄 끝에는 개춘기에 접어든 하얀 백구 두 마리가 짖으면서 꼬리를 치고 있었다.

-멍. 멍.

각각 빨갛고 파란 목걸이가 걸려 있었다.

목걸이엔 큼지막한 메달이 걸려 있었고, 이름이 선명히 적혀 있었다.

- 이순이, 삼식이.

참 시골스런 작명센스였다.

그렇듯, 본가에 있어야 할 강아지들이 지금 태건의 앞에 존재했다.

너무도 황당한 태건은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둘러봤다.

바로 앞에는 우면119안전센터가 떡하니 존재했다. 그리고 뒤에는 본부 건물이, 그 너머엔 우면산이 솟아 있었다.

다시 봐도, 어떻게 봐도 분명 어제와 같은 곳이다.

그런데 이순이와 삼식이가 눈앞에 있었다.

“내가 꿈을 꾸나?”

자신도 모르게 혼잣말이 튀어나왔다.

그 정도로 태건의 얼굴에 황당함이 가득했다.

그런 태건에게 애견택시기사가 다가왔다.

“개집하고 장난감하고 다 저기 내려놨습니다.”

“수, 수고하셨습니다.”

“저야 아침부터 장거리 뛰고 좋지요. 아, 이걸 안 드렸네요.”

부스럭.

애견택시기사가 아차하더니 곱게 접힌 종이를 건넸다.

태건은 바로 펼쳐 빠르게 눈으로 읽어 내려갔다.

- 둘째야, 네가 고생이 많다. 그러니 좀 더 고생해라.

- 아버지가.

* 추신, 택시비는 네가 내라. 수고비도 넉넉히 챙겨드려라.

그게 편지 내용의 전부였다.

전후사정 따윈 한 글자도 적혀 있지 않았다.

필체며 문체는 아버지가 확실했다.

태건은 분명 눈으로 보고 있는데도 머릿속에 입력이 되지 않았다.

“…….”

느닷없이 떠안은 터라 멍한 표정으로 가득했다.

잠자코 기다리던 애견택시기사가 슬쩍 헛기침을 했다..

“크흐흠.”

“아, 잠시만요. 지갑 좀 가지고 올게요.”

태건은 강아지들을 기둥에 묶어 놓고 얼른 움직였다.

그리고 잠시 후.

“허허허. 애들이 똘똘하고 잘생겼더라고요. 좋은 인연 쌓으십시오.”

부우웅.

애견택시기사가 만족 가득한 표정으로 축복을 빌어주며 떠나갔다.

“하하, 네. 그래야죠.”

배웅하는 태건의 얼굴엔 썩은 미소가 가득했다.

이내 태건은 강아지들에게 다가갔다.

-헥, 헥헥.

붕붕붕.

꼬리를 얼마나 세차게 흔드는지 허리까지 요동쳤다.

격하게 반기는 모습에 태건의 뚱한 마음이 살짝 무너졌다.

“반갑긴 하네.”

-헥헥헥.

강아지들은 태건을 바라보며 더운 입김을 계속 뿌렸다.

너무 마른 입김을 느낀 태건이 아차 했다.

“물 갖다줄게. 기다려.”

슥슥.

머리를 한 번씩 쓰다듬어준 태건은 잠시 자리를 비웠다.

다시 나타난 태건의 손엔 물이 찰랑이는 바가지가 들려 있었다.

터억.

앞에 내려놓자 강아지들이 난리가 났다.

-찹찹찹.

-첩첩첩.

얼마나 목이 말랐는지 게걸스런 소리가 들려왔다.

“귀엽긴 귀엽단 말이야.”

태어난 날 운명적으로 만난 강아지들이다.

죽을 위기를 정성으로 이겨낼 수 있게 도와줬었다.

당연히 애틋함이 없을 수가 없었다.

손바닥 안에 쏙 들어오고도 남았던 강아지들이 이젠 한 손으로 안기 버거울 정도로 컸다.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과 천진난만한 행동들이 개춘기란 표현과 너무도 잘 어울렸다.

“영문도 모르고 온 너희가 뭔 죄냐.”

슥슥.

강아지들을 쓸며 이 갑작스런 상황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했다.

그 사이 주차장으로 차량이 한 대씩 도착했다.

아침에 교대하는 대원들의 출근행렬이었다.

대원들은 무심코 다가오다 강아지들을 보자 난리가 났다.

“어머머머, 예뻐라.”

“꺄악. 나 사진, 사진 좀!”

“이야. 토실토실하니 귀엽네.”

웅성웅성.

출근하던 모두의 발길이 꽁꽁 묶였다.

귀여움을 이겨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 중 행정팀 유미라 대원이 이순이를 안아들고 태건에게 물었다.

“태건씨, 얘들 누구예요?”

“본가에서…….”

태건이 막 대답하려던 그때였다.

“거기 무슨 일인가.”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다들 얼른 좌우로 비켜서며 인사했다.

“본부장님 출근하셨습니까.”

“안녕하십니까.”

꾸벅.

정중한 모습은 그 누구도 예외가 없었다.

그 사이 박규영 본부장이 열린 길을 따라 다가왔다.

그러다 강아지들을 보고는 의아해했다.

“웬 강아지들이지?”

“강태건 단원이 데려온 모양입니다.”

출동지원팀의 주간조장인 건장한 최현모 조장이 얼른 대답했다.

그 말에 박규명 본부장의 시선이 바로 태건에게로 향했다.

빙긋.

의미심장한 미소와 함께 한 마디 했다.

“그렇군. 그랬어. 강 단원은 다 계획이 있었던 거야.”

“네? 예? 아니, 그게…….”

“어제 그렇게 말한 이유가 이거였어, 그래도 귀띔이라도 주지 그랬나.”

박규영 본부장은 오해를 확정으로 굳혀버렸다.

이렇게 되니 태건도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하, 하하. 갑자기 결정이 돼서 말씀드릴 틈이 없었습니다.”

“괜찮아. 그보다, 어이고. 똘똘하게 생겼네. 이순이와 삼식이라. 이름도 아주 구수하니 입에 착착 붙어.”

“그, 그렇죠?”

“인사시키는 것도 좋지만 환경이 바뀌어 혼란스러울 수 있으니 조용한 곳에서 쉬게 하는 게 좋겠어. 허, 녀석들 참. 하하.”

박규영 본부장은 몇 번이고 바라보며 기대감을 가득 보였다.

그건 곧 태건에 대한 신뢰기도 했다.

- 강태건 단원이 심사숙고 끝에 데려온 강아지들이니 기대가 크다.

그런 의미였다.

그걸 대번에 눈치 챈 태건은 애써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하하. 배려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내심 속으로 난처함을 삼켰다.

‘세리 자식들인데 반은 하겠지. 아니, 반만 해줘.’

진심으로 간절히 빌었다.

그날 오후.

본부 건물 뒷마당에 널찍한 펜스가 설치됐다.

그리고 라텔 모두가 그 속에서 강아지들을 돌보고 있었다.

“어휴. 녀석들.”

“다시 봐도, 또 봐도 이렇게 크다니.”

“요 깜찍한 녀석들을 어쩜 좋아.”

한 번씩 안아보고, 이리저리 살펴보는 등 난리가 났다.

태건이 갖는 애틋함이 그들이라고 다를리 없었다.

특히 오광휘 단장이 이순이를 껌딱지처럼 안고 있었다.

“우쭈쭈. 우리 뽀뽀한 사인데, 나 기억하지? 그렇지?”

부비부비.

직접 기운을 불어넣어준 끈끈함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놀라운 건 이순이의 반응이었다.

-헥헥, 핥짝.

가만히 안겨 있다가 갑자기 오광휘 단장의 얼굴을 핥았다.

그 행동에 오광휘 단장의 두 눈에 꿀이 뚝뚝 떨어졌다.

“얘가 나 기억해. 진짜 완전히 기억해!”

“억지도 정도껏 하세요. 단장님은 태어난 날을 기억하십니까?”

“고수현이. 사돌이가 안 왔다고 삐치지 말자.”

서로 이상한 우월감과 실망감을 표하기도 했다.

그 옆에선 유중헌이 삼식이를 연신 쓰다듬고 있었다.

“아이, 예쁘다.”

“그만 좀 쓸어라, 애 털 벗겨지겠어.”

“대, 대산 선배야말로.”

유중헌의 항의대로 황대산이 반대편에서 삼식이를 쓰다듬는 중이었다.

그런 행동 하나까지도 묘한 경쟁이 담겨 있었다.

한편 태건과 이지성은 조금 떨어져 있었다.

저쪽은 밝은 분위기였지만 이쪽은 약간 어두침침한 느낌이었다.

이지성이 그 이유를 언급했다.

“진돗개를 구조견으로 훈련시킨다고. 넌 늘 남들과 다른 길을 가려는 그 무모한 용기가 가상해.”

“용기요? 지금 제 얼굴에 걱, 정, 이라고 쓰인 거 안 보이십니까.”

척. 척.

태건이 양쪽 볼을 차례로 가리키며 반박했다.

이지성의 입꼬리가 살짝 비틀렸다.

“엄청 잘 보여.”

“보인다니 다행이네요.”

“그나저나 너희 부모님도 참 대단하시다.”

“제 말이요. 그런데 말썽 피운다는 애들치고는 얌전하네요.”

태건은 줄곧 주시한 결과를 말했다.

이지성도 비슷하게 느낀 모양이었다.

“진돗개가 저 시기에 저렇게까지 사람 품 좋아하기도 쉽지 않지.”

“태어나자마자 우리 손을 타서 그럴까요?”

“충분히 가능한 추측이야. 그리고 사람 손을 탔는데도 세리가 배척하지 않았으니까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지도 모르지.”

“세리야 타의 모범이 되는 훌륭한 아이니까요. 반만 닮았으면 좋으련만.”

태건은 애견인인 이지성이라 속 터놓고 말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오광휘 단장이 멈칫하더니 질색하기 시작했다.

“에, 에헤이. 이순아, 안고 있는데 오줌을……. 이 자식이. 이거 뭐라고 할 수도 없고.”

툭.

얼른 이순이를 내려놓고 기동복을 털었다.

그러나 이미 물기를 가득 머금고 번진 모습이었다.

이순이뿐 아니라 삼식이도 같은 모양이었다.

“어어. 사, 삼식아.”

“야, 뭔 소변을 온몸을 비틀면서 싸냐. 이런!”

사삭.

유중헌과 황대산이 얼른 삼식이와 거리를 벌였다.

“큭큭. 긴장이 좀 풀리는 모양입니다.”

고수현은 그런 그들 모습에 키득키득거리며 놀려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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