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화
반면 이순이와 삼식이는 모두의 손에서 벗어나 펜스를 힘차게 뛰었다.
차자작.
-멍멍.
-컹컹.
이제 자신의 영역이란 듯 종횡무진 했다.
강아지들의 행동을 관찰하던 태건의 눈이 살짝 가늘어졌다.
‘설마 일부러? 에이, 아니겠지.’
일순간 스친 불안감을 애써 털어냈다.
그런데 태건만 이상함을 느낀 게 아닌 모양이다.
“저 녀석들, 둘 중에 하난데.”
“뭐가요?”
“대책 없이 똥꼬발랄한 녀석들이거나, 사람 머리 위에 올라타려는 망나니거나.”
이지성도 역시 비슷한 추측을 말했다.
“…….”
태건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아닐 거야. 절대 아닐 거야.’
부정의 말조차 아꼈다.
혹시 그 말이 씨가 될지도 모른 탓이다.
그날부터 이순이와 삼식이는 특수소방단 본부 모두의 인기를 독차지했다.
펜스는 이제 모든 대원들이 출퇴근길에 꼭 들리는 필수코스였다.
점심시간, 혹은 잠깐 쉬는 시간에도 꼭 찾아오는 핫스팟이기도 했다.
“얘들아, 안녕.”
“나 왔어.”
“잘 있었어?”
“간식 먹자!”
오가는 족족 한 번씩 쓰다듬고 다양한 간식들을 꼭 선물했다.
-헥헥
-멍멍!
이순이와 삼식이는 꼬리치거나 짖는 등 온몸으로 반가움과 기쁨을 표현했다.
지켜보던 태건이 조용히 읊조렸다.
“사회화 교육은 필요 없겠네.”
저렇게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아이들이 다른 사람을 경계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첫날 봤던 그 발칙한 행동들이 지워진 건 아니었다.
‘개춘긴데, 닭장에서 몰래 달걀 빼먹던 녀석들이라는데…….’
순탄하게 적응하는 모습이 너무도 좋았지만 왠지 모르게 찝찝했다.
안타깝게도 태건의 찝찝함이 적중했다.
며칠 후.
옥상에서 맨손 운동하던 태건의 귀에 느닷없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으어억!
태건은 깜짝 놀라 난간으로 뛰었다.
“뭔데!”
타다닥!
순식간에 난간에 도착한 태건이 아래를 내려다 봤다.
그런데 비명소리와 정반대되는 모습을 목격했다.
최현모 조장이 야외 쉼터에서 이순이와 삼식이를 끌어안고 부비적거리고 있었다.
“난 또 뭐라고.”
어이없어하는 태건 옆으로 단원들이 헐레벌떡 도착했다.
차작!
“무슨 일이야!”
“뭔데?”
태건은 아래를 가리키며 답했다.
“최 조장님의 행복에 겨운 비명소리였습니다.”
그 소리에 다들 얼른 내려다보고는 허탈해 했다.
“뭐? 아, 저 양반 참 요란하네.”
“체통을 좀 지키시옵소서. 조장님.”
다들 한 소리씩 했다.
그때 이지성의 눈빛이 일순간 날카로워졌다.
바로 태건에게 물었다.
“그런데 펜스는 누가 열어준 거야?”
“그야……. 에, 설마?”
휙!
의아해하던 태건이 재빨리 펜스를 내려다 봤다.
펜스의 땅 일부분이 푹 패여 있었다.
“뭐야!”
휙!
놀란 태건은 다시 쉼터 쪽을 바라봤다.
자세히 관찰하자 강아지들의 앞발에 흙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땅을 파고 탈출한 거였어?”
“저 녀석들 보통 아니네. 며칠 동안 조용했던 게 펜스를 돌면서 약점이 어딘지 파악하고 있던 거였어.”
“똑똑하긴 더럽게 똑똑하네요.”
“이게 끝이면 좋으련만.”
이지성이 묵직한 목소리로 우려를 보였다.
그의 우려는 놀랍게도 현실이 됐다.
이순이와 삼식이는 펜스 탈출을 밥 먹듯이 했다.
“이 새끼들 또 팠어!”
“돌 가져와, 아주 크고 무거운 걸로!”
“또 진지공사입니까. 도대체 뭔 재주야!”
턱. 턱.
태건과 황대산, 고수현이 서로 투덜거리며 구멍을 큼지막한 돌로 막았다.
그런 흔적들이 펜스 주변에 가득했다.
저쪽에선 유중헌과 이지성이 탈출한 강아지들을 쫓고 있었다.
“헉헉헉. 이, 이리 와, 얘들아.”
“부른다고 오면 사람이지, 헉헉. 강아집니까. 저쪽으로 몰아요. 빨리!”
타다닥.
유중헌과 이지성은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달렸다.
강아지를 잡는 건지, 체력훈련 중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마지막으로 오광휘 단장은 쉼터에서 죄인처럼 서 있었다.
아니, 이유 없이 죄인이 되어 있었다.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여 진심어린 사과를 건넸다.
그런 그들 앞엔 행정팀 대원들이 뚱하게 앉아 있었다.
우유팩이 쓰러져 있었고, 땅에 떨어진 빵에 강아지 이빨자국이 선명했다.
“애들 관리 좀 부탁드릴게요.”
“정말 애들이 예뻐서 이렇게 좋게 말씀드리는 거예요.”
예쁜 게 죄가 아니라 서로 불편하지 않도록 애써 웃으며 항의했다.
“단단히 교육 시키겠습니다.”
오광휘 단장은 또 다시 사과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이 몇 번 더 반복됐다.
그때마다 라텔은 뒷수습을 하고 정중히 사과했다.
결국 오광휘 단장의 뚜껑이 열려버렸다.
“펜스 완전히 봉쇄 해!”
“예썰!”
차작.
모두가 한목소리로 대답하고 일제히 움직였다.
그날 펜스 아래 흙을 모두 커다란 돌로 교체하는 대대적인 공사를 진행했다.
“이제 됐어. 지들이 무슨 수로 이걸 파고 나와?”
“이제 마음 편히 좀 쉬자.”
“고생했다, 들어가자.”
“보람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마음 놓은 만큼 노래를 절로 흥얼거렸다.
그 기쁨은 다음날 아침 무참히 깨졌다.
-멍멍!
차자작.
이순이와 삼식이가 주차장을 내달리며 쫓기 놀이를 했다.
옥상에서 그 모습을 바라본 라텔 모두의 눈꼬리가 축 내려갔다.
“어떻게 탈출한 거야.”
“땅을 판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하늘로 솟았냐, 일단 애들부터 잡아넣어!”
오광휘 단장이 울컥해 소리쳤다.
한참 후.
라텔 모두가 땀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이순이와 삼식이를 펜스 안에 넣었다.
“허어억, 헉헉.”
“니들, 헉헉. 이제, 헉헉. 끝이다.”
텅!
펜스 문을 잠그고 확인을 거듭했다.
거기에 푯말까지 걸었다.
-개조심.
-관계자 외 출입금지.
혹시 누군가 열어줬을지도 모른단 의견으로 걸어둔 거였다.
“이제 진짜 됐어. 끝!”
그렇게 단정 짓고 돌아섰다.
척척.
지친 모두가 몇 걸음 걷기도 전이었다.
행정팀 창문이 다급히 열리며 유미라 대원이 소리쳤다.
“애들 또 나와요!”
“뭐요?”
휙!
다급히 고개 돌린 라텔 모두가 경악했다.
“허어억!”
“저, 저게 말이 돼?”
이순이와 삼식이가 개집을 딛고 펜스를 뛰어넘은 탓이다.
처적, 부웅!
-컹컹!
간단히 펜스 밖으로 나온 이순이와 삼식이는 다시 자유가 되었다.
반면 라텔은 아직 거친 숨도 고르지 못했다.
“헉헉. 그 개고생을 하고 잡아 넣었는데…….”
“저렇게 쉽게 나오면, 헉헉. 저 싸가지 없는 새끼들.”
오광휘 단장이 힘이 쭉 빠진 얼굴로 다그쳤다.
“에휴휴. 뭐해. 빨리 다시 가서 잡아!”
“허어어어.”
다들 허탈하게 대답하고 돌아섰다.
터덜터덜.
“똑똑하긴 똑똑한데…….”
“저런 건 잔망스럽다고 하는 거야.”
“아후우. 누가 개새끼들 아니랄까봐. 이리와, 이 개아이들아!”
소리를 버럭버럭 지른 후에야 두 다리에 조금씩 힘이 붙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 날 며칠 동안 매 시간 숨바꼭질을 해야 했다.
얼마나 달렸는지 우면산 정상 등반이 쉽게 느껴질 정도였다.
“이런 체력훈련을 바란 건 아니었다고!”
끝내 태건이 절규했다.
그리고 모두가 지칠대로 지쳐 최후의 방법을 동원했다.
태건이 아주 단호하게 말했다.
“이르지만 훈련을 시작해야 겠습니다.”
“차라리 하자. 그렇게 애들 기운이라도 좀 빼놔야 덜 뛰어다닐 거 아니야.”
“저도 그러길 바랍니다.”
태건은 희망사항을 묵직하게 읊조렸다.
그 후로 펜스 안에서 하나씩 훈련을 시작했다.
“이순이!”
휙!
이름을 부르고 방향을 가리켰다.
그쪽으로 달려가게 유도하는 훈련이었다.
그리고 또.
“삼식이, 기다려!”
척.
손을 내밀며 단호하게 외쳤다.
다음 명령이 떨어질 때까지 기다릴 인내심 훈련이었다.
기본 중에 기본 훈련이다.
그 다음으로 특정한 물건 찾기, 탐지한 물건 앞에 멈춰 짖기 등등 훈련을 반복했다.
신기하게도 이순이와 삼식이는 훈련에 대한 집중도가 좋았다.
태건은 단호하고 싶었다.
그런데 잘한 건 분명히 칭찬해 주는 것도 훈련이었다.
빙긋빙긋.
절로 그려지는 미소로 한껏 칭찬했다.
“좋아, 굿보이.”
-헥헥.
슥슥.
꼬리치는 이순이와 삼식이의 숨소리가 한껏 올라가 있었다.
칭찬에 기분이 좋아진 거였다.
물론 모든 걸 대번에 잘해낼 순 없었다.
“어허, 아니야.”
“멈춰, 다시!”
만족스럽지 못할 땐, 해낼 때까지 절대 멈추지 않고 무한 반복했다.
그 훈련엔 이지성도 함께였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다.
구조견 훈련은 이제 첫걸음을 뗀 단계였다.
아직 갈 길이 구만리였다.
그에 대해서 오광휘 단장과 짤막하게 상의했다.
“우선 훈련 중 집중도는 좋습니다.”
“그거만 좋으면 뭐하냐. 훈련 안하면 제자리잖아.”
“오늘도 세 번 탈출했죠.”
“더 굴려야 돼. 훈련 끝나면 픽 쓰러져 잠들어서 아침에 일어날 정도로 팍팍 굴려도 모자라. 그렇게 좀 해주라.”
오광휘 단장이 진지하게 부탁했다.
매번 탈출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가 상당한 모양이었다.
정확히 탈출해서 사고를 치는 바람에, 그 항의가 계속 들어오는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