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화
태건도 그 내막을 알기에 씁쓸했다.
“그건 너무 과합니다.”
“나도 오죽하면 이런 말을 하겠냐.”
“짜식들, 제가 눈앞에 있으면 정말 말 잘 듣긴 하는데 말입니다.”
“그럼 네가 24시간 품고 있던가.”
오광휘 단장은 극단적인 방법까지 말했다.
태건은 어쩔 수 없이 조금 더 양보했다.
“야간훈련 스케줄을 잡아보겠습니다.”
“나도 이러기 싫어. 그런데 더 사고치면 우리 애들 쫓겨난다. 다들 귀엽다고 봐주는 것도 한계에 도달했어.”
“압니다. 저하고 지성 선배하고 좀 더 세심하게 관리하겠습니다.”
태건은 무거운 마음으로 답했다.
“훈련 끝나면 꼭 개줄로 묶어서 탈출 못하게 해.”
“펜스 안에 묶어 놓으라니요.”
“나도 그러고 싶지 않다니까. 잠잠해질 때까지만 그렇게 하자.”
“흐음. 알겠습니다.”
태건은 어쩔 수 없이 수긍했다.
아무리 강아지들이 예쁘다고 해도 사람과 같이 어울려 사는 게 우선이었다.
그날 밤.
야간 훈련을 마친 태건과 이지성은 결국 목줄을 걸었다.
철컥.
“아침에 와서 풀어줄게. 불편해도 조금만 이러고 있자.”“몇 시간 안 돼. 푹 자고 일어난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럼 간다.”
“쉬어라.”
끼이익.
태건과 이지성은 마음 불편한 얼굴로 펜스를 나갔다.
“…….”
스윽.
안타까움이란 녀석이 자꾸만 돌아보게 했다.
그래도 모질게 마음먹고 펜스에서 멀어져갔다.
모두가 잠든 시각.
-우웅.
-끼잉끼잉.
구슬픈 울음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강아지들의 머릿속엔 태건이 보인 안타까운 얼굴이 가득했다.
이내 이순이와 삼식이가 뭔가 행동을 시작했다.
그 후로 며칠이 후다닥 지나갔다.
점심 무렵.
태건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쉼터로 향할 때였다.
차자작.
가벼운 발소리와 함께 이순이와 삼식이가 앞에 떡하니 나타났다.
-헥헥.
보란 듯이 엉덩이 깔고 앉아 꼬리를 흔들기까지 했다.
태건은 자신의 두 눈을 비볐다.
벅벅.
그리고 다시 봐도 이순이와 삼식이가 앞에 있었다.
분명 줄에 묶여 있어야할 시간이다.
대원들은 여전히 귀여워하지만 가급적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다. 펜스 안까지 들어가는 일은 아예 없었다.
그럼 자력으로 목줄을 풀고 탈출했단 소리 밖에 되지 않았다.
“니들 대체 뭐냐.”
이젠 무섭기까지 했다.
훈련할 때는 말 엄청 잘 듣는 척하고, 돌아서면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만들어냈다.
태건은 도대체 어떤 기준에 맞춰 봐야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진짜 내가 환장하겠다.”
터덕터덕.
그러면서 한 걸음씩 다가갔다.
-헥헥.
이순이와 삼식이는 그 자세로 계속 발랄하게 꼬리치고 있었다.
태건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
“뭘 잘했다고 칭찬해 달라고 하는……. 잠깐만, 칭찬?”
멈칫.
걸음이 멈추더니 머릿속이 팽그르르 돌아갔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이순이와 삼식이 행동을 하나씩 세세히 곱씹었다.
그러던 태건의 눈이 점점 크게 떠졌다.
“어? 어어?”
휙!
그렇게 경악한 눈으로 이순이와 삼식이를 다시 바라봤다.
-헥헥헥.
휘이이익!
태건이 바라보자 숨소리가 커지고 꼬리가 더 힘차게 돌아갔다.
그 순간 태건은 확신했다.
“전부 탈출 놀이인 줄 알았던 거야?”
헐.
태건은 뒤통수를 세게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펜스를 조금씩 보강한 걸 난이도를 높였다고 여긴 모양이다.
이 추측이 맞는다고 가정한다면 엄청난 구조견이 탄생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태건은 섣불리 확정짓지 않았다.
아직 너무 어리다.
해맑음이 만들어 낸 오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일단 좀 지켜봐야겠어.’
그래도 혹시 천재견이 아닐까 하는 소망을 완전히 버리진 못했다.
훈련견이기 전에 반려견이다.
팔이 안으로 굽을 수밖에 없었다.
태건은 곧 이순이와 삼식이를 데리고 펜스로 향했다.
그때 강아지들이 갑자기 멈춰서더니 크게 짖었다.
-멍, 멍멍!
동시에 한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태건은 갸웃거렸다.
“갑자기 왜 그래?”
물론 강아지들이 대답할리는 없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부우웅.
주차장으로 SUV가 들어섰다.
문쪽에 큼지막한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도봉119안전센터.
일전에 대형마트 화재 사건 때 출동한 안전센터 중에 하나였다.
이렇게 찾아온 건 처음이었다.
“무슨 일이지?”
갸웃거린 태건은 곧 이순이와 삼식이를 내려다봤다.
-헥헥.
태건이 멈추면 자연스럽게 자리에 앉아 올려다봤다.
늘 주둥이 끝이 살짝 올라가 웃는 느낌이었다.
-칭찬해. 나 잘했잖아.
-어서 날 칭찬해라.
그런 분위기를 풍겼다.
가만히 바라보던 태건은 갑자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우리 본부 차량이 아니라서 짖은 건가?’
개의 청력이라면 같은 엔진음이라도 미세한 차이를 구별할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던 태건은 곧 쓴 미소를 지었다.
이래서 내 새끼 자랑을 하나보다.
별 것도 아닌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대단하게 느껴졌다.
슥슥.
“그래 잘했어.”
시선을 낮춘 태건이 똑같이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멍!
우렁찬 짖음에 당당함이 가득 차올랐다.
그렇게 교감을 할 때였다.
SUV에서 몇 사람이 내렸다.
기동복을 입은 소방대원이 서둘러 트렁크에서 휠체어를 꺼냈다.
그 사이 중년인이 뒷좌석에 자리한 열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를 안아들어 휠체어에 앉혔다.
“디리가 아픈가?”
그런 생각이 들 무렵 아이의 독특한 행동이 보였다.
더듬더듬.
휠체어에 팔을 얹는데 두 손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다.
그제야 태건은 아이의 상태를 직감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구나. 그런데 여긴 무슨 일로 온 거지?”
찾아온 이유가 도저히 가늠되지 않았다.
누구의 손님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강아지들과 펜스 쪽으로 향했다.
잠시 후.
태건이 쉼터에 자리했다.
반대편에 이지성이 앉아 있었고 둘 다 음료수를 쥐고 있었다.
그리고 태건이 방금 느꼈던 추측을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 자체를 놀이로 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가능성이 아예 없는 소리는 아니야.”
“진짜 그런 거면 학습능력, 응용능력은 최고일 겁니다.”
태건이 희망을 보였다.
그러나 이지성은 지독한 현실주의자에 부정적인 관점이 버무려진 인물이었다.
“모든 게 잔머리라면 최악의 훈련견으로 낙인찍힐지도 몰라.”
“그걸 판단하려면 빨리 봄이 와야겠습니다. 충분히 자라야 구조견 테스트를 받을 테니까요.”
“이제 아침저녁으로 영하 찍는 날씨야. 다시 그 날씨가 되려면 한참 멀었어.”
이지성의 부정적인 말에도 태건은 미소 지었다.
“여유가 있으면 그만큼 훈련 기간도 늘어나는 거죠.”
“강아지야 그렇다고 치고, 인간 훈련은 대체 언제부터 한단 거야?”
“며칠 안 남았…….”
태건이 막 대답할 때였다.
-띵동댕동.
-본부 내 라텔 오광휘 단장, 강태건 대원, 지금 즉시 본부장실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일반적인 방송이라 태건이 갸웃거렸다.
“비상은 아닌 거 같은데요.”
“그 굴러들어온 아저씨는 또 왜 부르는 거야. 젠장. 뭘 못하게 하네!”
“출동 콜이 없다고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때가 되면 다시 겁나게 날아다닐 테니까요.”
스윽.
태건은 가볍게 위로하며 움직였다.
지금 그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출동 콜을 누가 제한하고 있는 건 결코 아니었다.
최근 그 정도로 커다란 대형화재가 일어나지 않아 조용한 거였다.
그리고 아침저녁으로 강아지들 잡으러 뛰어다니며 체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언제든 콜만 들어오면 당장 날아갈 수 있었다.
* * *
곧 태건과 오광휘 단장이 본부장실 앞에서 만났다.
오광휘 단장이 짧게 물었다.
“알아?”
“모릅니다.”
“들어가면 보면 알겠지.”
똑똑.
말을 마치기 무섭게 바로 노크했다.
잠시 후.
소파에 자리한 태건이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네? 안내견을 찾아 달라고요?”
“흑흑. 새롬이가 없어요. 흐아앙. 새롬아!”
휠체어에 앉은 아이의 울음소리가 본부장실을 가득 뒤덮었다.
허우적, 허우적.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애절하게 허공을 손짓하는 게 누군가를 붙들려는 간절함이 엿보였다.
오광휘 단장이 태건에게 기대어 속삭였다.
“네 팬이라는데 손부터 좀 잡아줘.”
“그래야죠.”
“아예 코앞까지 바짝 얼굴 들이밀어. 눈앞에 있는 건 어렴풋하게 볼 수 있다잖아.”
“…….”
끄덕.
가볍게 고갯짓한 태건이 몸을 움직였다.
그리고 곧 아이의 허우적거리는 두 손을 조심히 붙들며 불렀다.
“정훈아, 마정훈.”
“흐으윽, 어? 이 목소리…….”
“그래. 나 강태건이야.”
“허어어엉. 아저씨, 우리 새롬이 좀 찾아주세요. 저 새롬이 없으면 안 돼요, 허어어엉!”
마정훈의 서러움에 복받친 울음소리가 더욱 크게 울렸다.
태건은 최대한 침착하게 마정훈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자아, 뚝. 울지 말고.”
“흐어엉!
달래는 소리에 마정훈의 울음소리는 더 커졌다.
태건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거기엔 마정훈의 아버지인 마현석이 자리해 있었다. 40대 초반으로 보였고, 부유함과 거리가 한참 멀게 느껴지는 옷차림이었다.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자식이 우는데 아버지인 그는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어휴, 저……. 하아아.”
안절부절하지 못하며 한숨을 내쉬는 게 전부였다.
뭔가 사정이 있는 모습이었다.
태건은 그 부분을 진작 눈치 채고 있었다.
지금까지 오간 대화에서 마현석이 제일 소극적이었다.
아무리 사정이 있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모습은 좋게 보이지 않았다.
‘아빠란 사람이…….“
찌릿.
한껏 노려보는 한편, 쉬지 않고 우는 마정훈을 달래고 또 달랬다.
“새롬이는 괜찮을 거야. 곧 돌아올 거야.”
토닥토닥.
“흐어어엉.”
태건의 위로에도 마정훈의 눈물은 쉽사리 거둬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