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조금 시간이 흐른 뒤였다.
…….
본부장실이 찢어질 듯 울리던 마정훈의 울음소리가 사라졌다.
대신 마정훈은 소파에 길게 누워 있었다.
너무 많이 울어 탈진 증세를 일으킨 탓이었다.
태건이 응급처치로 포도당을 정맥주사로 연결했다.
곧 마정훈의 팔엔 IV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그렇게 지친 순간에도 눈가가 축축했다.
“흑흑, 새롬아…….”
주르륵.
잠꼬대로도 안내견을 하염없이 찾았다.
그 절절함이 모두의 가슴을 애잔하게 했다.
앞이 보이지 않는 마정훈에게 안내견인 새롬이가 어떤 존재였는지 가슴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태건은 그런 마정훈에게 얇은 이불을 덮어줬다.
스륵.
“흐음.”
한 번 더 바라보며 묵직한 탄식을 흘렸다.
그리고 나서야 몸을 돌렸다.
본부장 사무실에 묵직함이 감돌았다.
간만에 찾아온 고요함이었다.
그 침묵을 깨고 도봉119안전센터의 노재훈 구조대장이 정중히 입을 열었다.
“소란스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
꾸벅.
마현석은 입을 꾹 다문 채 고개 숙여 같이 사죄를 표했다.
그러나 화답소리는 없었다.
태건과 박규영 본부장, 오광휘 단장은 입술 한 번 달싹이지 않았다.
“…….”
마현석의 유약한 모습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특히 자녀가 있는 박규영 본부장의 표정이 가장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그……. 흐으음.”
뭔가 하고 싶은 말을 억지로 억누르기까지 했다.
그렇게 박규영 본부장은 다방면으로 고려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을 보였다.
그건 그의 입장이었다.
이 중에는 이런 인내심과 거리가 먼 이들도 있었다.
태건과 오광휘 단장이었다.
그 중에서도 태건의 표정이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구우우.
마현석을 날카롭게 직시하며 따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버님, 하실 말씀 없으십니까?”
“면목이 없습니다.”
“지금 그걸 말하는 게 아니라…….”
태건이 울컥해 따지려 했다.
그때 오광휘 단장이 허벅지를 건드렸다.
툭.
“…….”
절레절레.
고갯짓까지 더 했다.
잠들었다고는 하나 아이가 있으니 경거망동하지 말란 의미였다.
의미를 눈치 챈 태건은 인내해보려 했다.
아직 자세한 내막을 모른 탓도 있었다. 그렇다고 해도 역시나 마현석의 방관하는 모습에 화가 솟구쳤다.
결국 태건이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벌떡!
“아버님, 저랑 대화 좀 하시죠……. 본부장님, 구조대장님, 결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렇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박규영 본부장은 손짓으로만 동의를 표했다.
“…….”
스윽.
그 역시 마현석이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계속 눈치를 보던 노재훈 구조대장이 마현석에게 넌지시 권했다.
“아버님, 차라리 그게 좋겠습니다. 본부장님께는 제가 여기서 따로 조용히 사정을 말씀드리겠습니다.”
“…….”
스윽.
마현석은 이런 상황에서도 말을 삼갔다.
뒤따라 오광휘 단장이 몸을 일으켜 세우며 말했다.
“저도 같이 움직이겠습니다.”
“그렇게 해.”
“그럼.”
스윽.
오광휘 단장이 태건에게 조용히 눈짓했다.
“실례하겠습니다.”
꾸벅.
태건은 정중히 인사한 후 본부장실 밖으로 향했다.
세 사람은 곧 외부쉼터에 자리했다.
그런데 네 명이었다.
추가된 한 명 아니, 원래 그 자리에 있던 이지성이 자연스럽게 합석하게 됐다.
…….
대화 한 마디 없이 싸늘함만이 가득했다.
눈치 빠른 이지성이 한 눈으로 분위기를 간파했다.
“이건 뭔 남극에서 펭귄이 얼어 죽을 분위기야.”
그 정도로 태건이 마현석을 노려보는 시선이 강렬했다.
태건은 가타부타 떠들지 않고 핵심만 따졌다.
“애가 그렇게 우는데 손 놓고 계시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죄송합니다.”
“사과 받자고 이러는 거 아닙니다. 도대체 왜 정훈이를 그렇게 손 놓고 바라만 보신 겁니까.”
구구구.
태건은 강한 목소리로 사정없이 몰아붙였다.
그런데 공격적인 태건의 말에 마현석 아닌 다른 인물이 발끈했다.
바로 이지성이었다.
단 몇 마디로 상황을 알아챈 그의 눈치는 비상하다 못해 경이롭기까지 했다.
게다가 이런 문제에 특히나 민감했다.
찌리릿!
“이봐요. 그런 방치와 방관이 애한테 얼마나 악영향을 끼치는 줄 압니까!”
“선배.”
“뭐, 내가 없는 소리 했어?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 왜 낳아서 여러 사람 피곤하게 하는데.”
이지성이 뚱하니 쏘아붙였다.
그 격한 힐난에 오광휘 단장의 눈동자가 이지성에게로 향했다.
스르륵.
“이지성, 얘기 듣자고 온 거다. 앞서가지 마.”
“뭘 앞서가지 말란 겁니까. 딱 들어보며 답 나오잖습니까.”
“……언제부터 네가 다른 사람 사정에 귀 기울였다고 이러는 거야. 닥치고 찌그러져 있어.”
그건 오광휘 단장의 지적이 옳았다.
이지성은 세상 그 누구에게도 무심했다.
그가 관심을 갖는 건 현장 속 요구조자 밖에 없었다.
스스로도 알고 있던 탓에 이지성은 쓴 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프으으.”
스륵.
그래도 자리를 벗어나지는 않았다.
태건은 두 사람의 트러블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찌리릿.
마현석만 직시하고 있었다.
백번 천번 양보해서 최대한 차분하게 운을 뗐다.
“저희가 지금 아는 건 정훈이의 안내견을 잃어버렸단 거뿐입니다.”
“…….”
“그리고 도봉센터에 찾아가 직접 실종신고를 했고, 시간이 지나도 성과가 없자 정훈이가 울고불고 떼를 써서 여기까지 왔다고 했습니다. 맞습니까?”
태건은 본부장실에서 들은 내용을 함축해 정리했다.
조용히 듣고 있던 마현석은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전부 맞습니다. 그런데…….”
“그런데요?”
“새롬이를 잃어버린 게……. 접니다. 푸우우.”
마현석이 어렵사리 그 말을 꺼냈다.
일순간 모두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터덕.
오광휘 단장이 표정을 굳히며 재빨리 다그쳐 물었다.
“뭐라고요? 아버님이 잃어버렸다니요.”
“흐음.”
태건과 이지성이 무거운 탄성을 흘렸다.
마현석이 쉽게 나서지 못한 이유가 그 한 마디 속에 들어 있던 탓이다.
그런데 생각할수록 이상했다.
안내견을 분양 받는 건 상당히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로웠다.
그런 문제를 뒤로 하더라도 마정훈에겐 더 없이 소중한 존재일 터였다.
그런데 마현석이 관리를 소홀히 했다는 건 납득이 되지 않았다.
‘도대체 뭐야.’
생각 같아서는 마현석의 멱살이라도 붙들고 당장 모두 불라고 소리치고 싶었다.
다행히 실천에 옮기지는 않았다.
마현석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시민임을 감안해 최대한 울컥함을 가라앉혔다.
그렇게 태건은 속을 다잡았다.
그러고 나서야 차분하게 말할 수 있었다.
“아버님, 어떻게 된 건지 정확히 알려주셔야 합니다.”
“맞습니다. 저희가 전후사정을 알아야 이후 어떤 행동을 취할지 결정할 수 있습니다.”
오광휘 단장이 덧붙여 말했다.
거기에 이지성이 툭툭 쏘는 목소리로 거들었다.
“특수소방단이 뭐하는 곳인지 알고 오셨다면서요. 당장 지원요청 들어오면 헬기 타고 날아가야 합니다.”
“선배, 좀.”
스윽.
태건이 가볍게 붙들었다.
이지성은 그 손을 거칠게 떼어내며 한 번 더 말했다.
“우리가 이 일에 끼어들려면 그만한 당위성을 부여해 달란 소리야.”
“…….”
“아니면 우리가 왜 여기서 24시간 내내 대기 하냐. 그 시간에 유기견이나 유기묘 포획하러 돌아다니지. 안 그래?”
“알았으니까, 쫌.”
태건은 눈을 흘겼다.
사실 이지성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다만 너무 몰아붙이면 열리려던 입도 다시 닫힐 터였다.
그걸 우려한 만류였다.
그때 마현석이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 모르겠습니까. 정훈이가 매일 특수소방단에 대해서 말하는데요.”
“저희에 대해서요?”
“세상에서 제일 용감한 소방관들이라고……. TV와 라디오에서 들은 여러분들 소식을 저에게 매번 퀴즈처럼 질문합니다.”
“…….”
태건과 단원들은 왠지 모르게 숙연해졌다.
거기에 마현석이 덧붙여 말했다.
“그래서 저도 앞에 계신 분들이 오광휘 단장님, 구급담당인 이지성 단원님, 화재와 구조 담당인 강태건 단원님이란 걸 보자마자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셨군요.”
“정훈이를 볼 낯이 없어서 말리지 못한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더 죄송합니다.”
꾸벅.
마현석은 다시금 정중하게 사과했다.
그의 말을 쭉 들어본 태건과 단원들이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무턱대고 부정적인 시선을 지은 거였다.
하지만 아직 아무것도 들은 게 없어 섣부르게 판단하지 않았다.
태건이 급한 성격만큼 지체 없이 입을 열었다.
“그래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자세히 좀 말씀해 주세요.”
“흐으음.”
마현석은 크게 숨부터 골랐다.
곧 최대한 차분한 목소리로 사정을 말하기 시작했다.
“새롬이는 매일 아침 야외에서 배변활동을 합니다.”
“안내견들은 실내배변 훈련이 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물론 가능합니다. 그런데 새롬이는 매일매일 그 시간을 기다립니다. 제가 자고 있으면 와서 깨울 정도로요.”
“왜 그런 겁니까?”
태건이 묻자 마현석이 묵직하게 답했다.
“유일하게 안내견의 업무에서 벗어나 즐기는 자유시간이니까요.”
“아…….”
“새롬이는 하루 종일 정훈이 곁을 지켜주는 보호견이자 친구입니다.”
“그렇죠.”
“늘 어두웠던 정훈이가 새롬이를 만나면서 밝아졌습니다. 저희에겐 그저 한 마리 개가 아니라 너무도 소중한 존재입니다.”
마현석은 말을 할수록 자책이 드는지 목소리가 점점 더 가라앉았다.
거기까지만 들어봐도 안내견을 향한 고마움이 넘쳐나게 느껴졌다.
그러니 더욱 궁금해졌다.
오광휘 단장이 더 참지 못하고 얼른 물었다.
“그래서 매일 아침마다 데리고 나가신다는 겁니까?”
“네. 눈이 와도, 비가 와도 그 시간만큼은 무조건 데리고 나갑니다.”
“흐으음.”
“그게 제가 새롬이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약속이고 보상이라 거를 수가 없습니다. 크흐으윽!”
텅.
말하던 마현석이 침통함을 흘리며 테이블을 내리쳤다.
슬퍼하는 마정훈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벌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