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화
태건은 무겁다 못해 지하로 뚫고 들어갈 분위기를 흩트렸다.
“지금 감정적인 대화를 나누자고 모신 게 아닙니다.”
“그렇죠. 후우. 아무튼 오늘 아침에도 똑같이 데리고 나갔습니다. 안내견 문구가 쓰인 하네스도 벗고 잠시 애완견으로 돌아가서 말입니다.”
“그런데요?”
“늘 같은 곳에서 볼일을 보는 아이입니다. 볼일을 다 보면 그때부터 산책을 시작하는 게 순서고요.”
“이해했습니다.”
태건이 차분히 답했다.
마현석이 테이블에 올린 두 주먹을 한차례 떨며 말했다.
파르르.
“그런데 오늘은 뭔가 계속 달랐습니다.”
“어떤 점이요?‘”
“어딘가를 계속 힐끔힐끔 쳐다보더군요. 그리고 볼일을 보라고 줄을 길게 늘인 순간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갔습니다.”
마현석이 전하는 장면을 모두가 머릿속으로 상상했다.
그러다 태건이 나지막이 물었다.
“새롬이가 혹시 리트리버 종류입니까?”
“골든리트리버입니다.”
“중형견 치고 덩치가 크죠. 긴장하지 않는다면 순간 가해진 힘에 성인도 넘어질 수 있습니다.”
“……아차한 순간 줄을 놓쳤습니다.”
마현석은 뼈아픈 실책의 순간이라 눈을 질끈 감고 말했다.
그때 조용하던 이지성이 퉁명하게 물었다.
“뭘 보고 간 줄 아십니까?”
“아니요. 모릅니다.”
“그럼 더 이상하네요. 안내견들은 충동 억제 훈련을 특히나 많이 받으니까요.”
슥슥.
이지성이 턱까지 쓸며 의구심을 짙게 표현했다.
그때 태건이 다른 질문을 건넸다.
“혹시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습니까?”
“저희랑 보낸 3년 동안 처음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저희 주변에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그럼 아는 사람을 본 건 아닐까요?”
“……모르겠습니다.”
마현석은 이런 답을 해야 하는 스스로를 괴로워했다.
태건과 단원들은 그런 마현석을 유심히 관찰했다.
눈과 목소리의 떨림.
자책으로 가득한 눈빛.
괴로운 표정까지.
이 순간을 거짓으로 무마하려는 게 아니란 판단을 내렸다.
끄덕.
서로 눈짓과 고갯짓으로 의견을 일축했다.
그때 오광휘 단장의 휴대폰이 울렸다.
띠리릭.
“네, 본부장님. 오광휘입니다……. 네, 어느 정도는……. 알겠습니다.”
짧은 통화 후 오광휘 단장이 휴대폰을 내리며 물었다.
“아버님, 실례지만 먼저 들어가 주실 수 있을까요?”
“그럼요. 그런데 꼭 좀 부탁드립니다. 이렇게 그냥 말할 게 아니라…….”
스윽.
반듯이 선 그의 두 무릎이 굽혀지려 했다.
그걸 대번에 눈치 챈 모두가 재빨리 만류했다.
“어떤 마음인지 알겠으니까 이러지 마세요.”
“너무 이러시면 저희가 부담스럽습니다.”
그렇게 마현석이 하려는 행동을 사전에 차단했다.
곧 마현석이 본부장실로 떠나갔다.
그 빈자리를 밖으로 나온 박규영 본부장이 채웠다.
“직접 들었다지.”
박규영 본부장이 운을 떼자 태건이 대답했다.
“네. 그런데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습니다.”
“어떤 부분이지?”
“안내견은 그렇게 독단적인 행동을 하지 않습니다.”
“그럼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단 건가?”
박규영 본부장의 표정이 굳어지려 했다.
그 부분에 대해 이지성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상황 자체는 진실을 말한 거 같긴 합니다.”
“그래서 석연치 않은 대답이란 거였군.”
“제가 직접 본 게 아닌데 확신할 순 없는 거 아닙니까.”
이지성은 역시 상대가 누구라도 삐딱한 말투로 대했다.
박규영 본부장도 익히 하는 사실이라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건 옳은 말이지. 그래서 오 단장, 어떻게 할 생각인가.”
“솔직히 안타깝습니다. 정훈이의 눈물이 지금도 아른거릴 정도로요. 하지만 저희가 투입될 정도의 사안이라고 보긴 좀 어렵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야.”
박규영 본부장은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현했다.
그때 태건이 슬쩍 손을 들며 말했다.
스윽.
“저는 반대입니다.”
“강 단원도 반대인가. 그럼…….”
“아니요. 두 분 의견에 반대란 겁니다.”
태건이 명확히 뜻을 밝히자 박규영 본부장이 관심 깊은 표정으로 권했다.
“출동하자라, 그 이유는?”
“정훈이에게 새롬이란 존재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결코 가볍지 않겠지.”
“조금 과하게 표현하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길잡이이자 보호견입니다. 자기 자신만큼 소중하지 않겠습니까.”
태건은 차분하지만 분명하게 생각을 밝혔다.
“흐음.”
박규영 본부장은 가볍게 턱을 쓸었다.
오광휘 단장이 태건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어. 그런데 그 사이에 출동이 걸리면…….”
“출동하면 되죠. 픽업 포인트만 정하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거야 그렇긴 하지.”
대답하는 오광휘 단장의 목소리가 썩 개운치 않았다.
그건 출동을 반대하는 자신의 입장에 대한 심정 표현이었다.
출동하고 싶지만 대외적인 명분이 부족해 발목을 잡고 있었다.
단장이라서 그런 부분도 신경 써야 했다.
태건은 그런 오광휘 단장의 속을 꿰뚫고 있었다.
명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그래서 태건은 오광휘 단장의 갈등을 날려버릴 묘수를 꺼냈다.
“출동해야 하는 이유가 또 하나 있습니다.”
“어떤 이유지?”
“변화한 특수소방단이 어느 정도 역량을 갖췄는지 테스트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투둥.
태건은 색다른 관점을 모두에게 말했다.
그 순간 박규영 본부장의 눈에 강렬한 이채가 번쩍였다.
번뜩!
“그렇군. 출동, 지원, 행정. 각 파트별 업무역량과 가용범위를 체크할 수 있겠어.”
“위험한 현장에서 삐걱거리면 그땐 답이 없습니다.”
“강 단원의 말이 옳아. 아니, 정확해.”
박규영 본부장의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그건 오광휘 단장도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내심 찝찝했는데, 이제 뒤통수 간지럽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그래서 할 말은?”
“라텔, 출동하겠습니다.”
오광휘 단장이 묵직하게 선언했다.
번뜩!
좌우에 나란히 선 태건과 이지성의 눈빛도 강한 빛을 뿌렸다.
* * *
잠시 후.
특수소방단 본부 전역에 비상벨이 울렸다.
- 에에엥!
그 순간 평화롭던 분위기가 긴장감으로 날카롭게 변화했다.
그리고 모든 대원들이 각자 위치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행정실.
대원들 일부는 전화기를 들고 상대와 빠르게 통화했다.
“도봉구청이죠. 여기 특수소방단…….”
“도봉경찰서죠. 실종된 골든 리트리버가 있는데, 혹시 연락 온 게…….”
또 일부 대원들은 사무기기를 적극 활용했다.
“새롬이 사진 도착했습니다!”
“도봉구 중심으로 인근 소방서들과 안전센터들에 죄다 전송해.”
“인쇄물 출력 중입니다. 배포할 외근팀은 주차장에서 대기 중입니다.”
각자 목소리 높여 진행사항을 공유했다.
출동지원팀도 다급히 가동 중이었다.
“현재 교통상황으로는 차량보다 헬기를…….”
“도봉소방서죠. 옥상에 헬기장…….”
“도봉구 내에 CCTV 영상을 요청…….”
“모니터에 지도 띄웠습니다. 새롬이의 실종 위치는 빨간 점. 주변에는…….”
겉보기엔 행정실 업무와 흡사해 보였다.
그러나 깊게 파고들어 보면 라텔의 출동과 밀접한 부분에 집중되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주간 조장인 최현모 조장이 전용 채널 무전기를 작동시켰다.
“라텔, 출동!”
같은 시각, 옥상.
투두두두.
헬기가 시동을 걸고 당장이라도 날아오를 준비를 마쳤다.
그 속에 라텔 6명이 전원 올라타 있었다.
기동복에 엑스반도 차림으로 기동력을 높인 모습이었다.
모두의 무전기에 똑같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띠릭, 라텔, 출동!
그 소리와 동시에 유중헌이 조종간을 당겼다.
“갑시다!”
투다다다.
헬기는 바로 솟아올라 북쪽으로 날아갔다.
빠르게 하늘을 가로질러간 헬기는 곧 도봉구에 도착했다.
태건부터 모든 단원들이 망원경으로 사방을 살폈다. 하지만 빽빽하게 들어선 건물들로 시야가 상당히 제한 됐다.
태건이 헬멧 무전기를 작동시키며 말했다.
띠릭
“유 선배, 이렇게는 어림도 없습니다.”
-띠릭. 나도 그래 보여. 이 근처에 도봉소방서에 착륙장이……. 오케이. 저기 확인. 바로 내린다!
투다다.
짧은 외침과 동시에 헬기가 급선회했다.
잠시 시간이 지난 후였다.
도봉소방서의 철문이 열리고 빨간 소방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출발했다.
- 에에엥!
사이렌을 울린 차량은 빠르게 도로에 진입했다.
그 운전대는 역시나 유중헌이 잡고 있었다.
“차 겁나 많네!”
삭삭.
불만을 터트린 목소리와 달리 차량 사이사이를 놀랍도록 유연하게 빠져나갔다.
그 사이 모두 무전기에 귀를 집중했다.
본부에서 수집한 각종 정보들이 쉴 새 없이 들려왔다.
-띠릭, CCTV에 찍힌 새롬이 발견, 마정훈 군의 집에서 북쪽으로 이동했습니다.
-띠릭, 유기견 혹은 실종견 신고 접수사항은 없습니다.
-띠릭, 4개 차량이 도봉구로 출발.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전단지 배포 예정입니다.
무전에 집중하던 오광휘 단장이 낮게 휘파람을 불었다.
“휘이. 우리가 출발한지 5분밖에 안 됐는데, 벌써 이렇게?”
“‘우리가 알아봐야할 일들이 완전 줄어들었습니다.”
“이렇게까지 빠르게 소식을 전해줄 줄은 몰랐습니다.”
다들 감탄했다.
이건 업무의 효율 증대가 아니라 혁신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모든 사이드잡은 행정팀과 출동지원팀에서 도맡았다.
라텔은 그저 출동 목적만 달성하면 될 정도였다.
오광휘 단장이 한마디 더 말했다.
“분부장님 최우선 지시사항이었대, 본인의 업무 숙지 및 상황 발생시 행동요령 말이야.”
“어쩐지, 얼마 전에 결성된 거 치고는 너무 신속한 게 의아할 정도였습니다.”
다들 한결 가벼워진 어깨에 목소리 또한 밝아졌다.
그러던 중 태건이 시간을 확인했다.
그리고 표정을 굳히며 모두에게 말했다.
“일몰까지 몇 시간 안 남았습니다.”
“해 떨어지면 그땐 우리도 대책 없습니다!”
고수현이 한 마디 덧붙였다.
오광휘 단장의 목소리가 대뜸 커졌다.
“서둘러야지. 유중헌이!”
“도착 위치부터 잡아야 할 거 아닙니까. 누가 새롬이 동선 좀 파악해봐.”
“하고 있습니다!”
이지성이 높다란 목소리로 소리쳐 답했다.
비단 그뿐이 아니었다.
사삭.
다들 지도앱을 열고 출동지원팀에서 보내준 위치를 토대로 주변을 검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