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화
반면 태건의 표정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한 시간 안에 뭔가 방향이 잡혀야 해.’
그렇지 않으면 해가 질 터였다.
어둠이 찾아오면 수색 반경이 좁아질 수밖에 없어 잔뜩 경계했다.
소방차는 어느새 마정훈의 집 근처에 도착했다.
“저기가 집이랬지?”
“맞습니다!”
“그럼 여기서 북쪽 이랬으니까…….”
오광휘 단장이 뭔가 말하려 했다.
그때 모두의 무전기에서 동시에 소리가 들려왔다.
-띠릭, 지원팀 최현모 조장입니다. 새롬이가 마지막으로 CCTV에 잡힌 장소를 전송했습니다!
그 소리와 동시였다.
띠링.
메시지 도착소리가 울리며 동시에 오광휘 단장이 휴대폰을 빼들었다.
“어어, 확인했어. 유중헌이, 여기서 북서쪽 아니……. 잠깐만.”
“왜요. 대체 뭔데요!”
유중헌이 인상을 팍 찡그리며 따졌다.
그 순간 태건이 반사적으로 몸을 내밀며 오광휘 단장에게 물었다.
“단장님, 혹시 누가 데려간 겁니까?”
“골든 리트리버라면 그럴 가능성도 없진 않아.”
황대산이 묵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이지성은 반대 의견을 내보였다.
“다 큰 성견을 누가 데려갑니까. 덩치가 커서 웬만한 집에선 엄두도 못 냅니다.”
“그래도 골든 리트리버는 사랑 많이 받잖아.”
고수현이 의아하게 바라봄과 동시였다.
태건이 얼른 한 마디 했다.
“리트리버는 숨겨진 악마견입니다.”
“태건이 말이 맞습니다. 활동량이 많아 집에 도배고 장판이고 소파고 남아나는 게 없습니다. 슬리퍼는 그냥 포기하는 게 마음 편할 정도로요.”
부르르.
이지성은 몸을 떨 정도로 아찔해 하며 답했다.
하나의 주제를 던지자 그렇게 모두가 달려들어 자기 소리를 냈다.
그 웅성거림에 오광휘 단장이 지도를 크게 확대해보다 버럭 소리쳤다.
“이 짜식들아, 그 사이를 못 참고 떠드냐!”
“…….”
“유중헌이 북한산 국립공원 쪽으로 가.”
오광휘 단장의 말에 방향을 틀려던 유중헌이 멈칫했다.
“산? 갑자기 웬 산?”
“내가 어떻게 알아. 그 녀석이 그쪽으로 갔는데!”
“진짜 산으로 갔다고요?”
“그 근처 CCTV에 마지막으로 찍혔어.”
오광휘 단장의 말에 유중헌은 머리가 복잡해진 표정으로 변했다.
“산에 올라갔으면 진짜 머리 아파지는데.”
“그건 나중에 따지고, 일단 근처 가서 탐문이라도 해 봐야 할 거 아니야!”
“알았다니까, 성질하고는.”
부우웅!
흘겨본 유중헌은 이내 소방차의 방향을 돌렸다.
잠시 후.
소방차는 북한산 국립공원 근처 상가에 멈춰 섰다.
차작!
라텔이 일시에 내리자 태건이 가까운 상가로 뛰며 소리쳤다.
“흩어져서 탐문부터!”
타다닥!
“서둘러!”
오광휘 단장이 뒤따라 외치고 모두가 사방으로 흩어졌다.
먼저 달린 태건은 편의점으로 직행했다.
‘누가 보호하고 있으면 최곤데.’
내심 그런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그런 태건은 한달음에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곧 편의점을 나온 태건의 눈꼬리가 살짝 내려갔다.
“실망하긴 일러.”
타다닥.
의욕을 끌어올린 태건이 다른 상가로 향했다.
30여분 정도 지난 후였다.
라텔 모두가 소방차 앞에 다시 모였다.
“…….”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모두가 빈손이었다.
다들 기운이 쭉 빠진 얼굴들이었다.
“얘는 안내견이라면서 대체 뭘 안내한 거야.”
“정말 산에 올라간 건 아니겠죠?”
“가능성이 없진 않습니다.”
스윽.
모두가 산을 바라봤다.
태건이 쓴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럴 때마다 느끼는 건데, 제발 아니라고 하는 추측이 꼭 맞아 떨어지더군요.”
“누가 아니래냐. 푸우.”
“그러니까 대체 왜!”
오광휘 단장에 이어 고수현이 버럭 소리쳤다.
그때 이지성이 휴대폰으로 뭔가 살피고는 말로 전달했다.
“위에 산악구조대가 있답니다.”
“다들 잠깐 대기. 이건 전화로 해야겠어……. 최 조장님. 저 오 단장입니다. 지금…….”
처억.
오광휘 단장이 휴대폰으로 출동지원팀에 지원을 요청했다.
같은 시각.
다들 오광휘 단장을 뒤로하고 산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뒤쪽에서 차량이 멈추는 소리가 들려왔다.
끼익.
“어라? 소방관분들이……. 수고 많으십니다.”
부드러운 인사 소리에 모두가 돌아봤다.
거기엔 경찰차가 서 있고, 경찰관이 손에 돌돌 말린 종이를 든 채 다가오고 있었다.
서로 자주 협조하는 관계라 유니폼만으로도 친근감이 느껴지는 사이였다.
그래서 라텔도 자연스레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산불예방……. 어라? 도봉 소속이 아니신 거 같네요.”
중년의 경찰관이 의아함을 보였다.
그와 동시였다.
툭.
선배들이 모두 태건을 떠밀었다.
오광휘 단장이 통화 중이라 사교 관계에 있어 차순위는 늘 태건이었다.
태건도 이젠 익숙해져서 넉살 좋게 인사했다.
“네, 저희는 특수소방단입니다.”
“아아아. 계급장에 마스코트 보니까 딱 알겠네. 이야, 이거 유명하신 분들을 여기서 뵙네요.”
“유명하기는요. 그보다 순찰 중이십니까?”
태건이 자연스럽게 질문을 이어갔다.
경찰관은 쓴 표정을 지으며
“실종된 분이 계셔서 탐문 중입니다.”
“그러십니까? 저희는 실종 견을 찾는 중인데요.”
“이런 동병상련이 있나요.”
“이런 우연은 쉽지 않죠. 혹시나 해서 여쭙는데, 혹시 이런 개 본 적 있으십니까?”
스윽.
태건은 기회다 싶어 휴대폰 속 새롬이 사진을 보여줬다.
경찰관은 유심히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못 봤습니다. 그보다 이렇게 다 큰 개가 그냥 돌아다닌다니. 이거 참.”
“좀 더 부지런히 발품 팔아야죠. 그보다 경찰 측에서는 어떤 실종자신지. 저희도 협조해야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분입니다.”
스윽.
경찰관은 돌돌 말린 종이를 한 장 꺼내 내밀었다.
실종자 전단지였다.
사진부터 살핀 태건은 갸웃거렸다.
“할머니시네요.”
“네. 여든 가까이 되신 분인데, 약간 치매가 있으셔서 자녀분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어라? 오늘 아침에 저 아래 공원 근처에서 실종되셨네요?”
태건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그에 대해선 귀만 열며 듣고 있던 선배들도 마찬가지였다.
“저 아래 공원이라면……. 새롬이가 사라진 공원 아니야?”
“설마요. 이 동네 공원이 어디 그거 하나겠습니까.”
“그렇지? 아무래도 우리가 너무 앞서가는 거겠지?”
여론이 억측으로 흘러갔다.
그때 태건이 선배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거기 맞습니다.”
“……뭐!”
다들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태건은 아예 전단지를 선배들에게 건넸다.
삭.
“여기요.”
바로 받아든 선배들이 한데 머리를 모아 확인했다.
”한 쪽 다리가 불편하시다고?“
“너무 이른 시간이라 목격자가 없네요.”
“실종 신고 시간은 오후야. 노인복지회관에 가신 줄 알았다니.”
“치매가 있다면서요.”
이해가 되지 않는단 목소리들이 커져갔다.
그 부분에 일부 오해가 있는지 경찰관이 얼른 설명해줬다.
“치매 증상이 심하지 않답니다. 단어를 기억 못하는 증상 정도였고, 집과 노인복지회관을 매일 오가셨다네요.”
“그렇다면 갑자기 사라진 게 더 이상한 거 아닙니까?”
“자녀분들도 그 부분에 안일했다며 자책하고 계십니다.”
“뭐 이렇게 사라지는 일이 잦은지……. 쯧.”
라텔은 경찰과 같은 입장이라 더욱 씁쓸해 했다.
그때 오광휘 단장이 휴대폰을 내리며 물었다.
“혹시 그 할머니 분홍색 조끼 입고 있었어?”
“단장님이 그걸 어떻게 아십니까?”
“……젠장. 아무래도 둘 다 찾은 거 같다.”
“어디요. 어딨는데요!”
다들 한목소리로 물었다.
그 외침엔 경찰관도 함께였다.
오광휘 단장이 경찰관을 보며 답했다.
“아침에 어떤 할머니가 노란 개랑 약수터 쪽으로 올라간 걸 근처 생태 탐방원 경비원이 본 모양입니다.”
“이상한 걸 느끼지 못했답니까?”
“처음엔 느끼지 못하다가 시간이 지나도 내려오지 않는 게 이상해서 산악구조대에 신고했다네요.”
“그런데요?”
경찰관은 오광휘 단장에게 바짝 다가가 물었다.
오광휘 단장은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진지하게 답했다.
“산악구조대가 등산로를 따라 추적해 보고, 등산객들에게도 물었는데 아무도 못 봤다고 합니다.”
“그럼…….”
“네. 당연히 하산했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자, 잠깐만요. 그럼 실종된 지 거의 10시간이 다 되어 가는데……. 흐미!”
경찰관의 얼굴이 순간 사색이 될 정도로 질려갔다.
정황상 뭔가 신변에 이상이 생겼단 추측밖에 할 수가 없었다.
심지어 현재 날씨는 10도 이하였다.
밤이 되면 영하로 떨어질 터였다.
실종사건이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었다.
경찰관의 손길이 바빠졌다.
“이거 지구대에 상황 전달부터…….”
그는 무전으로 될 일이 아닌지 몸을 돌리며 휴대폰을 들었다.
같은 시각.
오광휘 단장이 눈빛을 굳히며 단원들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야밤에 산 한 번 타야 될 거 같다.”
“그게 문젭니까. 일단 올라갑시다. 이렇게 재고 따질 시간이 어딨습니까. 당장 올라가야할 거 아닙니까.”
황대산이 목소리 높이며 독촉했다.
오광휘 단장이 가볍게 손을 내밀며 진정시켰다.
“지금 산악구조대에서도 지원하겠다고 준비 중이야.”
“우리는 뭐 준비할 거 없잖습니까. 당장 서두르지 않으면 진짜 해 떨어집니다.”
“내가 만류하는 게 아니니까 나한테 따지지 마.”
스윽.
오광휘 단장이 한쪽을 가리켰다.
모두 돌아보자 태건이 두 손을 가볍게 들어 올리고 있었다.
시선이 집중되자 태건은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다들 잠시만요.”
“그러니까 왜!”
“범위가 좁혀졌다고 해도 이 야밤에 무턱대고 산을 탈 순 없습니다.”
“내일 아침까지 기다리잔 말은 아니지?”
찌릿!
절대 용납할 수 없단 표현으로 모두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때 태건이 입술을 깨물며 고민하다 이내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구조견을 투입해야 수월할 겁니다.”
“그래. 그건 내가 바로 지원팀에 전화할게……. 조장님 저 오 단장……. 네? 에? 네.”
뚝.
신이 나 전화한 오광휘 단장이 풀이 죽은 얼굴로 휴대폰을 내렸다.
그 모습을 본 태건이 불안한 눈빛으로 물었다.
“혹시 어렵답니까?”
“전부 지방 출장 중이래. 환장하겠네.”
벅벅.
오광휘 단장이 머리 아픈지 거칠게 뒷머리를 긁었다.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태건이 이내 눈빛을 굳히며 물었다.
“……이순이, 삼식이를 대동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정훈이도 부르고요.”
“정훈이는 그렇다고 치고, 이순이랑 삼식이를?”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훈련시킨 애들 아닙니까. 저도 아직 한참 부족하단 건 알지만 사람보다는 활동반경이 넓습니다.”
태건이 멀리 솟아오른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스윽.
모두의 시선도 산으로 향했다.
지금까지 실종자와 실종견을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이대로 수색대를 결성해 등산로 따라 이동해 봐야 소득이 적을 확률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