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오광휘 단장이 어수선해진 장내를 빠르게 재정비했다.
“니들끼리 아웅다웅해서 뭐하자고. 빨리 대열 안 갖춰!”
“……알겠습니다.”
사삭.
다들 맥 빠지는 자신을 털어내고 2열 종대로 맞춰 섰다.
그때 태건이 쭉 둘러보더니 나지막이 말했다.
“1열 횡대로 가죠. 제가 계곡으로 내려가겠습니다.”
“우리도 그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야. 그런데 여기서 저기까지 열 발자국은 걸어야 해. 그런데 할머니가 거기까지 가셨을까?”
“솔직히 억측이란 건 인정합니다만 안 그럼 등산로에서 발견이 안 됐을 리가 없잖습니까.”
태건은 올라오며 파악한 지형지물을 토대로 추측했다.
그게 영 틀린 의견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한 오광휘 단장이 수색 대형을 재정비했다.
“……그래, 기왕이면 확실하게 가자. 1열 횡대로 서고 간격은 최대한 넓게. 오케이?”
“오케이, 헤쳐모여!”
사삭.
오광휘 단장의 지시가 떨어지자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태건은 자청해서 계곡 쪽으로 향했다.
내려가는 길부터 험난했다.
푸스스.
안전화가 미끄러질 정도로 디딜 곳이 마땅치 않았다.
“크으윽!”
터더덕.
플래시로 비추고 또 반사 신경까지 동원해 간신히 넘어지지 않고 계곡에 내려왔다.
뒤따라 내려온 황대산이 인상을 구길 정도였다.
첨벙청벙.
“대충 5, 6미터 높이인데 이렇게 가파르면 어쩌잔 거야.”
“물은 대충 발목 높이 정도로 흐릅니다.”
“진짜 재수 없어서 여기 떨어졌으면……. 그게 할머니면…….”
가볍게 말하던 황대산의 목소리가 점점 가라앉았다.
불안감이 강하게 엄습하는 모양이었다.
그건 태건도 마찬가지였다.
“빨리 수색해야 할 거 같습니다.”
“그것도 겁나 빠르게.”
띠릭.
“라텔 수색 시작, 빨리 시작!”
태건이 무전기를 누르며 모두를 재촉했다.
깜깜한 산속에 태건의 목소리가 각각 무전기를 통해 크게 울렸다.
바로 그때였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태건의 목소리에 대한 화답이 들려왔다.
-멍, 멍멍!
이순이와 삼식이가 짖는 소리가 메아리쳐 들려왔다.
어디서 짖는지도 모를 정도로 모호했다.
“어휴, 저 강아지들!”
태건은 약이 바짝 올라 살벌하게 으르렁거렸다.
황대산이 그런 태건을 위로했다.
“어려도 너무 어려. 애초에 기대한 게 잘못이었어.”
“후우. 일단 실종자부터 찾고 말씀하시죠.”
“그래. 가자.”
태건과 황대산은 이내 거리를 벌렸다.
첨벙첨벙.
계곡물과 돌을 엇갈려 밟고, 플래시로 좌우를 넓게 비춰가며 올라갔다.
그렇게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는 사이였다.
-멍, 멍멍!
-컹컹컹!
이순이와 삼식이의 짖는 소리가 날카로워졌다.
그리고 여유를 두던 짖음의 주기가 좁아지고 빨라졌다.
오죽하면 오광휘 단장이 무전기로 타박했다.
띠릭.
-막내라텔, 개 짖는 소리 좀 안 나게 해라!
태건도 답답했다.
일단 성질이 뻗힌 터라 막무가내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 자식들아, 시끄러!”
시끄러…….
태건의 드높은 외침이 메아리쳐 들려왔다.
그때였다.
차자작.
물을 박차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음?”
휙!
태건이 재빨리 플래시를 비춰봤다.
어둠 속에서 계곡을 따라 달려오는 삼식이가 보였다.
“진짜 부른다고 온 거냐. 이순이는?”
태건은 어이없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반가웠다.
그런데 삼식이 행동이 이상했다.
차작.
일정 거리에서 멈추더니 맹렬하게 짖었다.
-멍멍멍!
살랑살랑.
꼬리도 제자리에 두지 못하고 계속 흔들었다.
그걸 본 태건의 이마에 힘줄이 빡하고 솟아올랐다.
빠직!
“지금 우리가 노는 줄 알아?”
소리치면 움츠리는 척이라도 하는 녀석이다.
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 멍멍멍멍!
더욱 격하게 소리쳤다.
그러더니 몸을 돌려 뒷모습을 보였다.
차작, 차작.
몇 걸음 가다 서기도 반복했다.
쭉 바라보던 태건은 어디서 많이 본 장면임을 일깨웠다.
“세리?”
분명 관악산에서 세리가 자신을 유도할 때와 비슷했다.
아니, 더 적극적이었다.
무엇보다 이순이가 보이지 않았다.
설마 이순이가 다친 건가?
말이 통하지 않으니 눈치로 때려 맞춰야 해서 태건의 속이 터질 듯 답답해졌다.
그런데 그때였다.
-컹컹컹!
이순이의 짖음소리가 메아리쳐 들려왔다.
-멍멍멍!
삼식이가 바로 응답하듯 태건을 향해 한 번 더 맹렬히 짖었다.
그 순간 태건의 눈빛이 가늘어졌다.
하는 행동들을 유심히 보던 태건이 가설을 세워봤다.
‘이순이가 뭔가 발견하고, 삼식이가 날 데리러 왔다고?’
그렇다면 구조견으로선 2견 1조를 이룰 수 있는 진짜 대박 중에 대박이다.
물론 태건의 바램이고 보호자로써 콩깍지가 쓰인 시선이었다.
그때 어깨의 무전기가 울렸다.
-띠릭, 막내라텔, 개 짖는 소리 좀 안 들리게 하라니까. 수색하는데 소리가 다 먹히잖아!
처억.
미간을 좁힌 태건이 무전기를 누르며 답했다.
“잠시 수색 대기.”
-띠릭. 갑자기 왜, 지금 애들 잡아야 한단 소리는 아니겠지?
“…….”
태건은 답하지 않았다.
첨벙첨벙.
삼식이에게 벌써 달려가는 중이었다.
‘한 번만, 우연이라도 좋으니까 이번 한 번만.’
실낱같은 희망을 품으며 향했다.
곧 태건은 굽어지는 계곡을 돌았다.
앞서가던 삼식이가 어느 순간부터 더 움직이지 않았다.
팟!
태건은 삼식이 너머를 비춰봤다.
그 자리에 이순이가 보였고, 코로 계속 지분거리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동시에 태건의 눈이 크게 떠졌다.
분홍 조끼, 그리고 노란 털.
할머니와 새롬이다.
“대……. 대박!”
반사적으로 무전기를 누른 태건이 자신도 모르게 외쳤다.
그 외침에 대한 오광휘 단장의 반응이 따가웠다.
-띠릭, 이 자식아. 지금 뭐 온천수라도 발견했냐. 대박은 무슨 대박이야!
“라텔 집결, 막내라텔 포인트로 신속히 집결!”
태건의 우렁찬 외침이 온 산을 가득 울렸다.
모두를 소집한 태건은 실종자와 실종견에게 빠르게 접근했다.
첨벙첨벙.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플래시 빛에 어떤 상황인지 훤히 밝혀졌다.
그리고 한 눈에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봤다.
“아!”
할머니가 축축한 계곡물에 반쯤 젖어 있었다.
옷이 찢기고 흙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팔다리에 찍힌 상처도 가득한 걸로 보아 등산로에서 떨어진 게 분명했다.
커다란 바위와 사방으로 뻗은 수풀에 절묘하게 가려져 있었다.
“흐으으, 흐으으으.”
할머니의 숨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기운도 기력도 없는 숨소리였다.
그런 할머니 품속에 새롬이가 몸을 말고 꼭 붙어 있었다.
새롬이의 털은 계곡 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
그런 새롬이는 짖음도 사람을 본 반응도 미미했다.
이순이가 코로 계속 건드리는 건 새롬이였다.
툭, 툭.
-낑낑.
새롬이에게 자극을 주는 행동이었다.
사삭.
어느새 다가온 삼식이는 할머니와 새롬이를 빙글빙글 돌며 짖었다.
-커엉, 컹컹!
그 어느 때보다 커다란 짖음이었다.
정말 이순이가 구조대상을 보호하고 삼식이가 알려주러 온 거였다.
태건은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가 않았다.
아니, 지금 믿음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할머니!”
차자작!
태건은 언제 멈췄냔 듯 반사적으로 할머니에게 달려갔다.
“흐으으.”
의식이 희미하고 반응도 미비했다.
태건은 맥박부터 시작해 신체반응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뒤에서 울퉁불퉁한 비탈길을 마구잡이로 내려오는 라텔이 보였다.
촤자작!
모두 어떤 상황인지 대번에 알아봤다.
언제 짜증냈냔 듯 이순이와 삼식이에 대한 칭찬부터 외쳤다.
“저기, 어이고. 우리 기특한 강생이들!”
“기특하지만 애들 칭찬은 나중에 해야 할 거 아닙니까!”
“나도 알아, 고수현이 아래 상황 전달하고 119구급차랑 동물병원 구급차 수배해, 이지성이, 태건이랑 응급 잡아, 황대산은 퇴로 확보, 유중헌이는 나랑 들것 준비, 움직여!”
“에썰!”
파바박!
여섯 명의 단원들이 순식간에 비장한 표정으로 신속히 움직였다.
10여 분 후.
에에엥!
119구급차가 미친 듯이 산길 아래로 내달렸다.
태건과 라텔이 묵직하게 지켜봤다.
그런 그들에게 ‘맏이’라고 했던 중년인이 다가와 대뜸 손부터 붙들었다.
덥석.
“감사합니다. 어머니를 찾아주셔서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감사는 저희가 아니라 새롬이에게 하시는 게 맞습니다. 새롬이가 지켜줘서 저체온증인데도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습니다.”
“알다마다요. 아무렴요. 그런데, 이거 고맙고 미안해서 어쩌나.”
중년인은 안절부절못했다.
태건이 그런 그의 등을 떠밀었다.
“지금은 어머니부터 신경 쓰십시오. 새롬이는 나중에 연락처 알려드릴 테니까요.”
“그, 그럼 실례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하고 또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중년인은 등산로 입구를 가득 울릴 정도로 외치며 떠나갔다.
그 사이 옆에서는 새롬이가 동물병원 구급차에 실리고 있었다.
“새롬아, 허어엉. 새롬아!”
버둥버둥.
앞이 보이지 않는 마정훈은 애절하게 울며 두 손을 쉬지 않고 허공을 휘저었다.
오죽하면 오광휘 단장이 마현석을 나무랐다.
“뭐합니까. 새롬이 혼자 보내실 겁니까. 아니면 정훈이가 울다 쓰러져야 움직일 겁니까!”
“감사…….”
“감사는 나중에 찾고, 일단 가요. 빨리 가요!”
터덕.
아예 등까지 떠밀었다.
그런 과격한 배웅에 마현석은 마정훈의 휠체어를 붙들었다.
죄인이란 허울에서 벗어난 탓인지 한층 강렬한 모습을 보여줬다.
터덕!
“정훈아, 새롬이 곁에 우리가 있어야지. 같이 가자!”
“아빠, 빨리, 허어엉, 빨리!”
“정훈아, 뚝. 새롬이가 동생이라며. 동생이 아픈데 형이 울면 돼?”
“흡흡. 아빠.”
“그래. 가자. 얼른 가서 우리 자랑스러운 새롬이를 빨리 건강하게 해주자!”
우당탕!
마현석은 마정훈을 그대로 안아들었다.
휠체어는 내팽개친 채 다급히 동물병원 구급차에 올랐다.
에에엥!
동물병원 구급차도 이내 사이렌을 울리며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