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화
떠나간 구급차들은 경찰차가 에스코트했다.
삐용삐용.
이내 장내가 조용해진 가운데 무전소리가 들려왔다.
-띠릭, 산악구조대 복귀 완료했습니다. 라텔 여러분들 고생하셨습니다. 수색 종료.
깔끔한 선언으로 마지막을 알렸다.
그렇게 얼굴 한 번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다.
선뜻 나서고 도와준 고마움에 대한 표현은 나중으로 미뤘다.
…….
북적북적하던 등산로 입구에 정적이 찾아왔다.
그 정적을 뚫고 이순이와 삼식이가 크게 짖었다.
-멍, 멍멍!
살랑살랑.
좌우로 흔드는 꼬리가 빳빳한 게 자긍심이 가득해 보였다.
태건은 자세를 낮춰 강아지들을 각각 품에 안으며 중얼거렸다.
“니들도 라텔이냐.”
-헥헥, 할짝.
이순이와 삼식이가 화답하듯 태건의 뺨을 핥았다.
태건은 어이가 없었지만 이내 강아지들을 더욱 꼭 끌어안았다.
“그래. 잘했다. 잘했어.”
태건이 한껏 칭찬하는 사이였다.
박규영 본부장이 갸웃거리며 이지성에게 물었다.
“이 단원, 방금 강 단원이 한 말의 정확한 의미가 뭔가?”
“일반적인 구조견들의 행동과 전혀 다른 패턴을 말하는 겁니다.”
“뭐가 다르지?”
“저도 아직 모호하지만……. 한 마디로 엉망진창인데, 스스로 생각해서 행동한단 표현이 그나마 근접할 겁니다.”
이지성은 자신이 판단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설명했다.
그 설명을 들은 박규영 본부장이 크게 웃었다.
“하하하. 그래야 라텔다운 거 아닌가.”
“뭐, 좀 더 지켜봐야 확실해지겠지만요.”
이지성은 삐딱하게 대답했다.
그러나 표현만 그러할 뿐 입가에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때 오광휘 단장이 조용히 한마디 했다.
“오죽하면 내가 깡패라텔이라고 명명했을까.”
“크흡, 큽큽.”
다들 찰떡같은 콜네임에 터져 나오는 웃음을 억누르기 바빴다.
다음날 오후.
펜스 앞 분위기가 어딘지 모르게 묵직했다.
이내 박규영 본부장이 라텔을 앞에 두고 정식으로 선언했다.
“어제의 공로를 참작하여 이순이와 삼식이를 정식 훈련견으로 임명하는 바이다.”
처억.
이내 큼지막한 문패를 선사했다.
그거 오광휘 단장과 태건이 나란히 들고 펜스에 걸었다.
-구조 훈련견 이순이, 삼식이.
그와 동시였다.
펜스를 둘러선 특수소방단 모두가 일제히 박수를 쳤다.
짝짝짝!
“축하해. 이순아, 삼식아.”
“사고는 조금만 치고, 훈련은 많이 받아.”
“사고 안치면 간식 많이 줄게.”
“이제 진짜 한 가족이다. 잘 지내보자.”
이 순간만큼은 모두 환한 얼굴로 축하 인사를 건넸다.
바로 그때였다.
이순이와 삼식이가 날렵하게 지붕을 밟고 펜스를 넘었다.
후우웅.
-헥헥.
해맑은 얼굴로 공공연하게 탈출한 강아지들은 주차장으로 내달렸다.
순간 모두가 그대로 멈췄다.
“…….”
황당한 순간을 직접 목격한 충격이 적지 않은 모양이었다.
반면 태건과 라텔은 벌게진 얼굴로 내달렸다.
타다닥!
“저 새끼들 잡아!”
“이 개아이들아!”
“이럴 때라도 제발 얌전히 좀 있어라!”
그 길로 주차장으로 달려간 라텔과 강아지들의 쫓고 쫓기는 장면이 연출됐다.
그걸 본 박규영 본부장과 모두가 크게 웃었다.
“하하하. 순순한 게 하나도 없는 게 라텔이라더니.”
“푸하하하. 어떻게 다 똑같냐, 곱게 말 듣는 일이 없네!”
“라텔답다. 라텔다워!”
제멋대로인 라텔에 꼭 맞는 구조견들이라 모두 한목소리로 칭찬했다.
지켜보는 입장에선 웃음이 나올 터였다.
쫓는 라텔은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잡히기만 해 봐!”
“내가 네 녀석들 목줄 두 개 채운다!”
“제발 좀 그만 뛰댕기라고!”
라텔 모두가 쫓아오자 이순이와 삼식이는 더욱 활기차게 주차장을 누볐다.
-헥헥헥!
그 얼굴이 너무도 행복해 보였다.
태건은 인상을 푹푹 찡그렸다.
“세리 반만 닮으라니까!”
아무리 소리쳐봐야 태건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 * *
며칠 후.
이번 실종 사건에 대한 소식이 뉴스로 방영됐다.
-국내 두 번째 명예119구조견 탄생.
커다란 헤드라인과 함께 앵커의 차분한 목소리로 전달을 시작했다.
-훈훈한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국내 두 번째 명예119구조견 탄생 소식입니다.
화면이 바뀌며 특수소방단 본부 앞마당이 비춰졌다.
앞마당에는 풍성한 애견용 잔칫상이 차려져 있었고 새롬이가 얌전히 자리해 있었다.
그 옆엔 휠체어에 자리한 마정훈이 함께였다.
이어서 화면에 덧입힌 이강찬 기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내견인 새롬이와 할머니는 아침마다 인사하는 이웃사촌이었습니다. 가볍게 오가는 인사가 3년간 이어졌고, 사고 당일 아침 새롬이는 할머니의 이상을 알아채고…….
이강찬 기자는 사연을 중심으로 전달했다.
그 사이 화면은 임명식으로 이어졌다.
화면 속에는 다양한 인사들이 자리해 있었다.
특수소방단 임원들은 물론이고, 서울시청과 서울재난본부 등 각계각층에서 찾아왔다.
사회적으로 귀감이 되는 훈훈한 일이라 참석자들부터 남달랐다.
그런 모두를 대표해 박규영 본부장이 임명했다.
-위 안내견 ‘새롬이’를 명예119구조견으로 임명합니다. 소방청장 대독
임명식이 끝난 다음으로 마정훈이 화면에 비쳤다.
마정훈은 새롬이를 한 손으로 쓸며 조금 빗나간 시선으로 인터뷰를 했다.
-새롬이가 너무너무 멋지고 훌륭해요. 저도 새롬이처럼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 아이가 될래요.
잠시 화면이 바뀌어 병실에 입원한 할머니의 짤막한 축전이 더해졌다.
-새롬아, 이 할미가 참으로 고맙구나. 축하하고, 설령 내가 못 알아봐도 미워마라. 저 위에서 다 기억하고 꼭 다시 만날 테니까 말이야.
인자한 미소로 건네는 잔잔한 감사 인사였다.
그 뒤로 박규영 본부장의 인터뷰 등이 차례로 이어졌다.
짤막한 인터뷰가 끝난 화면은 뉴스 스튜디오로 되돌아왔다.
-아웃에 대한 사소한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롬이를 통해 또 한 번 절감합니다. 이어지는 소식은 이번 수색에 투입된 귀여운 강아지들 소식입니다.
이내 앵커의 흐뭇한 얼굴에서 화면이 전환됐다.
이번엔 특수소방단 본부 뒤편의 펜스를 가득 담은 화면이었다.
펜스 안에서는 이순이와 삼식이가 신명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이강찬 기자가 직접 마이크를 들고 소식을 전했다.
-지금 제 뒤로 보이는 강아지들이 이번 실종 수색에 투입되었던 구조 훈련견들입니다. 특수소방단 라텔의 새로운 다크호스로 벌써부터 많은 기대를 받고 있습니다.
이어서 이순이와 삼식이가 간단하게 훈련받는 모습이 화면에 담겼다.
그 훈련은 고수현이 주도했다.
-이순이, 앉아……. 아니, 손 말고. 앉아.
-삼식이 기다려……. 따라오지 말고 거기서 기다려.
분명히 훈련 중인데 모든 게 엉망진창이었다.
강아지들이 카메라를 의식할 리가 없었다.
평소 하던 그대로 행동했다.
이내 화면이 옆으로 움직이더니 줄줄이 선 라텔 단원들 모습이 비쳤다.
다들 어색한 표정으로 입꼬리만 간신히 씰룩거렸다.
-아, 하하.
-도대체 몇 번째 재촬영이야.
-쟤들이 카메라가 뭔지 알겠습니까.
낯 뜨거움과 한탄이 뒤섞인 대화가 날것 그대로 방영됐다.
편집 사고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그런데 이강찬 기자는 오히려 이런 부분을 노린 모양이었다.
불쑥.
마이크가 아래서 솟아나더니 그대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실례지만 익숙한 견종 같은데요.
-진돗개 맞습니다. 어? 기자님, 갑자기 마이크 뭡니까?
무심코 답하던 오광휘 단장이 멈칫하며 당혹감을 보였다.
이강찬 기자는 전혀 개의치 않고 질문을 이어갔다.
-많은 기관에서 특수목적견 훈련을 시도했지만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고 알고 있는데, 라텔의 훈련견들은 구조견으로써 성장할 가능성이 있습니까?
-에, 저희는, 매 순간, 열과 성을 다하여, 훈련에 임하고 있으며…….
오광휘 단장은 카메라를 의식하자마자 목소리부터 딱딱하고 어색해졌다.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조차 잘 모르는 눈치였다.
그나마 다음 인터뷰 대상인 태건은 다행히도 차분함을 보였다.
-지금 이순이와 삼식이에게 성숙한 훈련 모습을 바라기엔 너무 어립니다. 그러나 현장에선 어엿한 구조견으로써 손색이 없었습니다.
-생후 6개월 차에 훈련견이 된 경우가 많지 않다던데요.
-맞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수색 임무 수행 과정에 후한 점수를 받았다고 판단됩니다.
태건의 대답이 자연스럽자 이강찬 기자도 질문이 줄줄 이어졌다.
-이순이와 삼식이가 특수소방단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는데 어떤 사연입니까?
-사실 저 아이들은 관악산 들개 포획 작전에서 만났습니다.
-잠시만요. 그때가 봄이었는데, 그렇다면…….
-저희를 만난 그날 태어난 새끼들입니다. 그날 ‘멍냥이동물병원’에서 일심이, 사돌이, 오복이, 여선이와 함께 생사를 오갔던, 그 새끼들이요.
잠시 말을 끊은 태건의 입이 재차 열렸다.
-저희가 구한 작은 생명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단 사실이 너무도 행복하고 즐겁습니다. 더 열심히 훈련해서 성숙한 모습으로 필요한 곳에 달려가겠습니다.
태건의 인터뷰는 그렇게 끝이 났다.
이강찬 기자가 라텔 단원들을 배경으로 하며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모두가 안전한 오늘을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어 우리의 하루가 평안할 수 있는 거 같습니다. 이상 특수소방단 본부에서…….
이강찬 기자의 마무리 멘트로 뉴스는 끝이 났다.
그 뉴스를 대기실에서 라텔 모두가 시청 중이었다.
팟.
고수현이 얼른 리모컨으로 TV를 꺼버렸다.
이어서 리모컨을 비틀어 짤 듯이 괴로워했다.
꾸우우.
“어으씨, 하필 내보내도 저 장면을 내보내냐.”
황대산과 유중헌이 차례로 위로했다.
“고수현이, 뭘 그렇게 낙담하고 있어. 저 정도면 말 엄청 잘 들은 거 내보냈는데 말이야.”
“아, 앉아 조차 제대로 아, 안 할 때가 더 마, 많잖아.”
그런 훈훈한 순간에 이지성이 고춧가루를 팍팍 뿌렸다.
“수현 선배 말을 제일 안 듣는데, 촬영할 때 갑자기 들으라면 듣겠냐고.”
그 말에 고수현이 울컥했다.
“그래서 나도 안 한다고 했잖아, 으씨!”
“그렇게라도 얼굴 한 번 더 비춰야 한다니까 군소리 없이 따른 건 누군데요.”
“그야 뭐…….”
고수현의 표정이 순식간에 쌜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