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그걸 본 오광휘 단장이 이지성을 나무랐다.
“어이, 이지성. 넌 도대체 주둥이가 180도 플러스 얼마나 더 삐뚤어졌는데 그런 소리를 대놓고 하냐!”
“이제 와서 창피해하지 말란 겁니다. 애들 훈련보다 수현 선배 얼굴을 비추는 게 더 중요한 문제니까요.”
“그럼 그 말이 먼저 나와야 되는 거 아니냔 말이다, 이 짜식아.”
“생겨 먹은 게 이런 걸 어쩌라고요.”
이지성이 삐쭉거리자 오광휘 단장의 머리 뚜껑이 들썩거렸다.
크르릉.
잔뜩 노려보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나도 생겨 먹은 게 이런 소리 듣고 그냥 못 넘어가는데, 그 부분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냐.”
“그 성질 머리 유명하죠.”
“뭐, 이 자식아. 그래. 오늘 성질 한 번 제대로 부려봐?”
“또 시작이다, 또. 에휴.”
“한숨을 쉬어? 너 오늘 진짜 옥상에서 1층까지 먼지 나게 굴러 볼래!”
울컥울컥.
오광휘 단장과 이지성의 대화가 신경전으로 번져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진즉 나서서 말렸어야할 태건이 조용했다.
“…….”
슥슥.
휴대폰 액정을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쓸고 있었다.
얼른 다가간 유중헌이 소심하게 기동복 끝을 잡아당겼다.
툭툭.
“태, 태건아. 좀 말려봐.”
“놔둬요. 하루 이틀도 아니고, 저러다 진짜 주먹이 오가봐야 그만두겠죠.”
태건은 휴대폰을 보며 무신경하게 답했다.
예기치 못한 반응에 유중헌이 오히려 당황했다.
“그, 그러지 말고……. 지금 뭐 보, 볼 때가 아니야.”
“이거 볼 때 맞습니다. 이야, 실시간 댓글이 상당히 많이 달리네요. 호오…….”
태건이 나지막한 감탄을 덧붙였다.
그 소리에 어깨를 맞잡은 오광휘 단장과 이지성이 멈칫했다.
…….
돌연 서로 굳어진 채 눈치를 봤다.
그 어색한 상황에 대해 오광휘 단장이 먼저 질문을 던졌다.
“이지성이, 무슨 댓글이 달렸는지 궁금하지 않아?”
“그건 좀 궁금한 경향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에 이 자세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다. 알았지?”
“접수했습니다.”
모종의 합의를 봄과 동시였다.
사삭.
동시에 어깨에서 손을 떼고 휴대폰을 바삐 찾아 들었다.
하는 행동 수준이 너무도 비슷했다.
황대산과 고수현은 벌써 댓글 감상 중이었다.
황대산이 뭘 봤는지 돌연 울컥했다.
“이 싸람들이 말이야. 갑자기 핸들러 라이센스 타령은 왜 하는 거야!”
“너무 어린 강아지를 입맛대로 훈련한다면서 잘못된 거 아니냔 비판도 있네요.”
안 좋은 댓글이 눈에 띈 모양이다.
태건도 봤던 댓글이라 덤덤하게 답했다.
“정식 핸들러 면허증이 있는 게 아니긴 하죠.”
“뭐야, 태건이 너도 없어? 미국에서 핸들러 했었다며.”
“훈련 코스 중에 하나였습니다. 핸들러 라이센스를 1년 안에 어떻게 땁니까.”
태건이 대답하자 오광휘 단장이 불쑥 끼어들었다.
“뭐야. 우리 지금 무면허 훈련 하고 있는 거야?”
“엄연히 따지면 저희도 핸들러 교육 중이죠.”
“엥?”
“저희는 특수한 경우입니다. 그래서 인명구조견협회에서 전문 교관이 한 번씩 파견 나와서 교정해 준다고 했잖습니까.”
태건이 덧붙여 말함과 동시였다.
스윽.
모두 오광휘 단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태건이가 아는데 단장님은 모르셨습니까?”
“아, 그 소리가 그 소리였어? 난 애들 훈련 상황 관찰하러 나오는 줄 알았지.”
“단장님, 그렇게 마음대로 해석하면 안 되는 거 아닙니까?”
“됐어. 태건이가 제대로 들었음 됐지.”
휘휘.
오광휘 단장은 귀찮단 듯이 손짓했다.
좋게 말하면 태건에 대한 믿음이 큰 거였고, 다르게 말하면 태건에게 떠민 거였다.
태건이 이순이와 삼식이의 반려인이란 사실 탓도 있었다.
살짝 침묵의 기류가 흘렀다.
그걸 직감했는지 오광휘 단장이 바로 다른 댓글을 언급했다.
“어이고, 이거 멍냥이 동물병원 주소하고 전화번호가 떡하니 박제 됐네.”
“……어라, 그러네요. 거기 수의사는 좀 괜찮긴 하죠.”
“내일부터 곡소리 나지 않을까 몰라.”
“행복한 곡소리일 겁니다. 안 그래도 애들을 볼 때마다 생각났는데, 은혜 갚을 기회가 이렇게 찾아왔네요.”
다들 시간이 지나도 그때의 고마움이 남아 있던 모양이다.
어느새 흐뭇한 미소가 그려졌다.
그때 유중헌이 휴대폰을 보며 조금 다른 분위기의 댓글을 알렸다.
“할, 할머니 인터뷰가 기, 기억에 많이 남는단 말도 있습니다.”
“…….”
그 소리에 이 순간 대기실이 고요해졌다.
죽음을 전재로 둔 인사말인 탓이다.
그런 부분에선 이지성이 시크한 어투로 한 마디 했다.
“천 년, 만 년 살 건 아니잖습니까.”
“그렇긴 하지.”
“할머니의 말뜻은 죽어도 잊지 못할 은혜란 거니까, 그쪽으로 비중을 두는 게 맞는 거 같습니다.”
이지성이 투박한 목소리로 결론을 냈다.
스윽.
태건이 슬쩍 바라보며 묘한 표정으로 말했다.
“선배가 그런 말도 하십니까?”
“내 손으로 많이 보내봐서 튀어나온 말이야.”
“쉽게 듣기는 좀 무거운 말이네요.”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
이지성은 두루뭉술하게 말을 흘렸다.
태건과 라텔 단원들은 유기견과 연관이 있음을 이젠 눈치로 짐작할 수 있었다.
죽음을 전제로 하는 인사.
삶을 갈구하는 라텔에겐 아직 강하게 와 닿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가볍게 여기는 건 결코 아니다.
‘굳이…….’
최대한 외면하고 밀어내고 싶단 표현이 더 정확했다.
그 뒤로도 실시간으로 추가되는 댓글을 보며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갔다.
깊은 밤.
태건은 헬기 좌석에 앉아 휴대폰을 귀에 대고 있었다.
휴대폰에선 강태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소방 일이 가족행사냐? 애완견까지 위험한 일에 끼워넣는 건 대체 어느 나라 경우야?”
“위험? 와서 보고 말해. 둘 다 놀자판이야.”
“그 녀석들이 지금 뭘 알아……. 그보다 너 얼굴이 좀 나아졌더라. 너도 같이 놀자판이냐?”
강태영이 대뜸 퉁명하게 시비를 걸었다.
태건의 눈이 바로 가늘어지며 나지막이 말했다.
“형, 취했음 디비져 자.”
“소주 한 병 마셨다니까.”
“형이 한 병이면 만취야. 그러니까 전화 끊고 침대로 다이빙 하시라고.”
“이젠 아니라니까, 그때 주미네서도 무려 두 병이나 마신 몸이잖냐.”
퉁퉁.
휴대폰에서 가슴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얼굴에 자부심 가득한 강태영의 표정이 절로 그려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주량을 자랑하는 게 썩 좋게 들리지 않았다.
태건은 싱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 출동 대기해야 되니까 쓸데없는 소리하려면 끊어.”
“야야. 형이 말하고 있잖아!”
“어째 말투가 영 신경 거슬리네.”
“요즘 우리 과장님하고 계속 마시다보니까……. 아차차. 너 얼굴 한 번 팔아라.”
갑작스럽고 엉뚱한 제안에 태건이 귀를 의심했다.
“초상권을 팔라고? 회사에서 내 얼굴 걸고 광고한대? 그럼 망해.”
“그건 네 말이 격하게 옳다고 본다.”
“그럼 뭔 소린데?”
“와서 마이크 한 번 잡으란 소리야.”
강태영의 말이 너무도 엉뚱해 태건은 얼른 되물었다.
“설마 소방강연 말하는 거야?”
“오오. 역시 알아듣네. 우리 회사에서 네가 내 동생인 걸 사장님도 아셔. 그러니까 이 형님의 면을 살려준단 의미에서…….”
“그 얼굴 살려주는 건 별로.”
“이 자슥이, 형님이 ‘이래라’하면 ‘알겠습니다’하는 맛이 있어야지!”
“그런다고 내가 꿈쩍이나 할 거 같아?”
태건이 반발하자 강태영이 으름장을 놓았다.
“거 참, 그렇게 딱 잡아떼지 말고 생각이란 걸 한 번 좀 해봐라.”
“응, 패스. 할 말 다 했지. 끊는다.”
“야야야야…….”
뚝.
강태영이 다급히 찾는 소리가 들렸지만 태건은 매정하게 전화를 끊었다.
“24시간 대기 중이라니까 뭔 엉뚱한 소리야.”
투덜거릴 때였다.
카똑!
메시지 소리가 울리자 태건이 무심코 확인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강태영의 메시지였다.
-너도 콧바람 한 번 쐰다고 생각하고 위에 건의 한 번 넣어봐. 아니면 내가 본부로 쫓아가서 본부장님하고 특별면담할지도 몰라.
회유와 협박이 한 메시지에 담겨 있었다.
태건은 뚱한 얼굴로 휴대폰을 내렸다.
“계속 이러면 행정팀에 출장 요청해버리지, 뭐.”
간단히 일축했다.
요즘 들어 강연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려왔다.
‘특수소방단’이란 이름이 그만큼 알려졌단 의미였기에 좋은 의미로 들려왔다.
그러나 강연을 다닐 여유도 시간도 없었다.
한 10년 쯤 지나면 모를까.
특수소방단이 뿌리를 완전히 내려 거목이 된 후엔 가능할지도 몰랐다.
그 전엔 유명세에 편승하고 싶지 않았다.
그에 대한 태건의 입장은 확고했다.
다음날 아침.
간밤을 헬기에서 보낸 태건이 주차장을 가볍게 뛰었다.
“훅훅.”
척척.
밤새 쌓인 무거움을 털어내고 몸을 가볍게 일깨우는 모습이었다.
그런 태건의 앞엔 이순이와 삼식이가 달리고 있었다.
-헥헥.
신이 났는지 발걸음이 통통 튀었다.
그런 강아지들은 목줄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 순간도 훈련의 일환이었다.
잠시 후.
태건이 펜스 문을 닫았다.
“물 먹고 좀 쉬고 있어. 오늘은 단장님 훈련 날인 거 알지?”
간단히 오늘 일정에 대해 브리핑을 했다.
-헥헥.
붕붕.
이순이와 삼식이는 펜스 앞에 앉아 힘차게 꼬리를 쳤다.
알아들은 건지 아닌지는 그들만이 알 터였다.
“그럼 이따가 보자.”
태건은 가볍게 손짓하며 돌아섰다.
쉼터로 향하는 사이 휴대폰이 울렸다.
띠리릭.
꺼내서 확인하자 멍냥이 동물병원의 전화였다.
그때 보호자로 태건의 전화번호를 등록해서 걸려온 모양이다.
태건은 대충 예상하며 전화를 받았다.
“네, 강태건입니다.”
“납니다. 최숭우.”
뭔가 불친절한 목소리였지만 태건은 바로 알아들었다.
“수의사님 오랜만입니다. 저희 애들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컴플레인 전화 안 했겠지요. 그나저나 갑자기 왜 그런 겁니까. 이유나 좀 압시다.”
“돈 벌고 싶다고 하셔서요.”
“그 말 세리 수술 끝나고 했던 말 아닙니까. 그걸 반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습니까?”
최승우 수의사는 황당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태건은 당연하단 뉘앙스로 답했다.
“그날 하루는 출동부터 복귀까지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기억력 하나 끝내주시네. 그래서 돈 벌게 해줬으니까 시비 걸지 말란 겁니까?”
“아니요. 이제 우리 애들 정기적으로 검진 받아야 되니까 문 닫지 말고 계시라고요.”
태건의 말투가 약간 퉁명스러웠다.
그걸 느꼈는지 최승우 수의사 목소리가 더욱 툴툴거렸다.
“내 말투 따라하지 마쇼. 그리고 뭐……. 오기 전날 연락이나 한 번 줘요.”
“그건 병원에서 챙겨주셔야죠.”
“지금 접수실에 발 디딜 틈도 없수다. 지금도 간호사들이 엄청 쪼고 있단 말입니다. 짬 내서 전화했는데 너무 하시네.”
“목소리가 어째 기분은 좋은 거 같으신데요?”
“……이제 진료 시간입니다. 끊습니다.”
뚝.
최승우 수의사가 대뜸 전화를 끊었다.
태건은 빙긋 미소 지으며 휴대폰을 내렸다.
“어울리지 않게 쑥스러워하시긴……. 그나저나 진짜 바로 몰려가네.”
그 점은 태건도 예상 밖이었다.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영향력이 생긴 모양이다.
이렇게 특수소방단이 알려진 건 이강찬 기자가 여러 차례 기사를 실어주고, 주변 언론인들에게도 권유한 공이 컸다.
“술은 내가 사야겠어.”
다음 비번 때 계획을 하나씩 채워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