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후보대원들의 표정은 황당함으로 물들어갔다.
“진돗개가 서열을 따진다고 듣긴 했는데…….”
“소방경력으로 치면 우리가 선배 아닙니까?”
“강아지랑 말이 통하세요?”
“따질 수가 없겠네요……. 그런데 라텔에 합격하면 매일 경례해야 하는 건 아니겠죠?”
“서, 설마요.”
그렇게 후보대원들은 꼰대 강아지들이란 예기치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한편.
태건과 라텔 단원들도 이순이와 삼식이의 돌발행동을 황당해 했다.
“이야, 생전에 6개월짜리 꼰대는 처음이네.”
“신기하네요. 자신들보다 늦게 왔으니 서열이 아래라고 생각한다니요.”
“여태 다른 사람들한테는 이러지 않지 않았습니까, 안 그래 태건아?”
“손님이라 그랬을지도 모르죠.”
태건은 혹시나 하는 눈치로 대답했다.
다들 그 추측이 옳다고 생각했는지 이순이와 삼식이를 황당하게 바라봤다.
“헐.”
뭐 이런 강아지들이 있나 싶은 얼굴들이었다.
황당한 순간이 지나고 다들 훈련장에 도착했다.
먼저 움직인 황대산과 고수현이 첫 번째 훈련 준비를 마쳐놓은 상태였다.
첫 번째 훈련은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코스다.
소방장비 착용.
짜란.
파란 방수천이 넓게 깔려 있고, 그 위에 방화복부터 출동 장비가 한 세트씩 놓여 있었다.
황대산과 고수현은 그 앞에 검은 소방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후보대원들, 신속히 도열합니다!”
“이렇게 느려 터져서 국민들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소방학교의 조교들 같은 말투였다.
쩌렁쩌렁하게 쏟아 붙이는 외침에 후보대원들이 후다닥 뛰었다.
“갑시다!”
“뛰어요!”
차자작!
서둘러 한 자리씩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 뒤에 태건과 다른 단원들이 섰다.
처억!
그리고 오광휘 단장은 특별히 준비된 초시계와 종이, 펜이 놓인 책상에 자리했다.
“어디, 후보대원들 실력 좀 볼까나.”
곧바로 훈련이 진행될 모양이었다.
사전 설명은 없었다.
모든 훈련이 실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에 설명하는 자체가 낭비였다.
그리고.
동행했던 이순이와 삼식이는 멀찍이 떨어져 바닥에 배 깔고 엎드려 있었다.
-신입들, 얼마나 하는지 좀 볼까?
-똑바로 안하면 물어버린다.
누가 봐도 딱 그런 모습들이었다.
태건은 그런 강아지들 모습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참 라텔스런 애들이야.”
말을 알아들을 강아지들이 아니라 그냥 포기했다.
가까이 다가와 참견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했다.
그건 오광휘 단장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쟤들은 방화복 입을 줄이나 알고 저러는 거야, 뭐야.”
“궁금하면 한 번 앞에 놔 보십시오.”
“진짜 그래볼까 보다, 그런데 훈련이고 뭐고, 뭔가 하려고하면 저렇게 떨어져 있는 건 참 대견해.”
오광휘 단장은 기막혀 하면서도 애정 어린 시선이 공존했다.
태건이 그런 그보다 좀 더 부정적인 생각을 말했다.
“저렇게 지켜보다 후보대원들이 실수하면 쫓아와서 물어버릴 지도 모릅니다.”
“착용 순서는 알까?”
“최근에 저희가 연습했잖습니까. 기억할진 모르겠지만요.”
“그거까지 기억하면 해외토픽감이야.”
두 사람의 자잘한 대화가 가볍게 오갔다.
이런 여유를 보이는 건 후보대원들이 아직 준비가 덜 된 탓이었다.
곧 준비가 됐는지 후보대원들 중 누군가 크게 외쳤다.
“소방장비 착용훈련 준비 끝!”
송강우의 외침이었다.
오광휘 단장 주변에 모여 있는 단원들 중 이지성이 자그맣게 말했다.
“송 대원이 차수장이 된 모양입니다.”
끄덕.
모두 미미한 고갯짓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처억!
이어서 오광휘 단장이 높이 손을 들어 황대산과 고수현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 신호와 동시였다.
황대산이 목에 걸고 있던 호각을 힘차게 불었다.
-삐이익!
시작 소리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단원들의 허리춤에 꽂혀 있는 무전기가 일제히 울렸다.
-띠릭, 지원요청 접수, 라텔 출동!
구구구.
훈련장의 공기가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아니, 라텔들은 벌써 움직이기 시작했다.
“옥상!”
“달려!”
파바박!
언제나 준비가 되어 있는 이들이다.
그 움직임은 바람과 같았다.
모든 라텔이 일제히 저 멀리 뛰어가던 중이었다.
풀썩
황대산과 고수현이 하늘 높이 벗어던진 모자가 이제야 땅에 떨어졌다.
모두 훈련장을 벗어난 바로 그때였다.
-에에엥!
본부 전역에 비상벨이 울렸다.
한가했던 본부가 순식간에 차가운 공기로 가득했다.
그리고 무전기에선 짤막하게 현장에 대한 브리핑이 들려오고 있었다.
-띠릭, 호텔 화재 발생, 총 7개 층에 72개 호실. 만실 상태, 반복한다…….
태건은 허리춤을 힐끔거리며 미간을 확 좁혔다.
“월요일 아침인데 만실, 출근 안 해?”
“짜샤, 오늘 대체휴무일이야!”
뒤따라 달리는 고수현이 소리쳐 알렸다.
그런 와중에도 무전은 계속 이어졌다.
-띠릭, 3층에서 발화추정, 1층 프론데스크에서 비상벨로 상황 전파. 복도에 가연성 물질들로 불길이 급격히 퍼진 상황. 4층 이상 접근 불가로 지원요청. 투숙객들 발이 묶인 상황. 사육.
사육.
알아들었냐고 묻는 소방대원들의 암호였다.
그 질문 하나로 FM을 고집하는 강영직 지원대원의 무전임을 알아챘다.
귀를 열고 있던 오광휘 단장이 무전기를 낚아채 작동시켰다.
띠릭.
“라텔캡 사칠, 화재 발생 지역 확인 바람, 그리고 투숙객 탈출상황 파악됐는지.”
-띠릭. 지역은 하남 조정경기장 인근. 탈출 인원은 현장에서 파악 중.
그 소리를 들은 유중헌이 얼른 소리쳐 알렸다.
파바박!
“하남이면 여기서 시동 거는 거부터 15분, 아니 20분 안에 컷 칠 수 있습니다!”
“오케이.”
짧게 대답한 오광휘 단장이 다시 무전기를 눌렀다.
띠릭.
“현재로부터 최대 20분 소요 예정, 현장 상황 최대한 수집 후 통보바람!”
-띠릭. 사칠!
짤막하게 정황 파악이 오갔다.
모두 전속력으로 달리는 중에 나눈 대화였다.
숨소리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 동안 쉬지 않고 계속 체력 단련한 효과였다.
가장 앞선 태건은 모두 숙지한 채 달려가고 있었다.
‘4층 이상 접근이 어려워. 그럼 7층까지 모두 고립됐다고?’
게다가 만실이란다.
지원요청은 인명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결단이란 걸 대번에 눈치 챘다.
그 정도로 좋지 않은 상황일 터였다.
한순간이라도 더 빨리 현장에 도착해야 했다.
“아아아!”
파바박!
태건이 악을 쓰며 달리자 뒤에서 화답이 들려왔다.
“차아아!”
“옥상까지 길 터, 문 다 열어 놔!”
황대산이 무전기에 악을 쓰듯 외쳤다.
바로 그때였다.
촤자작. 휙휙!
태건의 좌우로 하얀 물체들이 순식간에 스쳐지나갔다.
이순이와 삼식이었다.
빳빳한 꼬리, 힘찬 뜀박질은 현재 상황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고 있음을 알게 했다.
대견한 모습이다.
그러나 태건은 단호하게 외쳤다.
“이순이, 삼식이, 아니야!”
-컹!
반항의 짖음에 태건이 따갑게 소리쳤다.
“이 새끼들이, 집!”
단순구조가 아닌 화재 출동이다.
이 어린 강아지들을 그 속에 밀어 넣는 잔인한 짓은 절대 할 수 없었다.
심상치 않은 태건의 울림을 강아지들은 본능적으로 알아 챈 모양이다.
-끼잉.
사삭.
앓는 소리를 내며 옆으로 빠졌다.
이제 6개월이 된 강아지들이라고 볼 수 없을 영민함이 엿보였다.
머리를 쓰다듬어 칭찬해주고 팠지만 지금은 마음뿐이었다.
“잘했어. 이따가 보자!”
파바박!
태건은 짧은 인사를 남기고 본부 현관으로 내달렸다.
본부 현관은 유미라 대원이 활짝 열어놓고 대기 중이었다.
“여기요. 여기!”
휙휙.
손을 크게 휘두르며 안내했다.
“감사!”
“실례!”
“땡큐!”
사사삭.
짤막한 인사를 던지며 순차적으로 본부 건물 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 * *
잠시 후.
옥상 헬기의 프로펠러가 작동했다.
푸, 푸다, 푸다다!
일정한 회전수에 다다를 때까지 잠깐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사이 유중헌은 놀라운 속도로 여러 스위치를 켜고 끄기 시작했다.
틱틱, 턱턱.
태건과 단원들은 올라타자마자 방화복부터 챙겨 입었다.
“…….”
삭삭.
오가는 한 마디 말도 이 순간엔 사치였다.
그런데 한 가지가 마음에 걸린 게, 모두의 표정이 굳어 있었다.
바로 후보대원들이다.
누구도 단원들과 함께 움직이지 않았다.
‘이 새끼들.’
‘아웃, 무조건 아웃.’
‘싹 다 짐 싸서 쫓아내버려야지.’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고 싶어 근질거릴 정도였다.
그건 실망 정도가 아니라 최악이다.
그러나 출동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참고 있었다.
그렇게 헬기가 이륙하길 기다리며 방화복을 착용할 때였다.
차자작!
옥상으로 방화복을 입은 한 무리의 소방관들이 우르르 나타났다.
그들은 실망했던 후보대원들이었다.
“저희도 데려가 주십시오!”
“같이 가겠습니다!”
파바박!
헬기로 달려오며 비장하게 외쳤다.
그 모습을 모두가 눈을 가늘게 뜨며 바라봤다.
그에 대한 이유를 이지성이 소리 내 말했다.
“이제 올라와 놓고 뭔 꼴값이야.”
“웃기고 자빠졌네.”
고수현도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뱉었다.
그때 어느새 방화복을 모두 착용한 태건이 휴대폰을 조작하고 있었다.
띡!
“장비 착용하고 오느라 이제 도착한 모양이네요.”
“어? 그……. 그럼 좀 늦을 순 있겠네.”
“그보다 대충 1분 15초대네요. 양호한 수준입니다.”
엉뚱한 소리에 모두가 힐끗 쳐다봤다.
“뭐가. 너 설마 쟤들 착용 시간을 계속 재고 있던 거야?”
“멈춤 버튼 누르는 걸 깜빡했습니다.”
태건이 뻔뻔하게 말했다.
그러나 누구도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태건이 소방 일에 관해 누구보다 철두철미하단 걸 이젠 모든 단원이 인정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감탄했다.
“……너도 참 대단하다.”
“그보다 쟤들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단장님.”
태건이 질문의 대상을 정확히 밝혔다.
스윽.
모두가 앞좌석에 자리한 오광휘 단장을 바라봤다.
그도 난처한 모양이었다.
“아으씨!”
벅벅.
뒷머리를 긁는 손길이 투박했다.
그러나 이런 혼잡한 순간 누구보다 단호한 결단력을 갖춘 인물이다.
그건 확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