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화
그때 후보대원들이 우르르 헬기 앞에 도착했다.
그들이 내지르는 소리가 헬기 로터음을 뚫고 울렸다.
“저희도 탑승시켜 주십시오!”
“당장 올라타겠습니다!”
“저희가 이런 순간을 위해 자원한 겁니다. 출동해야 합니다!”
그대로 헬기로 뛰어들 작정인 모양이다.
아니, 정말 뛰어들기 일보직전이었다.
오죽하면 그들의 기세에 유중헌이 인상을 팍 찡그리며 소리쳤다.
“이 자식들이, 멈춰. 니들 다 타면 헬기가 뜨겠냐, 생각이란 게 있냔 말이다!”
“헉!”
돌변한 유중헌의 따가움에 후보대원들이 일제히 놀랐다.
모두 한 번씩 경험하는 순간이라 라텔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오광휘 단장을 찾았다.
“단장님!”
그에 더해 유중헌이 천장을 손짓하며 더욱 강하게 몰아쳤다.
투다다다!
“회전력 오케이, 이제 뜰 수 있습니다. 빨리 결정 봐요!”
모두 그에게 소리쳐 압박했다.
그때 오광휘 단장이 눈빛을 발했다.
핑!
“후보대원들, 현장 도착 선착순이다. 먼저 도착한 3명은 가산점 붙는다.”
“…….”
“무슨 수를 써도 좋다. 하지만 도로교통에 방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움직인다. 이상. 유중헌!”
오광휘 단장은 그들의 대답도 듣지 않고 유중헌을 찾았다.
그 부름을 기다린 유중헌이 급격히 헬기를 이륙시켰다.
“뜹니다!”
투다다다!
헬기는 지면을 떠오름과 동시에 동체를 기울여 동쪽으로 급선회했다.
그리고 곧장 하남을 향해 날아갔다.
같은 시각.
후보대원들의 눈이 활활 타올랐다.
“선착순…….”
“3명은 가산점…….”
한 마디씩 곱씹던 차에 노주민이 재빨리 몸을 돌렸다.
“……실례!”
파바박!
그가 움직인 순간 동시출발이란 무언의 약속이 깨졌다.
이제부터는 경쟁이다.
“간다!”
“나중에 원망 마라!”
터더더덩!
소방장비까지 착용한 육중한 발걸음으로 그들은 다시 달렸다.
본부 건물이 울렸지만 티끌만큼도 신경 쓰지 않았다.
머릿속엔 오직 하나.
3등 안에 든다.
그 하나만이 가득했다.
후보대원들은 일제히 본부 건물 밖으로 뛰쳐나왔다.
마음 바쁜 누군가 소리쳤다.
“내 차로 갑시다!”
“실례 좀 하겠습니다.”
이런 경쟁의 순간에도 서로를 챙기려는 모습이 훈훈했다.
그런데 송강우가 대번에 막아섰다.
“안 됩니다!”
“차수장, 왜 막아요!”
“승용차 타고 교통체증을 어떻게 뚫으려고요. 막 밀고 가면 경찰서부터 갑니다!”
“앗.”
제안한 후보대원이 멈칫했다.
아무리 봐도 일반차량으로는 서울의 악랄한 교통체증을 이겨낼 수 없었다.
다시 원점에서 고민하는 사이였다.
훈련장의 차고 문이 다급히 열리며 윙탑차가 나타났다.
드르륵.
-에에엥!
사이렌을 울리며 가속하는 윙탑차 옆엔 ‘라텔 현장지원’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산소통 충전 등 여러 지원장비가 준비된 차량이다.
수도권 출동시에 적극적인 지원을 위해 박규영 본부장이 특별 주문한 거였다.
“저거다!”
우르르.
그걸 본 순간 후보대원들이 일제히 달려갔다.
잠깐 멈췄던 지원차량이 다시 급가속하며 떠나갔다.
하지만 탑승하지 못한 8명의 대원이 남아 있었다.
“우린 어쩌죠. 빨리 쫓아가야 되는데!”
발을 동동 구르며 안절부절 못 했다.
그러던 중 최성철이 훈련장 차고를 가리켰다.
“저기 펌프차!”
그 속엔 정말 빨간 펌프차가 떡 하니 주차되어 있었다.
구형 모델로 유중헌이 첫날 모의출동에서 드래프트했던 훈련 차량이다.
뭐든 이들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소방차란 사실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갑시다!”
“저거 6인승 아닙니까?”
“그런 거 일일이 따져서 언제 도착합니까. 라텔 안 될 거예요? 현장에 고통 받는 요구조자들 안 구할 거냐고요!”
“그래요. 낑겨 타요!”
타다닥.
모두가 소리치며 달려갔다.
곧 훈련용 펌프차가 급가속하며 차고를 빠져나갔다.
콰아앙!
“끄아아!”
뒷좌석에 구겨져 탑승한 이들의 비명소리가 끝없이 울려 퍼졌다.
같은 시각.
라텔 헬기는 벌써 잠실을 지나고 있었다.
투다다다.
하늘 높이 솟아오른 타워 옆을 지나칠 때였다.
저 뒤에 한강이 펼쳐져 있고, 그 중간에 기다란 조정경기장이 보였다.
그보다 섬 방향에서 뭉게뭉게 솟구치는 검은 구름이 눈에 들어왔다.
상당한 거리임에도 확연히 보였다.
앞에서 유중헌과 오광휘 단장의 따가운 소리가 오갔다.
“저기, 보입니다!”
“보고 있어!”
뒷좌석은 의외로 고요했다.
“…….”
다들 무겁게 눈을 감고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다.
출동하는 이 순간도 이들에겐 현장이었다.
신속한 헬기로 이동 중임에도 흘러가는 1초, 1초가 입술을 마르게 했다.
안타깝게도 후보대원들은 벌써 잊혀 있었다.
그 속에 함께인 태건도 눈을 감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이내 눈을 뜬 태건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모두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미사동에 호텔이 있습니까?”
가벼운 조약돌 같은 질문이었다.
그러나 그 조약돌은 상상 이상의 파문을 일으켰다.
번뜩!
모두 동시에 눈을 뜨더니 눈에 힘을 줬다.
“내가 알기로는 없어.”
“라이브카페가 많다지만 그런 시설이 들어설 위치가 아니야.”
“언제 그런 건물이 세워진 거지?”
하나 둘 휴대폰을 꺼내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방화헬멧 속 미니스피커에서 무전소리가 들려왔다.
-띠릭. 여긴 본부지원팀, 현재 위치 어디입니까?
“운전라텔 송신, 이제 타워 지나쳤어!”
-띠릭. 건물 화재 7층까지 번졌다고 통보, 투숙객의 정확한 인원 파악은 아직. 사육.
이번에도 강영직 지원대원의 무전이었다.
그런데 그가 알린 모호한 소식이 태건의 신경을 자극했다.
꿈틀.
오광휘 단장이 무전기를 잡으려는 모습이 보였다.
태건이 재빨리 그를 불렀다.
“단장님, 제가!”
“…….”
스윽.
오광휘 단장은 손을 거두는 걸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걸 본 태건은 무전기 버튼을 누르며 소리쳤다.
띠릭.
“막내라텔입니다. 사칠이고 나발이고. 너무 정보가 부정확합니다. 확실한 기준을 세워서 알려주십시오!”
-띠릭. 나도 그쪽에서 알려주는 대로 전달하는 거야.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아!
띠릭.
“지금 보이는 건 검은 연기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거기 호텔은 대체 무슨 호텔인 겁니까!”
태건은 답답함을 그대로 내뱉었다.
그 갑갑함은 FM을 지향하는 강영직 지원대원의 말투마저도 바꿔버렸다.
…….
무전이 잠시 끊어졌다.
지원팀에서도 획기적인 방법이 없어 강구중인 모양이다.
그러던 중 갑자기 휴대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울리기 시작했다.
띠리릭. 삐리릭.
“뭐야!”
“누구야. 모르는 번혼데?”
“영상통화?”
다들 황당해 했다.
그러기 무섭게 무전기에서 다시 강영직 지원대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띠릭. 라텔에게 알림, 모두 영상통화 허용 바람. 현장에서 거는 거야!
“아!”
순간 태건과 모두가 탄성을 쏟아냈다.
영상통화라면 현장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수가 있었다.
다들 재빨리 영상통화를 받았다.
각자 휴대폰 화면에 화재 현장이 가득 떠올랐다.
화르르.
건물 곳곳에서 불길이 넘실거리고 검은 연기들이 솟아올랐다.
건물을 중심으로 화면의 위치가 각기 달랐다.
서로 얼른 비교해 보고는 보이는 걸 각자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이게 무슨 호텔이야. 호텔을 빙자한 모텔이지!”
“간판은 호텔입니다. 다행히 주변은 건물이나 인가가 없습니다. 최소 50미터 정도 여유가 있습니다!”
“이쪽 화면은 펌프차 6대 잡히는데……. 거기 누군지 몰라도 좀 옆으로 돌려주십시오. 부탁합니다!”
제한된 화면이 답답했는지 황대산이 휴대폰이 터져라 외쳤다.
그 사이에도 화면 분석은 계속 이어졌다.
“황 선배가 6대, 이쪽은 3대. 그런데 물줄기 수로 봐서 일부 겹치는 거 같습니다.”
“구급차 4대, 그리고……. 으앗!”
고수현이 갑자기 비명을 질렀다.
그와 동시였다.
-퍼벙!
-크아아아!
-물러서!
-어디야, 뭐가 폭발한 거야!
휴대폰들에서 똑같이 폭발음과 따가운 외침이 이어서 들려왔다.
푸왁!
검은 연기가 건물 밖으로 마치 용트림하듯 크게 뿜어져 나왔다.
그걸로 확신할 수 있었다.
불타는 건물 속에서 뭔가 터졌다.
태건이 빠르게 예상되는 걸 외쳤다.
“가스관!”
“아니야. 모텔에 가스레인지 달아놓은 거 봤냐, 그리고 차단을 해도 벌써 차단을 했겠지!”
“도시가스. 아니면 외부 가스통.”
“그건 그나마 가능성은 있어. 그 외에 다른 게 있다면…….”
브레이크를 걸던 이지성도 계속 머리를 굴렸다.
그때 뭔가 떠오른 태건이 자신도 모르게 흠칫했다.
“헙……. 보일러.”
“그, 그건 인정. 저 정도 규모면 대형 보일러일 거야.”
이지성은 파르르 떨리는 눈빛으로 답했다.
태건은 곧장 휴대폰에 대고 외쳤다.
“제 목소리 들리시는 분, 화면을 건물 입구로, 빨리!”
상대가 누군지 물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만큼 화면으로 보이는 화재는 심상치 않았다.
상대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대답 대신 화면부터 빠르게 움직였다.
스스슥.
곧 건물 현관이 비춰졌다.
-화르르륵!
입구가 불길에 완전히 휩싸여 있었다.
조금 전 폭발의 영향으로 인한 건지는 정확하지 않았다. 그러나 확실한 건 영향이 없진 않을 거란 부분이었다.
절실한 문제는 입구가 막혔단 부분이다.
오광휘 단장도 같은 장소를 보고 있었는지 순간 따갑게 외쳤다.
“뭐하고 있어. 입구부터 뚫어야 될 거 아냐, 모든 소방용수 입구로 집중시켜!”
오광휘 단장만 그런 생각을 하는 건 물론 아니었다.
외침이 끝나기도 전에 모든 물줄기들이 입구로 집중됐다.
-촤아악!
각자 다른 위치의 화면이라 다른 곳 상황을 실시간으로 외쳐 중계했다.
“폭발 영향권에 있던 소방관은 무사합니다. 다시 방수 시작했습니다!”
“현장 통제 인원들, 가이드라인을 더 뒤로 미루고 있습니다.”
“추가 인원 도착, 펌프차 2대, 구급차 1대!”
자기 소리만 내는 건 절대 아니었다.
머릿속에 크게 스케치를 해놓고 하나씩 그림을 덧씌워 입체적인 현장 상황을 그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