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201)화 (200/320)

201화

태건도 덧붙여 자신이 보는 화면만의 특이점을 알렸다.

“1층에 주차된 차량까지 불길 번졌습니다.”

“뭐야, 어디……. 헉 이런!”

고수현이 얼른 태건의 화면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그 소리까지 들은 오광휘 단장이 소리쳐 통화 상대에게 부탁했다.

“거기, 일단 차부터 빼주십시오. 호스 방향 돌려서라도 일단 주변을 비워 주세요. 그리고…….”

부탁을 더하며 현장 총지휘자에 대한 영향력을 조금씩 행사했다.

이런 제한된 화면으로는 다소 무리일 터였다.

그럼에도 상황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제어하는 건 오광휘 단장이 확실히 발군이었다.

오광휘 단장이 그쪽에 집중하는 사이였다.

투두두!

헬기는 최고 속도로 날아가 현장과의 거리를 빠르게 좁혔다.

“젠장, 서둘러야 되는데. 헬기 더럽게 느려 터졌네!”

텅!

유중헌이 주먹으로 유리창을 후려치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스포츠카보다 훨씬 빠른 속도마저도 더디게 느껴질 정도로 현장 상황이 좋지 않았다.

화면 속 현장은 이렇다할 진전이 없었다.

아니, 진전을 기대할 정도로 시간이 흐르지 않았다.

불과 몇 분이다.

엉망진창인 현장을 원활히 통제하기에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다.

지켜보는 모두가 안달이 나 있었다.

“아흐, 미치겠네.”

“저 외제차는 왜 저기 있어. 저걸 확 들어서 던져버리면 좋을 텐데. 레커차는 언제 도착하는 거야!”

“경찰 지원인력 도착, 현장 통제 인수인계 중. 물줄기 추가 없음. 주변 소방시설까지 동원으로 추정.”

보고하는 소리가 감정적이기도 했고, 지독하게 이성적이기도 했다.

커다란 틀 안에 있으면서도 각자 개성이 확실히 돋보였다.

곧 유중헌의 외침이 들려왔다.

“현장 도착 1분 전, 스텐 바이 시작!”

“오케이!”

터덕,.

다들 뜨거워진 휴대폰을 대충 내려놓고 산소통 등 남은 장비들을 마저 착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태건은 옴짝달싹하지 않았다.

“…….”

뭔가 홀로 생각에 빠져 있었다.

일체 감정을 배제하고 지독할 정도로 차갑게 현장을 곱씹는 중이었다.

그런 태건을 황대산이 묵직한 손으로 건드렸다.

퉁.

“강태건이, 왜 그래?”

“아! 황 선배……. 이런 상황인데 요구조자들은 왜 빠져나오지 못하는 걸까요?”

“너 갑자기 뭔 소리야. 그야 당연히 1층부터 연기와 불길이 솟구쳐 올라가니까 그렇지.”

“창문이 있잖습니까. 2층이나 3층이면 다리 부러질 각오로 뛰어내릴 수 있을 텐데요.”

눈을 가늘게 뜬 태건의 목소리가 너무도 냉담했다.

그 시린 목소리는 마치 방관자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흠칫.

황대산은 태건의 색다른 말투,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뜻까지 더해 두 배로 놀랐다.

“무, 무슨……. 없는 말도 아니긴 한데…….”

바로 그때 오광휘 단장의 분노 가득 찬 짜증이 울렸다.

“이런 니기미, 씨부럴, 씨빠빠룰라 같은 썅!”

“단장님, 왜요!”

“창문이 시스템 창호야. 게다가 큰 창엔 쇠로 창살을 넣었어. 전부!”

“네에에!”

우뚝!

준비하던 모두가 멈춰 바라봤다.

그들의 눈동자는 흔들리다 못해 지진이 일어났다.

시스템 창호.

커다란 창 아래에 조그맣게 밀어서 반만 열 수 있게 만든 창문을 뜻한다.

최근 지어지는 고층 아파트나 오피스텔에 많이 사용된다.

장점은 미관적으로, 또 단열 효과가 좋단 점이다.

단점은 사람 머리도 나올 수 없을 정도로 그 틈이 협소했다.

게다가 커다란 유리창을 깰 수도 없다니.

최악 중에 최악이었다.

태건은 그 소리에 두 눈을 꽉 감았다.

“제기랄.”

어쩐지 너무도 이상했다.

이런 난리 통에 요구조자의 비명소리가 이렇게까지 들리지 않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현장에선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상통화에선 그 소리가 방수 소리에 묻혀 들리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태건이 물었다.

“단장님, 옥상이 있을 거 아닙니까. 거기 상황은 어떻답니까?”

그 대답은 유중헌의 입에서 나왔다.

“저기 보이거든, 쓰벌. 예쁘게 비스듬히 막아 놓으셨네.”

“네?”

휙!

태건과 모두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느새 헬기는 현장 근처까지 접근해 있었다.

그런데 요구조자를 구하겠단 열망보다 절망감이 앞섰다.

옥상이 세모 모양으로 마감 되어 있어 내부로 이어지는 문이 보이지 않았다. 삐쭉삐쭉 튀어나온 환풍구가 전부였다.

한 마디로 입구는 막혔고, 탈출로는 없는 상황이다.

그리고 건물의 불은 계속 확산되고 있다.

‘아…….’

툭.

태건은 머리를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렇게까지 사면초가인 현장은 진심으로 처음이었다.

하지만 모든 걸 내려놓은 건 아니다.

짜아악!

양 손으로 거칠게 뺨을 후려쳤다.

흐트러진 정신을 바짝 일깨운 태건이 산소통을 메며 유중헌에게 말했다.

“중헌 선배, 옥상 위로.”

“아무것도 없어. 내려서 뭘 어떻게 할 건데!”

“그건 우리 로프 마스터가 길을 열어줄 겁니다. 안 그렇습니까. 수현 선배?”

태건은 질문만 떠넘기지 않았다.

빙그르르.

뭔가 돌아가는 손 모양으로 힌트를 더했다.

고수현은 그 손짓과 현장 옥상을 빠르게 번갈아봤다.

곧 삐쭉 튀어나온 환풍구들을 발견했다.

띵!

“저 정도면 로프 걸 수 있어!”

고수현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가득 담겨 있었다.

그 고무감에 이지성이 태클을 걸었다.

“어떻게 진입할 거냔 문제가 남았잖습니까!”

그에 대해선 태건이 답했다.

“지성 선배, 그건 온몸으로.”

“온몸?”

“내 몸이 부서지든, 창살이 부서지든, 아니면 옥상을 잡아뜯어내든!”

쿠르릉.

태건의 비장한 각오가 헬기 가득 울렸다.

현장 진입의 어려움이 문제가 아니라 들어가겠단 그 마음가짐을 의미했다.

모두가 제대로 알아들었다.

순식간에 태건과 비슷한 비장함이 풍기기 시작했다.

구우우우.

부정적이었던 이지성 또한 마찬가지였다.

차가운 입술을 한껏 비틀며 말했다.

“그래. 언젠 비단길 깔아놓고 진입했냐. 없으면 만들면 되지.”

“그게 라텔 아닙니까. 그런 의미에서……. 단장님!”

태건이 모든 준비를 마치고 오광휘 단장을 찾았다.

그 사이 출동 준비를 끝낸 오광휘 단장이 기다렸단 듯이 외쳤다.

“얘들아, 문 따라!”

“넵!”

드르륵.

헬기의 양쪽 슬라이드 도어가 동시에 열렸다.

검은 연기가 밀려오자 오광휘 단장은 한 번 더 외쳤다.

“커버 덮어!”

“오케!”

일제히 호흡기 커버를 덮어썼다.

샥!

유중헌도 이 순간은 함께였다.

호흡이 안정을 차린 다음 오광휘 단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연장 챙겼냐.”

“네!”

“그럼 다 때려 부수러 가자. 저 건물 무너뜨려서라도 다 구한다. 그러니까 라텔, 오늘은 특별히 허락한다. 죄다 물어뜯어.”

“깽판 치러 갑시다!”

촤아악!

힘찬 외침과 함께 일제히 레펠 로프를 휘어잡고 헬기에서 뛰어내렸다.

한편.

미즈호텔은 검은 연기와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퐈아악!

소방용수들이 사방에서 쏟아졌다.

그리고 소방관들이 최전선에서 소방호스를 붙들고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화르륵!

뜨거운 열기에 온몸이 땀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단 한 걸음도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

“물러서지 마!”

“앞으로, 한 걸음이라도 더!”

터억, 턱.

방화복 안으로 밀려오는 열기에 숨이 턱턱 막혀갔다.

그런 자신도 아랑곳하지 않고 생면부지의 요구조자들을 구하겠단 일념으로 불에 맞섰다.

미즈호텔은 담장 없이 건물만 우뚝 솟아 있었다.

상호명이 호텔이지, 규모로 본다면 커다란 모텔이었다.

- 끄아아, 살려줘!

- 살려, 컥컥!

- 도와주…….

검은 연기에 가려진 건물 어딘가에서 비명소리가 끝없이 울려 퍼졌다.

지금 미즈호텔은 지옥, 그 자체였다.

담장이 없는 건물이라면 얼핏 쉽게 진압할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러나 건물 주변으로 투숙객들의 차량이 가득 주차되어 있었다.

그 너머는 누군가의 전답이 펼쳐져 있었다. 늦가을이라 수확을 마치고 휴식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지대가 낮고 땅이 물러 소방차들이 들어갈 수가 없었다.

소방차들은 도로에 도열한 상태였다. 대신 길게 연결된 소방호스들을 미즈호텔 근처까지 끌고 와서 방수 중이었다.

그렇다고 소방차들이 노는 일은 없었다.

콰아아!

원거리 지원을 위해 물대포를 가동 중이었다.

그러나 힘차게 발사된 물길은 날아가는 동안 힘이 떨어져 효과적인 표적 공략이 어려웠다.

소방차들과 구급차들이 유독 모여 있는 장소가 있었다.

화재 상황이 가장 잘 보이는 도로 위였고, 현장을 지휘 통제하는 장소기도 했다.

무전기를 붙든 중년인 지휘관의 굳어진 표정이 좋아질 수가 없었다.

울그락 불그락.

시시각각 변해가던 지휘관이 결국 인내하지 못하고 소리쳤다.

“레커는 왜 아직도 안 오는 건가!”

“오고 있답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 얼마나, 더!”

꽈악.

무전기를 움켜쥐었다.

이렇게 기다리기만 하는 현실에 울분이 느껴졌다.

그러나 레커차들이 늦는 건 결코 아니었다.

하남시 소재 보험사 분점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레커들이 총출동 중이었다.

솔직히 화재 발생 후, 흐른 시간이 불과 5분도 되지 않았다.

섬과 같은 구조인 미사동이라 접근하는데 좀 더 시간이 필요할 뿐이었다.

그런 지휘관 주변엔 앳된 소방관들이 휴대폰을 들고 있었다.

출동한 하남소방서와 각 안전센터들의 막내인 소방사시보들이었다.

몇몇 시보들은 좌우로 넓게 거리를 두고 현장의 다양한 각도를 휴대폰에 비추고 있었다.

그들이 바로 라텔과 영상통화 중인 이들이었다.

시보들 중 누군가 휴대폰을 든 자신의 모습을 개탄스러워 했다.

“저렇게 불타는데,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닌데.”

“내가 이러려고 소방관이 된 게 아닌지 않나 싶기도 하고…….”

들썩들썩.

열정으로 똘똘 뭉친 그들은 당장 달려갈 기세였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었다.

시보들과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이글거리는 눈빛들이 사방에 가득했다.

그들은 경력 짱짱한 선배들이었다.

턱, 턱.

다들 손도끼와 망치, 노루발 등 각종 공구를 들고 초조해 했다.

“쓰브럴, 작업 공간이 안 나와서 이렇게 지켜봐야 한다니!”

“가용한 소방호스가 부족해서 뒤로 빠져 있는 게 말이 돼? 대체 이게 뭐야!”

“시간이 없습니다. 이러다가 안에 있는 요구조자들 전멸합니다.”

“누구 들어가기 싫어서 이래! 입구 안 보여? 저기 접근하기도 전에 열 먹고 쓰러질 거란 걸 모르겠냐고!”

버럭버럭.

오가는 목소리가 따갑다 못해 뾰족했다.

그들의 인내심은 진즉 바닥났다.

그럼에도 움직일 수가 없는 건 입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염방사기 같은 불길 탓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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