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콜사인 (202)화 (201/320)

202화

그 뒤쪽으로 경찰들이 폴리스라인까지 동원해 현장을 통제 중이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아이고, 저걸 어째.”

“사람들은 다 나왔대요?”

“몰라요. 아까 몇 명 구급차에 실려 가던데. 그 다음에 소식이 없네.”

“쉬는 날 이게 뭔 날벼락이야. 쯧쯧.”

안타깝고 안쓰러운 마음에 걱정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사람들 사이사이에 휴대폰을 들고 화재현장을 촬영하거나 SNS 라이브로 생중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게 현장은 이미 포화 상태였다.

소방용수가 사방에서 쏟아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길의 저항은 너무도 극렬했다.

속절없이 시간만 흘러갔다.

그러던 중이었다.

가득한 사람들의 귀에 파공성이 들려왔다.

투다다다!

빠르게 접근하는 헬리콥터가 있었다.

시선을 잡아끄는 건 헬리콥터 옆면에 새겨진 독특한 캐릭터였다.

그리고.

촤아아악!

헬리콥터 좌우로 늘어진 로프에 완전무장한 소방관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 모든 걸 본 순간 사람들의 시선들이 일제히 그쪽으로 쏠렸다.

그리고 대번에 알아봤다.

“라텔이다!”

“그들이 왔다!”

기대 어린 외침이 사람들에게서 울렸다.

그 사이사이 다른 소리도 들려왔다.

“라텔이 아무리 대단해도 저길 어떻게 들어가.”

“외장 인테리어 때문에 지붕으로 만들었다잖아요. 주인 성격이 유별난 거 보면 몰라요?”

“어휴. 라텔은 대체 뭔 죄가 있다고.”

우려와 걱정이 담긴 목소리였다.

같은 시각.

태건과 단원들은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미즈호텔 옥상이 지붕구조인데다 연기로 인해 시야가 아예 나오지 않는 상태였다.

불안정한 수직 하강보다 이렇게 매달려 접근하는 게 더 나은 상황이었다.

자칫 잘못 내려서면?

균형을 잃고 미끄러진다.

그 다음은 건물 아래로 추락이었다.

그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이렇게 해야만 했다.

휘이잉.

“…….”

매달린 모두는 말없이 다가설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헬리콥터는 건물 뒤쪽으로 접근 중이다.

그 방향이 최단 거리였다.

푸다다다!

헬리콥터는 단원들의 사정은 관심 없단 듯이 미즈호텔 상공으로 빠르게 향했다.

태건의 표정은 차갑다 못해 무심했다.

후욱, 후욱.

호흡기 소리만이 귀를 울렸다.

반면 두 눈은 틈틈이 엿보이는 미즈호텔의 외관을 살폈다.

‘어디로 치고 들어가야 되지?’

스스슥.

재빨리 두 눈을 굴렸다.

그러나 접근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정확하게 확인할 수가 없었다.

솨락.

순식간에 검은 연기 속에 삼켜졌다.

사방이 칠흑 같이 어두웠다.

사이사이 연기의 틈으로 보이는 빛이 전부였다.

유중헌은 그렇게나 빠르게 현장으로 모두를 이끌었다.

그 와중에도 태건은 단편적인 정보를 얻어냈다.

‘이쪽은 객실 라인이 세 개였어. 가운데가 빈 걸 보니까 승강기 위치일 거야.’

머릿속에 또 하나의 그림을 덧붙였다.

마치 스케치한 원판 위에 필름을 하나씩 입히는 듯이 취합된 정보들이 쌓여갔다.

검은 연기로 모든 시야가 차단된 그때였다.

투두두!

헬리콥터가 허공에서 급정거하며 동시에 유중헌의 무전소리가 들려왔다.

-띠릭. 현장 상공 도착, 세부 방향지시는 라텔캡에게 인계!

-띠릭. 라텔캡 확인. 젠장, 쥐뿔도 안 보여. 그래도 일단 조금씩 아래로 내려!

스, 스슥.

오광휘 단장의 오더에 맞춰 헬리콥터가 미세하게 하강했다. 그 단위가 센티미터라고 해도 될 정도로 무척이나 세밀했다.

이런 정밀 조종을 할 수 있는 조종사는 극히 드물었다.

‘역시 중헌 선배.’

대한민국 조종사 상위 1퍼센트 안엔 무조건 들 터였다.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지도 몰랐다.

태건의 마음으로는 ‘세계 1등 조종사’였다.

그렇게 헬리콥터가 고도를 조금씩 낮추던 중이었다.

터덕.

태건의 발바닥에 뭔가 닿았다.

한 쪽으로 기울어진 경사도 분명 느낄 수 있었다.

그 감각을 느낀 순간 얼른 무전을 날렸다.

띠릭.

“막내라텔, 지붕에 닿았습니다!”

-띠릭. 라텔캡 확인, 나도 방금 닿았어. 다른 라텔들은?

오광휘 단장이 무전을 받았다.

이어진 질문에 다른 선배들 목소리가 차례로 들려왔다.

-띠릭. 핸썸라텔 안착. 두 다리 오케이!

-띠릭. 빅라텔도 오케이, 까칠라텔은?

황대산이 발언권을 이지성에게 넘겼다.

…….

그런데 잠시 무전이 들려오지 않았다.

꿈틀.

‘왜?’

태건이 의아함을 표한 바로 그때 이지성의 짜증 가득한 무전이 들려왔다.

-띠릭. 까칠라텔, 착지 확인. 오른발이 허공이라 얼른 수습해서 지붕 끝에 두 다리 안착.

-띠릭. 야, 까칠. 진짜 문제없지!

-띠릭. 캡, 난 믿음이란 게 없는 놈입니까!

-띠릭. …….

일순간 빈 무전이 울렸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검은 연기만 가득했다.

보이지 않는다고 막말하는 것도 아니고.

태건은 현장까지 와서 투덕거리자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이 싸람들이, 지금 장난할 때야!’

어깨에 파묻힌 무전기 버튼을 향해 손을 뻗었다.

누르기 직전 오광휘 단장의 무전 소리가 들려 왔다.

-띠릭. 쓰벌, 다들 균형 잘 잡아. 내가 골로 가실 뻔 했으니까!

“…….”

태건은 그 소리를 듣고야 손을 내렸다.

스윽.

보이지 않으니 오해가 솟구친 거였다.

그 무전이 끝나기 무섭게 고수현 목소리가 울렸다.

-띠릭. 라텔들 지붕 경사면 따라, 가운데 쪽으로 이동!

-띠릭. 가운데가 어디야!

-띠릭. 그게…….

고수현의 입이 턱 막혔다.

바로 그때 갑자기 헬리콥터 로터소리가 요란하게 돌변했다.

쿠과과과!

그 엄청난 소리와 동시에 대기가 요동쳤다.

-띠릭, 헬리콥터 따위 터지든가 말든가!

유중헌의 목소리가 덤으로 울렸다.

그럼?

휙!

태건이 얼른 고개를 들어봤다.

검은 연기가 서서히 사방으로 흩뿌려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그 영향권이 아래쪽으로 밀려 내려 왔다.

퐈봐봐.

지금 엄청난 바람이 부는 거 같았다.

정작 그 영향권에 있는 태건은 방화복을 입고 있어 피부로 와닿진 않았다.

하지만 흩어지고 또 흩어지는 연기는 확실히 보였다.

그 사이 헬리콥터 소리는 더욱 커져갔다.

쿠과과과!

도저히 커질 수 없을 거 같은 로터소리가 아직도 커져갔다.

순간 태건이 귀를 의심했다.

‘진짜 엔진을 터트릴 작정인가?’

걱정이 되려는 그때 검은 연기를 흩트리며 헬리콥터 랜딩스키드가 툭 튀어나왔다.

“헙!”

이 순간은 태건도 놀랐다.

헬리콥터가 바로 머리 위까지 하강한 거였다. 그것도 호버링하며 로터를 최대한 회전시킨 상황이었다.

‘그게 돼?’

태건은 처음 보는 조종기술이었다.

헬리콥터가 떠오르려는 힘을 누르며 고도를 낮춘다는 게 이론적으로도 이해가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유중헌은 해내고 있었다.

푸과과과!

헬리콥터 엔진에 얼마나 무리가 가는지 로터소리가 과격하게 변해갔다.

그런 그의 놀라운 조종은 확실히 현 상황을 타개할 묘수였다.

검은 연기가 흩어지며 따로따로 위치한 단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완전히 밀어내진 못했지만 보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띠릭.

“중헌 선배, 나이스!”

-띠릭. 나이스 찾지 말고, 으으으으. 얼른 뭐든 좀 해봐. 이거 오래 못 버텨!

“최대 몇 분?”

태건이 진지하게 묻자 유중헌의 악을 쓴 무전이 들려왔다.

-띠릭. 분은 쥐뿔, 몇 십초나 되면……. 끄으으으. 서둘러. 고수현, 빨리 하나라도 걸어!

이를 악문 외침이 너무도 따가웠다.

누구도 그 따가움을 탓할 수가 없었다.

그럴 시간에 움직여야 했다.

고수현은 서둘러 환풍기 기둥에 로프를 칭칭 감기 시작했다.

휙휙.

노력하는 건 그 혼자가 아니었다.

휘릭, 휘릭.

다들 가까운 환기구에 각각 로프를 묶었다.

가장 먼저 마무리한 고수현이 헬리콥터 로프에서 지붕 로프로 교체하며 외쳤다.

-띠릭. 핸썸라텔 로프 전환 완료. 환풍기 기둥이 나름 튼튼하니까 일단 대충 감고 갈아타. 빨리!

그의 재촉이 이 순간만큼은 매서웠다.

5미터도 되지 않을 머리 위에 헬리콥터가 굉음을 내며 떠있는 상황이다.

날카로워지지 않는 게 더 이상한 거였다.

그건 모두가 마찬가지였다.

휘리릭, 휘릭!

각자 순식간에 로프를 설치하고 갈아타며 소리쳤다.

-띠릭, 완료!

-띠릭, 됐슴다!

“저도!”

마지막으로 태건까지 보고하자 오광휘 단장이 마무리했다.

-띠릭, 운전라텔, 정신 사납게 하지 말고 빨리 날아가 버려!

-띠릭. 까으으. 저 단장이……. 씨이. 나중에 봅시다!

투다다다.

유중헌의 쓴소리와 함께 헬리콥터가 하늘 높이 솟구쳤다.

그제야 코앞까지 다가온 위기에서 벗어나는 거 같았다,

그런 해방감을 느낄 틈도 없이 검은 연기가 다시 기둥처럼 솟구쳐 올라 시야를 제한했다.

스스슥.

-띠릭. 이런 염병!

“캡, 시간 없습니다. 이젠 어떻게든 진입해야 합니다!”

태건이 경각심을 소리쳐 일깨웠다.

아니,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래서 오광휘 단장의 대답이 바로 들려왔다.

-띠릭, 각자도생 작전이다. 실시!

각자 알아서 진입하란 소리였다.

태건은 차라리 속편했다.

아마 다들 그렇게 느끼고 있을 거다.

이렇게까지 시야가 제한된 상황에선 서로 예민해지기만 할 뿐이다.

…….

아무 무전소리가 없었다.

그럼 다들 접수했단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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