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5화
다른 두 남성도 응급처치를 해야 했다.
여성의 상황을 토대로 보면 이 때를 놓치면 돌이킬 수 없는 상태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손이…….’
자신은 한 명, 요구조자는 셋이다.
이제 막 숨이 돌아온 여성 요구조자를 밀어낼 순 없었다.
- 투다다다.
깨진 창문 틈으로 헬리콥터 소리가 계속 울리고 있다.
후보대원들이 곧 진입할 거다.
그들 중 누군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릴 상황은 아니었다.
다급함과 복잡함에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 거 같았다.
그 혼란의 시간은 단 1초뿐이었다.
싸악!
머릿속에 헝클어진 생각들을 거대한 밀대로 싹 밀어버렸다.
‘단순하게, 그리고 확실하게.’
그렇게 결정을 내린 태건의 행동도 간결해졌다.
비상용으로 달아둔 간이호흡기들 중 하나를 뜯어버리듯 분리했다.
툭!
이런 순간을 위해 준비한 거다.
아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재빨리 여성의 보조호흡기와 맞바꿨다.
터덥.
“후으……. 컥컥, 흐읍!”
호흡기가 바뀐 여성의 눈이 번쩍 떠졌다.
코로 들어오는 매캐한 연기에 민감하게 반응한 거다.
태건은 호흡기를 남성의 입으로 옮기며 여성에게 권했다.
“입으로만 숨 쉬십시오.”
“흡, 흐륵, 컥컥. 흐읍.”
아직 호흡이 들쭉날쭉한 여성은 결국 코로 숨을 쉬다 괴로워했다.
그 순간 태건이 버럭 소리쳤다.
“입으로만!”
“쓰읍, 쓰읍.”
“그래요. 잘 하고 있습니다.”
“쓰읍. 흐으으. 흡흡.”
여성의 호흡이 흐트러져 갔다.
이로 악문 호흡기는 절대적으로 사수했다.
그러면서 태건을 눈에 담더니 서서히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주르륵.
결국 맺힌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모든 걸 이해하진 못했다.
그러나 소방관의 손에 자신이 살았다는 걸 인지하는 듯 했다.
태건은 감정에 젖어가는 여성을 따끔하게 윽박질렀다.
“눈물 뚝!”
“……흐읍!”
“아직 화재현장 안에 있습니다. 탈출할 때까진 그렇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합니다. 제 말 알아들으셨습니까!”
태건은 평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냉정하고 차갑게 몰아쳤다.
요구조자의 긴장감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느긋하게 대화하는 건 그만한 여건이 갖춰져야 가능했다.
지금은 그 여건이 전혀 갖춰지지 않았다.
그런 태건의 날카로운 반응에 여성은 기가 눌려 눈만 동그랗게 떴다.
“후읍, 후읍.”
그래도 숨은 입으로 쉬고 있었다.
태건에겐 굳이 답을 듣지 않아도 좋았다.
호흡이 유지되고 있단 자체가 대답이었다.
이내 태건은 30대 남성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입과 코엔 미리 옮긴 보조호흡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여성과 상황이 거의 비슷했다.
호흡이 이뤄지지 않았다.
-퉁, 퉁.
맥박이 상당히 약해진 부분도 흡사했다.
응급처치 방법도 똑같았다.
다른 점이라면 흉부압박의 강도였다. 근육의 저항력이 달라 더 강한 힘으로 한 번에 눌러야 했다.
자세를 잡음과 동시에 태건도 숨을 골랐다.
“흡!”
번뜩!
두 눈을 부릅뜨며 있는 힘껏 남성의 흉부를 압박했다.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리며 남자의 입에서 숨이 터져 나왔다.
꽈직!
“커어어억, 카악, 켁켁켁!”
“오케이, 이제 이걸로 바꾸고!”
턱!
보조호흡기를 재빨리 간이호흡기로 교체했다.
그리고 아직 숨이 거친 여성 요구조자의 손을 잡아끌었다.
“손 좀 빌리겠습니다.”
“쓰읍, 쓰읍.”
터억.
“이제……. 잡아요!”
태건은 갑자기 엉뚱한 부탁을 했다.
여성은 태건의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행동했다.
꽈악!
여성이 붙든 건 남성의 코였다.
얼마나 꽉 잡았는지 코가 비틀어질 지경이었다.
“좋아요. 딱 그대로 잘 막고 계세요……. 남성분, 입으로만 숨 쉬어요. 입으로만!”
“크헥, 컥컥, 끄으으, 크윽!”
버둥버둥.
남성은 아직 숨쉬기도 괴로운데 코까지 비틀리자 더욱 괴로워했다.
“쓰읍, 쓰읍.”
여성이 더욱 코를 꽉 잡았지만 오래 유지되기 어려워 보였다.
태건에겐 아직 중년인의 응급처치가 남아 있었다.
시간을 길게 할애할 수가 없었다.
좀 강압적이라도 지금은 진정시키는 게 중요했다.
“실례.”
따악!
남성의 이마에 손가락을 강하게 튕겨 충격을 줬다.
몽롱한 정신을 순간적으로 일깨우기 위해 강한 충격을 선사한 거였다. 과한 응급처치였지만 효과는 있었다.
띠잉.
괴로워하던 남자의 두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커윽!”
“아찔한데 정신은 좀 들죠. 우선 코로 숨 쉬고, 숨이 안 쉬어지면 그거 버리고 젖은 수건으로 다시 코와 입을 막는 겁니다.”
“흐으. 끄으으으…….”
남성은 대답대신 괴로움을 더욱 선명히 어필했다.
이 정신없고 위험천만한 와중에도 느닷없는 아픔 탓에 반항심이 샘솟는 모양이다.
태건은 의외로 짜증을 내거나 성질을 부리지 않았다.
‘그럴 수 있지.’
원래 반항적인 성격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았다.
하지만 반항하는 상대가 태건이란 게 남성에겐 불행이었다. 이 화재현장 속에서 더 이상의 친절을 바라는 건 억지였다.
‘반항엔 특효약을 처방할 뿐.’
스윽.
태건은 남성의 이마에 다시 손가락을 오므려 위치시켰다.
그리고 착 가라앉은 스산한 목소리로 재촉해 물었다.
스스슥.
“알아들었습니까.”
활시위처럼 팽팽히 당겨진 손가락이 언제든 이마를 직격할 기세를 풍겼다.
그 순간 아직 이마가 얼얼한 남성의 태도가 돌변했다.
끄덕, 끄덕.
“쓰읍, 읍읍, 쓰읍.”
입으로만 숨을 쉬는 걸 아주 대놓고 보여주기까지 했다.
그걸 보고야 태건은 남녀에게서 돌아섰다.
‘하여간 수컷들은 왜 꼭 뭔가 액션이 들어가야 말을 듣는지.’
태건 스스로도 포함되는 뇌까림이었다.
그런 와중에도 몸은 침대 옆에 엎드려 중년인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파바박!
단 몇 걸음이다.
그 거리를 움직이는 태건의 모습은 전광석화 같았다.
금세 도착한 태건은 이번에도 보조호흡기를 덮으며 동시에 맥박을 확인했다.
“라텔입니다. 제 말 들리십니까!”
슥, 턱.
“쓰읍, 쓰으읍!”
자력으로 숨을 쉰다.
남녀와 다른 상황에 태건이 오히려 놀랐다.
‘어떻게 다르지?’
그걸 따질 때가 아니다.
환호할 일이라 태건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더불어 요구조자를 거칠게 흔들며 재차 반응을 끌어냈다.
흔들흔들.
“눈 떠 보세요. 할 수 있습니다. 뜨세요!”
“…….”
꿈틀꿈틀, 부스스.
어렵사리 눈을 뜬 중년인이 태건을 바라봤다.
쓰윽, 쓰윽.
숨 쉬는 소리가 커지는 거 같았다.
중년인이 바라만 보고 반응이 없자 태건이 재차 물었다.
“제가 누군지, 뭘 입고 있는지 아시겠습니까?”
“…….”
끄덕.
이윽고 신호를 보냈다.
한 번의 미미한 고갯짓이었다.
그러나 태건은 그 반응을 본 순간 빙그레 미소 지었다.
“네, 소방관입니다. 모시러 왔습니다.”
“들었……. 쓰읍, 지켜……. 고맙…….”
중년인의 입에서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중저음으로 깊이가 느껴지는 톤이었다.
-들었다, 지켜줘서 고맙다.
흐리게 건넨 말의 참 의미였다.
그리고 마주한 시선이 깊게 변해갔다.
지켜보고 있던 태건은 생생히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이 순간에 대한 고마움을 말하는 게 아니다. 조금 전 깨진 창문 틈으로 외친 태건의 약속을 뜻한 거였다.
멈칫한 태건이 물었다.
“기억하십니까?”
“뭐라도 하고, 쿨럭쿨럭.”
기침 탓에 대답이 끊어졌다.
그래도 확실한 건 중년인이 제대로 듣고 있었단 점이었다.
그때 태건의 두 눈에 뭔가 보였다.
중년인의 발끝이다.
꾸물, 꾸물.
발가락이 움직이고 있다.
오므렸다가 펴는 단순한 동작이다.
가까이서 봐야 보일 정도로 자잘한 움직임이었지만 발견한 지금도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아!’
태건은 속으로 진한 탄성을 터트렸다.
남녀와 결정적인 차이점이 바로 이거였다.
구해주겠단 태건의 약속을 곱씹으며 의식을 잃지 않으려 필사적으로 노력한 거였다.
그걸 간파함과 동시였다.
찌르르.
태건은 묵직했던 가슴 속에 전율이 흘렀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누군가 던진 말을 전적으로 의지한다는 건 쉽지 않았다.
그 얼마 되지 않는 부류의 요구조자가 눈앞에 있었다.
‘이래서, 이런 분들이 있는데, 좀 위험하면 어때.’
속된 말로, ‘구할 맛 난다.’란 기분이 가슴을 꽉 채웠다.
이 순간 느껴지는 소방관에 대한 자긍심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가 없었다.
태건의 가슴이 강하게 울리는 그때였다.
타다닥.
-강태건 선배님, 어디 계십니까!
복도에서 발소리와 호흡기커버에 막혀 울리는 목소리가 차례로 들려왔다.
퍼뜩!
감상에서 깨어난 태건이 자신을 책망했다.
‘감동을 해도, 현장 마무리 짓고 하자.’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었다.
태건은 목청 터져라 소리 지르지 않았다. 호흡기커버를 쓰고 있는 상황이라 목만 아프고 효과는 적었다.
자신을 대신해 귀 따갑게 소리쳐줄 대체 소방용품이 존재했다.
인명구조경보기였다.
탈칵.
안전클립을 빼자 객실이 들썩일 소음이 울렸다.
-삐리리리, 삐리리리!
찬물을 뒤집어쓴 정도로 정신이 확 깨는 굉장한 소음이다.
두 번이면 차고 넘쳤다.
‘윽!’
태건이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안전클립을 끼웠다.
그와 동시였다.
차자작.
축축한 발소리가 대번에 가까워졌다.
“선배님, 여기……. 악!”
촤작, 터덩.
복도에 나타난 누군가 균형을 잡지 못하고 미끄러져 넘어졌다.
그래도 얼른 털고 일어나 다가왔다.
모든 소방장비를 착용하면 누군지 알아보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태건은 지금 눈앞에 나타난 소방관이 누군지 대번에 알아봤다.
그의 가슴께에 부착된 액션캠 덕분이었다.
“노주민?”
“네. 선배님!”
타다닥!
대답하며 재빨리 거리를 좁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