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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사인 (206)화 (205/320)

206화

그 사이 태건은 잔여 공기량을 확인했다.

예상대로 게이지가 많이 기울어져 있었다.

건물에 도착하기 전부터 호흡기커버를 사용했고, 요구조자들 거친 호흡을 모두 커버한 탓이었다.

“교대.”

휙휙.

태건이 손짓까지 더하자 다가오던 노주민은 곧장 보조호흡기를 꺼내들었다.

태건은 교대하기 직전 중년인에게 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려주십시오. 기필코 모시고 나갈 겁니다.”

“쓰우우, 쓰우우.”

끄덕.

호흡이 제법 안정된 중년인이 묵직하게 고갯짓했다.

그걸 본 태건이 묵직하게 몸을 돌리려 했다.

바로 그때였다.

스윽.

팔을 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음?”

태건은 순간 멈칫했다.

중년인이 떨리는 손으로 붙든 거였다.

부들부들.

“쓰으, 쓰으으.”

그는 아직 온전히 말할 상황은 아니었다.

그렇게 신체기능이 저하된 상태인데도 방화복을 묵직하게 붙들었다.

…….

두 눈이 눈빛으로 뭔가 말하고 있었다.

그윽한 시선 속에 분명 무언의 의미를 보내고 있었다.

태건은 그 시선을 잠시 마주했다.

‘나도, 당신도, 안전하게.’

정확하지 않지만 그런 의미로 느껴졌다.

태건은 나지막이 입밖으로 내뱉었다.

“네. 안전하게.”

“…….”

스륵.

중년인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지며 손을 놓았다.

태건이 옳게 느낀 모양이었다.

이 순간, 이 느낌.

화재현장 속에서 요구조자와 소방관만이 나눌 수 있는 특별한 교감의 순간이었다.

사이에 끼어있던 노주민의 눈동자가 진동했다.

‘이런 일이…….’

노주민은 화재 담당인 경방 출신이라 지금 어떤 교감이 오갔는지 확실히 느끼고 있었다.

자신은 경험하지 못한 신세계다.

이 모든 게 카메라에 담겼는지부터 궁금했지만 당장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한편.

태건은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두두.

헬리콥터가 어느새 멀어져 로터소리가 희미하게 변했다.

그런데 무전기가 의외로 조용했다.

…….

태건은 그 고요함의 이유를 알 거 같았다.

스윽.

시선이 객실 창문으로 향했다.

다시 봐도 외창과 내창인 2중 구조였다.

외창은 쇠창살로 막힌 창문이고, 내창문은 짙은 선팅으로 햇빛을 차단하는 용도일 터였다.

“……그랬어.”

창문을 유의 깊게 살펴본 태건의 미간이 잔뜩 좁혀져 있었다.

외창문의 창살만 문제가 아니었다.

내창 전체에 발라진 선팅의 악영향도 상당했다.

방금 요구조자들을 응급처치하며 의아했던 점의 원인이 바로 선팅이었다.

아무리 이중창구조라고 해도 유리를 깨면 호흡할 수 있는 공기는 객실로 유입될 수 있었다.

그런데 선팅이 유리를 충격으로부터 보호하는 역할을 겸하고 있었다.

여기 창문만 봐도 뜯겨지다만 너덜너덜한 선팅지에 유리조각이 조각조각 붙어 있었다.

“치잇.”

태건이 일순간 입술을 꽉 깨물었다.

여기가 이렇다면 다른 객실도 마찬가지인 상황일 터였다.

문제는 탈출구가 없단 점이다.

현재로선 비상계단 창문이 유일할 가능성이 높았다.

설상가상으로 열린 객실문으로 몰려오는 연기의 양이 늘고 있다.

객실에 연기가 빠지지 못해 쌓이고 있다.

태건의 머릿속에 여러 가정들이 번개처럼 떠올랐다.

‘그렇다면 터무니없는 생각은 아니란 건데…….’

이런 상황이라면 만실이란 투숙객 수에 비해 살려달란 아우성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소리친 이들은 그나마도 선팅을 일부 벗겨냈을 터였다.

그걸 위해 얼마나 필사적으로 행동했을지는 굳이 생각하지 않아도 그려졌다.

문제는 모든 객실이 비슷한 상황일 거란 부분이다.

‘저층 투숙객들은 열기와 연기를 피해 위쪽으로 올라왔을 가능성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다각도로 생각하니 머릿속이 핑핑 돌았다.

확실한 건 하나 있었다.

어디든, 누구든, 확실한 탈출구를 확보해야 한다는 부분이다.

태건의 관찰 및 추측은 10초 내외였다.

이젠 흐름이란 묘리를 얼추 맛본 상태라 여러 정황을 물 흐르듯이 연결시킬 수 있었다.

그 속엔 불의 흐름도 포함이었다.

보일러가 터진 게 사실이라면 입구를 쉽게 뚫긴 어려울 거다.

영상통화로 확인한 현관이 건물 크기에 비해 좁았다.

그럼 불이 빠져나오지 못해 위로 솟구칠 거다.

몇몇 라인은 불길이 치고 올라온 걸 눈으로 확인하기도 했다.

결론은 탈출로를 만들어야 한단 거였다.

그것도 최대한 빨리, 최단 루트의 탈출로여야 했다.

‘아니면 진짜 끔찍한 악재가 될 수도 있어.’

부정적인 억측이 아니다.

충분히 그런 상황이 벌어질 수 있는 화재 현장이었다.

그 생각은 태건의 등골을 오싹하게 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사상자가 늘어나는 걸 막을 수 없다.

일일이 객실 찾아다니며 뛰어다니기엔 시간이 너무 낭비된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시간을 벌고, 안전한 탈출루트를 마련해야 한다.

그게 아니면 신속하게 탈출할 수 있는 극단적인 방법이라도 강구해야 한다.

내부 상황 파악을 마침과 동시였다.

태건은 바로 무전기를 움켜쥐며 외쳤다.

띠릭.

“막내라텔입니다. 탈출로 확보했습니까?”

-띠릭. 라텔캡이다. 현재까지는 우리가 들어온 6층과 7층 사이 비상계단 창문 밖에 없어.

“아직 안 내려가셨습니까?”

-띠릭. 요구조자 1명 모시고 로프에 매달려서 무전 중. 4층과 3층 사이, 위에서 핸썸라텔이 컨트롤 중.

오광휘 단장의 대답에 태건은 빠르게 무전했다.

띠릭.

“캡, 객실 상황 정말 안 좋습니다.”

-띠릭. 나도 핸썸라텔한테 들었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입구 뚫을 테니까 최대한 버티면서 기다리고 있어.

오광휘 단장의 묵직한 각오로 무전이 끝났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 그 말은 너무 추상적이었다.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했다.

태건은 객실을 떠나기 전에 내부정리부터 진행했다.

“노주민, 요구조자들부터 욕실로 옮기자. 어서.”

“알겠습니다.”

노주민이 얼른 대답했다.

사삭.

갑자기 엄청 빠릿빠릿해졌다.

“제가 이쪽에서!”

“제가 더 힘을 쓰겠습니다!”

“수압이 많이 약해졌습니다. 수건을 적셔서 시간은 좀 더 벌었습니다.”

휙휙.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할 정도였다.

태건은 그런 노주민의 모습에 흡족했다.

“현장에 오니까 확 살아나네. 현장 체질인가.”

본부에서 봤을 때와 다른 모습이 의아하면서도 흡족했다.

곧 태건이 먼저 객실을 나서며 노주민에게 뒤를 부탁했다.

“여기 마무리 되면 바로 다른 객실 가서 투숙객들 체크해.”

“알겠습니다.”

“기본 응급처치는 할 줄 안다고 했으니까. 응급처치하면서 산소 잔량 수시로 확인하는 거 잊지 말고.”

“이 속에 있는 간이호흡기는 최대한 아끼겠습니다.”

스륵.

노주민이 태건의 출동가방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 소리에 태건 표정이 확 굳어졌다.

“그거 아껴서 뭐할 건데.”

“아. 팍팍 쓰겠습니다.”

“낭비할 정도로 넘쳐나나?”

태건의 질문에 압박 강도가 강해져갔다.

뭔가 가능성이 엿보이자 바로 압박하는 거였다.

노주민은 눈치가 빠른지 스스로 답을 유추했다.

“……적당히 잘 조절해서 최대한 유지할 수 있게 하겠습니다.”

“빨리 파악하고 돌아오지.”

휙.

돌아선 태건은 신속하게 객실 밖으로 향했다.

객실을 나온 태건은 일단 문을 닫았다.

- 605호.

이제야 호수를 확인했다.

머릿속에 입력하며 승강기 쪽으로 내달렸다.

타다닥.

좁은 복도를 따라 가운데 승강장으로 되돌아가는 중이다.

그 사이 달라진 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가장 먼저 플래시를 켜야 했다.

팟.

‘연기가 짙어졌어.’

자그마한 불길로도 훤했던 복도가 상당히 침침해져 있었다.

켜켜이 쌓인 연기들이 어디로도 빠져나가지 못했다.

전기가 끊어진 상황이라 환풍구도 멈춰 있었다.

점점 안 좋은 쪽으로 상황이 흘러가는 거 같았다.

태건은 우선 단원들에게 확인 무전부터 날렸다.

띠릭.

“막내라텔입니다. 객실 확인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띠릭. 빅라텔, 후보 2명과 일단 문이 열리는 곳 위주로 응급처치 중이야. 안전 확보하고 이동하는 식으로야.

-띠릭. 까칠라텔, 후보 1명 대동. 7층 객실에 사람들이 많이 몰려 있어. 대가족이 아닌 이상 아래층에서 도망쳐온 사람들 같아.

-띠릭. 핸썸라텔, 후보 1명 같이 있고, 단장님과 요구조자 내렸고, 다음 요구조자 준비 중이야.

고수현의 무전에 태건이 곧장 무전했다.

띠릭.

“요구조자 1명당 하강 소요시간 계산 됩니까?”

-띠릭. 순탄하게 내려갔을 때 3분 정도.

“핸썸라텔은 우선 그쪽에 집중해주시고, 아래층 내려가 보신 분 계십니까?”

태건이 다음 용건을 무전했다.

그런데 누구에게서도 돌아오는 답이 없었다.

…….

지금 침묵은 부정이다.

아무도 없는 모양이다.

태건은 다시금 무전했다.

띠릭.

“막내라텔이 확인하겠습니다.”

-띠릭. 조심해.

황대산이 모두를 대표해 걱정을 보였다.

그때 고수현의 무전이 다급히 울렸다.

-띠릭. 뭐야, 헬리콥터. 왜 또 오는데!

-띠릭. 왜 오냐니. 밑에 주렁주렁 매달린 거 안 보여!

유중헌의 따가운 무전소리가 바로 반박했다.

투두두.

멀어졌던 헬리콥터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그 사이 이어지는 고수현의 무전에 궁금증이 가득했다.

-띠릭. 어디서 애들을 또 데려온 겁니까. 그리고 왜 3명 밖에 없습니까?

-띠릭. 난 매달아 오기만 해서 모른다니까.

-띠릭. 까칠라텔, 여덟 명이 맞습니다. 훈련차량 타고 오려다 차량 급증가로 수상택시로 우회했답니다.

-띠릭. 나머지 두 명은?

-띠릭. 지원차량으로 오고 있답니다. 출발은 그쪽이 먼저 했다고 합니다.

이지성은 누가 같이 있는지 몰라도 후보대원들 상황을 정확히 전달해줬다.

태건은 지원차량이 오고 있단 소식에 귀가 꿈틀거렸다.

띠릭.

“단장님, 지원차량 위치 확인 부탁합니다.”

태건이 확인을 부탁했다.

그런데 오광휘 단장이 아니라 김여훈 지원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띠릭. 여긴 지원팀장, 경찰차 에스코트 받아 강일IC 지나는 중이라고 알림!

유심무전기라 광역 송수신이 가능했다.

‘아, 그렇지.’

현장에 집중 중이라 깜빡했었다.

그런데 이제 강일IC라면 아직 도착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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